# 이런 사무실은 없었다 뒤로는 한라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제주 한라산 중턱. 그 곳에 이 건물이 있었습니다. 건축기자로서 최근 가장 보고 싶었던 건물과 드디어 만났습니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제주의 능선처럼 건물은 부드럽게 펼쳐지고 때론 휘면서 땅의 흐름 위에 둥실 떠있습니다.
건물 입구에선 제주의 상징 하루방이 손님을 맞습니다. 노트북을 펼쳐든 그 모습이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건물에는 아무 로고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하루방이 든 컴퓨터가 정보통신 기업이란 것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밤이 되면 건물은 그 안에서 빛을 뿜어내며 또다른 분위기로 변합니다.
제주 특유의 너른 풀밭 위에 들어섰고, 그리고 제주 특산인 화산송이석의 붉은 빛깔로 치장한 점에서 이 건물은 가히 `제주적인 건물'이라 하겠습니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과 건물이 하나가 됩니다.
건물 뒤로는 넓은 동산이 만들어졌습니다. 저 건물을 지으면서 파낸 흙으로 만든 구릉입니다. 제주 명물 오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 오름에는 `제주 369번째 오름'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제주는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화산 풍광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곳.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산과 바다를 모두 품는 곳입니다. 배산임해라고나 할까요.
위에서 내려다보면 저렇게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저렇게 봉긋한 오름과 제주의 영산 한라산이 함께 보입니다.
처음 보면 어딘가 독특하다 싶었던 이 건물의 특징은 가까이 다가가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둥근 콘크리트 기둥이 버섯처럼 위쪽에서 펼쳐지면서 수직은 수평이 되고, 직선은 곡선이 됩니다. 이 구조가 펼쳐져 벽이 되고 지붕이 됩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자연스럽게 창문입니다. 벽과 기둥, 천장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구분이 사라지는 건물, 가장 간단한 기본꼴이 변주되면서 안과 밖을 나누면서 동시에 연결합니다.
형태는 실로 간단하나 그 속에 담긴 구조는 아주 독특합니다.
이 독특한 건물이 최근 문을 연 포털사이트 다음의 새 사옥, 이름은 `스페이스닷원'입니다.
기업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는 다음의 파격적인 실험을 공간으로 구현한 건물, 그동안 한국에 없었던 새로운 사무실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 지각한 사원, 사장에게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게 하다
다음이 본사를 제주도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2004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장 첨단을 걷는 IT 기업이 서울을 떠난다고? 그것도 한국의 맨 끝 제주도로?
발표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왜 제주도일까, 그게 가능할까 실로 의아해했습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는 것은 늘 한국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지역간 불균형이 심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방편으로 여겨졌습니다. 모든 것을 오프라인으로 해야만 하던 시절, 일을 처리하고 진행할 다른 요소들과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아주 중요했지만 인터넷은 그런 거리를 극복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 서울 집중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의 시도는 황당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왜 다음은 제주도로 이사를 가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못한 시도를 한 것일까요?
그건 아주 사소할 수 있는 사건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의 창업자로 당시 대표였던 이재웅 사장이 제주 이전을 구상하게 된 것은 아침 조찬 회의에 한 신입사원이 지각한 것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신입사원이, 그것도 사장이 참석하는 회의에 지각한 것이 궁금한 이 사장은 이유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 직원은 서울 근교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출근에 2시간이 넘게 걸려 늘 새벽 5시30분에 나와 6시 버스를 타야 8시까지 회사로 올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날 하필 버스를 놓쳤고, 그 다음 버스로 오느라 지각을 했던 것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하루 4시간이 넘는다는 것, 실로 피곤한 일입니다. 문제는 서울에 살기 어려운 상황인 사람들도 많다는 점입니다. 직장은 서울이어도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서울 외곽에서 몇시간씩 고생해가며 통근하게 됩니다. 그 에너지 낭비와 피곤함은 늘 삶을 피로에 찌들게 만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장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붐비고 복잡한 서울이 아니라 환경 좋은 작은 지방 도시로 회사를 옮기면 어떨까,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문제도 있겠죠. 기업의 자산은 인재들입니다. 그 인재들이 과연 회사가 지방으로 옮겨도 따라 올 것인가, 그리고 새로운 인재들은 서울이 아닌 곳에 있는 회사에 지원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사장은 이 고민을 사내 인트라넷에 띄웁니다. “대표이사로서가 아니라 공해에 찌든 이재웅 개인으로서 물어보는”것이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댓글은 공교롭게도 “이왕이면 제주도로^^”였습니다. 물론 직원들의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 서울 그러잖아도 넘 싫은 좋다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실험임은 분명했습니다.
오랜 토론 끝에 다음은 이 구상을 정말로 시도하기로 결정합니다. 후보지는 제주였습니다. 서울 부근 도시로 하면 출퇴근 지옥을 진정으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서였습니다.
다음의 본사 이전이 눈길을 끄는 점은 파격적인 결정 못잖게 그 과정이 점진적이고 치밀했던 점이었습니다.
사내 설문조사로 직원들의 의향을 물어 결정했고, 결정이 된 뒤에도 단숨에 일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선발대를 제주에 보내 현지 조사를 했고, 가장 제주로 옮기기 어려워보이는 부서를 먼저 옮겨 테스트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제주로 떠나기 시작한지 8년, 진정한 제주의 사령부가 될 건물로 완성된 것이 이 스페이스닷원입니다. 한 사원의 지각이 촉발한 변화의 아이디어가 결국 이 건물을 짓게 만든 셈이니 엄청난 나비효과를 부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 오름 같은 외부, 화산 동굴 같은 내부, 그 속에서 변화하는 공간
스페이스닷원은 독특한 외관 못잖게 내부도 새롭습니다. 이제 건물을 자세하게 돌아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건물은 버섯모양 구조체가 디자인의 핵심입니다.
둥근 기둥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공간을 형성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면들이 쌓여 5층 건물을 이룹니다. 그리고 땅과 건물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경관 건축' 곧 `랜드스케이프 건축'입니다. 땅은 건물 위로 타고 올라 옥상 정원이 되고, 식물들이 벽을 타고 자라도록 꾸몄습니다. 아직은 식물이 벽을 타고 오르지 않았지만 언젠가 저 붉은 벽이 푸른 이파리로 뒤덮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 돌을 쌓아 구분해놓은 곳은 텃밭입니다. 점심 시간과 퇴근 이후 직원들은 상추 등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건물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저렇게 거대하게 튀어나온 평판입니다. 한쪽 기둥에만 매달려 저렇게 튀어나오는 구조를 `캔틸레버'(외팔보)라고 하는데,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게 매력인 공법입니다. 마치 한옥의 긴 처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비를 막아줍니다.
벽이 거의 없는 형태다보니 창문은 시원시원합니다. 창문이 크고 높으면 보기는 좋지만 냉난방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제주도여서 서울이었으면 관리가 어려웠을 저 큰 통창이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아 이 건물은 앞쪽과 뒤쪽 입구의 높이에 차이가 생겼습니다. 그 사이로 뚫린 개방 공간입니다.
바닥의 미로 모양 선은 직원들이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공간은 이 건물 외부에서 가장 기하학적이고 근사한 곳입니다. 다른 건물에선 보기 힘든 풍경과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뚫림과 열림, 낮음과 높음, 하늘과 건물, 수평과 수직, 곡선과 직선이 프레임 하나 속에 다양하게 조합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저 계단을 올라가 이제 주 출입구로 들어갑니다.
안내 데스크가 나오고 로비가 펼쳐집니다. 버섯기둥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 묘합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지만 층고를 높이고 콘크리트 마감 자체로 내부 디자인을 승부해 동굴 속 같은 특별한 느낌이 납니다.
반대쪽에서 입구쪽을 바라보면 이렇습니다.
이 건물은 `재료의 건물'입니다. 콘크리트라는 재료 그 자체의 물성, 그리고 이 재료가 만들어내는 구조미, 그 재질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이런 노출콘크리트 건물들이야 흔하지만 이 건물은 그 디자인이 다르기에 느낌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중간 부분은 1~2층이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로비 아래로 직원들 휴게 공간입니다. 거대한 기둥 벽에는 디자인 포인트로 사다리를 달았네요. 직원들이 즐겁게 탁구를 치고 있습니다.
위에서 정면으로 내려다 보면 이렇고,
아래 탁구대 있는 곳으로 가보면 이런 느낌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벽에 붙어 노출된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닌데 이 건물에선 더욱 어울려보입니다. 시멘트 바탕에 철과 유리가 덧붙여진 내부는 색조는 차분하고 덩어리감은 역동적입니다.
사무실 건물이니 핵심인 사무실을 보겠습니다.
특별한 치장이 없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구조 전체가 내부 마감재입니다.
시원하게 외부가 펼쳐지는 창가. 전망은 좋은데 빛이 많이 들어와 좀 더운지 위 사진에는 없지만 책상용 차양을 달고 일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건물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거대한 덩어리 구조의 느낌.
건물의 층고가 높다는 것은 실로 매력적입니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는데 그 이전에 공간이 주는 시원함 자체가 사람에게 해방감을 줍니다.
내부 공간 중간에 떠있는 이 곳은 도서관입니다.
여기는 각종 행사장, 회의장으로 쓰는 강당 입구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펼쳐지는 버섯기둥 구조를 역으로 펼쳐 위쪽으로 오므라들면서 내부로 빛을 빨아들입니다.
그리고 강당 내부.
반대쪽 장면입니다.
그리고 식당입니다.
스페이스닷원은 단순하고 명쾌하면서도 리듬감이 넘치는 구조, 뚫린 공간과 숨어드는 공간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전체의 논리와 시퀀스가 돋보였습니다.
물론 재질 특성상 삭막하고, 좀 어둡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무실과도 다른 사무실 건축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밝힐 수는 없지만 건축비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제한 조건 내에서 많은 성과를 뽑아낸 건물입니다.
# 세계 건축계의 스타 조민석, 2년 만에 야심작을 내놓다
저 건물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취재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조민석(46, 매스스터디스 대표)였기 때문입니다.
조민석 건축가는 지금 한국 건축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 세대의 대표 주자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라고 한다면, 60년대생 이후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건축가입니다.
조민석 건축의 특징은 경쾌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논리를 공간에 집어넣고 사회 문화적 맥락과 연결시키는 점입니다. 유쾌하다는 점에서는 국내의 문훈 건축가나 해외의 BIG(비야르케 잉엘스 그룹) 등과, 건물을 이용할 거주자들의 생활 스타일을 분석해 물리적 구조체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건축을 한다는 점에서는 렘 콜하스 등의 건축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조민석 건축가가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매번 새로운 건축을 선보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다른 건축가들보다 다양한 장르의 건물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번 스페이스닷원은 그의 이전 작품들과 완전히 달라보입니다. 상하이엑스포 한국관입니다.
엑스포 건물은 오래오래 쓰는 일반 용도의 건물이 아니라 전시와 이미지 강조라는 특별한 목적과 엑스포라는 단기 행사용 건물입니다. 그래서 훨씬 과감하고 조형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합니다.
저 상하이엑스포 한국관은 역대 한국 엑스포 건물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글이란 디자인 모티브를 잘 활용해 장식 효과가 뛰어났고, 역동적인 구조로 내부와 외부를 관통하는 느낌이 독특해서였습니다.
엑스포는 실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건축이란 점에서 일종의 국가 건축 대항전인데, 한국관은 전체 2등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시 국가관들 중에서 가장 적은 건축비를 들였던 건물이란 점일 겁니다. 가장 싸게, 그러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지은 건물이란 이야기죠.
내부는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각종 전시물들을 설치하지 않은 상황의 개념도입니다.
이 상하이엑스포 한국관과 저 다음 사옥은 그 디자인은 전혀 다르지만 구조면에서 볼 때는 `알맞게 열리고 알맞게 닫히는' 점에서 맥이 이어진다고 하겠습니다.
이 엑스포 한국관보다 앞선 건물로 조민석 건축가의 `출세작'은 이 것이었습니다.
이 건물의 이름은 `부티크 모나코'입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 강남역 네거리 삼성 본관 맞은편에 있습니다.
부티크 모나코가 건축계에서 유례없는 주목을 받았던 것은 화려한 외부 디자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 건물은 최고급 주거용 건물인데, 그 내부의 각 가구-유닛-들이 굉장히 다양하고, 공용공간과 개별공간, 그리고 동선이 실험적이면서도 뛰어났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건물 중간중간을 들어내고 사이사이에 공중 정원을 만들어 저 안에서 많은 공간 경험을 하게 디자인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쉽게도 개인 건물이라 들어가서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작품들로 조민석 건축가는 국내 건축가들 중에서는 단연 외국에서 많은 관심을 끌어모았습니다.
이 건축가가 상하이엑스포 이후에는 신작을 발표하지 않았는데 다음 사옥이 지어졌다니, 기자로서 당연히 취재를 하려 했던 것입니다.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사무실 건축에서 어떻게 조민석 건축 특유의 차별성을 보여줄 것인가'였습니다.
사무실 건축은 잘 아시듯 특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커다란 방, 줄지어 선 책상, 높은 빌딩. 그 외에 다른 어떤 공간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규격화되고 단일화된, 위계적인 공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무실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곳들이 주요 아이티 기업들입니다. 페이스북, 구글, 네이버 등 국내외 아이티 기업들은 놀이공간 같은 사무실, 카페 같은 사무실, 재미있는 사무실로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 페이스북 사무실 내부/자료사진
그러나 대부분 실내 인테리어 차원이었고, 건물 전체 차원에서의 새로움은 적었습니다. 이런 점에 견줘볼 때 다음 사옥은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과 건축을 접목하는 시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 구글 사무실/자료사진
많은 분들께는 네이버나 페이스북 등의 재미난 사무실이 새롭게 느껴지겠지만 건축의 역사에서 사무실 건축의 파격적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20세기에 더욱 파격적인 사무실 건축의 실험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히 거의 대부분의 사무실들이 너무 재미없고 너무 딱딱하고 너무 위압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사무실 건축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례는 미국의 존슨 왁스 빌딩입니다. 바퀴벌레 잡는 레이드로 유명한 회사의 건물입니다.
존슨 왁스 빌딩은 지금 보면 `뭐 좀 독특하네' 정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건물이 1930년대, 그러니까 80년 전 건물이란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저 외관이 아니라 내부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눈이 시원해지는 개방감, 그리고 골프공을 얹는 티 모양의 기둥이 만들어내는 조형미. 지금 봐도 걸작입니다. 1930년대에 이 내부는 정말 발상의 전환 그 자체였습니다.
이 존슨 왁스 빌딩을 설계한 건축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였습니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 폭포 위에 올라탄 낙수장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현대 건축 최고의 스타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건물입니다.
좁고 긴 사무실이 아니라 높고 시원한 사무실, 자유로운 내부 등으로 이후 많은 사무실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 기둥 때문에 이 건물은 다음 사옥과 비슷해보입니다. 조민석 건축가도 설계를 할 때 당연히 이 건물을 레퍼런스(참고)로 살폈다고 합니다. 얼핏 비슷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다음 사옥은 수평으로 갔고, 구조의 디자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내부의 프로그램도 다릅니다.
존슨 왁스의 저 사무실은 실은 `패놉티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가장자리의 창가 높은 위치에는 관리자급들이 앉습니다. 한 눈에 직원들의 모습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반면 다음의 내부는 소통과 수평적 위계를 지향합니다.
또다른 사무실 건축의 걸작입니다.
각설탕처럼 네모난 단위 구조가 모여 있는 이 건물은 센트랄 베헤르 빌딩입니다. 유명 건축가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건물 역시 특별한 내부로 건축사에 남았습니다.
헤르만 헤르츠버거는 `길', 그리고 `마을'에 관심이 많았던 건축가입니다.
사무실 건물은 왜 꼭 정해진 자리에서 일해야하지? 사무 조직이 바뀌면 공간도 변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때로는 모여서 일하고 그 자리에서 회의도 하고 그러면 안돼? 그런 단위 공간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면?
그래서 저 건물이 탄생했습니다. 단위 공간을 특정 용도로 국한하지 않고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사무실, 그런 구조가 모여 마을처럼 집합이 되는 건축입니다.
일반 기업의 사무실들은 대부분 수직 빌딩입니다. 비좁은 도시 때문입니다.
기업의 조직은 날로 수평화되며 소통을 중시하는데, 사무 공간은 반대로 위로 위로 치솟기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사옥은 입지를 활용하며 수평으로 간 점, 그리고 내부에 리듬감 넘치는 변화를 주면서 통일성을 유지하는 점, 외부와의 관계가 다양하고 투명한 점 등에서 많은 특징을 담았습니다. 이런 특징들을 잘 엮어 지금까지 한국에 없었던 새로운 사무실 건축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건물입니다.
저 건물은 취향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축적 의미는 분명 주목할만 합니다.
건축가는 거대한 고가도로 아래 공간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서울 내부순환도로 아래 넓은 공터에서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쉬고 수박도 먹고 서로 다르게 시간을 보내며 알맞게 공통적이고 알맞게 개별적으로 집단적으로 공간을 즐기는 그 모습을 저 건물이 만들어주기를 바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건물이 완공될 즈음, 조민석 건축가는 건축주인 다음에게 로고(간판)을 어디에 달 것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건축주쪽에선 "건물이 곧 로고이니 따로 달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응답했답니다. 조 건축가는 "그 말이 너무 기뻤다"고 전했습니다.
조민석 대표가 자주 하는 말이 "건축 최고의 마감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건물은 사람과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막 지은 새 건물에서 다음 직원들은 새 보금자리와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건물 앞 텃밭에서 야채를 가꾸고, 비오는 날 긴 처마 아래에서 빗줄기를 보고, 구석구석 숨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넓고 높은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다른 사옥보다 공간이 훨씬 다양한 점 만으로도 좋아보였습니다.
사무실 건축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의외의 실험들이 가능합니다. 물론 그 실험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사옥은 궁금했고, 기대한만큼 새로웠습니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검토하고, 그 속에서 필요한 개념을 고민하고, 다양한 맥락과 의미를 명쾌하게 풀어낸 건물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제 언어가 모자라 그 느낌과 개념을 제대로 전달 못하는 건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근사한 해질녘 사진 하나 덧붙입니다. 김용관 사진가의 아름다운 사진은 언제나 감탄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용관 선생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여기 실린 스페이스닷원 모든 사진은 김용관 작가의 작품이며, 제 사진은 새총 모양 문패를 단 게임룸 입구 사진뿐입니다.
아, 블로그 포스트 하나 쓰는데 세 시간이 걸렸군요...ㅜㅜ
급하게 단숨에 쓰느라 오타와 비문이 많을듯합니다. 너그러이 이해부탁드리며 지적해주시면 바로바로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