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 기사 인용>
아내들은 남편과의 소통이 힘들다고 말한다. 남편과 이야기하고 있으면 마치 벽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고,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가슴속이 타들어간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내 남편 속내 읽기라는 아내들을 위해 부부 감정 코칭 전문가 최성애 박사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피하는 남편, 소리치는 아내
"당신하고는 도무지 대화가 안 돼!"
"그러는 당신은 도대체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최성애 박사의 상담실에 찾아온 한 30대 후반 부부는 상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 으르렁대기 바빴다. 아내 A씨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온 듯, 남편의 태도는 심드렁했다. 아내는 자신과 아이에게 너무나 무심하고 일만 아는 남편 B씨에게 "제발 가정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달라"라고 아무리 애원하고 호소해도 방관자 같은 자세로 일관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아내는 "남편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라고 했다.
회사원인 남편은 밖에서 종일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늘 잔소리와 불평불만을 거듭해 듣기가 짜증나고 심지어 집에 들어오는 것이 겁날 때도 있다. 아내가 자신만 보면 늘 따지고 드는 것처럼 느껴지니 거리를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한 귀로 흘리게 됐고, 컴퓨터와 TV에만 몰두했다. 부부는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뿐 아니라 사이가 안 좋은 부부, 이혼하는 부부들이 흔히 관계를 지속하기 힘든 이유로 '성격 차이'를 꼽는다. 그러나 36년간 3천 쌍이 넘는 부부를 치료해온 관계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부부의 관계를 망치는 것은 부정적인 싸움 방식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안 좋은 방식이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고 강조했다.
최성애 박사는 A씨와 B씨의 소통 방식이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습관적으로 상대의 잘못과 결점을 찾아내기 바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 방식을 무한 반복하고 있으니 관계가 점점 악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공격-방어의 패턴
A씨와 B씨의 경우에는 비교적 관계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상담을 받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악순환의 패턴을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C씨와 D씨 부부는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다. 이 부부는 긴 시간 동안 전쟁 같은 공방 끝에 아내가 이혼소장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C씨는 "남편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아내들이 배우자에게 흔히 느끼는 괴로움 중 하나긴 하지만 이 부부의 경우는 좀 더 심각했다. 아내는 남편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질렸다고 했다. C씨는 전업주부였으며 부부 사이에 자녀가 한 명 있었다. 고학력 고소득자인 남편 D씨는 직장에서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C씨는 남편이 직장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정작 가족인 자신과 아이에게는 줄곧 무관심했으며 차가운 태도로 대했다고 말했다. 과연 남편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회의가 들었다고. 특히 임신, 출산, 육아가 시작되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더욱 많아졌다. 첫아이인지라 모든 과정이 낯설고 서툴다 보니 아내는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남편이 육아에 조금이라도 참여하기를 바랐지만 늘 바빴던 남편은 "당신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일축했다. 호소도 해보고 때로는 애교도 부려보며 아내 입장에서는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호소하면 할수록 남편은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고 마치 감정이 없는 벽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아무리 애원하고 소리쳐봐도 남편의 눈에는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남편은 급기야 본가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은 아내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 내가 외도를 하나, 돈을 못 버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만 보면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순간 아내의 가슴속에 쌓여 있던 분노의 감정이 툭 하고 터져 나왔다. 감정이 격해진 아내는 남편의 가슴께를 때리고 말았다. 남편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내와는 살 수 없다며 별거를 선언했다. 남편은 아내의 연락을 거부했고 아내는 더욱 깊은 절망과 분노에 빠졌다.
나는 배우자를 '정말' 알고 있을까?
결국 C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이혼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폭력을 쓴 것에 대해 반성하면 다시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이다. 아내는 적반하장이라며 분개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며 아내를 이끌고 최 박사를 찾아왔다.
이 부부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간절한 욕구에서 남편에게 호소했지만, 남편에게는 비난의 화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정작 아내의 말 속에 담긴 내용에 집중하거나, 아내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가 먼저 나온 것. 아내 입장에서는 도무지 남편에게 감정이 전달되지 않으니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느냐. 당신은 이중인격자다"라고 경멸 어린 말로 대응했다. 부부의 대화는 공격과 방어의 패턴이 무한 반복됐고 그럴수록 관계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최 박사는 이 부부의 관계를 치료하다 보니 잘못된 소통 방식 밑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각각 지니고 있는 해묵은 상처였다. 아내는 늘 바빴던 부모 때문에 외가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졌다는 기분, 소외된 존재라는 상처가 컸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 역시 늘 직장이 먼저였고, 밖에서는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무심했으며 부차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재현되는 것 같았고, 남편의 태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남편 역시 민감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대대로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인 남편은 어릴 때부터 늘 자신은 부족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으며 자랐다. 아무리 애써도 형이나 사촌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해야만 부모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다 보니 늘 더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결혼을 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내가 늘 뭔가를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자 남편은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충분히 훌륭하지 못해서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열등감 속에 자란 남편에게 아내의 요구는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개인 치료 후 남편은 "아내의 요구가 무척이나 정당했던 것인데 제가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내 역시 자신이 남편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친밀감, 다정함을 채워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는 그동안 서로의 상처를 몰랐고 심지어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채 지내왔다. 서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소통하다 보니 상처만 준 것이다. 이 부부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배우자의 반응은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배우자가 살면서 크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최 박사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 민감한지 알아차리는 일부터 먼저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이 부부처럼 자신의 상처가 자기도 모르게 배우자를 찌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하지만 각자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소통 방식부터 개선해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치료 방법이다. 관계에도 생명이 있다. 최 박사는 부부 관계에서는 정서적인 결합의 욕구가 가장 크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공기, 물이 기본 요소이듯 부부 관계에서는 정서적 결합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기본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돈을 벌어오거나 가정 살림 및 육아를 돕는다고 해서 관계가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고 한다. 부부간의 정서적 관계를 가깝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만드는 출발점은 소통 방식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 방식은 부부 사이를 악화시킬 뿐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당한 방식이 아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알고 싶고 답답한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다음의 관계를 망치는 패턴과 해결 방법에 대한 조언을 참고해보자.
최성애 박사가 제안하는 부부 대화법
Don't! 관계를 망치는 패턴
1 비난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 "당신이 항상 그렇지!", "매일 술이나 마시고 들어오고 잘한다 잘해!"
2 방어
"당신은 뭘 잘했는데?", "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왜 나만 잘못했다고 그래?"
3 경멸
"어쭈~.", "주제 파악이나 좀 해!", "흥, 꼴에 잘난 척은!"
4 담쌓기
"또 시작이군…. 지겹다 지겨워.", "그래 혼자 실컷 떠들어라.",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지…."
Do! 관계를 좋아지게 하는 패턴
1 비난 대신 '나 전달법'
비난은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말하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전달하자. 이때 요청은 부드럽게, 구체적으로 하고 요청을 들어줬을 때는 고맙다는 표현을 하자. 바로 요구가 수용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격-방어의 고리는 끊을 수 있다.
2 방어 대신 '부분적 인정'
"그래, 다 내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말하기 싫으니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담을 쌓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예를 들면 배우자가 집 안이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말하는 경우 그 일에 대해서 "그래, 나는 살림 하나도 못해"라고 말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 "미안해, 요즘 내가 집안일에 소홀했네." 이 정도면 된다.
3 경멸 대신 '호감과 존중 표현'
경멸에 대한 해독제는 호감과 존중을 자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담을 할 때 첫 과제로 자신과 배우자의 장점을 50가지씩 적어오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던 부부들도 자신과 서로의 장점을 생각해보며 마음이 순화되고 긍정적인 정서로 변하는 효과가 있다.
4 담쌓기 대신 부드러운 대화
대화 도중 담쌓기를 할 때는 신체적, 생리적으로 흥분된 상태일 때가 많다. 감정이 격해지면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기 쉬우니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단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부드럽게 시작하자. 부드럽게 요구하는 것이 자존심을 굽히는 것 같아 분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격하게 대화를 시작해봤자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자. 부드러운 대화의 시작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열쇠다.
(*기사 중 인용된 사례의 개인 신상정보는 상담자 보호를 위해 각색됐습니다)
Mini Interview
"풀리지 않는 부부 문제는 없다"
최성애 박사 (HD 가족클리닉 소장, 시카고대 인간발달학 박사, 국제심리 및 가족치료사, 가트맨공인부부치료사)
신혼부부, 중년부부, 황혼부부 할 것 없이 부부 관계에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적대적이고 냉랭한 부부 관계는 대개 신뢰를 잃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힘들 때, 외로울 때 등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배우자가 옆에서 받아들여주고 위로해주고 나와 한편이 돼주면 신뢰가 쌓이지만 무시, 반박, 일축하는 경우에는 이 사람에게는 의지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신뢰가 무너지는 거죠. 신뢰가 무너지면 서로에게 헌신하지 않게 되니까 서로 "자기밖에 모른다"라고 비난하게 되고, 소통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부부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따로 있나요?
개인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내들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가장 깊은 외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시기의 남편들은 대개 사회에서 무척 바쁜 시기를 보냅니다. 그렇다 보니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나도 힘들다"라고 항변하는 남편들도 있죠. 그러면 아내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서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가시처럼 불쑥불쑥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들의 경우는 회사일이나 사업이 안 될 때, 몸이 아플 때, 수술을 받을 때 등의 상황에서 배우자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역시 이때 아내로부터 적절한 지지와 신뢰를 느끼지 못하면 상처를 받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어요.
대개 아내들이 부부 문제에 더 답답해하는 듯한데요.
남편들도 물론 고통을 느낍니다. 다만 남녀의 차이가 있어요. 관계에 위기가 생겼을 때 그것을 빨리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아내 쪽입니다. 여성들은 위기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옥시토신이라는 연결 호르몬이 분비돼요. 그래서 "나랑 얘기 좀 해"라면서 남편에게 다가가죠. 남성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을 느끼면 대개 일단 피하고 궁지에 몰리면 공격을 합니다. 아내는 다가가고 남편은 회피·공격하는 패턴이 발생하는 거죠. 그런데 아내 손에 이끌려 상담소에 찾아온 남편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검사해보면 보통 아내보다 더 높게 나오는 편이에요. 아내들은 "도통 반응이 없어 나만 힘든 줄 알았다"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의 생리와 요구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생기는 안타까운 상황인데요. 대화하는 방법 등 관계의 기술만 배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예요. 대신 부부 문제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요. 자칫 문제는 헤집고 치료는 못해서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모두 스트레스 상태에 있을 때 자녀는 어떤 영향을 받나요?
자녀가 태어나고 처음 육아에 돌입했을 때는 부부 모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예요. 싸움도 잦아질 수 있는데, 신생아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 괜찮다고 여겨서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생후 1, 2년 사이의 아이들은 뇌신경회로가 매우 활발하게 생성됩니다. 부모가 주고받는 날카로운 목소리, 다투는 소리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거든요. 아이가 기는 것도 늦고, 한번 울면 진정을 잘 못하고, 발달이 전체적으로 더뎌서 걱정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이 앞에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는 거예요. 자신들의 행동이 자녀의 신체 및 생리적 기능, 두뇌 발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죠. 물론 자녀 앞에서의 다툼은 언제나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특히 생후 1, 2년 된 자녀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에요.
부부 문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
●HD 가족클리닉 02-525-9767, www.handanfamily.com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02-563-3669, nowme.net
●행복연구소 해피언스 부설 심리상담클리닉 02-859-4462, www.happience.kr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02-575-214, psdlovetree.com
●건강가정지원센터 1577-9337, familynet.or.kr
●여아림 부부상담심리연구소 02-6231-3700, happybubu.co.kr
●김선희 부부클리닉 02-543-5933, www.time2say.com
●김미애 교수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053-474-4077, cafe.daum.net/dwcei
피하는 남편, 소리치는 아내
"당신하고는 도무지 대화가 안 돼!"
"그러는 당신은 도대체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회사원인 남편은 밖에서 종일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편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늘 잔소리와 불평불만을 거듭해 듣기가 짜증나고 심지어 집에 들어오는 것이 겁날 때도 있다. 아내가 자신만 보면 늘 따지고 드는 것처럼 느껴지니 거리를 두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한 귀로 흘리게 됐고, 컴퓨터와 TV에만 몰두했다. 부부는 성격이 안 맞아서 못 살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뿐 아니라 사이가 안 좋은 부부, 이혼하는 부부들이 흔히 관계를 지속하기 힘든 이유로 '성격 차이'를 꼽는다. 그러나 36년간 3천 쌍이 넘는 부부를 치료해온 관계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부부의 관계를 망치는 것은 부정적인 싸움 방식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안 좋은 방식이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고 강조했다.
최성애 박사는 A씨와 B씨의 소통 방식이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습관적으로 상대의 잘못과 결점을 찾아내기 바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 방식을 무한 반복하고 있으니 관계가 점점 악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공격-방어의 패턴
A씨와 B씨의 경우에는 비교적 관계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상담을 받는 등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악순환의 패턴을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C씨와 D씨 부부는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다. 이 부부는 긴 시간 동안 전쟁 같은 공방 끝에 아내가 이혼소장을 제출한 상황이었다.
C씨는 "남편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아내들이 배우자에게 흔히 느끼는 괴로움 중 하나긴 하지만 이 부부의 경우는 좀 더 심각했다. 아내는 남편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질렸다고 했다. C씨는 전업주부였으며 부부 사이에 자녀가 한 명 있었다. 고학력 고소득자인 남편 D씨는 직장에서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C씨는 남편이 직장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정작 가족인 자신과 아이에게는 줄곧 무관심했으며 차가운 태도로 대했다고 말했다. 과연 남편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회의가 들었다고. 특히 임신, 출산, 육아가 시작되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더욱 많아졌다. 첫아이인지라 모든 과정이 낯설고 서툴다 보니 아내는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남편이 육아에 조금이라도 참여하기를 바랐지만 늘 바빴던 남편은 "당신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일축했다. 호소도 해보고 때로는 애교도 부려보며 아내 입장에서는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가 호소하면 할수록 남편은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고 마치 감정이 없는 벽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아무리 애원하고 소리쳐봐도 남편의 눈에는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남편은 급기야 본가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은 아내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 내가 외도를 하나, 돈을 못 버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만 보면 비난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순간 아내의 가슴속에 쌓여 있던 분노의 감정이 툭 하고 터져 나왔다. 감정이 격해진 아내는 남편의 가슴께를 때리고 말았다. 남편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내와는 살 수 없다며 별거를 선언했다. 남편은 아내의 연락을 거부했고 아내는 더욱 깊은 절망과 분노에 빠졌다.
나는 배우자를 '정말' 알고 있을까?
결국 C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남편은 이혼하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폭력을 쓴 것에 대해 반성하면 다시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이다. 아내는 적반하장이라며 분개했다. 남편은 마지막으로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며 아내를 이끌고 최 박사를 찾아왔다.
최 박사는 이 부부의 관계를 치료하다 보니 잘못된 소통 방식 밑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각각 지니고 있는 해묵은 상처였다. 아내는 늘 바빴던 부모 때문에 외가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졌다는 기분, 소외된 존재라는 상처가 컸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 역시 늘 직장이 먼저였고, 밖에서는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무심했으며 부차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재현되는 것 같았고, 남편의 태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남편 역시 민감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대대로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인 남편은 어릴 때부터 늘 자신은 부족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으며 자랐다. 아무리 애써도 형이나 사촌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해야만 부모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다 보니 늘 더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결혼을 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아내가 늘 뭔가를 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자 남편은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충분히 훌륭하지 못해서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열등감 속에 자란 남편에게 아내의 요구는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개인 치료 후 남편은 "아내의 요구가 무척이나 정당했던 것인데 제가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내 역시 자신이 남편에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친밀감, 다정함을 채워주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는 그동안 서로의 상처를 몰랐고 심지어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채 지내왔다. 서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으로 소통하다 보니 상처만 준 것이다. 이 부부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배우자의 반응은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배우자가 살면서 크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도 높다. 최 박사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 민감한지 알아차리는 일부터 먼저 시도하라고 조언한다. 이 부부처럼 자신의 상처가 자기도 모르게 배우자를 찌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하지만 각자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소통 방식부터 개선해나가는 것이 가장 빠른 치료 방법이다. 관계에도 생명이 있다. 최 박사는 부부 관계에서는 정서적인 결합의 욕구가 가장 크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공기, 물이 기본 요소이듯 부부 관계에서는 정서적 결합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기본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돈을 벌어오거나 가정 살림 및 육아를 돕는다고 해서 관계가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고 한다. 부부간의 정서적 관계를 가깝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만드는 출발점은 소통 방식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 방식은 부부 사이를 악화시킬 뿐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당한 방식이 아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알고 싶고 답답한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다음의 관계를 망치는 패턴과 해결 방법에 대한 조언을 참고해보자.
최성애 박사가 제안하는 부부 대화법
Don't! 관계를 망치는 패턴
1 비난
"당신은 어떻게 된 사람이….", "당신이 항상 그렇지!", "매일 술이나 마시고 들어오고 잘한다 잘해!"
2 방어
"당신은 뭘 잘했는데?", "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왜 나만 잘못했다고 그래?"
3 경멸
"어쭈~.", "주제 파악이나 좀 해!", "흥, 꼴에 잘난 척은!"
4 담쌓기
"또 시작이군…. 지겹다 지겨워.", "그래 혼자 실컷 떠들어라.",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지…."
Do! 관계를 좋아지게 하는 패턴
비난은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말하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전달하자. 이때 요청은 부드럽게, 구체적으로 하고 요청을 들어줬을 때는 고맙다는 표현을 하자. 바로 요구가 수용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격-방어의 고리는 끊을 수 있다.
2 방어 대신 '부분적 인정'
"그래, 다 내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말하기 싫으니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담을 쌓는 것과 같아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예를 들면 배우자가 집 안이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말하는 경우 그 일에 대해서 "그래, 나는 살림 하나도 못해"라고 말하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 "미안해, 요즘 내가 집안일에 소홀했네." 이 정도면 된다.
3 경멸 대신 '호감과 존중 표현'
경멸에 대한 해독제는 호감과 존중을 자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담을 할 때 첫 과제로 자신과 배우자의 장점을 50가지씩 적어오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던 부부들도 자신과 서로의 장점을 생각해보며 마음이 순화되고 긍정적인 정서로 변하는 효과가 있다.
4 담쌓기 대신 부드러운 대화
대화 도중 담쌓기를 할 때는 신체적, 생리적으로 흥분된 상태일 때가 많다. 감정이 격해지면 좋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기 쉬우니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단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부드럽게 시작하자. 부드럽게 요구하는 것이 자존심을 굽히는 것 같아 분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만 격하게 대화를 시작해봤자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질 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자. 부드러운 대화의 시작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열쇠다.
(*기사 중 인용된 사례의 개인 신상정보는 상담자 보호를 위해 각색됐습니다)
Mini Interview
"풀리지 않는 부부 문제는 없다"
최성애 박사 (HD 가족클리닉 소장, 시카고대 인간발달학 박사, 국제심리 및 가족치료사, 가트맨공인부부치료사)
신혼부부, 중년부부, 황혼부부 할 것 없이 부부 관계에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적대적이고 냉랭한 부부 관계는 대개 신뢰를 잃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힘들 때, 외로울 때 등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배우자가 옆에서 받아들여주고 위로해주고 나와 한편이 돼주면 신뢰가 쌓이지만 무시, 반박, 일축하는 경우에는 이 사람에게는 의지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신뢰가 무너지는 거죠. 신뢰가 무너지면 서로에게 헌신하지 않게 되니까 서로 "자기밖에 모른다"라고 비난하게 되고, 소통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부부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따로 있나요?
개인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아내들은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가장 깊은 외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시기의 남편들은 대개 사회에서 무척 바쁜 시기를 보냅니다. 그렇다 보니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나도 힘들다"라고 항변하는 남편들도 있죠. 그러면 아내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서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가시처럼 불쑥불쑥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들의 경우는 회사일이나 사업이 안 될 때, 몸이 아플 때, 수술을 받을 때 등의 상황에서 배우자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역시 이때 아내로부터 적절한 지지와 신뢰를 느끼지 못하면 상처를 받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어요.
남편들도 물론 고통을 느낍니다. 다만 남녀의 차이가 있어요. 관계에 위기가 생겼을 때 그것을 빨리 알아채는 것은 대부분 아내 쪽입니다. 여성들은 위기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옥시토신이라는 연결 호르몬이 분비돼요. 그래서 "나랑 얘기 좀 해"라면서 남편에게 다가가죠. 남성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을 느끼면 대개 일단 피하고 궁지에 몰리면 공격을 합니다. 아내는 다가가고 남편은 회피·공격하는 패턴이 발생하는 거죠. 그런데 아내 손에 이끌려 상담소에 찾아온 남편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검사해보면 보통 아내보다 더 높게 나오는 편이에요. 아내들은 "도통 반응이 없어 나만 힘든 줄 알았다"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의 생리와 요구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생기는 안타까운 상황인데요. 대화하는 방법 등 관계의 기술만 배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예요. 대신 부부 문제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해요. 자칫 문제는 헤집고 치료는 못해서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모두 스트레스 상태에 있을 때 자녀는 어떤 영향을 받나요?
자녀가 태어나고 처음 육아에 돌입했을 때는 부부 모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예요. 싸움도 잦아질 수 있는데, 신생아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 괜찮다고 여겨서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생후 1, 2년 사이의 아이들은 뇌신경회로가 매우 활발하게 생성됩니다. 부모가 주고받는 날카로운 목소리, 다투는 소리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거든요. 아이가 기는 것도 늦고, 한번 울면 진정을 잘 못하고, 발달이 전체적으로 더뎌서 걱정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이 앞에서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는 거예요. 자신들의 행동이 자녀의 신체 및 생리적 기능, 두뇌 발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죠. 물론 자녀 앞에서의 다툼은 언제나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특히 생후 1, 2년 된 자녀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것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에요.
부부 문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
●HD 가족클리닉 02-525-9767, www.handanfamily.com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02-563-3669, nowme.net
●행복연구소 해피언스 부설 심리상담클리닉 02-859-4462, www.happience.kr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 02-575-214, psdlovetree.com
●건강가정지원센터 1577-9337, familynet.or.kr
●여아림 부부상담심리연구소 02-6231-3700, happybubu.co.kr
●김선희 부부클리닉 02-543-5933, www.time2say.com
●김미애 교수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053-474-4077, cafe.daum.net/dwc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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