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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0년은 중국에서 결판난다

youngsports 2013. 9. 14. 17:52



여름에는 소설이다. 2013년 여름 서점가는 더욱 그렇다. 과도한 선인세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정유정의 <28>,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여기에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서점가의 ‘소설 특수’ 가운데 단연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작품은 소설가 조정래의 <정글만리>다. 한국 나이로 올해 71세. 아마도 현역 소설가로서는 거의 최고령일 듯한 이 작가가 쓴 200자 원고지 3615장짜리 소설 <정글만리> 세 권은 각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3위를 차지했다. 1권에서 3권까지 판매량의 차이도 적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비슷한 시기, 그의 이름은 정치권에서도 거명되었다.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 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후임으로 거론된 것이다. 8월28일, 작가 조정래씨를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도 물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조정래 1943년 전남 순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석좌교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등 출간. 대한민국문학상, 제1회 동리상, 제7회 만해대상,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시사IN 윤무영
조정래 1943년 전남 순천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석좌교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등 출간. 대한민국문학상, 제1회 동리상, 제7회 만해대상,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소설에 대한 독자 반응이 좋다. ‘하루키를 제쳤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독자들의 선택 아닌가. 중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큰 것도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8월15일에 그 기사를 보았다. 8월17일이 생일인데, 생일 선물을 받은 셈이다. 오로지 독자들이 만들어준 선물이라 기쁘다. 

이번 소설은 ‘경제 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경제 문제를 소설의 소재로 받아들이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건 작가들의 시야가 좁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생 총체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모든 게 다 소설이 된다. 세계화된 상황에서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이고, 심각하고 직접적인 문제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같은 소설은 돈에 얽힌 문제를 다루었다. 하버드대 학생들이 즐겨 읽는 100권의 책 중에 그의 소설 두 개가 들어가 있다. 그만큼 현대성이 있다는 것이다. 돈을 매개로 한 인간의 갈등과 문제점을 심도 있게 파헤친 결과다. 

<한강>도 한국 경제 발전사를 다루고 있다. 경제사와 분단의 비극이 겹쳐져 있는 소설이다. 분단과 아무런 상관없는 세대가 분단으로 인해 겪는 괴로움과 고통이 겹쳐 있다. 그 다음 <허수아비춤>도 경제민주화를 다룬다. 그 소설은 국내를 무대로 했고, 이번 소설은 중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 중국에 세계인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전 세계가 무대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소설에서는 소재의 확장과 동시에 무대의 확장도 시도한 셈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내용이 구체적이다. 취재를 많이 하고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5~6년 동안 신문·잡지에서 중국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했다. 그런 게 90권이 된다. 그다음에 2차로 동서양 학자들이 중국에 관해 쓴 책과 <중국 통사> 등 80여 권을 읽었다. 3차로 그 책들 가운데 소설에 필요한 책 20권을 골라 마치 입시생이 시험 준비를 하듯이 줄치고 포스트잇 붙여가며 공부했다. 그 내용을 머리에 담고서, 4차로 취재를 했다. 그 취재 노트가 20권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중국에 관한 노트 110권을 만들었다. 

중국을 여덟 번 다녀왔다. 칭다오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인 5만명이 나가 있다고 한다. 소설에 보면 하경만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실제 인물은 그 사람 한 명인데, 중국에서 활동하는 중소기업인이다. 실명은 하덕만이다. 양해를 구했다. 그의 이야기는 80%가 사실이다.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중국 사람과 친화하고 융화하고 우애를 갖고 그들을 이웃으로 대하지 않으면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100원 벌면 10원은 아니더라도 1원은 중국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게 하 사장의 지론이었다. 
그 다음 대기업 부장급 상사원 수십명을 만났다. 중국 공산당원들, 대학생, 유학생,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중국 인민들을 만났다. 주로 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소설을 보면,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국 수출 총량의 26%를 중국이 차지한다. 미국은 17%에서 줄어들고 있다. 일본·유럽도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소비시장이 상상을 초월하게 커질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앞으로 한국의 20~30년은 중국에서 결판난다. 제2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중국의 발전을 바라지 않는 서양인의 시각에 휩쓸리면 안 된다.
직접선거를 안 한다고 비판한다. 표피만 보는 거다. 중국 공산당이 100년이나 되었는데도 건재하다. 국민을 억압해서? 그런 대목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다르다. 중국의 민간인에게 계속 물었다. 당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해 물었다. 자신들도 다 안다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고, 당은 한다고 하면 한다는 신뢰가 있다고 했다.

중국은 많이 변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부자들을 당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거주 이전의 자유, 결혼의 자유, 여행의 자유 등도 주어졌다. 투표권만 안 준 것이다. 당원을 뽑는 절차를 보라. 중고생 때부터 모범생인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면 당원 자격을 주고 4~5년 심사를 하고 뽑는다. 중앙위원은 이미 한 성의 서기장, 그러니까 도지사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당 고위직에 올라가고, 그 경험을 인정한다는 거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는 자연스러운 거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상사원으로 나오는 전대광인가?

주인공 전대광은 내가 만난 수십명의 부장급 주재원을 복합해놓은 인물이다. 작가로서 민중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동안 재벌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생산노동자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타국에서 상품을 팔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주재원을 보고 감동했다. 생산자와 함께 판매자가 있기에 한국 경제가 건실하게 가고 있다고 느꼈다. 전대광 같은 인물이 만든 바탕 위에 20대의 세상이 온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송재형·리옌링을 넣었다. 

10년 동안에 한 권짜리 장편 2편, 세 권짜리 장편 2편, 단편집 1권, 산문집 1권을 쓰겠다고 했는데,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다음 소설은 교육 문제다.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제일 높다. 그 자살의 절반이 미성년자다. 10대들이 성적 때문에 죽는다.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손자가 중1인데, 교육 소설을 쓰면 어떨까 했더니, 바로 친구들이 읽고 싶어하는 이야기라며 쓰라고 했다. 손자의 결재를 받았다(웃음). 몇 년 전에 사진가가 되고 싶었던 중학생이 집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그 부모는 판검사가 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소설가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가 반대하지 않고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게 고맙다. 나에게 소설을 못 쓰게 했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설을 썼을 것이다. 얼마 전 손자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특강했다. 개성을 살려 목표를 정하라고 했다. 혹시 그 목표에 대해 부모가 강압하면 철저하게 저항하라고 말했다. 다음 작품까지 현실을 다룬 소설을 쓰고, 그다음은 인간의 존재·신화·근원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80세까지 소설을 쓸 거다. 

정치 등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는데,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 다음으로 (일본보다) 중국을 방문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한다. 그런데 인사 문제는 잘못됐다. 윤창중 전 대변인 문제도 그렇고, 이번에 김기춘 같은 이를 비서실장을 시키는데, 그러면 안 된다. 자연 나이도 늙었고, 사고방식도 민주화 시대에 안 맞는 사람이다. 
국정원 문제도 심각하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말만 듣도록 돼 있는 조직이다. 법이 그렇다. 그런데 남재준 원장이 자기 마음대로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말한다. 그건 거짓말이거나 항명이다. 대통령이 명령해야 움직이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그건 항명이다. 그럼 파면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침묵한다. 말이 안 된다. 국민을 속이는 거다. 또 자신은 대선 때 국정원 덕을 안 보았다고 말하는데.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잘못되었다고 말해야지. 그 댓글을 갖고 한 명이라도 자신을 찍었다면 덕 본 것 아닌가. 유권자 한명 한명 확인해보았나? 국민에 대한 불경이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요즘도 자주 조언하나?

그가 후보에서 물러나면서 후원회장직은 자연히 소멸한 거다. 그 사람은 미지수다. 국회의원이 돼 정치 훈련을 쌓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그걸 슬기롭게 헤쳐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앞으로 4년 그의 정치 인생을 규정짓고 좌우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신뢰를 갖고 있다.  
대선 이후에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정글만리>를 쓸 때 전화가 왔지만, 집필 기간이라 통화를 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이 왔다는 말을 처에게 듣고서, 이름을 올려도 좋다고 한 게 전부다.

‘내일’ 이사장직 얘기도 나온다.
나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 한마디로 하자면, 내가 그렇게 소설을 못 쓰는 사람인가. 그게 대답이다. 나는 현역이다. 오로지 보이는 건 소설밖에 없다. 후원회장을 맡았던 것은,  그가 가장 비정치적이어서 정직하게 정치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를 신뢰하니까 나를 신뢰하는 사람은 그를 도우라는 뜻이었다. 거기에 정치 행위는 전혀 없다. 그런데 이건 싱크탱크다. 내가 그럴 시간 여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안 한다. 최장집 교수 같은 정치학자가 적격이다. 나는 비전문가다. 

나는 정치에 집중적 관심을 갖는다. 공동체의 삶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으니까. 국민의 권한을 위임한 집단이니까. 그러나 내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정치를 하기에, 정치는 반드시 오류가 남는다.

그걸 내가 왜 하나. 9월 초에 안철수 의원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도 이렇게 말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