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체온을 나누며 혹한을 견디는 어린 황제펭귄.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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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겨울 혹한 집단적 '체온 나누기'로 버텨…원동력은 각자의 이기주의 밝혀져바람 등지고 기왓장처럼 밀착, 간헐적 이동이 파동처럼 무리 전체에 퍼져
수족관의 물고기가 떼지어 헤엄치고 갯벌의 도요새가 무리지어 나는 모습은 놀랍다. 그 많은 개체가 서로 부딪히거나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제히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누군가 명령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일사불란한 집단행동의 비결은 무리에 속한 각자의 행동이 합쳐진 것일 뿐이다. 무리 속의 각 개체는 아주 단순한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를테면 “옆 친구가 멀어지면 따라잡고, 너무 가까워지면 속도를 늦춰라”라는 규칙에 충실하기만 해도 무리 전체로는 멋진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고속도로에서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며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가 군무를 하는 모습. 사진=군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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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환경이 펼쳐지는 남극의 겨울 동안 번식을 하는 황제펭귄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무리를 짓는다.
영하 45도에 이르는 혹한과 초속 50m의 강풍이 몰아치는 얼음판 위에서 수컷 황제펭귄은 발 위에 알을 올려놓은 채 새끼가 태어나고 암컷이 찾아올 때까지 넉 달 가까운 밤을 버텨야 한다.
펭귄이 얼어 죽지 않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몸을 밀착시켜 무리를 짓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기왓장처럼 몸을 붙이면 무리 안의 온도는 20도에 이르고 때론 37.5도까지 치솟는다.
남극의 블리저드에 맞서 몸을 밀착해 추위를 이기는 황제펭귄 수컷들.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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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장 연구를 보면, 펭귄들은 무리의 온기를 골고루 나눈다. 펭귄 무리는 미동도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30~60초마다 5~10㎝씩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은 파동처럼 무리 중심을 향해 초속 12㎝의 속도로 번져간다. 파동이 멎으면 무리의 움직임도 멎는다. 개별 펭귄은 주위 펭귄과 위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억지로 파고들거나 밀려나는 개체도 없다. 아주 걸쭉한 유체처럼 무리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그 과정에서 무리 가장자리와 안쪽 개체의 위치가 달라진다.
바람에 등에 노출된 개체는 열 손실이 가장 많지만 차츰 무리 안쪽으로 이동한다. 사진=오스트레일리아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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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겨울나기가 끝나고 그 사이 태어난 수컷을 품고 있는 황제펭귄. 사진=영국 남극 조사대(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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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