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길의 의미에 대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게 하고, 해야 될 생각은 깊이 하게 만든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제주올레’ 만든 서명숙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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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4일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가 개장된다.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데 만 5년이 넘게 걸렸다. 전 구간 개통 소감은? “2007년 9월 제주올레 1코스가 개통됐으니까 만 5년2개월 만에 전 구간을 완성하게 되는 셈이다. 나 스스로 믿을 수 없다. ‘신이시여, 이 일을 우리가 진정 해냈단 말입니까?’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동안 올레길을 내는 데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한달 전 마지막 구간의 정점인 지미봉(제주시 구좌읍)에 올랐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풍경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드디어 지미봉이구나!’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실무적인 어려움을 차치하고라도 전 구간 개통을 앞둔 마지막 순간은 지난 5년 동안의 어려움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시련에 직면했다. 애초 9월15일 마지막 구간 개통이 예정돼 있었지만 ‘사건’의 여파와 잇단 태풍으로 11월24일로 연기했다.”
-지난 7월 발생한 올레길 여성 관광객 피살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지난 5년 동안 그런 식으로 여행객의 안전을 극도로 위협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주올레 하면 일단은 편한 마음으로 평화와 치유를 맛볼 수 있었다. 이 길이 갖고 있는 성격, 기대를 생각할 때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엄청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사건은 올레를 사랑했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걸었던 많은 이들의 기억까지 앗아가버렸다. 사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게 어려운 곳이 한국 아닌가. 제주올레는 여성 혼자 여행을 가도 안전한 길이라는 믿음을 줬는데…. 다시 한번 그분과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지나친 경쟁·획일화에 지친 이들, 자연이 주는 위로 찾아나서게 돼 관광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아
저가항공이라는 인프라도 큰 도움
-사건 이후 안전대책은 어떻게 마련됐나? “행정기관·경찰과 협의해 안전대책도 마련했다. 우선 각 코스 시작점 출발시간을 오전 9시로 맞춰 함께 걷기를 권장한다. 혼자 걸을 가능성이 높은 비인기 코스는 제주올레 콜센터(064-762-2190)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것을 당부한다. 걷기 종료시간은 하절기에는 오후 6시, 동절기에는 오후 5시로 하고, 여성 혼자 여행할 때는 여성 전용 숙소나 검증된 숙소를 이용할 것을 권유한다. 제주도와 제주경찰청도 올레길 안전대책을 마련해 이달부터 모든 올레길에 올레 지킴이 147명을 배치해 취약시간대를 중심으로 하루 6시간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 경찰관 420명으로 꾸려진 올레길 이동순찰대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는 올레 여행자들이 위급상황 때 단말기 버튼만 누르면 112종합상황실에서 위치를 추적해 긴급출동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공항이나 항만의 관광안내센터 등에 단말기 300대를 비치해 관광객들이 보증금을 내면 빌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추락 위험이 있는 구간에는 다음달 말까지 안전난간을 설치한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올레꾼(올레 여행객)들이 많다. ‘올레 폐인’ ‘올레 이주자’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제주올레가 성공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공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우리(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잘했다기보다는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지쳐 있었다.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 아닌가. 누구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나친 경쟁, 획일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압박감 같은 게 있다. 대한민국이 물질적인 면에서는 고도 압축성장을 한 반면 사회적으로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화하는 정신적인 면은 그에 걸맞게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때 잘산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명예퇴직하거나 해고되는 등 압박감 속에서 시달렸다. 여행을 가도 치유나 위로받기보다는 좀더 많은 걸 누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러움과 열패감을 갖고 돌아왔다. 그런데 올레길에서는 자기 걸음의 속도대로만 가면 됐다. 이곳에서는 경쟁할 일도, 일정에 쫓기는 일도 없다. 그러면서 모처럼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혼자 왔던 사람이 친구와 함께 다시 찾고, 이게 확산되면서 올레꾼들이 늘어나게 됐다. 때맞춰 저가항공이 생겨난 것도 올레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원인이다. 지난 5~6년 동안의 제주관광 호조는 저가항공, 올레, 중국 관광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가항공이 인프라라면 올레는 콘텐츠였다.”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 개최, 국제기구 창설 위한 토론회도, 여성 관광객 피살뒤 ‘콜센터’ 등
경찰 등과 협의해 안전대책 마련
-제주올레가 제주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다니며 사진 찍고 물건을 사던 단체관광 시대가 개별관광 시대로, 자연을 찾는 관광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이 있다.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여행 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기념사진을 찍는 식의 여행이 주류를 이루지 않았나. 숙제하거나 전쟁 치르듯이 가던 여행 말이다. 그런데 제주올레를 통해 과정을 즐기는 여행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즐겁다’ ‘기쁘다’는 표현은 가끔 쓰지만 ‘행복하다’는 표현을 쓰는 데 인색하다. 올레꾼들은 걷기가 끝난 뒤 ‘걷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이런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올레길을 내면서 어려웠던 점도 많았겠다. “제주도 땅이라는 게 공유수면이나 도로 이외에는 대부분 사유지거나 마을 공동목장이다. 그런데 올레길은 길의 성격상 이런 길을 지나게 돼 있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됐다. 어떤 주민들은 ‘왜 우리 마을은 안 지나가느냐’고 항변 아닌 항변을 한다. 처음엔 ‘걷는 길이 뭐냐’며 길을 안 내주려고 해서 어려웠는데 지금은 올레코스에 마을을 끼워달라고 요구하는 등 지나친 관심 때문에 어렵다.”
-올레의 힘이 모성의 힘에 있다고 말하던데 무슨 뜻인가?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들은 여성적인 자연미보다 남성적인 자연미가 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나 캐나다의 로키산맥 등을 보면 뾰족하고 높고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제주도는 그렇게 높지도 않고, 넓은 것도, 깊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제주도 자체가 역사적, 문화적, 설화적으로도 여성성이 강한 지역이다. 자식 500명을 아우르는 모성을 지닌 제주의 창조여신 ‘설문대할망’의 설화를 봐라. 여자의 젖가슴을 연상시키는 완만한 능선의 오름에 가면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제주올레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올레는 여성의 길이라고 말한다.” ‘대자본 투자, 소수에만 이익’ 넘어, 주민에 혜택 가야 지속가능한 길 돼
처음부터 코스당 3개 마을 거치게 해, 5년여만에 마지막 13코스 완성
-길을 걸으면서 치유를 얻었고, 제주올레를 치유의 길이라고 했는데? “제주올레만 꼭 치유의 길은 아니다. 어떤 길이든지 걸으면서 명상하고 행복감을 느끼면 치유가 되지 않겠는가. 몇 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치유를 받는 느낌을 가졌다. 사실 그곳으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미움 같은 것이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23년 동안 경쟁사회에 살면서 나도 모르게 많이 피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동료에 대한 배려도 없어지고,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것 같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떠났다. 36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그런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마치 흙탕물의 알갱이가 하나씩 가라앉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제주올레는 제주의 자연 특성과 결합해 더더욱 치유 에너지가 뿜어져나오는 치유의 길인 것 같다.”
-제주올레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얼마 전 대한산악연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내게 전국민을 걷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사패를 줬다. 올라가본 산이 10곳도 안 되는 내가 그런 기념패를 받았다고 친구들이 웃더라. 하하. 지역적으로 보면, 제주올레가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관광산업은 대자본이 투자하고, 소득은 소수에게만 돌아가지 않았나. 우리는 처음부터 주민들에게 혜택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스당 3개 이상의 마을을 거치도록 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가피하게 그렇지 못한 구간도 있었지만. 지난 5년 사이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의 작은 가게, 주민들만 이용하던 작은 식당의 이용객이 늘어나고, 서귀포 시내의 놀고 있던 여관들이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올레꾼의 편의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요구가 맞아떨어졌다. 과제도 있다. 마을에 좀더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1사1올레 결연’ 등을 통해 12개 마을을 연결했지만 아직도 많이 모자란다. 길을 내준 마을과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되갚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올레꾼들에게 제주의 언어, 해녀, 설화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겠다. 내년에는 길 위에서 문화가 꽃필 수 있도록 할 작정이다.”
-귀향한 지 5년이 넘었다. 제주도는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제주도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나? “귀향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슬로건과 내용의 불일치다. 한국 사회에는 그런 요소들이 내포돼 있지만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제주도다. ‘국제자유도시’라고 해놓고 ‘국제’도 없고 ‘자유’도 없는 형국이다. 가장 큰 불일치가 ‘환경수도’다. 개발 지향적 접근을 하면서 환경수도를 얘기한다. 제주도는 결국 관광과 농업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환경은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슬로건은 ‘환경’을 말하면서 정작 대규모 토건사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협재해수욕장 주변과 비양도 사이에 케이블카 설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협재~비양도 케이블 추진 등, ‘환경수도’ 해치는 사업은 안돼,
‘1사1올레 결연’ 확대 등 통해, 제주 언어·설화 체험하게 할것
-당신에게 길은 무엇인가? “내게 길은 병원이기도 하고 인생의 학교이기도 하다. ‘예방적 종합병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병이 나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일 때 가는 병원이 아니라 덜할 때 가는 병원, 길을 걸으면 낫는다는 의미다. 자연의 치유력과 두 발에 의지해 걷는 몸의 치유력이 결합하면 병원도 약국도 필요없는 종합병원이 되지 않겠나. 그리고 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내려놓는 법, 용서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고 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게 하고, 해야 될 생각은 깊이 하게 만든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다.”
-언론계 생활이 인생의 1막이라면 제주올레 만들기가 2막일 것 같다. 인생 3막은 어떻게 펼칠 것인가? “요즘 꽂힌 게 음식 만드는 일과 가파도다.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음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 <식탐>이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가파도는 아직도 섬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가파도에 들어가 살고 싶다. 가파도에서 한번 한라산을 바라봐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파도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5m밖에 안 될 정도로 낮고 평평한 섬이다. 평평한 곳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2년 동안 서귀포 쪽에 집을 알아봤는데도 너무 비싸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가파도에 허름한 집 하나 마련했다. 노년에 가파도에 들어가 살게 되면 너무 일이 없어도 심심할 것 같고, 거기서 소일거리쯤은 있어야 사람 만나는 재미도 있을 거 아니냐. 그곳에서 저녁때만 하는 식당을 해볼까 한다. 저녁때 문을 열어야 하룻밤이라도 묵을 거 아닌가. 섬을 찾는 이들이 섬에서 하룻밤 정도는 묵는 것이 그 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올레를 상업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듯이 테이블 하나 놓으면 얼마나 돈이 되겠나. 그 꿈이 어느 순간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