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Management & Marketing

“내 키는 166.5cm… 공중 볼은 몰라도 바닥 공은 다 내 것”

youngsports 2012. 9. 15. 14:01

프로농구 최단신 선수 원지승

키가 작은 꼬마였다. 그런데 농구를 매우 좋아했다. 키는 나중에 더 크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농구. 그게 어느새 인생 최대 목표가 됐다. 꿈은 컸지만 키는 자라지 않았다. 그의 키는 166.5㎝. 그래도 그는 어엿한 프로농구 선수다.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단신 가드 원지승(23) 이야기다. 원지승은 다음달 중순 개막할 프로농구 시즌을 앞두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일단 목표는 12명 엔트리 진입. 엔트리에 들어가 코트를 밟는다면 한국프로농구 최단신 출전 기록이 바뀐다. 기존 기록은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이 갖고 있는 174㎝다.

아버지는 161㎝, 어머니는 153㎝. 누나는 155㎝. 집안 전체가 키가 작았다. 작은 키는 유전이었다. 2005년 여름. 당시 마산고 1학년이었는데 그때가 162㎝. 원지승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키가 작으세요? 저를 왜 이렇게 낳으셨나요?' 그때 농구를 포기할 생각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지병을 앓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집에서 누워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으며 영양도 고르게 섭취하지 못했다고 해요. 근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께 대들었으니….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괴롭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더 이상 키가 작은 걸 탓하지 않았다. 키가 작으면 스피드가 빠르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볼을 잘 잡아내는 장점이 있었다.

▲ 또래 평균에도 한참 모자라는 유전적으로 작은 키.
키 큰 선수도 힘든 프로농구단 입단.
아직은 기록보다 출전이 목표.
"그렇다고 얕보지마. 키는 작지만 이래봬도 꿈은 제일 크다"


그는 단신만이 가질 수 있는 태생적인 무기로 승부를 걸었다. 드리블, 패스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체력 훈련도 꾸준히 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2군 선수 1순위로 원지승을 뽑은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패스, 드리블, 스피드는 지금도 국내 농구 정상급"이라고 칭찬할 정도다.

원지승이 농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그때 키는 또래들 평균은 됐다. 마산동중 1년 때 키가 158㎝. 그때까지만 해도 원지승은 "남들보다 키가 조금 작을 뿐"이라며 "실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농구를 포기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으로 진학할 때였다.

"명문대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두 곳은
스카우트 제의를 해올 줄 알았죠. 그러나 나를 데려가겠다는 대학교는 한 군데도 없었어요."

당시 괴로움 때문에 원지승은 2주 동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중학교 3년 때 집안사정이 어려워 회비를 내지 못해 6개월 쉴 때도 농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했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도 농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해온 게 농구고 어릴 때부터 꿈 꿔온 게 농구선수였기 때문이죠. 키가 작아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때 그에게 빛이 보였다. 아는 지도자들의 소개로
초당대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초당대는 대학 2부리그 팀.

"그때는 초당대학교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원지승은 농구를 계속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가 이끄는 초당대는 2부리그 최강이었다. 대학시절 2부리그 우승도 여러 번 했고 전국체전에서도 동메달까지 땄다. 농구를 하면서 우승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으로 해봤다. 그래서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렇게 즐겁게 보낸 대학생활.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갈 때 자신을 받아준 곳이 없었듯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 앞길이 막막했다. 2학년 때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역시 불러주는 구단이 없었다. 3학년 때는 드래프트 신청을 했다가 중도 포기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됐다.

'이제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농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있기는 있을까. 이제 농구를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인가.'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의 최단신(166.5cm) 가드 원지승이 팀내 최장신(208cm)인 아말 맥카스킬과 경기 용인시 모비스 용인체육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그런 절박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참가한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원지승은 모비스 구단에 2군 선수 전체 1순위로 호명됐다. 연봉 2400만원, 계약은 딱 1년. 신분은 앞길이 불투명한 2군 선수. 그래도 원지승은 "그때가 내 인생 최고로 기쁜 순간이었다"면서 "단상에 올라가 모비스 유니폼을 받을 때 느낀 행복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고 돌아본다.

그때부터는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평소 존경하는 가드
양동근과 함께 훈련을 했고 최고 가드 출신 유재학 감독에게 받는 지도도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미국 전지훈련을 가서 난생처음으로 흑인 선수들과도 농구를 해봤다. 또 2군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일본 최종 전지훈련에도 다녀왔다. "모든 게 꿈만 같습니다."

그토록 원한 프로 입문. 이제 원지승은 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개막전 12명 엔트리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것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유 감독은 "지금 상황이라면 원지승을 엔트리에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내 꿈은 어떻게 하든 1군 엔트리에 포함돼 프로농구 코트를 밟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매일매일을 인생 마지막 날같이 살고 있습니다."

여느 1군 선수들은 점수 몇 점, 어시스트 몇 개, 리바운드 몇 개 등이 목표다. 그러나 원지승의 목표는 목표는 오로지 출전 횟수와 출전 시간이다.

"처음에는 뛰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뛴다고 해도 채 몇 분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실수없이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분짜리 선수일지 몰라도 나중에 20분짜리, 30분짜리 선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원지승은 이번 2012~2013시즌을 인생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뛸 참이다. 기회는 적을 것이고 출전 시간도 부족할 게 뻔하다. 그리고 그의 신분은 1년짜리 2군 선수. 기회가 왔을 때 뭔가 확실한 걸 보여주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모비스와 재계약하지 못하면 나는 갈 데가 없어요. 모비스에서도 못했는데 그때 나를 데려가겠다는 구단이 나올 리 만무하죠. 내 인생 전부를 이번 한 시즌에 걸었습니다."

같은 또래인 1989년생 평균 키는 173.6㎝. 원지승은 그보다 7㎝나 작다. 그래도 그는 키가 무척 중요한 농구를 택했고 국내 최고 선수들만 모인다는 프로판에 2군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칫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즌을 앞두고 있다.

"모든 게 불리한 가운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년을 보내야 합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몇 배 노력을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나는 해내고 싶습니다. 이전에 '쟤는 키가 작아서 농구 선수로 크지 못할 거야'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고도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내년에도 꼭 모비스 유니폼을 입겠습니다."

< 용인 |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