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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여제' 김주희 (스포츠 서울)

youngsports 2012. 2. 22. 15:04


[스포츠서울닷컴ㅣ유성현 기자] '복싱여제' 김주희(26·거인체육관)를 다시 만난 건 1년여 만이었다. 세계 여자프로복싱 5대 통합 챔피언답지 않은 풋풋한 '동안 외모'는 여전했다. 그새 체육관 장식장에는 챔피언 벨트가 하나 더 늘었고, 스물 여섯의 어린 나이에 자서전을 펴낸 저자가 돼 있었다. 지난 16일에는 석사모까지 쓰면서 '공부하는 챔피언'으로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주희는 다음달 30일 모교인 중부대학교 체육관에서 태국의 플로이나포 세커른구룬(22)과 5대 기구 통합 지명 방어전 겸 국제복싱평의회(UBC)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을 벌인다. 이기면 6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등극한다. 2004년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2007년 세계복싱협회(WBA) 챔피언에 올랐다가 반납한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8대 기구를 석권하는 위업을 이루게 된다.

< 스포츠서울닷컴 > 은 학업을 병행하며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김주희를 지난 9일 서울 문래동 거인체육관에서 만났다. 골수염으로 인한 발가락뼈 절단을 비롯해 숱한 난관을 딛고 일어선 그는 여전히 승리만을 갈구했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는 언제나 쉴 새 없는 훈련이 곧 일상이자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 현재 김주희는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세계복싱연합(GBU),
세계복싱연맹(WBF), 여자국제복싱평의회(WIBC)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 '공부하는 복서-6대 기구 통합 챔피언' 두 마리 토끼 모두 잡는다


-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챔피언 벨트가 하나 더 늘었다.


경기마다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내 기량은 많이 노출돼 있고, 상대방은 내 장점과 단점을 분석해서 맞붙기 때문에 확실히 지키는 게 어렵다는 걸 알겠더라. 내려와야 할 시기가 있겠지만, 최대한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목표다.

- 지난 1년 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음…. 공부하는 복서?(웃음) 관장님이 그 기사를 보시고 막 웃으시더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다고는 하는데 관장님보다 성적이 뒤진다. 보통 권투선수는 공부를 안 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 한다. 세계챔피언 출신 최연소 교수가 되는 게 완전한 목표다. 물론 은퇴 이후이긴 하겠지만.(웃음)

- 워낙 바빠서 공부할 시간은 있을까 모르겠다.


공부는 주말 같은 날 몰아서 한다. 워낙 바쁘니 요즘은 쌍둥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매일 아침 6시부터 12km정도 뛰면서 운동을 시작한다. 아침 먹고 쉬다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12시부터 들어가고, 점심시간 후에는 물리치료를 받거나 아버지를 돌봐드리고 저녁 7시부터 4시간 동안 훈련하고 집에 간다.

- 데뷔 이후 10년 넘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예전에는 체육관 바로 앞에 살았는데 지금은 아버지 요양병원이 있는 방화동에 산다. 체육관과 꽤 거리가 있어 이동시간이 긴 편이다. 2006년 골수염 때문에 발가락 수술을 하고 나서는 똑바로 걷는 연습을 많이 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집에서 체육관까지 2시간 20분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 다녔다. 내 성격을 쉽게 표현하면 '모 아니면 도'다. 열심히 할 거면 끝장을 보고, 그게 아니라면 아예 안 한다.

- 열정이 남다른 걸로 유명하다. 혹시 복싱을 그만둘까 했던 고비는 있었나.


한때는 챔피언 아니면 죽을 생각도 했었다. 아침 운동 코스 중에 강 깊은 곳이 있는데 그곳을 죽는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난 겁도 많고 눈물도 많다. '죽음'이라는 게 무서워 눈물 쏟으면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야 했나?) 발가락 수술 이후에는 선수로서 최대 위기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 형편도 있기 때문에 가장 잘할 수 있는 권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죽음까지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만의 결심이었다.

 

◆ "타이틀전, 쉬운 경기 하나도 없어…부담 없다면 거짓말"


- 다음달 30일에는 6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도전한다. 일부는 김주희의 당연한 승리를 기대하고 있는데.


쉬운 경기는 하나도 없다.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훈련한다. 만약 진다면 챔피언 벨트를 다 빼앗기는 거다. 우리나라는 권투가 열악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하나씩 방어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한꺼번에 다 걸고 한다. 매 경기 부담이 따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나.


준비는 잘 하고 있다. 요즘 날씨가 워낙 춥긴 한데 더 열을 내려고 기를 쓰며 하는 중이다. (모교에서 경기가 열리던데?) 말 그대로 완전한 홈경기인 셈이다.(웃음) 많은 기대에 대한 부담도 더 크지만 그만큼 화끈한 경기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 만일 한 번의 패배로 타이틀을 모두 빼앗긴다면 재도전을 하겠나, 은퇴의 길을 걷겠나.


지금 같은 마음이면 재도전 하지 않을까. 난 워낙 욕심이 많다.(웃음) 관장님은 몸의 탄력이나 스피드가 떨어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내려와야 한다고 말하신다. 데뷔를 한지가 꽤 오래 됐기 때문에 신체적 능력이 떨어진다면 대신 경기 운영 능력이나 노련함 쪽으로 비중을 많이 둬야 할 것 같다.

- 독일에 진출하려던 계획은 어떻게 됐나.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보류 상태다. 원한다면 지금도 갈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 선수이기 때문에 여기서 활동하는 게 더 좋긴 하다. 다만 아버지 건강이 최근 악화된 점이 걱정이다. 치매 초기 증세가 있으신 데다 요즘 당뇨 합병증 때문에 이를 다 뽑으셨다. 잘 못드시는 게 염려스러워서 부족한 요리 솜씨로 사골도 끓여드리기도 해봤는데 살이 자꾸 빠지시더라. 그런 것들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 대전료가 맞지 않아 치르지 못한 WBC(세계복싱평의회) 타이틀전, 가능성 없나?


여전히 대전료 입장차가 크다. 하지만 WBC는 마지막까지 꼭 도전하고 싶다. 권투선수로서 최종 목표인 셈이다. (뭐든 다 1등만 하고 싶나?) 그런가?(웃음) 공부는 1등이 아니지 않나. 요리도 내가 먹을 만큼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근데 별로 맛이 없는지 아버지가 잘 안 드시더라.(웃음)

 

◆ "챔피언 아니면 죽을 생각도…비인기 종목 설움 내 손으로 깬다"


- 지금까지 걸어 온 복싱 인생은 몇 라운드쯤 온 것 같나?


아마 중간쯤 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권투의 기역(ㄱ)자는 알고 있지 않을까.(웃음) 저보다 앞서 세계를 제패한 선수들에 비하면 아직 배울게 정말 많다. 그런 것들을 후배들한테 물려줘야 한다. 말 그대로 저만 다 해먹고 그만두는 건 권투를 사랑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 같다.

- 어느덧 데뷔 10년이 넘는 베테랑 선수가 됐다. 해가 지날수록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가끔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는 있다. 성격상 10개를 시키면 11개를 하더라도 만족할 때까지 해야 하는 사람이다. 운동량이 많다는 점이 내 최대 무기이자 자신감의 원천이다. 근데 그 운동량을 양껏 채우지 못했을 때 속으로 '20대 후반으로 가고 있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 더 열심히 하는 면도 있다.(웃음)

- 선수 생활 이후 활동에 대한 고민도 서서히 드는 시기일텐데.


후배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링에서 내려오고 싶다. 챔피언 벨트를 여러 개 갖고 있지만 나 혼자서 딴 게 아니잖나. 도와주신 분들이 많은 만큼 나 또한 후배들에게 어떤 일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 역사에 남을 만큼 많은 타이틀을 땄지만 비인기 종목의 설움도 많았을 것 같다.


그 점은 늘 아쉽다. 1960~70년대만 해도 국민들에게는 권투가 힘이자 희망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다치고 잔인하고 돈 많이 못 버는 운동이라는 편견이 있다. 생각할 때마다 매번 안타깝긴 하지만 그걸 깨는 것이 내 과제이자 목표다.

- 마지막으로 복싱 팬들과 독자 여러분께 한 마디?


이번에 타이틀전 앞두고 있는데, 꼭 6대 기구 챔피언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다. 여자권투가 정말 재밌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신다면 저희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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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길을 가는 아름다운 청춘의 모델이자 진정한 스포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