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는 윤임자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문화예술계를 발전시키고 그 위상을 드높인 예술가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올해의 수상자에 박진영의 어머니 윤임자씨가 이름을 올렸다. 색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윤임자씨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이날 함께 자리한 아들 박진영도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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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god, 가수 비를 시작으로 원더걸스, 미쓰에이, 2AM, 2PM 등을 키워낸 기획자이자 가수,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40). 가요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릴 만큼 그가 키워낸 가수들은 예외 없이 대성공을 거뒀다. 파격적인 의상과 실험적인 음악,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스타성까지 겸비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을 즐긴다. 지금의 박진영이 있기까지 든든한 후원군이자 버팀목이 되어준 부모님은 도대체 어떤 분들일까. 박진영의 부모님이 다니는 명동의 한 교회를 찾아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어머니 윤임자씨(68)와 아버지 박명노씨(72)를 만날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기자의 방문에 당황하던 박진영의 부모님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했을 정도로 공부를 제법 잘했던 아들이 어느 날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아들이기에 '그래. 한번 믿어보자'라고 생각했다.
"처음 가수를 한다고 했을 때는 잠깐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그런데 작곡가 김형석씨 집에 가서 매일 살다시피 하면서 부단히 노력을 하더라고요. 사실 그동안 속도 많이 썩였는데…. 지금은 세상에 없는 노래도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자랑스러워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끼가 넘치던 아이
어머니 윤임자씨는 박진영의 끼가 어릴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고 했다.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데 '아삭아삭' 소리가 나자 갓 돌이 지난 아이가 까르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고. 그 모습에 어머니도 신이 나서 한 시간씩 쌀을 씻으면서 아들을 즐겁게 만들어줬다고 한다. 또 네 살 때 한글을 다 깨우쳐서 길거리의 광고판을 읽으며 다녔을 정도로 영특했다고 한다.
"진영이는 아기 때부터 반복적인 리듬이 나오면 무척 좋아했어요. 어디서든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들썩였거든요. 또한 워낙 사교성이 좋고, 한글도 일찍 깨우쳤고, 운동, 노래, 춤 다 잘하니까 굳이 유치원에 보낼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웃음).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 때 미국에 갔으니 미국의 흑인 음악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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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간 박진영은 당시 흑인들을 누르고 상을 탈 정도로 춤을 잘 췄고 공부도 잘했다. 미국 학교에서는 시간 낭비하지 말자며 박진영을 월반시켰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고, 홀로 무대에 올라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 음악에도 소질이 남달랐다.
하지만 워낙 개구쟁이였기에 어머니의 속을 새까맣게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계단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스피드 내기를 하는 등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늘 가슴을 졸여야 했다. 또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빗나가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사람 노릇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고 속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왜 아이를 그렇게 키우느냐"라며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윤씨는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을 너무 정형화해서 키우잖아요. 공부는 무조건 1등 해야 하고, 대학도 좋은 데 가야 하고요. 하지만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똑같이 공부만 잘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박진영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들에게 "안 된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들에게 '하지 말라' 대신에 '우리를 설득해봐라'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설득이 되면 모든 것을 다 해줬어요. 진영이가 유명 외고에 합격을 했는데, 저희와 함께 학교에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가서 보더니, 학교가 감옥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저희가 직접 가보니까 학교 자체가 산 밑에 갇혀 있는 게 답답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이의 의견을 100% 믿고 따라줄 수밖에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도서실에 공부하러 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마중을 나가보니, 친구와 4차선 아스팔트 위에서 달밤에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집 근처에 있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춤을 췄다. 윤씨는 아들 몰래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너무 열심히 춤을 추고 있어서, "함께 집에 가자"라는 말을 아예 포기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윤씨는 박진영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대신 "무식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라며 공부도 열심히 가르쳤다.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걱정해주는 주변인들보다 아들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다. 윤씨는 아들의 장점을 '집중력'이라고 꼽았다.
"IQ가 153이기 때문에 머리가 좋긴 했는데, 목표가 뚜렷하니까 쉬지않고 노력하더라고요. 집중력도 뛰어났고요. 시험공부도 브리태니커 사전으로만 했어요. 그리고 그런 부분은 사실 저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해요(웃음)."
윤씨는 조기교육과 사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20, 30대 젊은 엄마들에게 "아이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키웠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공부는 끝까지 해야 돼요.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고 조기교육을 시키면 아이의 소질을 찾을 수 없어요. 부모의 기준으로 아이를 억누르게 되거든요. 아이가 어떤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옆에서 지켜보다가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억눌린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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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어머니는 자신을 가리켜 "억눌린 박진영"이라고 표현했다. 윤씨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그림을 좋아했지만 어머니의 뜻에 따라 7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윤씨의 어머니는 당시 자신이 다니던 한양여고 교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 때문에 윤씨는 늘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음악 듣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공부 잘하고 살림 잘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셨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아온 게 한이 돼서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꼭 아이가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죠,"
윤씨는 어른이 된 후에야 화가로서의 자신의 끼를 발휘했다. 예술의 전당과 인사동 등에서 수차례 개인전도 열었고, 해외 아트 페어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손 떨림 증상이 있어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작품들은 교회와 여성 재단에 기부했다.
결혼 후 윤씨는 아이들이 음악계에서 활동하길 바랐다. 그 바람 때문인지 박진영은 가요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인물이 됐고 그의 누나는 현재 호른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아들의 음악과 무대, 패션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집안 어른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교직에 몸담았던 박진영의 외할머니뿐 아니라 박진영의 외가 쪽에는 교육계에 친인척이 많았다.
"진영이와 많이 싸웠어요. 소위 '딴따라'라는 건 우리 집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제 친정아버지는 '집안 망신'이라고 하셨어요. 저 역시 뭐든 진영이가 저지른 후에 알았으니까 항상 애를 태우고 울고 그랬죠. '너만 생각하느냐'라며 '부모 입장도 생각해달라'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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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진영이 비닐 옷을 입은 채 노래 부르는 모습이 방송되고 난 후에는 친척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다들 "깡통 하나 들면 거지나 다름없다"라며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이때도 부모님은 박진영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진영이가 저한테 '엄마, 여자들은 공부를 잘할수록 손만 잡아도 임신하는 줄 알아요. 그만큼 성에 무지해요. 저는 몸으로 데모를 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수긍이 됐어요."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사줄 정도로 개방적인 아버지
아버지 박명노씨 역시 끼가 많고 활달한 아들을 키우느라 애를 태우긴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주말마다 댄스파티를 즐겼던 아들과 딸이 한국에 돌아와서 답답하다며 불만을 터뜨리자, 박씨는 직접 아이들을 클럽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딸이 고등학생일 때 진영이는 중학생이었는데, 한국은 댄스파티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두 아이를 차에 태워 클럽에 데려다 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왔죠. 대신 술과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미리 말했어요. 그때 두 아이가 얼마나 신나게 놀다 왔는지 몰라요(웃음)."
또 아들이 중학생일 때는 오토바이를,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자동차를 사줬다. 물론, 이와 관련된 사고 처리는 모두 아버지의 담당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잘못은 매를 들어 깨닫게 해줬는데, 아프지 않게 신문지를 말아서 때렸다고. 회초리로 때리면 아들이 아플까봐 차마 때리지 못했다는 것. 그 모습을 본 아들은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은 고려대 출신에 산업은행을 다닌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자신도 어릴 때 못했던 부분을 자식에게 다 해주고 싶었나 봐요(웃음)."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모범생이었는데 아들은 달랐다. 무척이나 자유롭고 끼가 넘쳤다. 공부는 잘했지만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다. "저희야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반항하지 않고 모범적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저희 부부 뭐 특별한 거 있나요? 아마도 너무 모범적으로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만큼은 자유롭게 키웠어요."
자랑스러운 아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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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은 평소 '애교'가 많은 아들이다. 어머니에게는 항상 다정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윤씨는 아들과 대화하는 게 즐겁다. 요즘도 모자는 시간만 나면 수다 떠는 것을 즐긴다. 게다가 요즘은 아들이 어머니를 오히려 막내 동생 다루듯 한다고.
"진영이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야한 장면이 나오면 오히려 저보고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며 빨리 들어가라고 장난을 쳐요."
하지만 어머니 윤씨는 아직까지도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 박진영은 여전히 늘 많은 것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꿈꾼다. 그리고 100여 명의 직원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아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돈 욕심 없고 일 욕심 많은 아들이 늘 걱정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는 아들 걱정에 한숨을 쉬기도 하지만 눈앞에 나타나면 아들 특유의 자신만만하고 행복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네 인생이니까 네가 선택하면서 살되, 잘못 선택한 부분은 후회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른 대가는 꼭 치러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우리 진영이는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늘 새로운 일을 벌이는 아들을 위해 그저 숨어서 지켜보는 것밖에는 특별히 해줄 게 없어서 안타까워요."
윤씨의 소원은 박진영이 하루라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진영이가 아이를 굉장히 좋아해요. 아이만 낳으면 제가 키워주겠다고 했더니 '아마 어려울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진영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고,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성격이다 보니 결혼생활에 적합한 신랑감은 아니죠. 지금처럼 당당하게 사는 모습도 좋지만 엄마로서 아들이 아이 낳고 사는 거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죠."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제공 / 박동민,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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