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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 피기 위해 영혼이 그렇게 아팠을까, 올리바 수녀 이야기

youngsports 2012. 3. 3. 16:22

 

팔목 그어대던 여고생을 ‘고흐’로 꽃피운 수녀님, 한겨례 신문 인용

 새내기 미대생 된 그의 첫 작품전 제목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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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영 올리바 수녀와 제자들과 즐거운 한 때

 

 수도자는 떠남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머물던 자리에 미련 두지 않고, 소임지가 바뀌면 언제나 떠나는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어제까지 소중히 여겼던 일과 살갑게 정을 나누던 이들을 그곳에 두고 수도자는 가야할 곳을 향해 담담히 일어난다. 최소한의 자기 일상품만 들고서 하얀 백지 시험지 한 장을 받아든 마음으로 수도자는 새로운 소임지로 발길을 돌린다.

 

 올리바 수녀는 제주 공항 국내선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다. 오전에 출발하는 김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그녀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넓은 유리문을 통해 도로 양쪽에 서 있는 야자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4년 전, 비행기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제주도는 나라 안의 가까운 섬이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만난 저 이국적인 야자수는 그녀 자신이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살면서 만난 제주의 자연들. 하늘과 별과 달, 바람과 돌담들, 옥빛 바다는 그녀에게 너무 멀리 떠나버린 인간의 그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갈망하게 했다.
 
 올리바 수녀가 가장 좋아했던 제주의 자연은 ‘오름’이었다. 사방 천지에 소똥, 말똥이 널려 있고, 민들레 짝퉁인 개민들레가 자기 세상인 듯 피어있는 오름. 그녀는 가장 낮은 이들에게 이부자리를 깔아주는 둥근 오름의 넓고 편한 마음을 닮고 싶었다.  
 
   전광판 시계를 보며 탑승시간을 확인한다. 보안검색을 받고 탑승구(GATE)를 통과하기 위해 승무원에게 표를 내민다. 그녀는 이동가방을 밀며 기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 가방 안에는 수도자가 가지고 떠나는 최소한의 물품, 그리고 자신의 제자인 소영이가 준 그림이 들어있다. 소영이는 그녀의 교직 생활에서 만난, 아픈 꽃 한 송이었다. 올리바 수녀는 어디로 떠나든 아마 소영이의 그림은 늘 가지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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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 오름에서 내려다본 모습   -조현기자

 

 “수녀님 저요 제가 무서워요, 저도 모르게 자꾸 면도칼을 들고…”
 
  제주의 바람을 뚫고 아침마다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올리바 수녀의 발걸음은, 마치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냥, 콩당콩당 늘 설레는 나날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소영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서 있었다.
 
  새 학기가 한 달 정도 지난 4월 초. 교무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소리쳤다.
 
 “수녀님! 소영이가, 소영이가 칼을 들고서……칼을……수녀님, 무서워요. 어떻게 해요.”
 
  덜컥, 심장이 내려앉은 것 같은 놀라움. 그러나 올리바 수녀는 뭔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녀는 의자를 넘어뜨리며 일어나 교실을 향해 달려갔다. 복도에 놓인 사물함 근처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소영이는 왼손에 문구용 칼을 들고서 사물함에 기대어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는 소영이에게 의지적으로 천천히,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가만히 끌어안아 주었다. 소영이는 키 큰 올리바 수녀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소영이의 등이 몹시 흔들렸다.
 
 그러니까 꼭 한 달 전, 고교 1학년 첫 담임이 되어 첫 수업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아직 이름도 파악하지 못한 아이들 중의 한 명인 소영이가 교무실로 담임인 그녀를 찾아왔다. 아이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수녀님 저요……제 자신이 무서워요. 저도 모르게 자꾸 면도칼을 들고 손목을 그어요. 제가 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영이의 고백은 충격이었다. 순간 놀라움으로 막막하기만 한 그녀는 제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방비 교사였다. 처음으로 그녀는 교사로서의 무능함을 깨우치고 인정해야 했다.
 
 엄마의 스무 살 불장난…이혼…새엄마…우울증
 
  그녀는 먼저 소영이의 가정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 엄마의 스무 살 불장난 사랑으로 태어난 소영이는 철 없고 애정 없는 엄마 손에 양육되었다. 결국 부모는 소영이 중3 때 이혼을 했다. 그 후 아이는 또 다른 젊은 새엄마 밑에서 자랐다. 매우 현실적 사고형의 새엄마와 감수성이 예민한 소영이는 서로에게 부딪치는 걸림돌이었다.
 
 그럴수록 소영이는 솟구쳐 올라오는 감정들을 꾹꾹 억누르다 참을 수 없으면 자신의 힘듦을 자해로 보여주었다. 새엄마와 소영이 사이의 감정의 골은 너무 깊어 있었다. 대화가 단절된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소영이는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
 
  올리바 수녀는 소영이를 데리고 상담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아이의 우울증 정도가 심각하다며 약물복용을 권했다. 그녀는 소영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영아, 약을 먹기는 하되 의지와 함께 극복해 보자, 수녀님도 힘들 때마다 도와 줄게.”
 
  대답 없는 소영이. 그러나 얼굴에는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 후 소영이는 수업시간에도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일거나, 땅이 꺼지는 기분이 들 때면 교무실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올리바 수녀는 소영이의 손을 꼭 잡아주고 옆에 의자를 마련하여 앉아 있게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수녀님, 저 오늘부터 수업 안 들어가고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요?”
 아예 수녀님이 있는 교무실에 와 있겠다는 뜻이다. 그녀는 두 말 않고 빈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주었다. 그날부터 소영이는 담임인 올리바 수녀 옆에서 자기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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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책을 읽다가 답답하면 운동장을 돌고 오기도 했다. 교실에는 수업이 듣고 싶을 때만 들어가도록 배려했다. 그때를 돌이켜보니 자신과 뜻을 같이하여 한 학생이 아침부터 계속 교무실에 앉아 있을 때의 불편함을 참아준 주변 선생님들이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그분들도 소영이가 스스로 수업에 들어가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타고난 재능” 한 마디에 “아 이제 소영이가 살 수 있겠구나”
 
  그러던 어느 날 미술 교사가 그녀에게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소영이가 그린 건데요. 제가 아이들 그림 실기에 만점을 잘 주지 않거든요? 그런데 소영이 그림에는 만점을 주고 싶어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 그림을 살펴보았다. 계속 이어지는 미술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소영이 작품에는 영혼이 살아있는 게 보여요.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한 줄기 강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이제 소영이가 살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었다. 그녀는 당장 소영이를 만났다.   
  “소영아,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니.”
  “네, 어릴 적부터 혼자 그림 그리는 거 좋아했어요.”
  “그럼 앞으로, 장래 희망을 미술 쪽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니?”
  “ 아니요? 그냥 취미로 그리는 걸 즐길 뿐이에요.”
 
  “미술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소영이 그림에서 특별함이 느껴진데. 수녀님 보기에도 네가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열심히 노력해서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더 행복해 질 수 있어. 수녀님은 네가 진지하게 그림에 대해 생각해보고 진로를 찾으면 좋겠는데. 어떠니?”
  “엄마가 싫어하실 거예요.……그리고 자신도 없구요.”
 
  이 말을 하고 소영이는 시든 풀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올리바 수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소영이의 맥없는 모습과는 달리 아이 눈빛은 이미 열망하고 있음을 보았기에.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건 없어. 그리고 소영이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어. 희망 말이야.”
 
 “너 분명히 훌륭한 화가가 될 텐데 여기 싸인해라,나중에 얼마나 비싸겠니”
 
  며칠 후 소영이는 중1, 예전 미술 선생님한테 칭찬받은 카드 한 장을 들고 왔다. 카드 속에는 소영이가 다섯 살 꼬마였을 때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끼여 있었다.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제가 어릴 적에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나 봐요.>
 
  그녀는 제자를 위해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먼저 딸에 대한 불만이 많던 새엄마의 마음을 열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제자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열중하도록 물적 도움을 청하여 소영이를 미술학원에 등록시켰다.   
 
  서양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그림의 재료를 사느라 평생 동생 테오의 도움을 받았다. 테오는 형의 일생동안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어떤 불평도 없이……. 올리바 수녀는 소영이가 지금부터 그림에 열중하도록 제자의 인생을 힘껏 동반해 주고 싶었다. 반 고흐 동생 테오 처럼.
 
 그날 이후 소영이는 연습장에 스케치를 시작했고 틈틈이 그린 그림을 올리바 수녀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소영이가 그림을 가져오면 그림 위에 꼭 “싸인”을 하게 했다.
 
  “수녀님, 이거 선물이에요.”
  “와, 멋있다. 자. 여기 싸인 해야지? 분명 너는 훌륭한 화가가 될 텐데. 그때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겠니?  빨리 여기에 싸인해라.”
  소영이는 그 선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게 싸인을 했다.
 
 “이젠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고1을 마치는 종업식 날, 소영이는 또 한 장의 그림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도화지 안에는 담임인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소영이가 준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수녀님, 이제 저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이제 괜찮아요. 수녀님의 기도가 더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 사이 소영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며 우울증약도 먹지 않고 자기 의지로 이겨내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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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학년이 바뀌어 소영이는 고2가 되어 새로운 담임을 만났다. 교무실 올리바 수녀 책상 옆에 임시로 놓였던 작은 책상과 의자도 사라졌다. 다만 소영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옛 담임인 그녀를 찾아와, 이번 시험은 정말 꽝 쳤어요, 친구랑 싸웠어요 등등 시시콜콜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 그녀와 소영이는 편안 친구처럼 하하--호호 웃고 떠들다 헤어지곤 했다. 
 
 여전히 소영이는 가끔씩 습작을 가지고 왔으며, 그녀 또한 어김없이 싸인을 받아두었다. 그녀는 훗날, 그림에 소질을 보이는 또 다른 제자가 절망에 빠질 때 이 싸인 받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너 그 유명한 화가 김소영씨 알지? 이 그림, 그 화가가 고등학교 때 그린 거야. 수녀님 제자였다니까? 그 화가도 한때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던 적이 있었어. 그런데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자기 재능을 찾아내어 열심히 노력했기에 오늘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거야. 사람은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어. 너도 할 수 있어. 난 꼭 널 믿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녀는 소영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에 진학하도록 동반해 주었다.
 
 서로에게 옷을 벗고, 길이 되어주는 삶을 가르쳐 준 제주의 자연들
 
  승무원이 상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에 이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리바 수녀는 언젠가 제주 토박이 할머니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제주는 사람들이 처음엔 오기 싫엄 울고, 나중엔 가기 싫엄 울엄수다.”
  그녀는 비행기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서로에게 옷을 벗고, 길이 되어주는 삶을 가르쳐 준 제주의 자연들을. 겨드랑이 벌리고 바람의 길을 도와주는 제주의 돌담들, 소똥, 말똥, 개민들레를 비롯한 세상의 못난이들의 보금자리, 제주의 오름들, 달과 별들을 위해 더욱 파란 하늘, 그리고 옥빛 바다와 그 하얀 파도를…….
 
  그녀가 제주를 떠난 그 해 가을 날. 새내기 미대생인 소영이의 첫 작품 전시회 팸플릿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올리바 수녀는 봉투를 뜯고 팸플릿을 펼쳤다. 팸플릿 중앙에는 두 사람의 다정한 얼굴을 돌로 조각한 사진이 담겨 있었다. 조소과 1년생 소영이의 작품이었다. 이어서 그녀의 두 눈은 팸플릿 제목 두 글자에 멈추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소영이의 첫 작품 전시회 제목은 “동행”이었다.

 


돈보스코 예방교육 영성

  “교육(Educare)”이란 “밖으로 이끌어내다”라는 뜻입니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의 영혼 안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 즉 탁월한 능력이나 잠재력, 숨어 있는 재능을 발굴하여 밖으로 이끌어 낸 기술자였습니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에게서 하느님이 그들 안에 심어 놓으신 계획,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도록 도왔습니다.


 예를 들어, 갈리에로 추기경은 어릴 적부터 돈보스코 기숙사에서 살았습니다. 워낙 놀기 좋아하고 한군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꼬마 갈리에로는 어느 날 교사의 손에 붙들려 돈보스코 사무실로 보내졌습니다. 원고를 쓰느라 너무너무 시간이 없던 돈보스코는 갈리에로에게 거기 잠깐 가만히 앉아있으라 했습니다. 그런데 꼬마는 어느 새 돈보스코 책상 밑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며 놀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돈보스코는 평소에도 부서진 나무막대를 치며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꼬마 갈리에로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선 그에게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합니다. 그 후 갈리에로는 교회 전례음악의 대가, 그리고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에 이어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 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그들의 내적인 잠재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적 분위기 조성과 성숙한 ‘교육자의 현존(Assistenza)'이 필요합니다.

소영이는 현재 미대 졸업반이 되었으며 올리바 수녀의 가방에는 소영이 싸인이 담긴 그림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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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키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은 인내하고 기다려주면서

그들의 재능이 피어나는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아이들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것이 교육의 출발인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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