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경제·사회

故 김준엽, 12차례 관직 사양한 올곧은 지식인… 진보·보수 모두의 ‘참 스승’

youngsports 2011. 6. 8. 10:18
ㆍ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1920~2011)

1985년 2월, 고려대 졸업식장에서는 “총장님 힘내세요”라는 학생들의 외침이 퍼졌다. 3개월 동안이나 학생들이 총장 퇴진 반대 시위를 벌인 곳은 고려대가 유일했다. 군사정권 시절, 학교마다 학생들이 정권의 하수인을 자처하던 총장들에게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다. 당시 고려대 총장이었던 고인은 정권 반대 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제적시키라는 정권의 압력에 맞서다 결국 쫓겨났다.

국민훈장 모란장 등 많은 훈장을 받았던 김 전 총장이지만, 생전에 그는 “이때 학생들의 퇴진 반대 시위가 인생 최대의 ‘훈장’이었다”고 말했다. 그 도덕성과 지조가 김 전 총장을 진보와 보수를 넘어 모두 존경하는 우리 사회의 드문 지식인이자 원로로 만들었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것은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는 것과 “역사의 신을 믿어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정의·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이다.

나라를 잃은 시대를 살아낸 김 전 총장에게는 그런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 암울함에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다. 신의주고보를 다닐 때 일본에
수학여행을 갔다가 귀로에서 일본말을 쓰는 조선인 학생과 난투극을 벌인 그였다. 1944년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 시절 일본군의 학병으로 징집된 김 전 총장은 학병으로서는 1호로 일본군을 탈출해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이때 평생의 친구이자 훗날 사상계 발행인이 되는 고 장준하 선생을 만나게 된다.

광복군 시절 장준하와 함께 1945년 8월20일 중국 산둥성 유현에서 광복군 국내정진대원들과 찍은 사진. 왼쪽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순이다. | 나남출판사 제공


장준하와 함께 중국 충칭의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6000리의 장정’을 하는 동안 김 전 총장은 “우리 후손들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지 않기 위해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함께 절규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을 찾아가 이청천·이범석 장군의 부관으로 활동했고, 1945년 미군기를 타고 국내 진공 작전에 참가했으나 한국 진입 중지 명령을 받고 회항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김 전 총장은 회고록 <장정>에서 “과연 나는 못난 조상이라는 후세의 평을 면할 수 있겠는가 되돌아보게 된다”라고 썼다. 장정 때
스스로 다짐했던 그 말이 그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했음이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생일상을 따로 차리지 않는다는 것과 벼슬을 안 하겠다는 것이 제 일생의 신조”라고 밝혔다. “생일날마다 일제치하에서의 아픔이 떠오르고, 두 동강 난 조국의 신음소리가 들려와 집에서 밥상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총장 사퇴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1985년 3월 총장 사퇴를 맞아 고별사를 하고 있다.


각계에서 두루 신망이 높았던 김 전 총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 후보 1순위였다. 그는 회고록에서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김대중 정권까지 국무총리를 비롯해 12차례의 관직 제의를 받고도 거절했다고 적었다.

 

“사회적으로 조금만 자리를 잡으면 다들 관직 한 자리를 해서 족보에 번듯한 관직명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관존민비의 폐습”이라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그를 두려워한 것은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도 최고의 성과를 가지고 엄정한 지식인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시간을 5·10분 단위로 쪼개 쓰면서”
공부와 집필에 몰두한 그는 ‘20세기의 명저’로 꼽히는 <한국공산주의운동사>(전5권·김창순 공저)를 저술하기도 했다.

칩거하며 집필 1985년 고려대 총장직에서 물러난 직후 자택에 칩거하며 집필에 열중하고 있다.


광복군 참가 이후 바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서 공부했던 김 전 총장은 고려대 총장직에서 쫓겨난 이후 사회과학원을 설립하고 중국과의 학술교류에 평생을 바쳤다.

1985년 당시 총장 퇴진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2년 전
제자들과 마지막 점심자리에서의 김 전 총장을 회고한다. “총장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자네들 같은 학생들을 둔 것이 행복했다고 말씀하셨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지켜주지 못해 지금까지 짐이라고, 자네들 덕분에 나라가 민주주의로 화해와 통일로, 선진국가로 바로 가는 걸 보니까 우리가 잘못 가르치지는 않았구나 하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요.”

김 전 총장이 우리 시대의 원로이자 참 스승으로 꼽히는 이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