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식 개혁'이 추종한 미국의 충격적 현실
다음은 미국의 유명 월간지 <베니티 페어> 5월호에 게재된 '1%의, 1%에 의한, 1%를 위한(Of the 1, by the 1, for the 1%)'이라는 글의 주요 내용이다.
필자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국제경제학계의 존경받는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글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이 외쳐진 나라 미국이, 그리고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이 현재 그들이 비웃던 유럽보다 못한 '기회 박탈의 땅'이 되었다고 고발하고 있다.
요즘 국내에서는 '국제경쟁력'이라는 미명 하에 미국식 대학개혁을 표방한 서남표 총장의 정책으로 학생들과 교수가 잇따라 자살한 '카이스트 사태'가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경쟁력이라는 명분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미국식=선'이라는 공식은 이제 '미국식=악'이라는 공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를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글에서 간결한 통계로 보여준다.<편집자>
상위 1%가 부의 40%를 차지한 미국
이미 현실로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을 아닌 것처럼 부인해봤자 소용없다. 미국인의 상위 1%는 연간 미국의 소득 중 거의 4분의 1를 벌어들이고 있다. 소득을 포함한 자산 전체로 본다면 상위 1%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부가 늘어나는 경제시스템으로 모두가 더 잘 살게 된다는 '낙수효과'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상위 1%의 소득이 18%가 늘어나는 동안 미국의 중산층의 소득은 하락했다.
소득 평등의 관점에서 미국은 조지 W. 부시가 조롱하던 '늙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뒤쳐져 있다. 미국과 가장 가깝게 비교될 나라들 중에는 소수 재벌이 지배하는 러시아와 이란을 들 수 있다.
중남미에서 소득 불평등으로 악명높았던 나라 중 브라질은 지난 몇 년동안 빈곤 개선과 소득격차 완화의 진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미국의 불평등은 늘어났다.
소득격차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적 논리는 '한계생산성 이론'이다. 생산성이 높아 소득이 많아지고 사회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을 보면 이 이론은 현실과 맞지 않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기업들의 경영진들은 경제와 자기 기업에게 파탄을 몰고 오고도 거액의 보수를 받아왔다. 일부 기업은 자기들도 난처했는지 '성과 보수'라는 이름을 '인재 유지 보수'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다(성과가 나빠도 주겠다는 것은 마찬가지).
유전학이나 정보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한 개척자들은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간 금융혁신 책임자들에 비해 형편없는 보수를 받았다.
통계로 부정되는 '낙수효과'
"중요한 것은 파이의 크기이지, 어떻게 분배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미국처럼 매년 대부분의 구성원들의 소득은 줄어드는 경제는 장기적으로 잘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첫째, 소득불평등 증가는 '기회 불평등'의 다른 면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소중한 자산들이 가장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특정 분야에 보상이 몰리는 사회는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예를 들어 엄청난 보수를 챙길 수 있는 금융산업에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세번째,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현대경제는 '사회적 기반' 위에 성립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기반시설, 교육, 기술 등에 투자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기반시설 투자를 오랫동안 등한시해왔다(미국의 고속도로, 교량, 철도, 공항 등의 상태를 보라). 교육과 의료복지 등도 마찬가지다.
부의 불평등이 심할수록 부자들은 공동체를 위한 지출을 더욱 꺼려하게 된다. 부자는 공원, 교육, 의료, 치안 등을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그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변해가면 부자들은 예전에 가졌던 적이 있을 수 있는 공감 능력마저 잃으면서 보통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져간다.
미국이 왜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 경제학자들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상위 1%가 이런 불평등 사회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세정책은 가장 뚜렷한 보기다. 부자들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올리는 자본 이득세를 낮춤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부자들은 무임승차에 가까운 특혜를 누리고 있다.
특히 공화당 정부 때면 반독점법이 느슨하게 적용되면서 상위 1%에게는 횡재를 안겨주었다. 오늘날 미국의 불평등 중 상당부분은 금융시스템이 금융산업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바뀐 탓이다.
미국 정부는 금융업체들에게 제로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망하면 관대한 조건의 공적자금을 제공했다. 규제당국은 금융업체들의 불투명한 경영과 이해관계 상충에 대해 까막눈이 되었다.
"미국 의원 거의 전부는 상위 1%의 끄나풀"
문제는 이런 사회를 만든 조건들은 '자기 강화'의 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는 권력을 낳고, 권력은 부를 낳는다. 최근 미국의 대법원은 기업이 정부를 돈으로 움직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선거비용 지출 제한을 철폐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사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가 완벽히 일치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의 모든 상원의원, 그리고 하원 의원 대부분은 선출되는 순간 상위 1%의 돈으로 유지되는 상위 1%의 멤버들이 된다.
그들은 현직에 있을 때 상위 1%를 위해 일하면 그들이 공직을 떠날 때 상위 1%에 의해 보상을 받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무역과 경제정책의 핵심 고위관료들은 대체로 상위 1% 출신들이다. 제약업체들은 최대 구매자인 정부가 가격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관철시켜 몇 조 달러의 혜택을 챙기고 있다.
부자 감세가 포함되지 않은 어떠한 세제법안도 의회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상위 1%의 힘을 고려하면, 미국의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인 상위 1%는 전쟁을 원한다"
미국의 불평등은 사회 전반에 걸쳐 왜곡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상위 1%를 제외한 사람들은 갈수록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정책도 변질되고 있다.
상위 1% 출신이 군 복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최상류층은 미국이 전쟁에 예산을 퍼붓고 있었도 세금 때문에 쪼들리지 않는다.
미국은 전쟁을 일삼고, 기업들은 그 전쟁에서 이득을 취할 뿐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부자를 위해 고안된 것같다.
국제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법인세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보건과 환경을 위한 보호막은 약화된다. 단체협상이라는 노조의 핵심 권리도 약화되고 있다.
만일 노동자들끼리 국제경쟁을 하는 세계화라면, 정부들은 사회적 보호망을 확충하고 일반 노동자의 임금에 대해 감세하고, 양질의 교육과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려고 경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정부는 상위 1%의 국제경쟁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상위 1%가 미국 사회에 초래하는 손실 중 가장 큰 것은 이것이다. 공정경쟁, 기회의 균등, 공동체 의식 등 미국인의 정체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는 공정한 사회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을 전혀 다르다.
가난한 시민, 심지어 중산층 출신 시민들도 미국의 상층부에 들어갈 기회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보다 적다.
미국의 청년실업률은 20% 정도된다(일부 지역, 일부 사회계층에서는 그 두배에 이른다). 상근직을 원하는 미국인 중
6명의 1명 꼴로 그런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다.
미국인 7명 중 1명꼴로 식권으로 살아간다.
이처럼 상위 1%의 소득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분배되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무엇인가 차단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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