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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더십이란 ?

youngsports 2010. 10. 1. 15:48

박칼린 리더십 `국민 행복지수를 높이다`



박칼린 교수

[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KBS 2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하모니편`에서 `남자의 자격 합창단`
(이하 남격 합창단)을 이끈 박칼린 호서대 방송연예학부 교수가 장안의 화제다.

박 교수는 지난 7월부터 9월초까지 두 달 동안 `남격 합창단`의 오디션과 연습과정, 거제전국합창대회 본선까지 지도하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박 교수가 합창에 대한 열의만 가지고 있던 각기 다른 직업과 재능의 32명을 엮어 불과 두 달 만에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남다른 감동을 선사해서다.

특히 박 교수가 `남격 합창단`을 지휘하며 보여준 리더십은 방송 이후에 더욱 화제가 되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끈
히딩크 전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의 리더십 이후 사회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리더에 따라 한 조직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하는지 박 교수가 이를 다시 한 번 증명했기 때문이다.

① 전공 분야의 `탁월한 실력`


박 교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뮤지컬이나 공연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대가로 꼽힌다. 박 교수는 1989년 미주 MBC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해
판소리 명창 박동진 명창에게 3년간 판소리를 사사 받았다. 1996년에는 세계피리축체 전통문화예술 진흥에 이바지해
문화체육부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박 교수는 한국 뮤지컬 분야에 음악감독으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박 교수는 `
겨울 나그네`,`명성황후`,`노틀담의 곱추`등 40여 편이 넘는 뮤지컬에 음악감독과 음악수퍼바이저, 지휘와 개사, 연출에 참여했다. 또한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대학에 출강하며 후학들을 양성했다.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논할 때 박 교수의 챕터를 따로 써야 할 정도라는 게 뮤지컬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런 실력은 합창단원들이 박 교수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초보 합창단원들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박 교수의 말을 거부하긴 힘들어서다.

② 좌중을 휘어잡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박 교수는 여성이지만 남성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자신보다 연배가 높고 초등학교 선배인 이경규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합창단 앞에 섰을 때 박 교수는 냉정하고 엄한 모습을 보여주며 합창단원들을 압도했다. "플랫"을 외치며 음정이 잘못된 부분을 끊임없이 지적했고 제대로 소리가 날 때까지 다그쳤다. 그러나 연습 외의 시간에는 박 교수는 감정이 풍부하고 때로는 소녀 같은 모습으로 합창단원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이런 박 교수의 카리스마는 자신의 권위를 앞세워 조직원 앞에 군림하려는 제왕적인 카리스마와는 다른 카리스마였다. 일에서는 엄격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는 오히려 합창단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의견을 수용했다. 또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이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맡겼다.



▲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단원들(사진=KBS)

홀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독단적인 카리스마와 박 교수의 카리스마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카리스마를 `남격` 제작진 사이에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남격 합창단원들은 박 교수를 `캡틴`으로 불렀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키팅 선생처럼 박 교수는 남격 합창단원들에게 `오 마이 캡틴` 이었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등 마흔이 넘은 `아저씨`들도 부드러운 카리스마에 동화되어 박 교수를 캡틴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③ 합창단원에 대한 `무한 신뢰`


박 교수는 오디션을 통해 합창단원을 직접 선발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선택한 합창단원들을 믿었다.
그들이 합창단 결성 초반, 화음은커녕 박자도 못 맞추는 정도의 미천한 실력이었지만 박 교수는 합창단원들의 잠재력과 개별 능력을 믿었다. 그런 믿음이 없었더라면 박 교수는 합창단원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음정이 맞지 않고 동작이 틀리고 발성이 되지 않을 때 박 교수는 "No"라는 말 대신 "조금만 더"를 반복했다. 또한 연습과정에서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다만 합창단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다 끌어내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격려했다.
무엇보다 합창에 대한 열의를 존중하고 믿었다. 즉 조직원이 가진 선의와 열정을 의심하지 않고 합창단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격투기 선수인 서두원이다. 박 교수는 합창을 통해 마음속 꿈을 이루고 합심의 의미를 찾으려는 서두원의
진심을 믿고 발탁했다. 서두원은 악보도 보지 못했지만 MP3플레이어로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음을 외워 박 교수의 믿음에
보답했다.

④ 이완과 자극의 `융통성 있는 조율능력`

박 교수는 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연습을 한 `남격 합창단`에게 드디어 한목소리를 냈다며 감격해 했다.
마지막 연습에서 대회에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이뤘다며 이제는 합창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합창대회에 전날 연습에서는 합창단원들을 긴장시켰다.
자신은 긴장이 되어서 죽겠는데 합창단원들이 너무 풀어져있다는 것이다.
결국 합창단원들은 자발적으로 연습을 다시 했다.
합창대회가 끝나고 박 교수는 모든 것이 자신의 계산에 있었다며 일부러 이완을 시키고 긴장을 시켰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의 조율능력이 가장 돋보였던 것은 `
넬라 판타지아`의 소프라노 솔로 독창에 나선 선우와 배다해의 경쟁에서였다.
박 교수는 `남격 합창단`에서 배다해에게 솔로 파트를 맡겼다가 대회 출전 일주일전에 선우로 바꿨다.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소프라노 솔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박 교수의 조율능력은 빛을 발했다.
선우의 독창에 배다해의 화음을 맞춰 `남격 합창단`고유의 `넬라 판타지아`를 완성한 것이다.
박 교수는 완벽한 고음을 구사하는 배다해와 파워풀한 음색을 자랑하는 선우의 경쟁 심리를 조율하며
`남격 합창단` 전체의 합창 완성도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⑤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


`남격 합창단`이 창단 이후 불과 10여 일 남짓 연습을 통해 전국합창대회에서 장려상을 탄 데에는 박 교수의 역할이
가장 컸다. 하지만 박 교수는 남격 합창단의 연습과정이나 합창대회를 끝으로 해단될 때까지 소위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표정이나 말투, 눈빛, 행여 농담이라도 박 교수는 스스로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자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박 교수는 모든 공을 합창단원에게,`남자의 자격`스태프에게 돌리며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다.

또한 방송이 끝난 이후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뮤지컬학 교수로서, 음악감독으로서 본업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박 교수의 겸손은 아랫사람의 공까지 자신의 것 인양 과장하는 리더와는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또한 우리 사회가 리더에게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인터넷 이데일리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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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합창단 기적 이끈 박칼린 인터뷰

[중앙일보 2010-10-02 02:01]

 

'남자의 자격' 합창단 기적 이끈 박칼린 인터뷰

[중앙일보 양성희.최민우.조용철] 이 여자,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다. 지난 주말 그와 오합지졸 아마추어 합창단이 만든 작은 기적은, 오랜만에 TV 시청자들을 흠뻑 울렸다. KBS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합창단을 지휘한 음악감독 박칼린(43)이다. 소통과 신뢰 속에 남격 합창단은 마침내 ‘하모니’를 이뤘고, 대회가 열린 마지막 방송은 눈물바다가 됐다. ‘칼린쌤’이 보여준 강한 카리스마와 엄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은 ‘박칼린’ 학습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박칼린은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다. 1995년 28세에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후 국내 뮤지컬 산업의 시스템 구축에 일조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청담동 킥뮤지컬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강의하는 뮤지컬 아카데미다. 인터뷰 당일은 그가 음악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뮤지컬 ‘틱틱붐’ 개막일이기도 했다.

-박칼린 신드롬이 일고 있다.

“뮤지컬을 20년 했는데 다른 것으로 알려지니 다소 아이러니하다. 나는 늘 똑같다. 다만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간 간직해온 몇 가지 철학이 살아남은 걸 확인하게 돼 기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는 거,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진심은 언제든 통한다 같은 것들 등등.”

-예능프로 출연에 망설임은 없었나.

“PD에게 진짜 목적이 9월 3일 거제도 합창대회 맞느냐고 거듭 물었다. ‘사전 구성도 없고 아무 요구도 않겠다. 이건 예능이 아니고 다큐’라고 답하더라. 첫 미팅 3시간 중 2시간은 그에 대한 확답을 듣는 거였다. ”

-개인적으로 ‘남격’ 합창단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이런 아마추어를 데리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사람들을 잘 살폈다. 어떻게 짝을 맺어주면 분위기를 흐리지 않으면서 전체를 잡을 수 있을지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코미디 때문에, 아니면 자기를 알리려 튀고 까부는 모습이 사라졌다. 내가 못하면 남에게 피해가 가는구나, 상대가 연습을 많이 해오니까 나도 열심히 해와야겠다, 이런 믿음이 생긴 거다. 내게 ‘남격’은 그저 방송프로가 아니다. 내가 감독한 하나의 작품이다.”

-‘박칼린 리더십’이 화제다. 소통과 신뢰, 자율을 강조하는 동시에 각자의 책임감을 일깨우고, 엄격했다가 ‘사랑합니다’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끌어안기도 하고.

“평소 뮤지컬을 하면서 소통과 신뢰, 사람 사이에 위아래 없다는 걸 강조해왔다. 뮤지컬은 모든 것을 최소로 압축한 장르다. 연주자 수만 해도 오케스트라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 빠져도 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배우들에게 늘 스태프를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나도 직원들을 직원이라고 안 부르고 군단이라고 부른다. 평소 선생님, 이러면서 굽실거리는 사람들은 잘 안 쓴다.”

-좋은 리더의 역할은 뭘까.

“리더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따라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남이 만들어주는 자리다. 리더의 역할은 사람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사람들을 잘 배분하는 거다. 20년 일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오디션도 3분이면 끝이다. 
‘남격’에서도 그랬지만 실제 오디션 때도 기술보다 인격·인성을  본다. 사람이 안 돼 있으면 아무리 실력 있어도 결과가 안 좋다.  나는 목표를 정하면 밖에서 어떤 게 날아와도 무시한다. 필요 없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힘이 있다.”(웃음)

-리더십의 모델이 있나.

“어려서 부모님께 받은 영향이 크다. 딸만 셋이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지만 어려서 집에서는 차별이라는 게 없었다. 여자여서, 어려서 안 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실력대로, 실력순이었다. 부모님이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얘기하게 하셨고, 어떤 일이든 충분히 미리 설명해주셨다.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매사 불평이 없었고, 세상에 말로 해서 안 될 일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다. 그렇지 않은가. 진심으로 말로 소통해서 안 되는 일이 있는가.”

-‘명성황후’ 이후 국내 뮤지컬 음악 감독의 계보는 대부분 여성이다. 해외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라는데.

“역사의 단추를 잘 못 끼운 탓이 아닐까(웃음). ‘명성황후’ 때 20대였는데, (자)존심 때문에 20대 여자 밑으로 들어와 배울 남자들이 없었던 거다. 여자들이 줄을 이으면서 남자는 뮤지컬 음악감독 안 하는 것 같은 풍토가 돼버렸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등장이었다.

“그전엔 음악감독이라는 인식이 아예 없었으니까. 오디션 제도도 처음 만들자고 제안했다. 나이 많은 배우들이 ‘어린 여자 앞에서 오디션 보라니 말이 되냐’며 화내기도 했다. 그땐 뮤지컬 배우들이 노래 레슨 받는 것도 없었다. 그저 끼 있고 노래 좀 한다 싶으면 뮤지컬 배우 하는 줄 알던 시절이니까. 어린 여자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려 하니까 반발이 심했다. 난 차별 같은 건 전혀 경험 못하고 자랐는데 그때 한국사회에서 나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값어치인지 절감했다.”

-마녀라는 별명도 있었다.

“초기에 뮤지컬 배우들한테 보컬 레슨 받아라, 춤도 배워라, 공부해라 하도 닦달하고 다녀서 얻은 별명이다. 한동안 나는 ‘필요하기는 하지만, 껄끄럽고, 그렇다고 자를 수도 없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남격’ 마지막 회에 단원들과 함께 울 때 자막으로 나갔던 ‘그간 이방인으로 느꼈던 설움’이라는 게 그런 뜻이다. 혼혈이란 점은 특별한 한계가 되지 않았다.”

-뮤지컬과는 언제 인연을 맺었나.

“미국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오케스트라를 하고 뮤지컬 배우를 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첼로주자였는데 지휘자 선생님은 잠깐 자리를 비우면 꼭 내게 지휘봉을 맡기시곤 했다. 어려서 농구·승마도 했다. 팀을 짜서 소 500마리를 몰아본 적도 있다.”(그는 캘리포니아 종합예술대학을 거쳐 서울대 국악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다음 작품 계획이 있다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왜 브로드웨이에 가지, 불모지에서 사서 고생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게 좋다. 차기작으로는 정말 맘 맞는 사람들끼리, 남의 돈 안 쓰고, 아주 작은 규모로, 일 하는 게 곧 노는 것인, 그런 휴식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

 -새로 맡은 뮤지컬 ‘틱틱붐’을 소개해 달라.

“파격적 형식과 음악으로 뮤지컬의 틀을 깨며 반향을 불러일으킨 ‘렌트’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다. 작은 무대에 젊음의 폭발력을 담은 록음악, 주연배우 세 명의 동등한 역할분배 등이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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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희생없이는 리더는 전체를 조화롭게 이끌어 갈 수 없다.
더불어 음악과 합창이 가진 매력이란 것이,
공동체의 행복과 같이 일부분만 빛이 나고 나머지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크고 작은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하모니가 나온다는 점이다.
공동체 전체도 골고루 햇살이 퍼져서 각자의 능력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권리를 누려야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고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다. 
 
줄기차게 자신의 주장과 고집으로 일을 이끌어가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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