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경제·사회

강금실과 엘리트 그리고 한국 시스템의 고정관념

youngsports 2007. 9. 27. 13:24
2006년 타임지가 올해인물로 선정한 '당신(YOU)' 이 표지로 선정되었었다. 

인터넷 미디어를 장악한 인물은 프로페셔날 한 전문가나 교수나 박사가 아닌

바로 ´YOU´로 대표되는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 감성과 경험 정보 지식들이 쉽게 인터넷 매체에 접속하여 

다른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고 또한 누구나(´YOU´) 쉽게 접속하여 공감을 전달 할 수있는 생산자도 사용자도

거울에 비치는 타임지의 얼굴처럼 동일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세계적인 협력의 형태인 UCC(user created contents)시대가 도래하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은 무료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을 능가했고,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는 하루 일억건의 페이지뷰로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위키디피아가 브리테니카를 능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 업데이트 할 수 있고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인터넷만이 가지는 장점 때문이라 한다

 

인터넷은 어느 매체도 가질 수없는 쌍방간 교신이(two way) 가능한 상호주의 매체다.

그러기에 참여자의 적극성을 이끌어 낼 수있고 자신의 일인양 신명을 떨칠 수 있으며

누구나(´YOU´)가 편집자가되는 주인공이 되기에 자기일처럼 역동성을 일으킨다.

앨빈토플러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다는 ´프로슈머´의 원리이기도 할 것이다

 

위키노믹스는 "위키피디어"라는 전자 백과사전의 이름에서 따온 새로운 조류이다. 

저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침몰시킨 장본인이다.

브리태니커의 관리자들과 딜러들은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을 해도 백과사전을 사는 사람은 백과사전을 산다는

구시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망해갔다.  

 

위키피디어는 자신의 지식 소스를 인터넷에 개방함으로서

자신들의 지식에 사용자의 개별적 지식을 접목시켜 확장 발전해 갔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갈 것이다. 

 

위키노믹스의 원리에는 다음의 몇가지가 있다.

개방성(Being open)

동등계층 생산(Peering)

공유(Shaing)

행동의 세계화(Acting globally)

 

개방성이란 솔직함, 투명성, 자유, 유연성, 포용성, 연대, 접근성 등이다.

기존의 조직과 기술에는 이런 단어들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기술은 폐쇄적이고 숨겨야 오래오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향유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지적재산의 독점 시스템을 유지하고 비호하면 할 수록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가로막혀간다는 것이다. 

 

다음은 실화다.

 

골드코프 주식회사 (Goldcorp. inc)는 금광 회사이다. 채굴비용은 갈수록 높아지고 광산은 고갈되어 갔다.

돌파구를 모색하던 이 회사의 사장은 그 동안 애지중지 대외비로 유지하던 자신들의 지질탐사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 한다.

그리고 이 자료를 분석해서 금이 매장된 지역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준다고 공고한다.

대학교수, 학생, 군인, 심지어 경쟁회사의 지질전문가까지 이 공모에 참석하여 금을 찾기 시작해서 

무려 220톤의 금을 찾아낸다.

이 거대한 협업 전략으로 이 회사의 주식은 100불에서 3000불로 올라간다. 

 

개인끼리의 협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보인 것이다.

 

내가 위 글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이렇게 이미 세계는 기존의 행동과 관념을 넘어서는

지적 패러다임의 혁신과 발전이 숨가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일상 생활에서 깊숙하게

개인과 사회의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한국의 사상 네트워크와

정치,경제 시스템에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으로 대비되는 한국 사회의 지식 네트워크와 생활 네트워크는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를 변화 시키고 있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고령자도 60% 정도) 인터넷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삶의 일부로 이미 자리잡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강금실을 아주 좋아한다.

보라색으로 상징되는 스스로의 확고한 신념과 개성

그리고 저절로 몸에서 우러나는 춤사위에 자신을 내 맡기는

자유로운 그녀의 정체성을 사랑한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그녀가

신당의 모바일투표 자원봉사자 모임인 엄지클럽에 참여하면서

모바일 투표에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줄 것을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아직 기회가 남은, 유일한 대안인 모바일 투표에 직접 참여해서, 신당 후보 뽑아주고,

국민 당으로 바꿔주기를 호소한다."
강금실 / 전 법무장관

 

그렇다면
아직도 국민의 마음과 진실이 어디에 있는 지 그녀가 모를까?

일반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을 왜 현명하고 지혜로운 그녀가

진흙구덩이에서 벗어나지 않고 진실을 왜곡 하려 하는가?

 

이것은 강금실 개인 만이 아닌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대다수 정치 경제 문화 엘리트들의 한계이자

모순된 현실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우상에  스스로 자기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오류의 한 전형이다.

 

이처럼 자신이 공동으로 참여한 일과 사실에 대하여 비록 잘못된 선택과 행동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수많은 문제점을 발생시켰다는 분명한 문제점을 부인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반성과 고백을 부끄러워하고 이것에 대한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는 스스로를 부인하고 거부해야 하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력과 지혜가 있지만

자신을 채찍질하고 뼈를 깍는 반성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 특유의 체면과 명분의 울타리를 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80년 5.18 마지막 밤에 절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도청에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소위 엘리트들/정치인, 관료, 의사, 변호사, 성직자, 대학생 리더/

그 누구도 그 날 시민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리더이자 엘리트들의

자회상이다.

 

그들은 늘 자신들의 고귀하고 명예로운 성들이 무너지고 훼손되는 것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조국을 위해 온전히 자신들을 전부 던진 젊은 독립군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수를 제외하고 사회 지도층들이 그렇게 쉽사리 일제에 부역한 것이

생존에 집착하는 그들의 한계이자 본질인 것이다.

 

그렇게 반복되는 역사적 사실은

지금껏 관념화되고 빛바랜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의 한국 정치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철학과 삶에 배치되는 이율 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많은 엘리트들의 본 모습을 다시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늘 공공의 원칙보다는 자신의 이해 관계로 공동체를 이탈하는

손학규와 그를 새로운 국민 리더로 지지하는 김지하나 황석영 그리고 386 정치인들, 운동그룹들  

 

반성과 구태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했던

3김식 정치에 물들어서 조직 동원과 정치꾼들의  화려한 배경이 되는

정동영과 그를 지지하는 천정배, 추미애와 열린 우리당 출신 모임들

 

그리고 왜곡과 부패를 일삼는 노빠그룹 출신의 정치인들과

아직도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사모와 참정포럼을 중심으로한 

이해찬그룹.

 

덧붙이자면 소수 노동자를 위한  탐욕과 부패와 비민주로 새롭게 가진 자의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그룹들

 

그리고 여전히 조선과 일제하의 친일적인 사고와 시스템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그 정치 그룹들.

 

이들은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처럼 우물밖에 비친 해와 달과 하늘이 전부라고 믿고

확신에 차서 틀에 밖힌 행동과 관념의 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 부패와 탐욕의 집권층일 뿐이다.

 

정치사상사 적으로 국민 혹은 대중은

피지배의 대상이면서 지배의 원천이 되는 대상으로서의 이중적 성격이 있다.

 

김수영의 시 '풀'에 이런 구절이 있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역사와 시대가 주는 시대적 운명은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닌 대다수 국민의 힘과 소망이

분수처럼 터져 나올 때 비로소 새로운 역사와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들은 운명처럼 그러한 흐름과 함께 하고 성공을 이루어 내지만

그 과실이 국민 대다수에게 결코 더불어 오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대가 청하는 하늘의 소리와 요구에 답하는 것이

국민의 또 다른 운명인 것이다.

 

지금 모두가 현재의 정치 틀과 정당 구조를 벗어나서는 생존할 수 없고

선거라는 결과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100일과 5% 지지라는 라는 물리적 숫자와 조직이 없는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냉소적인 대다수 엘리트들과 언론매체들,

 

새로운 지식 혁명과 시대적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리더와

시스템이 출발하고 전진해야 하는데

과거에 매몰되어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소위 민주화를 지향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잘 될까 하는 회의주의와 체념에 사로잡힌 일반 시민들

개인적 쾌락과 이익에 만 몰두하는 젊은 이들.

 

이것은 20세기의 낡은 사상이자 낡은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시스템이다.

 

자 보라 !

5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주도하던 서구식 고급 문화 예술층이 무시하고 버렸던 

브레이크 댄스와 젊은 춤꾼들이 스스로의 변화와 수용 그리고 발전을 이룩하여

한국식 비보이와 비보잉 문화가 이제 세계 청년 문화의 중심이자 혁신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역사의 변화와 사상의 변곡점은

그동안 소리없이 왔다가 벼락같이 휘몰아 치면서

우리가 발견할 때는 이미 정점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는 이제 모두가 공동체의 한 점과 선을 잇는 새로운 네트워크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시장 경제로

더불어 함께 하는 공동체의 꽃을 피워 내야 한다.

 

촛불은 한 사람이 들면 외롭지만

모두가 들면 꽃이 되고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우리 모두를 비추는 아름다운 보름달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순간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젊은 시절 내가 신뢰했던 사상적 은사들이
낡은 20세기가 남긴 사막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양을 향한 향해를 우리와 더불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