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World

[한준] 판바스턴과 FIFA, 오프사이드 폐지 주장하는 이유

youngsports 2017. 1. 24. 22:05


해외축구 한준 현 풋볼리스트 축구전문기자. tvN 축구해설위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현지 특파원으로 유럽 축구 현장 취재.

GettyImages-631327930.jpg

판바스턴이 크라위프 등장 이후 가장 큰 축구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한준의 티키타카] 축구 전술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요한 크라위프에 이어, 또 한 명의 네덜란드 축구인이 축구를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9월 국제축구연맹(FIFA)의 기술개발위원장으로 선임된 마르코 판바스턴은 최근 오프사이드 규정 폐지를 비롯한 축구 규칙 전면 개정안을 구상했고, 이 계획안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축구계 전반에 걸쳐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대부분의 유명 감독들은 반대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판바스턴이 바꾸고자 하는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오프사이드 폐지
-페널티킥 폐지, 8초 슛아웃 도입
-오렌지카드(10분간 퇴장) 도입
-5회 반칙시 오렌지카드 
-선수의 1년 간 출전 경기 60회 제한
-전후반제 폐지, 4쿼터제 도입
-연장전 폐지
-선수 교체 확대


판바스턴이 주장한 사안 중 상당수는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던 부분이 많다. 페널티킥이 운의 요소가 강하며, 특히 승부차기의 경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경기력이나 기술보다 행운의 요소가 짙어 꾸준히 문제 제기가 있었다. 아이스하키에서 시행 중인 필드 선수와 골키퍼의 1대1 대결로 치러 선수들의 ‘축구 실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높이고, 관중들에게도 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자는 의도에서다.


▦ 축구경기에서 공격 기술을 더 풍부하고 보여주고자 한다


8초 슛아웃 방식은 골문에서 2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8초 안에 득점하거나, 막아내야 한다. 판바스턴은 “25미터 거리에서 선수가 득점을 하려면 드리블로 골키퍼를 제치거나 빠르게 슈팅을 해야 한다. 8초라는 시간 제한이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행운은 덜 중요할 것이다. 이 방식이 훨씬 스펙터클할 것이다. 그게 더 축구답다. 선수들이 갖는 긴장감은 여전히 높을 것이다.”


FIFA는 공격적인 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규정을 손질해왔다. 축구 전술의 발달로 공격 전술도 진보했으나, 압박 수비와 밀집 수비 등 수비 전술은 훨씬 더 발전했다. 확산도 빨랐다. 선수들이 공을 다르고 공격하는 개별 기술 없이 조직력 만으로 구축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는 경기가 많아졌다. 이변이 늘어나 결과가 주는 충격은 커졌으나, 경기는 점점 더 지루해져 간다는 비판을 받았다.


슛아웃 제도 도입은 그 자체로 선수들의 전반적인 기술 향상을 도모할 것이다. 개인 전술, 개인 창조성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슛아웃을 연마하는 과정이 오픈 플레이 상황의 경기력 증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페널티킥을 잘 차기 위해서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골키퍼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며, 기술 보다는 행운, 그리고 정신적인 부분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선수가 받는 중압감은 불운으로 인해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긴다. 충분히 기술을 단련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슛아웃 제도는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만한 부분이다. 


▦ 엄격해지는 판정, 끝나지 않는 거친 축구, 구조적 해법 찾기


1992년에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판바스턴은 매우 기술이 뛰어난 선수였다. 그가 일찍 현역 생활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상이다. FIFA는 꾸준히 파울 선언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리한 파울’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무수한 파울이 공격적인 축구, 기술적인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더불어 이런 파울들이 선수의 부상 위험을 높이고 있다. 최고 속력을 내며 드리블하는 선수에게 가해지는 파울은 선수 생명을 끊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위험성을 갖고 있고, 부상 이후 재활에 성공하더라도 이전 기량을 되찾지 못하거나 선수 생명이 짧아진다.


이런 부분은 정신적으로 교육하고 강조한다고 개선되지 않는다. 때로는 경고나 퇴장을 무릅쓰고 가하는 파울이 경기 결과에 따라 현명한 선택이거나, 팀을 위한 헌신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일부는 바뀔 수 있어도 전반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점에서 오렌지 카드 도입과 5회 반칙시 퇴장 규정은 선수들의 경기 스타일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판바스턴은 한번의 퇴장으로 곧바로 경기에서 퇴출 되는 상황은 가혹하다고 봤다. 10분간 퇴장으로도 팀 전력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있다. 또, 옐로카드와 레드카드가 내려지지 않는 경미한 파울의 빈발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문제를 5회 반칙시 오렌지카드가 주어지는 방식으로 바꾸면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파울 빈도를 줄이고, 파울 외의 방법으로 상대 공격을 막기 위한 방식에 몰두할 것이다. 이를 통해 수비 기술과 수비 전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레드카드와 옐로카드보다 오렌지카드가 선수들의 파울 빈도를 줄일 수 있다.


▦ 선수들이 항상 최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판바스턴의 구상은 대부분 축구 경기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것이다. 앞서 설명한 내용이 선수와 감독의 방법론적 관점에 대한 변화를 위한 개혁이라면, 다음은 선수들이 최상의 체력 상태를 유지하며 경기를 하기 위한 방안이다.


먼저 1년 간 한 선수의 경기 출전 횟수를 60회로 제한하는 것이다. “나는 많은 감독,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향을 지향해야 한다. 지금 축구경기는 너무 많이 열리고 있다.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 선수들이 너무 많은 경기를 소화하면서 신선한 상태, 몸이 갖춰진 상태로 뛰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경기의 질적인 측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요소다. 심지어 6월에도 큰 대회가 열러 선수들은 최대치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1년에 75경기 가까이를 뛰게 되는 선수도 있다.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55경기 내지 60경기에서 멈춰야 한다.”


추춘제를 실시하는 유럽축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프시즌 기간의 토너먼트가 너무 많이 생겼다. 각 대륙별 선수권 대회, 월드컵 그리고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주기적으로 열린다. 연령별 대회도 있다. 여름을 온전히 휴식으로 보낼 수 있는 해가 줄어들고 있다. 남미의 경우 2015년과 2016년 여름오 연속으로 코파아메리카가 열렸다. 유럽챔피언십은 2016년 대회부터 24개국 체제로 규모가 커졌고, 월드컵도 2026년부터 48개국 체제가 확정되면서 일정이 길어지게 됐다.


각국은 현재 리그 규모와 컵대회 및 대륙클럽대항전 규모를 줄일 예정이 없다. 상업적 수익과 직결된다. 클럽월드컵 조차 규모를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제 각 팀들은 프리시즌 기간에도 대형 토너먼트를 열어 소규모 대회를 치르는 수준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선수들의 휴식기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판바스턴은 선수당 경기 출전 횟수를 제한하고, 연장전을 폐지하는 대신 슛아웃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연결하고 있다.


더불어 전후반 제도를 폐지하고 4쿼터 제도를 실시해 선수들의 휴식 시간을 더 보장하고, 선수 교체 횟수를 늘려 선수들이 경기 도중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최고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FIFA는 이미 연장전에 선수를 추가로 교체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과거에 골든볼 제도와 실버볼 제도를 도입했으나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에 연장전후반을 모두 치르는 방식으로 회귀했다.


판바스턴은 교체 선수의 폭을 확대하고 출전 경기 수를 제한하는 것이 축구계에서 기회의 확대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모두 돈과 연관되어 있지만, 난 축구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축구계에는 이미 충분한 돈이 있다. 호날두와 메시는 아주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만약 그들이 조금 덜 벌고, 조금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축구에는 더 좋은 일이다.”


선수들의 경기 피로도를 줄이고, 출전 경기수를 제한하는 일은, 크게 보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두터운 스쿼드를 구축해 우승을 독점하는 일부 ‘빅클럽’과 나머지 클럽의 양극화 현상을 좁히는 데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될 수 있다. “파리생제르맹이나 맨체스터시티, 레알마드리드 같은 팀들은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축구 경기에는 상대팀이 필요하다. 경쟁이 필요하다. 두 세 팀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건 경쟁이 없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


▦ 반대 많은 오프사이드 폐지, 정말 무리수일까?


위와 같은 상당수의 주장은 다른 종목에서도 실시하고 있고, 판바스턴 이전에도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점진적으로 도입될 가능성, 그리고 찬성의 의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 가장 큰 반발을 사고 있고, 축구계 상당수가 반대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오프사이드 규정 폐지다.

 

포백 라인이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맞춰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축하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공격진의 대결을 ‘축구의 정수’로 여겨진다. 축구 경기 규정이 단순하지만, 오프사이드만 잘 이해하면 즐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규정은 사람의 눈으로 100%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측면, 결정적으로 거대한 경기장에서 선수단의 활용 공간을 축소시킨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수비 전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됐다.


오프사이드는 최종 수비 라인을 수비하는 팀이 주도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격 선수들의 배후 공간 활용도를 떨어트리며, 수비 라인을 문전 부근으로 설정하고 두줄 수비를 펼칠 경우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사라지게 되면서 지루하고 답답한 경기로 이어지는 악효과를 양산하고 있다. 밀집 수비를 깨기 위한 기술을 보는 재미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축구는 골이 많이 나지 않고, 상당 시간 답답하고 무력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경기도 적지 않다.무엇보다 이런 밀집 수비를 깨기 위한 기술과 전술을 갖춘 선수와 팀은 세계적으로 봐도 그리 많지 않다.


축구 전술은 오프사이드를 기준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 짧은 패스로 공을 주고 받으며 볼을 점유하고, 압박과 오프사이드 트랩의 빈틈을 찾아 골을 만드는 전술적 묘미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공을 지배하는 측과 공간을 없애려는 측의 싸움은, 두 방식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지루한 경기의 양상을 보이게 됐고, 대부분 공격 하려는 측의 위험요소가 더 크기 때문에 ‘이변 경기’가 늘어나 보수적 선택으로 결과를 내는 팀이 더 많아지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좋은 축구를 꿈꾸는 혁명가들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상주의자로 치부되어 언제나 시험대 위에 서야 했다. 그에 비해 수비 위주의 안전한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헌신과 팀, 조직이라는 가치 속에 결과를 내고 있다. 설사 지루한 축구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결과를 가져온 축구라는 점에서 가치가 완전히 손상되지 않는다.


사이드 라인에서 깃발을 들어올리는 모습이 미래의 축구에서는 사라질 수 있다.


오프사이드 폐지에 대한 반발은 선수가 골대 앞에서 롱볼을 받기 위해 머무를 것,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수비수들이 골문 앞에 모여들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하지만 축구의 기원을 따져보면 애초에 오프사이드가 존재했던 이유는 ‘전진패스’를 금지하고, 드리블 돌파로 상대를 제쳐야 한다는 것이 축구의 기본 경기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전진 패스를 허용하면서, 패스 전 최종 수비의 숫자가 정해졌다. 골키퍼 제외 2명에서 1명으로 줄어든 규정 개정 끝에 현행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판바스턴은 세간의 우려와 달리 오프사이드 규정 폐지가 축구 경기의 방식과 전술적 선택을 훨씬 다양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축구가 점점 더 핸드볼과 닮아가고 있다. 골대 앞에서 9명이나 10명의 선수들이 수비를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상대팀은 득점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 아주 제한된 공간만 제공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오프사이드가 없어지면 축구 경기가 어떻게 펼쳐질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 더 매력적인 방식의 경기가 될 수 있다. 공격수들은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팬들이 보고 싶은 것이다.”


한국 축구 레전드인 김병지 SPOTV 해설위원은 “축구 철학적으로 어려운 난제이고, 문제의 여지가 크지만 실제로 해보면 골을 만들어내는 재미와 퍼포먼스에는 다양한 전술과 임기응변이 가미될 수 있다”며 오프사이드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 축구를 단순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피지컬 좋은 선수로만 승부를 낸다는 말은 천만의 말이다. 오프사이드가 없어지면 순간 축구 지능과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골키퍼 시절 발로 하는 플레이와 전진 플레이를 선도했던 김병지 위원은 “현재 규정에서는 골키퍼의 행동반경이 앞과 뒤쪽 뿐이라면, 오프사이드가 폐지될 경우 양 옆쪽까지 계산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골이 많이 날 것이다. 단순히 키가 큰 선수들로 승부를 한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지만 경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경험적 측면이란, 김병지 위원이 선수 시절 오프사이드 없는 형태의 미니게임 형식 훈련을 많이 진행했던 것이 바탕이다.


“오프사이드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와는 별개로, 오프사이드가 없어진다고 전술 다양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선수들은 훈련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을 연습한다. 실제로 오프사이드가 없는 상황에서 골대 좌우 측면에 선수를 한 명씩 두고, 패스를 주기만 하는 선수를 두고 측면 공격 훈련을 할 때가 있다. 오프사이드 없는 상황의 훈련이다. 보통 공격할 때 가운데로 넣는 것 보다 측면 배후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훨씬 많은 득점 장면을 만든다. 오프사이드가 있는 상황에서 골키퍼는 앞과 뒤로 움직이는 것만 보면 된다. 그러나 골대 옆의 포지션에 선수가 들어와 있다면 나가서 공을 잡고자 해도 나갈 수가 없다. 그러면 결국 수비수들이 공격수를 막기 위해 어느 공간에 머무르고 이동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어디로 가도 공가는 빈다. 어떤 공간을 비워둘지에 대한 판단을 잘 해야 한다. 결국 공간 활용 능력이 좋은 선수들, 일대일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잘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투패스는 훨씬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오프사이드 없는 축구는 힘이 좋고, 키가 크고, 잘 뛰는 선수만 유리해지지 않을까? 피지컬의 중요성은 당연하지만, 다른 유형의 능력이 더 필요해질 것이다.


“피지컬은 중요하지만, 이런 방식의 축구가 되면 순간 스피드와 근지구력이 좋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결국 숫자 싸움에서 이기려면 올라간 선수가 빠르게 내려올 수 있어야 한다. 빠르게 공수를 오갈 수 있어야 한다. 하프매치를 할 때 8대8 게임에서 미니 골대 9개를 두고 하는 훈련이 있다. 선수들이 각자 골대를 하나씩 막아야 하는데 한 쪽은 결국 커버가 불가능하다. 먼쪽을 택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골을 덜 내줄 것이냐, 하프매치로 오프사이드가 없는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하면서 임기응변 향상을 추구하는데, 이렇게 훈련하면 실제로 골도 많이 나고 하는 입장에서도 아주 재미있다. 이런 연습이 어쩌면 오프사이드가 없는 상황의 축구에 대한 가정 상황이 될 수 있다.”


김병지 위원은 다수의 선수들이 골대 앞만 지키고, 상대 골대 앞에 공격수 하나를 둔 이후 단순한 롱볼 축구로 득점을 노리는 패턴의 단조로운 플레이가 빈번하게 시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상대 공격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수비수가 마구 올라갈 수는 없다. 공격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비수는 선택의 여지 없이 가야하는 상황이 많다. 상대 공격수가 안 내려오고 있다면, 압박 상황에서는 그 선수 한 명이 부족해서 지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설사 공을 빼앗더라도 그 선수가 멀리 있다면 정확히 한번에 전달하기는 어렵다. 그 선수도 결국 공을 받기 위해 어느 정도는 내려와야 하고, 그러면 수비 커버 가능 범위에 온다. 수비 연습을 할 때 11대10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10대10에 한 명을 깍두기로 넣어 공 소유권이 가는 쪽 팀으로 공격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비수가 늘 숫자가 불리하다. 수비만 하는 쪽의 체력 소모가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골대 앞에 공격수를 두고 나머지는 자기 골대만 지키는 전략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김병지 위원도 급격한 규정 변화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월드컵 본선 참가국 확대로 인해 수비 위주의 지루한 경기가 늘어날 것에 대한 우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2016는 내용 면에서 혹평을 받은 경기가 많았고, 수비 위주의 팀이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축구는 아직 인기가 충분히 많다. 하지만 경제 논리에 의해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48개국으로 확대하면, 재미가 없어질 수 있고, 상업적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그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는 도전해볼만한 방시이라고 본다. 축구 철학의 측면에서 어떤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선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오프사이드 규정이 폐지되면 골이 더 많이 나고, 전술적으로 다양해지고, 훨씬 재미있는 경기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슛아웃과 공격 지향적 규정 변화, 그리고 쿼터제 등 경기 방식 개정이 이뤄진 가운데 오프사이드가 폐지된다면 감독들이 승리를 위해 훨씬 더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각 규정 변화가 독립적 사안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최대효과를 낼 수 있다.


상대 골대 앞에 키 큰 선수를 두고, 우리 쪽 골대 앞에 많은 수비수를 배치해 롱볼 게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상황에 따라 이런 전략을 구상하는 팀도 나오겠지만, 90분 내내 이런 방식을 고수할 수 없고, 이런 방식의 허점을 파고드는 대응 전략도 나올 것이다. 오프사이드가 없어진 축구는 전술적으로 원점에서 고민을 시작할 것이고 훨씬 더 창조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전술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런 변화를 추진하는 것은 지루한 경기가 늘어나면서 라이트팬의 유입이 어려워 지고 있는 축구가 21세기에 대중 스포츠로 또 한번의 큰 전환점을 맞을 수 있는 시도다. 마니아 팬들에게도 훨씬 더 다양한 전술적 고민,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규정으로 인해 보는 재미가 충분히 풍부해질 수 있다.


지난해 일본 고베에 출장을 갔을 때 당시 만 92세의 나이에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 기자 가가와 히로시씨를 만났다. 그때 가가와 기자는 1974년 서독월드컵에서 크라위프가 뛴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기를 취재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이 토털풋볼을 들고 나와 현대 축구를 완전히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 축구는 또 한번의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FIFA는 축구가 점점 지루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자각하고 있다.


가가와 기자는 축구 저널리즘에 대해 묻자 축구를 잘 알고 공부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남긴 힌트가 지금에 와서 뒤통수를 때린다. “축구는 간단한 운동이지만 공부할 점이 많은 재미있는 운동이다. 내가 신문사 부장으로 있을 때 기자들에게 ‘풋볼’이 뭐냐고 물었다. 풋볼은 게일릭 풋볼, 아메리칸 풋볼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풋볼을 알지 못하면, 축구를 알지 못한다. 럭비와 어소시에이션풋볼의 차이를 알아야 축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힌트를 한 가지 주겠다. 럭비와 어소시에이션풋볼의 유일한 공통점은 정해진 틀 안에 넣는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시청률 8위를 기록하는 럭비월드컵은 한국에서 거의 관심이 없고, 미국에서도 ‘슈퍼볼’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식축구’ 역시 국내에서는 대중적으로 규정이나 경기 방식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미식 축구는 럭비에서 파생됐고, 럭비는 게일릭풋볼, 오지풋볼을 비롯해 각국의 규정 개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럭비는 초기 축구가 태동할 때 전진패스와 손을 손으로 절대 만져선 안된다는 부분에서의 이견으로 인해 갈라져 나왔다.


럭비와 미식축구는 거친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훨씬 다양하고 치밀한 전략 속에 운영된다. 득점 방식이 다양하고, 개별 규칙을 활용해 다양한 방식의 경기가 가능하다. 몸집이 크고 힘이 좋은 선수들 뿐 아니라 몸집이 작더라도 세분화된 개별 포지션에 따라, 그리고 포지션별 역할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작고 빠른 선수, 킥 등 다른 장점이 있는 선수들에게도 활약할 기회가 주어진다.


축구 경기 역시 신체 조건과 관계 없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이지만, 현행 방식으로는 볼을 다루는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에 제한점이 더 크다. 오프사이드 규정 폐지 및 슛아웃 도입, 그리고 선수들의 체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의 규정 개정은 이런 선수들이 더 많이, 빈번하게 자기 재능을 펼치며 축구를 더 공격적이고 매력적인, 득점이 많이 나는 경기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축구는 기술이 뛰어난 선수에게도 규율을 더 강조하고, 드리블 보다는 빠르고 간결한 패스가 현명한 판단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변화는 ‘티키타카’의 시대를 저물게 할 수 있다. 패스를 위한 패스, 지루하고 일방적인 볼 돌리기 축구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개인 드리블 능력과 장거리 패싱력을 갖춘 선수들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고, 전 포지션의 선수들이 공을 잘 다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부작용이나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다. 모든 변화에는 저항이 있고, 단점이나 예외적 상황이 전혀 나오지 않을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 지향점이다.


FIFA가 판바스턴을 기술개발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매우 진보적인 선택이다. FIFA는 누구보다 축구의 위기를 잘 알고 있고, 그 위기가 미칠 파급에 대해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단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판바스턴의 개혁론을 마주한 이들의 반응을 보니 대부분 보수적이다. 기존의 축구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기존의 축구는 기존의 질서 안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


판바스턴은 이번 개혁안 공개로 쏟아진 질문과 의문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답변을 했다. “오프사이드 규정의 경우 지금 당장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논의하자는 것이다. 난 우리가 축구의 미래를 위해 논의해볼 부분에 관한 기초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이런 답변과 더불어 판바스턴은 컨퍼런스에서 했던 발언을 옮겨 답했다. “FIFA의 역할은 축구 경기에 더 많은 다양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위르겐 클럽 리버풀 감독은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서 하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판바스턴이 추구하는 방식이 ‘축구’라는 종목의 절대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판바스턴의 구상대로 전개되는 축구가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판바스턴의 축구진보론에 찬성 의견을 보낸다.


글=한준 (풋볼리스트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이매진스, TacticalPa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