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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트럭 상권을 개발한 밤도깨비 야시장 모델

youngsports 2016. 7. 2. 16:00

음식·문화 싣고 달려 달려

푸드트럭 활성화로 청년 창업을 유도하는 풍경을 보려면 한강으로 가보시라. 지역 상권과 갈등을 피하면서 새 푸드트럭 상권을 개발한 밤도깨비 야시장 모델이 있다.





청년들이 서울 곳곳에서 희망을 짓는다. 이 ‘농사’가 흉년일지 풍년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헬조선’에서 버티기 위해 청년과 청년이, 청년과 지자체가 손을 잡았다. 활동도 성과도 아직까지는 모호하고 막연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금도 묵묵히 판을 깔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청년 성지’ 네 곳을 둘러봤다. 청년들이 일궈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4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물빛무대 일대에 밤도깨비 야시장과 푸드트럭 장터가 열린다. 
ⓒ시사IN 윤무영
4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물빛무대 일대에 밤도깨비 야시장과 푸드트럭 장터가 열린다.

푸드트럭 육성 사업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적 무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푸드트럭은 지난해 3월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규제개혁 1호 사업으로 논의되었다. 푸드트럭 활성화로 청년 창업을 유도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공염불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푸드트럭은 여전히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 푸드트럭협동조합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최근 2년간 푸드트럭으로 개조된 차량은 1000여 대에 이른다. 이 중 합법적으로 영업허가를 받은 푸드트럭은 200여 대에 불과하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푸드트럭 영업허가를 받아 영업을 하는데 해당 지역에서만 해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으로 허가된 영업장소는 대부분 사업성이 없는 곳이다. 해당 공무원 처지에서는 기존 상인들의 상권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행정자치부가 푸드트럭 이동 영업을 허용하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도심이 아닌 곳에서 고정된 형태로만 영업할 수 있었던 푸드트럭을 올해 하반기부터는 사람이 많이 모인 도심 지역에서 옮겨 다니며 영업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자부의 조처 역시 ‘지역 상권 보호’라는 근본적인 숙제를 풀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의 성공 사례는 의미가 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의도한강공원(물빛무대 일대)에 ‘밤도깨비 야시장’을 열게 했다. 지역 상권과 갈등을 피하면서 새로운 푸드트럭 상권을 개발한 것이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는 현재 푸드트럭 42대가 영업하고 있다. 수공예품 장터가 함께 열리는 이 야시장에는 매주 시민 2만~3만명이 찾는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는 푸드트럭마다 수십m씩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


밤도깨비 야시장은 박원순 시장의 ‘뚝심 행정’이 낳은 결과물이다. 처음 푸드트럭을 중심으로 한 야시장을 구상했을 때 서울시 역시 지역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박 시장의 의도는 한강공원을 푸드트럭으로 활성화시켜 지역 상권을 일으킨다는 구상이었지만, 지역 상인들은 푸드트럭에 손님을 빼앗길까 봐 적극 반대했다. 그래서 지역 상권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여의도한강공원 물빛무대 일대였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장벽은 규제였다. 합법적인 푸드트럭 영업을 위해서는 충족해야 할 시설규정, 위생규정, 안전규정이 많았다. 되도록 많은 푸드트럭을 참여시키고 싶었지만 규정을 충족하는 차량이 절대 부족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0월 3주에 걸쳐(영업일은 7일) 시범 운영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시민 21만여 명이 찾아와서 푸드트럭마다 매일 긴 줄이 늘어섰다. 32대가 동원되었는데 인기 있는 푸드트럭은 2~3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특히 젊은 고객이 많았다. 그 덕분에 밤도깨비 야시장은 ‘인스타그램 명소’가 되었다.


서울시는 ‘푸드트럭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올해 밤도깨비 야시장을 상설화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리고 있다. 올해 푸드트럭 30대로 야시장을 연 후 현재는 12대를 추가로 설치해 총 42대가 운영 중이다. 사람이 몰린다고 입소문이 나서 입주 푸드트럭 공모 때는 경쟁률이 4대1에 달했다.


푸드트럭은 단순한 노점이 아니라 ‘문화’

지난해 시범 개장에 이어 올해 다시 찾은 밤도깨비 야시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차량 디자인이 과감하고 다양해졌다. 모양과 디자인에서 개성이 넘쳐났다. 메뉴 폭도 넓어졌다. ‘푸드트럭에서 이런 메뉴도 파네’라고 생각할 만한 메뉴들이 여럿 보였다. 방문자들도 다양해졌다. 여전히 젊은 사람이 많았지만 가족 단위 방문객도 늘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푸드트럭 사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푸드트럭 사업의 일상은 식자재를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주중에 재료를 구입해서 다듬고 요리하기 좋게 가공한 다음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여의도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이틀 동안 영업한다. 주중에 노점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학축제나 지역축제 등 행사장에서 영업했다.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영업이 잘 되는 날은 하루에 300만~400만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밤도깨비 야시장에서 만난 젊은 푸드트럭 창업자들. 엘 비하에의 강준원 대표, 라오푸드트럭의 이휘원 팀장, 청년반점의 정주람 대표(왼쪽부터). 
ⓒ시사IN 윤무영
밤도깨비 야시장에서 만난 젊은 푸드트럭 창업자들. 엘 비하에의 강준원 대표, 라오푸드트럭의 이휘원 팀장, 청년반점의 정주람 대표(왼쪽부터).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이들의 출신은 다양했다.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대기업 사원’ 출신도 있었다. ‘라오푸드트럭’의 이휘원 팀장은 삼성중공업에 근무하다 학사장교를 마친 친구와 함께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미스꼬레아’의 임진영·백래혁 부부는 각각 다국적 영화사와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아내가 먼저 푸드트럭을 시작한 뒤 남편도 회사를 그만두고 합세했다. 요리사 출신도 있었다. ‘제이 프레시’의 티머시 포레스트와 전민영 부부는 미국 레스토랑에서 요리사와 인턴 요리사로 함께 일하다가 결혼한 뒤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푸드트럭 창업자들에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푸드트럭을 단순한 ‘노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여행 중에 자신이 감동했던 그 나라의 문화를 푸드트럭을 통해 구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라오푸드트럭의 이휘원 팀장은 라오스 여행 중에 접한 ‘바나나 팬케이크’를 메뉴로 개발했다. 이 팀장은 “내가 감동받은 음식은 남도 감동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라오스식 팬케이크를 선택했다. 시작은 팬케이크지만 라오스식 샌드위치나 라오스 전통음식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유럽에서 인기 있는 라오스 커피도 선보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엘 비하에(스페인어로 ‘여행’이라는 의미)’의 강준원 대표는 1년 동안 중남미 여행을 한 후 여행에서 얻은 감동을 이어가기 위해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메뉴는 남미식 만두인 ‘엠파나다’. 그는 “칠레나 아르헨티나에서 흔한 길거리 음식으로,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맥주 안주로도 좋은 엠파나다를 첫 메뉴로 선택했다. 남미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메뉴를 보고 남미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푸드트럭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조리 시간이 짧고 조리 방법이 간단해야 한다. 너무 비싼 요리도 안 된다. 가격은 5000원 안팎이다(대부분 1만원 이하다). 마진율은 대부분 60~65%로 잡는다. 만든 음식은 손에 들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맛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메뉴 개발이 쉽지 않다.

이런 제한된 조건하에서도 다양한 도전을 한다. ‘청년반점’은 특이하게 중식 메뉴를 택했다.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기 싫고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주람 대표는 “청년반점의 메인 메뉴는 동파육이다. 비싸고 판매하는 곳도 많지 않아서 접하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그래서 도전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미스꼬레아’의 임진영·백래혁 부부는 역발상 전략을 구사했다. 익숙한 음식을 메뉴로 개발했다. 이들이 선택한 메뉴는 바로 김치볶음밥이었다. 미스꼬레아의 김치볶음밥은 밥알이 꼬들꼬들하다. 비결은 가마솥이다. 백래혁 대표는 “노량진 학원가의 컵밥집 중에서 가마솥으로 만든 김치볶음밥이 가장 맛있어 이를 응용했다. 이렇게 가마솥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로 세계 진출을 위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푸드트럭에 이런 메뉴도 있네’ 나초킹의 노명래 대표, 제이 프레시의 전민영·티머시 포레스트 부부, 미스꼬레아의 임진영·백래혁 부부(왼쪽부터). 
ⓒ시사IN 윤무영
‘푸드트럭에 이런 메뉴도 있네’ 나초킹의 노명래 대표, 제이 프레시의 전민영·티머시 포레스트 부부, 미스꼬레아의 임진영·백래혁 부부(왼쪽부터).

메뉴 선정만큼 푸드트럭에 맞는 최적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밤도깨비 야시장의 푸드트럭 창업자들은 대부분 한 가지 요리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보면서 최적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미스꼬레아’ 백래혁 대표는 “어떻게 하면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까 연구와 실험을 거듭했다. 들어가는 재료들은 비슷하지만 그 황금비율을 찾아낸 것이 맛 차별의 핵심이었다. 김치가 어느 정도로 익는지도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나초킹’의 노명래 대표는 나초칩을 만드는 방식에서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그는 “메인 메뉴 개발을 위해 6개월 넘게 주변 사람들이 지겨워할 정도로 나초칩을 먹여가면서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수백 번 수정을 거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나초칩 메뉴를 개발했다”라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매장 창업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효율적인 조리를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중요하다. ‘제이 프레시’의 전민영 대표는 “집이 13평의 작은 집인데 장사를 위해 구매한 냉장고만 4대나 된다.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조리하기 위해 고기는 미리 숙성시켜놓고 특유의 잡냄새도 제거한다. 시간이 걸려도 나만의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음식에 들어가는 소스나 피클은 물론 마요네즈도 직접 만들어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와도 푸드트럭 영업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일단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추울 때와 비가 올 때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제이 프레시’의 티머시 포레스트 대표는 “푸드트럭은 설거지가 가장 힘들다. 합법적인 푸드트럭은 1t 이하로 제한되어 있어서 개수시설을 만드는 것이 힘들고, 공간이 너무 작은 탓에 보일러를 놓을 수 없어서 겨울에 찬물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지금은 밤도깨비 야시장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이들이 이곳에서 영업할 수 있는 시간은 올해뿐이다. 푸드트럭 대표들은 ‘밤도깨비 야시장 푸드트럭협의회’를 조직했다. 일종의 푸드트럭 ‘상단’을 조직해 스스로 자립할 방법을 찾고 있다. 협의회 회장을 맡은 ‘미스꼬레아’의 백래혁 대표는 “뉴욕 브루클린의 스모가스버그 마켓처럼 푸드트럭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메뉴를 가지고 나와 대중에게 마음껏 소개하고 냉정하게 평가받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푸드트럭 창업이 오프라인 매장 창업으로까지 연결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청년 창업 플랫폼으로서 의미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