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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즈 대표 "이제 빅뱅이란 보석을 뀁니다"

youngsports 2016. 7. 8. 09:12

[문완식의 쟁이를 만나다] 노희영 YG푸즈 대표 "이제 빅뱅이란 보석을 뀁니다"

노희영 YG푸즈 대표 인터뷰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문완식 기자 


노희영(53)이 CJ에 사표를 낸 다음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 이제 그만해. 할 만큼 했어 거기. 나랑 해."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회장이었다.  

그렇게 노희영은 양 회장과 손을 잡았고. 'YG우먼'이 됐다. 'YG푸즈(YG Foods) 대표' 노희영의 시작이었다.  

"따뜻하고 고마웠어요. 제가 CJ에서 많은 일을 했는데 나와서는 무슨 일이든 못했겠어요. 그런데 사표 냈다는 말에 다음 날 전화해서 '같이 일하자'고 하는 말이 너무 고마웠죠."

노희영의 '전력'은 화려하다. 오리온에 몸담으면서 '마켓오' 브랜드를 성공시켰고, CJ그룹에서는 브랜드전략 고문으로 일하며 '비비고', '계절밥상' 등을 론칭, 성공시켰다. CJ E&M 채널 개편에도 관여, CJ E&M이 공중파와 어깨를 겨루는 데 일조했다. '성공의 아이콘'이 된 그녀는 왜 '작은' YG에 합류하게 됐을까.  

"양 회장을 믿었습니다. 따뜻하고, 결단력이 있는 분이에요. 함께 일하자는 그 말 한마디 듣고 따라 나섰죠. 서로 연봉이 얼마니, 이런 소리도 안했어요. 그냥 갔어요 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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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양현석 "함께 일하자" 한마디에 YG로..또 한 번 無에서 有 창조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양현석 회장이 노희영에게 내 준 사무실 자리에는 노래방이 있었다. YG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가 있는 홍대 인근의 한 건물이었는데, 노희영이 갔을 때 노래방은 성업 중이었다.  

"거길 쓰라고 했는데, 연말을 앞두고 예약이 꽉 찬 상태였어요. 어쩌겠어요? 연말까지 여행을 다녔죠(웃음). 예약 다 끝난 다음에 그제야 사무실을 만들었어요. 물론 제 돈으로 했죠."

그리고 몇 달 있다 YG푸즈의 외식 브랜드 '삼거리 푸줏간'이 오픈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노희영의 장기가 발휘된 것이다.  

"우리 하자! 오케이! 하나 차려보자! 이래서 나온 게 '삼거리 푸줏간'이에요. 이걸 차리면서 법인도 설립했습니다." 

'삼거리 푸줏간'에서 시작한 YG푸즈, YG엔터테인먼트의 외식업 진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게 꼭 1년 전인 2015년 7월이다.  

"1년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평수가 큰 매장을 3개를 열었고, 브랜드도 '삼거리 푸줏간'에 이어 '쓰리버즈'(3birds), 'K-pub'까지 3개를 만들었죠. 미국과 태국에도 글로벌 매장을 냈고요. CJ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인프라가 있는 상황에서 제가 손을 대는 거였고, 여기는 제가 A에서 Z까지, 운영까지 다해야 해요."

그 1년 동안 '공격'도 많이 받았다. 노희영은 그러나 개의치 않아 했다. 

"난 콤플렉스란 단어를 좋아해요. 공격받는 것도 신경 안써요. 그게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같아요. CJ에서 나왔을 때 제일 스트레스 받았던 게 '노희영이 CJ 돈 가지고 한 거지 본인 실력으로 한 게 아니다'란 얘기였어요. 근데 할 말이 많은 게 그러면 왜 내가 없을 때는 못했을까요. '비비고 만두'에 대해서도 얘기가 많은 데 그러면 왜 내가 CJ 올 때까지 '비비고 만두'를 못 만들었을까요. '백설 만두'로 30년을 보내다 '비비고 만두' 나오고 2000억원을 벌었습니다. 물론 내가 다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같이 만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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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내가 돈으로 다했다고? 보석을 보는 눈 있었을 뿐" 

노희영은 '돈'이 성공으로 이어진 게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돈' 보다 '눈'이 중요하다고 했다.

"CJ에 가니까 보석이 막 굴러 다녔어요. 난 보석을 꿰서 목걸이를 만들고 팔찌를 만들었을 뿐이에요. YG도 똑같아요. 와보니 보석이 굴러다녔어요. 그런데 또 다른 보석이었죠."

노희영이 YG에서 본 '보석'은 빅뱅이었다. "YG에는 빅뱅이라는 보석이 있었어요. 그런데 콘서트 하고 광고 모델 하는 것 외에는 그 보석을 써먹을 때가 없는 거예요. 어떻게 그 보석을 꿸 까 고민을 했습니다." 

노희영은 빅뱅을 이용한 무언가에 주목하기보다는 빅뱅을 위한 무언가에 주목했다. 

"엔터가 외식업을 하면 소속 연예인을 이용해 콘텐츠로 사용할 수 있죠. 그렇게 하고 있고요. 우리는 그들을 먹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우리에겐 빅뱅 메뉴 이런 건 없습니다. 대신 빅뱅이 와서 놀게 하는 곳을 만들었어요." 

노희영은 "오너의 철학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노희영은 양현석을 재차 칭찬했다. 

"양 회장이 좋은 점이, 거품을 싫어해요.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압구정동에 좋은 땅이 나왔는데 우리 그거 사면 안될까 이러면, 바로 아니라고 해요. 그건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면서요.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철학이 확실해요." 

YG푸즈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도 양현석은 그 '철학'을 발휘 중이다. 단 그가 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고 했다. "어설픈 멋 부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름이 '푸줏간'이니 '험블'해야 한다고 해요. 제가 '빕스' 같은 분위기를 낼까봐 그런가봐요(웃음). 그 외에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에요."

노희영은 브랜드 전략가답게 YG의 외식 브랜드에도 YG의 '혼'을 담았다. '쓰리버즈'(3birds)란 브랜드에 대해 물었더니 YG가 시작한 '삼거리'를 얘기했다. 

"3은 YG가 시작한 삼거리에서 따왔어요. 그리고 3은 가장 안정된 숫자죠. 완전체고, 그러면서도 새로움이 있어요. 세 마리의 새를 보면 노래하는 새도 있어요. 새가 유일하게 노래하는 동물이고요. 여러 의미를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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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브랜드 만들려면 시나리오 쓰세요." 

노희영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도 공개했다. 시나리오를 쓰라고 했다. 

"요즘은 잡지도 그렇고, 음식점까지 브랜드 아닌 게 없어요. 브랜드를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전 브랜드를 만들 때 시나리오를 써요. 모든 브랜드는 그만의 시나리오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음식점에 오는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오고 그 사람이 누구와 오고,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떻고 이런 걸 다 시나리오로 써봐야 해요. 그걸 못하는 사람은 식당을 만들며 안돼요. 그게 안돼 있는 사람들이 식당을 하면 인테리어는 누가 잘하니 쓰고, 뭐든 또 누가 잘하니 쓰고, 이런 식으로 해요." 

노희영은 "이런 공부를 사실은 CJ그룹 이미경 부회장하고 이재현 회장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입체적인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월급쟁이들은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순간, 배반자가 될 확률이 높죠. 계단을 보고 앞만 보고, 과장, 부장 이렇게만 올라갈 생각만 하면 되는데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위도 보고 하라니까. 앞으로 오는 세상은 입체적인 사고를 연습 안하면 끝이에요. 공부만 잘하는 건 소용 없죠. 내가 이 공부를 하면 월급을 얼마를 받고 어떤 직장에 가서 어떤 식으로 성공할 수 있고...이런 입체적인 사고를 해줘야 해요. 저는 이런 걸 전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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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美유학, 의예과 다니다 디자인스쿨로.."난 여한 없는 사람"

노희영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남가주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예과를 다니다 그만두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디자인 학사를 받았다. 진로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다.  

"어려워서 그만 뒀어요. 고교 때 미국에 갔는데 이과 공부 밖에 안되는 거예요. 영어가 안되니까. 이과 공부만 하다보니 이과 학생이 된 거죠. 한국에서 미국 가면 수학은 거의 최상위권이에요. 수학을 파다 보니 물리, 화학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과 학생이 된 거죠. 그 당시 이과 학생으로서 선택지는 의예과 아니면 컴퓨터 공학이었어요. 의예과 마치고 본과 가려면 인턴십을 해야 하는데 그때 소아과에서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직업으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패션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의사 된다고 집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아무거나 할 수 없겠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집 식구들이 옷에 미친 사람들이었거든요(웃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동생, 이모, 삼촌 모두 가요. 어디 밥 먹으러 가려면 3시간씩 걸렸어요. 옷 색깔 맞추느라고 안 나오는 거예요. 내가 이 사람들을 통해서 옷 장사를 하면 잘 되겠다 생각했죠. 어렸죠(웃음)." 

노희영은 "전 여한이 없는 사람"이라며 "세상에 태어나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봤다"고 했다. 

"이제는 밑에 후배들을 진짜 잘 가르치고 싶어요. 전 페이스북 메시지 오면 웬만하면 다 답해줘요. 얼마나 다급하면 그랬겠어요.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요즘 세상은 공부한다고 성공할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지금 세대들이 불쌍한 게 부모보다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배운 걸로 애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뭔가 다른 세상을 열어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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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음식 사업은 기술 사업 아닌 교육 사업" 

노희영은 '교육'에 대해 계속 강조했다.  

"저는 세계화를 꼭 이루고 싶어요. 해외에 가서 한류 열풍을 보면 눈물이 정말 뚝뚝 떨어져요.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이 들면서요. 음식으로도 제대로 한류 열풍을 만들어 내고 싶어요. 미국의 하드록 카페가 그렇듯이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음식을 알리고 성공하고 싶어요. 음식 사업은 기술 사업이 절대 아니에요. 교육 사업이죠. 내 음식을 교육 시켜서 얼마나 똑같이 할 수 있게 만드느냐고 중요한 거예요.  

런던에 '비비고'를 냈을 때였는데, 국내에서는 그래도 CJ가 대기업이니까 종업원들이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런던에서는 CJ를 알게 뭐에요. 구멍가게나 '비비고'나 똑같았죠. 그래서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줬어요. CJ가 어떤 기업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요. 너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그냥 아르바이트와 다르다. 우리는 이런 회사다라고 알려주는 거죠. 그런 게 교육이에요. 중국에서도 '비비고'를 오픈 했을 때 중국 친구들은 대거 한국 CJ로 데려와서 보여줬어요. 그 친구들 프라이드가 달라지더라고요. 그게 교육이죠. 식음료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교육입니다." 

노희영식 교육은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힘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는 지금도 화장실에 가면 '지적 사항'을 체크한 뒤 직원들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 새벽 3시에 SNS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욕도 많이 먹어요. 그런데 자다가 아깝잖아요. 아이디어를 놓칠 수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이 안날 수도 있고요.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제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죠. 오너는 당연히 고맙고, 직원들도 네가 아이디어를 주는 거니까요. 저도 졸린데 참고 보내는 거예요. 자꾸 말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다른 사고를 하고 살아야 해요. 저는 다른 방향, 다른 입체적인 사고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알려져야 하고요." 

노희영은 호텔 브랜드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호텔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리빙도 있고, 먹는 것도 있고, 문화도 있고, 음악도 있고 다 있습니다.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에요. 호텔도 많이 둘러봐요." 

노희영은 세계 어떤 도시를 가도 그 도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 묵는다. 배우기 위해서다. 같은 호텔에 계속 묵는 일은 없다. 일주일을 출장을 가면 매일 다른 호텔에서 묵는다. 

"새로운 호텔을 가면 시간이 길어져요. 익숙하지 않아서죠. 익숙하면 시간이 빨리갑니다. 전 늘 새로운 느낌을 좋아해요. 직원들도 다르지 않죠. 출장을 가면 직원들과 방을 같이 씁니다. 비싼 호텔에서 그들도 함께 재워야 하니까요. 스위트룸에 묵고 싶으면 셋이 자기도 해요. 저만 아니라 그 친구들도 함께 묵으면서 배우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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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YG푸드 대표 /사진=이기범 기자


◆"훌륭한 CEO가 되는 게 목표" 

노희영은 앞서 CJ에서 나올 때 같이 일하던 직원들과 함께 옮겼다. 그는 "'메인'들이 같이 나왔다"고 했다.  

"후배들이 같이 나온 건 제가 비전을 제시해서 일 수도 있겠지만 저를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겠죠. 저도 그렇고요. 서로 이용가치가 있다고 본 거예요. 요즘 세상에 의리만 갖고는 안되니까요." 

그는 그러면서도 "리더로서 나와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잘 이끌고 싶다"고 했다. 

"CJ에서 제 역할은 '쿠데타 용병'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성과를 내도 곱게 보지 않았어요. 전 다른 데서 날아온 사람이잖아요. '저 여자가 무슨 재주로?' 이렇게 생각했겠죠. 실력이 아니라 술수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그건 말이 안돼요. 우리나라 재벌들은 능력 없으면 자식도 버립니다. 그런데 하물며 저를? 전 쿠데타가 필요할 때 메기로 쓰인 거죠. 속상한 건 메기로 회사를 바꾼 다음에 리더가 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거예요. 이제 CJ를 나와서 비로소 리더가 됐어요. 제가 지금 그때처럼 일하면 회사 풍비박산납니다(웃음). 

CJ에 있을 때 '미친 용병'이고 혁명 주도 세력이고 싶었다면 YG에서는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어요. 차차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하는 게 목표에요. 예전에는 직원들에게 상소리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침착하게 타일러요. 훌륭한 CEO가 되는 게 목표에요."

그는 리더로서, 끊임없이 직원들과 대화하고 설득하고 가르쳐줘야 한다고 했다. 

"저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죠. 내 경험이 아까워요. 내 시간이 아깝죠. 그래서 남에게 다 알려주고 싶어요. 제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직원들이에요. 직원이 없으면 저 혼자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전 제 계획이 아니라 직원들 계획을 짜요. 저 혼자 일을 하면 혼자 일을 하는 거지만 제가 직원 10명에게 미션을 주면 일단 10배로 시작하는 거잖아요. 자신의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지구를 앉아서 뛰어야 해요. 제일 멍청한 리더가 지구를 같이 뛰는 리더에요. 리더는 스스로 몸을 아끼면서 남을 부려 먹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마녀라고 해요(웃음)."

노희영은 "일을 잘 가르쳐 주는 리더, 일을 잘 시키는 리더가 되려면 시스템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당을 차린 요리사는, 스스로 프라이팬을 돌리기 시작하면 망합니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식당 운영을 잘하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이 안 하고 남을 시키니까요. 일을 분배하고 균형을 맞춰야 해요. 내가 식당 주인으로 살 건가, 아니면 요리사로 살 건가 택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 할 수 있는 아침이 난 행복" 

여의도 IFC몰 'YG 리퍼블리크'(YG REPUBLIQUE)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2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노희영은 CJ에서 나와 YG푸즈 대표로서 최근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여러 일을 하고 있다. 1988년에 설립한 히노컨설팅펌의 대표이다. 또 아워홈의 의뢰를 받아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인천국제공항에 푸드코트 4곳을 내는 데 일조했다.  

또 PYN&Parters CMO(Chief Marketing Officer)로서 여의도 전경련 회관 50층 '더 스카이팜' 콘셉트 컨설팅을 하기도 했다. 그는 스카이팜에 대해 "이건 기적이었다. 정말 울컥했다. 여긴 돈 벌려고 만든 곳은 아닌데, 소비자들이 홍보를 해줘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제는 무엇을 광고하는 시대가 아니라 진정한 소비자끼리 홍보 해주는 시대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노희영은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행복하다"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아직도 매일 새로운 걸 하고 싶다"고 했다.  

"YG리퍼블리크 IFC점 자리가 3년간 공실이었어요. 그런데 첫 달부터 BEP(break-even point, 손익분기점)가 나왔어요. 명동점은 조금 힘들다가 요새 괜찮아요. 이번 달 조금 넘으면 YG푸즈 자체가 BEP를 넘길 것 같아요. 저 정말 자존심 때문에 미친 듯이 했어요. YG에 푸드를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창업을 해서 1년 만에 이렇게 하기는 힘들죠. 사람을 모으는 것도 힘들어요. CJ에서 같이 나온 친구들과 이렇게 만들었어요. 감사하고 고마워요. 노래방을 밀고 이걸 만들어 성공 시켰으니, 고맙고 행복하죠. 이 고맙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제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요. 젊은 친구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그들의 삶이 보다 행복해질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