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과 삶](Ⅳ-3) 여자가 꿈꾸는 ‘나만의 집’
- 정상철 | 대안연구공동체 건축학교 교장
여성에게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 이미 오래됐다. 결혼 대신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살겠다는 여성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여성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돈’과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한 이가 버지니아 울프였던가. 현대의 혼자 사는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만이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집을 꿈꾼다.
이런 바람은 시민 건축 공부 모임인 ‘내가 꿈꾸는 집’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이들의 절반가량은 혼자 사는 집 짓기를 소망한다. 이들이 꿈꾸는 집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 아니다. 안전과 쾌적함은 기본이고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 공간, 창작 공간이 필요하다. 여자 혼자 사는 집 역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자기만의 답인 셈이다. 물론 그 꿈을 이룬 여성은 많지 않다. 안전과 편리라는 면에서 아파트를 능가하는 주거 형태가 쉽지 않은데다 경제적인 문제도 간단치 않다. 실제로 여자 혼자 사는 집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윤금숙씨(55)의 집을 찾은 건 한동안 수소문한 뒤였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예술가의 집은 전곡과 연천을 잇는 대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자기만의 집, 자기만의 꿈
작가의 집은 멀리서도 다른 집과 뚜렷하게 구분됐다. 남북 방향으로 ‘ㅓ’자 형태의 긴 사각형 2층집. 1층에는 회색빛 시멘트 미장, 2층에는 고동색 나무를 붙여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 한눈에도 예술가의 집다웠다. 윤씨가 직접 디자인한 듯한 꽃문양의 철 대문 너머로 가지런하게 정돈된 마당이 보였다. 마당에는 생명과 시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원추리, 구절초, 작약의 싹들이 다른 봄풀들과 섞여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대지가 마을에선 좀 높은 편이어서 주변이 안정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뒷마당에는 텃밭이 있었고 멀리 나지막한 야산이 둘러싸 정겨운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듬직한 흰색 진돗개와 함께 취재진을 반기는 작가의 모습은 편안했다. 안내를 받아 거실로 들어가니 넉넉한 창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전체가 환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과 작은 식탁이 있는 식당이 있었고 거실 너머로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침실만 구획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하나로 탁 트였다. 2층은 밖으로 나가서 별도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현관 위 1층 옥상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1층 거실 지붕을 꽉 차게 활용한 크기의 작업실이 있었다. 마침 4월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시를 앞둔 작품을 먼저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2층은 중간의 화장실을 경계로 조각 작업실과 회화 작업실로 나누어져 있었다. 회화 작업실 한쪽 벽면을 모두 책장으로 꾸며 또 다른 느낌의 공간을 연출했다. 조각 작업실은 햇빛에 예민하지 않은 작업의 특성으로 벽면 모두를 통창으로 꾸몄다. 장르에 따라 다르게 꾸민 두 작업실의 대비가 재미있었다.
윤씨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취재진이 찾은 날도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능숙하게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뒤 현재는 동양화를 그린다. 조각도 병행하면서 간혹 흙을 빚어 도자기도 만든다. 6년 전 그가 이곳에 집을 지은 건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음식을 준비하다 문득, 음식이든 작업이든 이렇게 막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음식을 하면서도 진정한 기쁨을 몰랐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생각 없이 먹었던 것이지요. 농사를 직접 지으며 음식이든 작업이든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싶었다. 직접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먹으며 그 과정을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룬 지금, 그가 작업을 하는 공간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작업실뿐 아니다. 어찌 보면 텃밭도 작업을 위한 중요한 공간이다. 싹이 돋아나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린다. 작가는 농사에 취했다. 농사가 너무 좋아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스스로 농사지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다.
■ 그림 그리듯 지은 집
식탁에는 봄이 가득했다. 넉넉한 양의 샐러드에 검붉은 식초가 뿌려져 있었다.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100년이 넘은 곶감식초라고 했다. 100년이라. 그는 음식마다 자상한 설명을 덧붙였다. 윤씨의 그림도 음식을 닮았다. 볼 땐 몰랐는데 설명을 들으니 선명하게 와 닿았다. 저 담담한 수묵화에 100번이 넘는 칠 작업이 담겨 있다고 했다. 겉보기엔 심심하나 그 이면에 담긴 치열함.
집도 그랬다. 그는 알고 지내는 건축가의 자문을 받으며 설계를 직접 했다. 집의 면적은 1층이 33평, 2층은 뒤에 증축했다. 혼자 사는 공간을 전제로 방 2개, 부엌 겸 식당, 거실, 작업실, 화장실 2개, 창고로 내부를 구획했다. 1층은 콘크리트 구조로 하고 증축한 2층은 금속 구조로 했다. 골조를 완성하고 나니 성격상 대충 지을 수가 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노출 콘크리트 외벽 느낌을 시멘트 미장으로 재현했다. 철제 난간도 장식도 직접 만들었다. 살림을 많이 하진 않으므로 부엌은 작게 만들었다. 욕실도 크면 춥다고 해서 넓지 않게 했다. 하지만 작은 욕실의 답답함은 지금도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집을 지으면서 아는 이에게 공사를 맡겼으나 작가의 고집 때문에 자주 싸웠다. 창문의 크기, 거실의 크기 등 겨울 난방과 관련된 이견이 많았다. 그래도 집을 짓는 이들에게 흔한 고통 없이, 잘 즐기며 지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기름 보일러를 쓰는데 한겨울 연료비는 월 50만원가량 든다고 했다. 바닥에 흙벽돌을 깔아 축열이 되는 덕에 한번 더워지면 온도가 오래 유지된다. 타일, 창문, 조명 등 대부분의 자재는 직접 골랐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다.
공사비는 평당 35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내 맘에 드는 집을 짓고 싶어 그림 그리듯 직접 집을 지었는데 그 덕분에 공사비가 절감된 것이다. 내부 장식과 가구 마련, 조경은 살면서 천천히 진행했다. 농사를 짓긴 해도 작가는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이에게 중요한 건 막힘없는 흐름이다. 1층은 부엌과 식당, 거실이 연결되어 있어 편하다. 반면 2층 계단을 실내에서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는 다음에 집을 지으면 반드시 전문 건축가에게 의뢰하겠다고 했다. 건축가의 역할은 전체를 조율하는 것이다. 처음과 끝을 예상하여 불필요한 과정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없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은 잘 짜여진 설계도 같았다. 샐러드로 시작한 전채와 개성 있는 본채는 어색함이 없었다. 후식으로 듬뿍 떠준 요구르트는 전체를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장소가 중요합니다. 살림하면서 아파트에서 작업한 그림과 시골집에 펼쳐놓고 넓은 공간에서 작업한 그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도시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요.”
작가의 집은 자연, 공간, 사람, 관계, 직업 등이 모두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점을 그는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결핍이 있을 것이다. 로망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백에 존재하는 것이다.
흔히 집은 홈과 하우스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홈이 안식처라면 하우스는 더러 투자재로도 치환되는 건물이다. 우리 사회는 홈 대신 하우스에만 집중하며 돈을 쓴다. 껍질을 원하면서 알맹이를 잃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먼 미래에만 가치를 둔 탓이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자녀 양육이나 남편과 관련된 가정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가사 공간을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며 삶을 즐기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나에게 충실한 공간,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느낄 수 있는 공간.
윤씨는 그림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내려놓았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는 작은 것에서 깊은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가깝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이 있다. 자주 이 집을 찾아 자고 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머물다 홀로 남게 되면 무섭지 않을까.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전이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난해 12월 단독거주 경험이 있는 20~40대 여성 3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2.6%가 범죄 피해 경험이 있었다. 피해 장소로 가장 많은 곳이 건물 주변, 그 다음이 건물 내부로 드러나 건물 안팎 모두 안전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고 집 안팎의 안전 조치를 완벽하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씨 또한 “보안 설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 와서 마을 할머니들에게 농사를 배웠다. 할머니들이 자주 드나들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돌봐주는 사이가 됐다. 전원생활 6년 만에 시골 사람이 되다시피 한 그는 이제 밤에 혼자 산책을 해도 무섭지 않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혼자 사는 여자의 가장 든든한 지킴이가 된 것이다. 윤씨의 집은 나만의 집이었으나 그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예술가의 집은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아닌 셈이었다.
이런 바람은 시민 건축 공부 모임인 ‘내가 꿈꾸는 집’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이들의 절반가량은 혼자 사는 집 짓기를 소망한다. 이들이 꿈꾸는 집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 아니다. 안전과 쾌적함은 기본이고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문화 공간, 창작 공간이 필요하다. 여자 혼자 사는 집 역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자기만의 답인 셈이다. 물론 그 꿈을 이룬 여성은 많지 않다. 안전과 편리라는 면에서 아파트를 능가하는 주거 형태가 쉽지 않은데다 경제적인 문제도 간단치 않다. 실제로 여자 혼자 사는 집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윤금숙씨(55)의 집을 찾은 건 한동안 수소문한 뒤였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예술가의 집은 전곡과 연천을 잇는 대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조각가이자 화가인 윤금숙씨가 건축가의 자문을 받아 ‘ㅓ’자 형태의 집을 직접 설계했다. 부엌 같은 공간을 최소화하고, 조각·회화 작업실을 넓게 만들었다. 윤씨는 마을 할머니들에게 농사를 배워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녀의 집은 자신에게 충실한 공간이면서도 자연, 사람, 관계, 직업이 모두 채워져 있는 공간이다. | 김재경 건축사진가
■ 자기만의 집, 자기만의 꿈
작가의 집은 멀리서도 다른 집과 뚜렷하게 구분됐다. 남북 방향으로 ‘ㅓ’자 형태의 긴 사각형 2층집. 1층에는 회색빛 시멘트 미장, 2층에는 고동색 나무를 붙여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 한눈에도 예술가의 집다웠다. 윤씨가 직접 디자인한 듯한 꽃문양의 철 대문 너머로 가지런하게 정돈된 마당이 보였다. 마당에는 생명과 시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원추리, 구절초, 작약의 싹들이 다른 봄풀들과 섞여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대지가 마을에선 좀 높은 편이어서 주변이 안정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뒷마당에는 텃밭이 있었고 멀리 나지막한 야산이 둘러싸 정겨운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듬직한 흰색 진돗개와 함께 취재진을 반기는 작가의 모습은 편안했다. 안내를 받아 거실로 들어가니 넉넉한 창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전체가 환했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과 작은 식탁이 있는 식당이 있었고 거실 너머로 침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침실만 구획되어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하나로 탁 트였다. 2층은 밖으로 나가서 별도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현관 위 1층 옥상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1층 거실 지붕을 꽉 차게 활용한 크기의 작업실이 있었다. 마침 4월 전시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시를 앞둔 작품을 먼저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2층은 중간의 화장실을 경계로 조각 작업실과 회화 작업실로 나누어져 있었다. 회화 작업실 한쪽 벽면을 모두 책장으로 꾸며 또 다른 느낌의 공간을 연출했다. 조각 작업실은 햇빛에 예민하지 않은 작업의 특성으로 벽면 모두를 통창으로 꾸몄다. 장르에 따라 다르게 꾸민 두 작업실의 대비가 재미있었다.
윤씨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취재진이 찾은 날도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 능숙하게 음식을 준비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뒤 현재는 동양화를 그린다. 조각도 병행하면서 간혹 흙을 빚어 도자기도 만든다. 6년 전 그가 이곳에 집을 지은 건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음식을 준비하다 문득, 음식이든 작업이든 이렇게 막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음식을 하면서도 진정한 기쁨을 몰랐어요. 내 것이 아닌 것을 생각 없이 먹었던 것이지요. 농사를 직접 지으며 음식이든 작업이든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싶었다. 직접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먹으며 그 과정을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침내 그 바람을 이룬 지금, 그가 작업을 하는 공간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작업실뿐 아니다. 어찌 보면 텃밭도 작업을 위한 중요한 공간이다. 싹이 돋아나면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린다. 작가는 농사에 취했다. 농사가 너무 좋아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스스로 농사지은 것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했다.
■ 그림 그리듯 지은 집
식탁에는 봄이 가득했다. 넉넉한 양의 샐러드에 검붉은 식초가 뿌려져 있었다.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100년이 넘은 곶감식초라고 했다. 100년이라. 그는 음식마다 자상한 설명을 덧붙였다. 윤씨의 그림도 음식을 닮았다. 볼 땐 몰랐는데 설명을 들으니 선명하게 와 닿았다. 저 담담한 수묵화에 100번이 넘는 칠 작업이 담겨 있다고 했다. 겉보기엔 심심하나 그 이면에 담긴 치열함.
집도 그랬다. 그는 알고 지내는 건축가의 자문을 받으며 설계를 직접 했다. 집의 면적은 1층이 33평, 2층은 뒤에 증축했다. 혼자 사는 공간을 전제로 방 2개, 부엌 겸 식당, 거실, 작업실, 화장실 2개, 창고로 내부를 구획했다. 1층은 콘크리트 구조로 하고 증축한 2층은 금속 구조로 했다. 골조를 완성하고 나니 성격상 대충 지을 수가 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노출 콘크리트 외벽 느낌을 시멘트 미장으로 재현했다. 철제 난간도 장식도 직접 만들었다. 살림을 많이 하진 않으므로 부엌은 작게 만들었다. 욕실도 크면 춥다고 해서 넓지 않게 했다. 하지만 작은 욕실의 답답함은 지금도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집을 지으면서 아는 이에게 공사를 맡겼으나 작가의 고집 때문에 자주 싸웠다. 창문의 크기, 거실의 크기 등 겨울 난방과 관련된 이견이 많았다. 그래도 집을 짓는 이들에게 흔한 고통 없이, 잘 즐기며 지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기름 보일러를 쓰는데 한겨울 연료비는 월 50만원가량 든다고 했다. 바닥에 흙벽돌을 깔아 축열이 되는 덕에 한번 더워지면 온도가 오래 유지된다. 타일, 창문, 조명 등 대부분의 자재는 직접 골랐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갔다.
공사비는 평당 350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 내 맘에 드는 집을 짓고 싶어 그림 그리듯 직접 집을 지었는데 그 덕분에 공사비가 절감된 것이다. 내부 장식과 가구 마련, 조경은 살면서 천천히 진행했다. 농사를 짓긴 해도 작가는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이에게 중요한 건 막힘없는 흐름이다. 1층은 부엌과 식당, 거실이 연결되어 있어 편하다. 반면 2층 계단을 실내에서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는 다음에 집을 지으면 반드시 전문 건축가에게 의뢰하겠다고 했다. 건축가의 역할은 전체를 조율하는 것이다. 처음과 끝을 예상하여 불필요한 과정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없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은 잘 짜여진 설계도 같았다. 샐러드로 시작한 전채와 개성 있는 본채는 어색함이 없었다. 후식으로 듬뿍 떠준 요구르트는 전체를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장소가 중요합니다. 살림하면서 아파트에서 작업한 그림과 시골집에 펼쳐놓고 넓은 공간에서 작업한 그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도시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요.”
작가의 집은 자연, 공간, 사람, 관계, 직업 등이 모두 채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점을 그는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결핍이 있을 것이다. 로망은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백에 존재하는 것이다.
흔히 집은 홈과 하우스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홈이 안식처라면 하우스는 더러 투자재로도 치환되는 건물이다. 우리 사회는 홈 대신 하우스에만 집중하며 돈을 쓴다. 껍질을 원하면서 알맹이를 잃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먼 미래에만 가치를 둔 탓이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자녀 양육이나 남편과 관련된 가정사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가사 공간을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며 삶을 즐기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나에게 충실한 공간,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느낄 수 있는 공간.
윤씨는 그림으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내려놓았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는 작은 것에서 깊은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가깝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이 있다. 자주 이 집을 찾아 자고 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머물다 홀로 남게 되면 무섭지 않을까.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안전이다. 이인화 도원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난해 12월 단독거주 경험이 있는 20~40대 여성 3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2.6%가 범죄 피해 경험이 있었다. 피해 장소로 가장 많은 곳이 건물 주변, 그 다음이 건물 내부로 드러나 건물 안팎 모두 안전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고 집 안팎의 안전 조치를 완벽하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씨 또한 “보안 설비가 되어 있긴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 와서 마을 할머니들에게 농사를 배웠다. 할머니들이 자주 드나들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 돌봐주는 사이가 됐다. 전원생활 6년 만에 시골 사람이 되다시피 한 그는 이제 밤에 혼자 산책을 해도 무섭지 않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혼자 사는 여자의 가장 든든한 지킴이가 된 것이다. 윤씨의 집은 나만의 집이었으나 그는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예술가의 집은 여자 혼자 사는 집은 아닌 셈이었다.
▲ 설계자 그 이상 ‘건축가’
화가이자 조각가인 윤금숙씨는 자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집을 지었다. 실내외 곳곳에 예술가의 향취가 배어 있다. 누구나 스스로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지을 수 있다. 건축주의 바람은 누구보다 건축주 자신이 잘 안다. 전문가가 약간만 도와주면 내가 꿈꾸는 집의 도면을 그릴 수 있다. 시민 건축 공부 모임인 ‘내가 꿈꾸는 집’ 참여자들도 3개월 정도면 자신이 꿈꾸는 집의 도면을 그린다. 다소 거칠긴 해도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까지 모두 그린다. 집의 모형도 만든다. 정교하진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런 정도면 집을 짓기 위한 실시설계를 건축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의 자리는 편견 속에 가려져 있다. 건축가는 설계사가 아니다. 건축가는 설계뿐 아니라 계획에서부터 공사, 감리, 유지 관리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다. 좋은 집은 건축가가 건축의 전 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건축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건축주의 의도를 반영하려 힘을 다한다. 설계에서부터 적정한 공사비를 찾아내고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끊임없이 모색한다. 앞뒤 맥락에 맞게 자재나 공법을 택해 불필요한 비용도 줄인다. 시공사와의 조율도 도맡는다. 집을 지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갈등을 조율해 건축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축가와 함께하면 설계비만 더 든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건축가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경제적인 이유보다 프로젝트에서 느끼는 흥미를 앞세울 수도 있다. 건축가는 문고리 하나를 선택할 때도 전체를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집이 온전히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한다. 이에 반해 건축주는 완성된 집의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유추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는 전문성이 부족한 건축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며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다.
집은 짓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윤금숙씨는 자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집을 지었다. 실내외 곳곳에 예술가의 향취가 배어 있다. 누구나 스스로 이런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지을 수 있다. 건축주의 바람은 누구보다 건축주 자신이 잘 안다. 전문가가 약간만 도와주면 내가 꿈꾸는 집의 도면을 그릴 수 있다. 시민 건축 공부 모임인 ‘내가 꿈꾸는 집’ 참여자들도 3개월 정도면 자신이 꿈꾸는 집의 도면을 그린다. 다소 거칠긴 해도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까지 모두 그린다. 집의 모형도 만든다. 정교하진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런 정도면 집을 짓기 위한 실시설계를 건축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의 자리는 편견 속에 가려져 있다. 건축가는 설계사가 아니다. 건축가는 설계뿐 아니라 계획에서부터 공사, 감리, 유지 관리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다. 좋은 집은 건축가가 건축의 전 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건축가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건축주의 의도를 반영하려 힘을 다한다. 설계에서부터 적정한 공사비를 찾아내고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끊임없이 모색한다. 앞뒤 맥락에 맞게 자재나 공법을 택해 불필요한 비용도 줄인다. 시공사와의 조율도 도맡는다. 집을 지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갈등을 조율해 건축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축가와 함께하면 설계비만 더 든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건축가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경제적인 이유보다 프로젝트에서 느끼는 흥미를 앞세울 수도 있다. 건축가는 문고리 하나를 선택할 때도 전체를 생각한다. 그런 고민을 집이 온전히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한다. 이에 반해 건축주는 완성된 집의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유추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는 전문성이 부족한 건축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며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다.
집은 짓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느 면에서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집의 생명이 끝나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남긴다. 짓기와 살기와 마무리, 건축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생각한다.
건축가는 이 과정에서 건축주와 많은 것들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건축주가 건축에 대해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건축가와 나누는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집으로 구체화된다.
건축가와 더불어 집을 짓더라도 건축주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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