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Column

일본의 '스포츠 장기 계획 프로젝트' 를 배워라!

youngsports 2024. 6. 24. 20:01

2024년 VNL 은메달을 동시에 획득한

일본 여자 대표팀과 남자 대표팀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일본 남자 대표팀
2024년 VNL 준우승 일본 남자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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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반등… 男女농구·男배구·女하키 파리로

 
 

1964 도쿄올림픽 때 일본은 금메달 16개를 땄다. 종합 순위 3위. 그러다가 서서히 몰락해서 1992 바르셀로나, 1996 애틀랜타에선 각각 금메달 3개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밑이었다. 유망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체계적인 스포츠 정책 필요성을 절감하고 종목별 국가 차원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일본축구협회가 2005년 도입한 ‘일본의 길(Japan’s Way)’ 프로젝트다. 2050년까지 월드컵 우승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목표. 유소년을 3세 단위로 잘게 쪼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적용했고 개선하고 있다. 일본은 202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아시아 국가 중 국제축구연맹(FIFA) 최고 순위를 지키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0년 9월 5년 단위 스포츠 기본 계획 ‘스포츠 입국 전략’을 만들었다. 동·하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사상 최다 입상자를 내는 게 목표. 한 선수를 유소년 시절부터 은퇴 때까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체계적이고도 세세한 육성 체계가 담겼다. 이를 위해 2015년 10월 ‘스포츠청’을 만들어 국가 스포츠 정책을 전적으로 맡겼다.

 

일본 농구는 2016년부터 남녀 대표팀에 모두 외국인 감독을 등용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8년이 지난 지금 일본 남녀 농구 대표팀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동시에 파리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다. 여자 축구, 남자 핸드볼, 여자 하키, 남자 배구 등도 파리로 향한다. 2010년대 이전까지는 주요 구기 종목에서 한국이 줄곧 일본을 앞서 왔지만 지금은 처지가 바뀌었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농구는 은메달을 딴 반면,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단 예상 규모도 파리 올림픽에서 일본은 400명인 반면 한국은 150명 선으로 차이가 크다.

 

일본은 ‘1인 1기’ ‘부카쓰(동아리)’ 등으로 스포츠 저변을 넓히면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전문 선수 길을 가지 않더라도 학생 선수로 활동하기도 쉽다.

10대에는 선수로 지내다 나중에 평범한 회사원이 되기도 한다.

뿌리 깊은 생활 체육 인프라를 통해 유망 선수를 발굴하다 보니 재능 있는 프로 선수를 놓치지 않는다.

 

한국 남자 프로축구 K리그는 1·2부리그 25팀. 일본 J리그는 1~4부 75팀이 참가한다. 남자 프로 농구 역시 한국은 10팀,

일본은 1~3부 54팀이다. 한일 인구 수 차이(5163만 대 1억2510만명·2022년 기준)를 고려해도 일본이 훨씬 앞선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하는 문화를 만들고 그중 자질이 보이는 학생을 선택해서 투자한 다음 우수 선수로 길러야 한국 스포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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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100년 단위, 목표는 세계 제패…빈 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

 

일본은 원래 수영 계영이나 육상 계주 등 릴레이에 강해요. 자신의 구간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음 주자에게 제대로 배턴을 넘겨주는 걸 중시해요. 장기 계획도 공염불이 아니에요.
 

일본 국가대표들의 경기력 향상을 총괄하는 가사하라 겐지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강화부장은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의 JOC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자신 있게 말했다. “일본은 왜 초장기 목표를 세우느냐”는 물음에 내놓은 답이었다. 본보 질문에는 ‘위원회나 협회 지도부가 바뀌면 어차피 깨질 계획을 보여주기식으로 내놓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렸다.

일본 축구의 ‘100년 구상’이나 JOC의 ‘비전 2064’ 등이 대표적이다. 가사하라 부장은 그러나 단호했다. “일본은 정말 지킬 마음으로 100년 단위 계획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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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하라 겐지 일본올림픽위원회 강화부장. 도쿄=유대근 기자

 

실제 일본 축구가 단단해진 역사를 보면 허튼 말이 아니다. 일본축구협회(JFA)는 1993년 J리그 출범 당시 ‘100년 내 세계를 제패할 전력을 만들겠다’며 100년 구상을 내놨다. 2005년에는 ‘2050년에 일본에서 월드컵을 개최하고 우승하겠다’는 ‘‘재팬스 웨이’(Japan's way∙일본의 길) 비전도 발표했다. 5년 또는 15년 단위의 세부 계획도 준비된다. 당장의 성적 대신 먼 미래를 바라보기에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차근차근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J리그 연수 경험이 있는 박공원 전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JFA는 장기 계획에 따라 어린 선수가 조금만 가능성을 보여도 해외로 보낸다"면서 "일본 국가대표팀 주전을 보면 거의 해외파인데 이들을 효과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독일에 클럽하우스를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성과도 뚜렷하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세계 최강 독일과 스페인을 격파하고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았다. 지마 코조 JFA 회장은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JFA 회장이 바뀌더라도 재팬스 웨이는 똑바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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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는 릴레이 종목에 강하다. 수영의 계영이나 육상의 계주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낸 경험이 있다. 어려서부터 릴레이 종목을 많이 연습하는 데다 특유의 '쓰나구'('연결한다'는 뜻)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사진은 일본 육상 400m 남자 계주팀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예선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 이들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리우=AP 뉴시스

 

전문가들은 일본이 초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건 ‘쓰나구’(つなぐ∙’연결한다’는 의미) 문화 덕이라고 말한다. 

가사하라 부장은 “일본인들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성과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이어가는 걸 소중히 생각한다”며 “시대가 바뀌면 세부 계획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함께 고민해 세운 비전 자체는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100주년이 되는 2064년까지 스포츠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 국가의 발전, 세계 평화에 공헌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비전 2064'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만들어졌다.

 

한민 문화심리학자는 "일본 사회는 '모든 사람이 정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당장 돈이 안 돼도 계속 투자한다"면서 "노벨상 수상자 20여 명을 배출한 것도 투자와 연구가 150년 가까이 축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본 중소기업의 연구직 직원이 종종 노벨상을 받는 이유도 당장 성과가 없어도 연구를 포기시키지 않는 쓰나구 문화 덕이라는 평가다.

 

②디테일의 힘…"약점인 리바운드 확률 높이려 마음 자세까지 연습"

일본 특유의 세밀함도 스포츠 강국이 된 비결이다. 특히, 최근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농구가 '현미경 분석'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일본은 원래 '교과서 같은 농구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틀에 박힌 플레이 탓에 예측이 쉽다는 혹평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한국 등 맞상대들은 "일본 선수들이 창의적으로 움직여 막아내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히가시노 도모야 일본농구협회(JBA) 경기위원장은 “2016년 JBA에 테크니컬 하우스(기술발전부)를 만들면서 경기력이 높아졌다"고 했다. 

테크니컬 하우스는 농구 월드컵과 올림픽, 아시아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가 끝날 때마다 일본팀의 경기 내용을 평가하고,

강·약점을 분석해 기술 보고서를 만든다. 손대범 KBSN 스포츠 농구 해설위원은 “JBA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매우 구체적으로 보완할 점을 적어 놔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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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자 농구 대표팀의 에이스인 박지수가 지난달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일본 선수에게 리바운드를 뺏기는 모습. 항저우=뉴스1

 

 

실제 일본 여자 농구 대표팀은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8강에 진출했지만 공격 리바운드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리바운드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위치 선정법 등을 제시했고 이를 익히기 위한 훈련 방법과 시합 때 신경 써야 할 점, 리바운드 상황에서 염두에 둬야 할 사고방식까지 보고서에 적었다"고 말했다. 노력은 통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대표팀의 공격 리바운드가 크게 향상돼 은메달을 따냈다.

③"지역 유소년팀도 국가대표팀 전략 이해해야"

세계 제패를 목표로 하기에 일본에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일본 체육계는 이를 위해 각 지역 유소년팀 코치와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제시한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올림픽과 농구 월드컵 기술보고서는 JBA 지도자 자격증 소지자라면 누구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각 유소년팀은 개성을 갖추려는 노력도 하지만, 일본에 가장 어울리는 전략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안도 카오리(46) 오사카 군에이여학원고 농구부 감독은 “일본여자농구리그(WJBL) 등의 연수를 받을 때 ‘키가 크지 않은

일본 농구가 세계 강팀을 이기려면 스피드와 득점 효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소년 지도자들은 이런 조언을 훈련 때 적용한다.

 

축구 등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JFA는 47개 도도현부(우리의 광역시도 개념)에 담당 인스트럭터를 배치하고, 이들을 통해 지역 코치들에게 전술별 훈련 방식 등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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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4대 구기종목 세계랭킹 비교. 그래픽=김대훈 기자

 

어린 선수들이 ‘최고가 되고 싶다’는 마음 자세를 갖도록 동기부여도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도쿄 올림픽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홍성찬(47) 쓰쿠바대 체육과 교수는 “일본에선 종목별 유망주를 방학 때 모아 도쿄의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국립 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받게 한다”면서 “성인 스타급 선수들도 일부러 같은 장소에서 훈련받도록 하는데 동경해온 선수가 바로 옆에서 훈련하는 걸 보면 자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 선수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는 데도 신경 쓴다. 

구키도메 다케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소장은 “6개 종목의 최정예 유소년 선수 30명이 NTC에서 자주 훈련을 하는데, 이들이 인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한다”면서 “국립시설에서 훈련하면서 공부도 병행할 수 있어 대학도 잘 진학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④"운동 선수가 아이들의 존경받아야…인성이 중요"

JOC의 경기력 강화본부 슬로건이 '인간력(인성과 매력) 없이는 경기력 향상도 없다'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일본 스포츠의 전성기가 짧게 끝나지 않으려면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훌륭한 존재로 비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사하라 부장은 "어린이들이 운동 선수들을 보고 '나도 스포츠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동경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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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의 상징인 LA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AP 연합뉴스

 

일본의 운동 선수들이 2010년대 들어 스포츠를 통해 어떻게 사회 공헌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 점도 국제대회 경기력이 높아진 이유로 꼽힌다.

한일 스포츠를 취재해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일본 선수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비극을 마주하며

'내가 스포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선수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오시마 작가는 "한국 외환위기 당시 야구의 박찬호와 골프의 박세리가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줬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동일본의 이와테현 출신인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는 "대지진 전까지는 나를 위해 야구를 했다면 재난 이후에는 사회에 공헌할 방법도 생각하며 운동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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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코리아를 동경해 일본도 열심히 했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의 경기력 향상 책임을 맡은 가사하라 겐지 일본올림픽위원회(JOC) 강화부장은 지난 17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담 섞인 말이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다. 1980~1990년대 일본 스포츠계에서 한국은 ‘넘지 못할 벽’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한일 스포츠 문제를 취재해 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15개 구기 종목에서 한일전을 했는데 14개 종목에서 일본이 졌다"면서 "일본 스포츠계에서 '한국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일본이 2000년대 이후 절치부심한 데에는 '라이벌' 한국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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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엘리트 체육 강해지기까지 그래픽=박구원 기자

 

조미료 회사에도 후원 받아 엘리트 예산 확보

일본 엘리트 스포츠의 ‘퀀텀점프’(대도약)는 한국 등 스포츠 강국을 본뜬 지원 기관들을 잇따라 만들며 시작됐다.

2001년 설립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가 대표적이다. 호주의 국립스포츠연구원을 벤치마킹했지만, 1980년 만들어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옛 스포츠과학원)의 영향도 받았다. 선수들에게 과학적 훈련법 등을 알려줘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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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 있는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 도쿄=유대근 기자

 

JISS의 문을 처음 두드린 건 2000년대 ‘일본 평영의 제왕’으로 굴림한 기타지마 고스케(40∙은퇴)와 그의 코치 히라이 노리마사였다. 기타지마는 17세 때 출전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평영 400m에서 뒷심 부족으로 4위에 그쳤다.

구키도메 다케시 JISS 소장 겸 하이퍼포먼스스포츠센터(HPSC) 이사는 “JISS가 관여해 ‘팀 기타지마’라는 메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면서 “스타트 때 물에 뛰어드는 가장 이상적인 각도 등을 분석해 기타지마에게 가장 적합한 훈련법을 알려줬으며, 식단도 짜줬다”고 말했다. 기타지마는 이후 2004∙2008년 올림픽 평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4개나 땄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는 2010년대 들어 한 차례 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돈과 시설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8년 아지노모토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국립 선수촌)가 도쿄에 문을 열었는데 이후 대표급 선수들의 실력이 메달권으로 성장했다. 2013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면서 엘리트 스포츠 예산이 크게 늘었다.

일본 정부가 엘리트 스포츠 경기력 강화에 쓴 돈은 2013년 30억 엔(약 259억 원)이었지만, 이후 100억 엔(약 863억 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국가 예산에만 기대지 않고 아지노모토(유명 조미료 회사) 등 민간 기업의 후원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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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키도메 다케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 소장 겸 하이퍼포먼스스포츠센터 이사. 도쿄=유대근 기자

 

NTC가 생기기 전까지 일본의 대표급 선수들은 여러 도도현부(우리의 광역시도 개념)에 쪼개져 있는 종목별 훈련장에서 연습했다. 이를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 NTC다. JISS와 NTC는 한 부지 안에 연결돼 있어, 선수들은 과학적 훈련법 등을 제안받아 훈련장에서 바로 적용해볼 수 있다.

 

중앙집중식 과학 훈련은 효과가 컸다. 구키도메 소장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41개의 메달을 땄는데 40개가 NTC에서 훈련한 종목이었고, 도쿄 올림픽에서 획득한 58개 메달 가운데 80%가량이 이곳에서 훈련한 종목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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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대훈 기자

 

2015년에는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 부처인 스포츠청이 문을 열었다. 이전까지는 문부과학성 내 스포츠국이 관련 정책을 주도했다. 야마모토 쓰요시(42) 주한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2011년 스포츠 기본법을 제정했고 2012년에는 스포츠 기본계획을 수립했는데 스포츠청은 이런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됐다"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과 과학에 기반한 고도의 지원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초대 청장(장관급)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전 수영 선수 스즈키 다이치(56)가 맡았다. 스포츠청 경기스포츠과의 나루세유키 히로시 과장은 "현직인 무루호시 고지 장관도 해머던지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면서 "스포츠인 출신들이 행정을 총괄하니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확실히 높다"고 말했다.

일본 스포츠계 "2024 파리 올림픽도 기대해 볼 만"

일본이 자국 선수들에게 잘 맞는 전략 종목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도 적중했다. 기타지마의 주종목이었던 수영 평영 종목이 대표적이다. 자유형 등에 비해 신체 조건의 영향을 덜 받기에 아시아 선수가 유럽이나 미국 선수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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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키점프의 간판 선수인 다카나시 사라의 경기 모습. 그는 스키점프 월드컵에서 금메달 64개나 따 남녀 통산 역대 최다 금메달 보유자이다. 힌터자르텐=EPA 연합뉴스

 

동계 종목 중에는 스키점프가 전략 종목이다. 일본은 2014년과 2018년, 2022년 동계올림픽 스키점프에서 4개의 메달(금메달 1∙은메달 1∙동메달 2)을 땄다. 홍성찬(47) 일본 쓰쿠바대 체육과 교수는 “NTC에 풍동(風動) 실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선수들은 자세에 따라 바람의 저항을 얼마나 받는지 확인하며 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략 종목 중 하나인 체조도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예컨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이동할 때 운동화에 땀이 차 불편하다고 호소하자 곧바로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진은 바닥에 구멍을 낸 말랑말랑한 소재의 운동화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일본은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종합 3위(금 27·은 14·동 17)를 했다. 안방 이점도 있었지만, 일본 내부에선 "2024년 파리 올림픽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사하라 부장은 "세계적인 경기력을 다지는 데 10년 정도 걸렸다"면서 "이미 기반을 다져놓은 만큼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日 대표팀 경기력 총괄 히가시노 위원장 인터뷰
한때 '아시아 3인자'에서 명실상부 '1인자' 등극
2014년 'FIBA 징계' 위기 겪고 혁신 작업 착수
일본 남녀 리그 코치진 3명 중 1명은 외국인
유망주에 해외 진출 적극 권장 "해외파 20명"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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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주전 포워드인 와타나베 유타가 미국 NBA 브루클린 네츠에서 뛰던 모습. 현재는 피닉스 선스 소속이다. AP 연합뉴스

 

일본 남녀 농구는 아시아에서 만년 3인자였던 때가 있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줄곧 밀렸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국제농구연맹(FIBA) 세계 랭킹에서 일본은 남녀팀 모두 '아시아 넘버 1'(호주·뉴질랜드 제외)이다.

극적 변화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 일본 농구의 부흥기를 이끌어 온 히가시노 도모야(53) 일본농구협회(JBA) 경기위원장을 지난달 16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014년 일본 농구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준이 확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B리그 창설하고 일본에 맞는 전략 수립

히가시노 위원장이 말한 '위기'는 2014년 FIBA가 "일본의 남자 농구 리그를 일원화하라"고 주문한 것을 말한다. 당시 일본에는 수준이 비슷한 2개 리그가 각각 돌아갔는데, 이는 '1국가 1리그'를 원칙으로 하는 FIBA 규정에 위배됐다. 일본은 권고를 제때 이행하지 못해 FIBA로부터 회원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비상이 걸린 일본 농구계는 일본축구협회장 출신인 가와부치 사부로에게 JBA 회장직을 맡겼다. 가와부치는 2016년 남자 통합 프로리그인 'B리그'를 창설했고, 프로팀 감독을 지낸 히가시노에게 JBA 경기위원장을 맡겼다. 일본 남녀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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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도모야 일본농구협회(JBA) 경기위원장이 지난 16일 도쿄 JBA 사무실에서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린 그림을 옆에 두고 서 있다. 도쿄=유대근 기자

 

히가시노 위원장은 취임 이후 목표를 크게 잡았다. "아시아가 아닌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이를 달성하려면 현실부터 인정해야 했다. 그가 이끄는 JBA 테크니컬 하우스(기술발전부)는 일본 농구의 강약점을 세밀히 파악했다. 특히, 강점이 극대화되도록 대표팀 운영 전략을 짰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일본에는 신장이 크거나 엄청난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가 적었기 때문에, 3점슛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등 득점 효율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일본 남자 대표팀은 빅맨(센터)까지 3점슛을 던지는 '5아웃'(전원 외곽) 농구를 지향한다. 그는 "슛성공률을 높이려고 2016년부터 대표팀에 스킬 코치와 슈팅 코치를 뒀는데 효과를 봤다"고 귀띔했다.

 

히가시노 위원장이 일본 농구 도약의 또 다른 비결로 꼽은 건 '외국인'이다. 그는 "일본 B리그와 W리그(여자 실업 리그)의 코치 3명 중 1명이 외국인"이라면서 "B리그 코치 중에는 미국 프로농구(NBA) 코치를 해본 사람도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일본 남자 대표팀 감독인 톰 호바스도 미국인이다. 그는 2020 도쿄올림픽에선 일본 여자대표팀을 이끌며 은메달을 따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외국인 지도자를 통해 다양한 스타일의 농구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틀에 박힌 농구를 한다'고 평가받던 일본팀이 최근 창의적 플레이를 선보이는 배경에는 외국인 지도자의 역할도 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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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일본 여자 농구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농구계는 특급 유망주가 '우물 안 개구리'로 남지 않도록 해외 진출을 적극 권한다. 덕분에 와타나베 유타(29·피닉스 선스), 하치무라 루이(25·LA레이커스) 등 NBA 현역 선수도 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일본 농구 선수 중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진출자는 학생을 포함해 20명 정도"라면서 "만화 '슬램덩크'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고가 만든 '슬램덩크 장학금'이 있는데 이를 통해 매년 한두 명이 유학을 간다"고 말했다.

 

유소년 선수를 가르칠 수준 높은 지도자가 많은 것도 눈에 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JBA의 각 레벨에서 지도자 라이선스를 딴 일본인 코치는 전국에 7만8,000명이나 된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유소년을 가르치며 일본 농구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히가시노 위원장은 일본 대표팀의 향후 목표에 대해 "남자팀은 매번 농구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고, 여자팀은 세계 최강 미국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미국 여자 대표팀) 올림픽 8연속 우승에 도전한다면 막아야 한다"며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아시아팀이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우리카드 윤세운 코치 인터뷰>
아들 윤이준, 오사카 고교 배구부 진학
“일본 이시카와 같은 선수 되고 싶다”
오사카 고교팀만 150곳··· 1~3부 리그
아들 "인프라 탄탄… 배구 너무 재밌어”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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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모야마고교 배구부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윤이준(17) . 부친 윤세운씨 제공

 

“아빠, 일본 가서 배구 하고 싶어.”

중학교 2학년 아들이 꺼낸 얘기에 아버지는 당황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아들은 학교 배구부에서 주전으로 뛰는 유망주였다. 평소에도 일본 남자배구 대표팀 주장 이시카와 유키(28)를 좋아했던 아들은 일본의 ‘빠른 배구'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너무 진지했다. 남자 프로배구 구단에서 코치로 일하는 아버지는 배구 인맥을 총동원해 일본 고교 진학이 가능한지 알아봤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본 학생과 동일하게 고교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다. 아들은 일본어를 이제 막 배우는 단계였다. 코로나19가 심각할 때라 일본 입국조차 쉽지 않았다.

 

아들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중3 때 배구부 훈련이 오후 7시에 끝나면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본어를 공부했다. 때마침 일본 오사카의 한 고교에서 입학이 가능하다는 답도 왔다. 배구 실기, 고교 입학시험 등으로 수차례 일본을 오간 아버지도 마음을 바꿨다. 일본 배구의 저변은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아들은 올해 3월 일본 오사카 모모야마고교에 입학해 ‘롤모델’ 이시카와의 등번호 14번을 유니폼에 새긴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는 혈혈단신으로 배구 유학을 떠난 아들을 먼발치에서 응원하고 있다. 우리카드 윤세운(44) 코치와 윤이준(17)군 부자(父子) 이야기다.

현직 프로 코치도 놀란 日배구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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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모야마고교 배구부 학생들이 학교 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있다. 윤세운씨 제공

 

이준군은 한국에서 미래가 탄탄한 배구 유망주였다. 배구 명문인 안양 연현중 재학 시절 이미 여러 고교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 이시카와를 배출한 일본에서 배구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야 이시카와 같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자가 확인한 일본 배구 인프라는 ‘넘사벽’이었다. 한국의 남자 고교 배구팀은 23곳(334명). 일부 시·도를 제외하면 지역 예선 없이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다. 반면 일본에는 고교 배구팀만 2,500여 개, 선수는 4만~5만 명에 달했다. 오사카에만 157개의 고교팀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잘하는 팀만 전국체전 격인 ‘일본전국고교종합체육대회(인터하이)’에 나갈 수 있다. 모모야마고는 오사카 8강 수준이다.

 

아들의 일본행(行)을 걱정했던 윤 코치도 일본 고교 배구를 접하고 마음을 바꿨다. 배구 선수에게 일본은 천국과 같았다. 매주 주말마다 크고 작은 대회가 쉬지 않고 열렸다. 오사카 고교 배구팀끼리 1부, 2부, 3부로 나눠 대결하는 지역 대회인 ‘긴키’ 대회가 대표적이다. 전국대회 격인 ‘하루코(춘계고교배구대회)’ 또는 인터하이에 나가지 못하는 팀도 언제든지 경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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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모야마고교 배구부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윤이준(17)군이 개인 훈련을 하고 있다 . 부친 윤세운씨 제공

 

주전 경쟁에서 탈락한 선수들도 뛸 기회가 많았다. 모모야마고 배구부원은 28명. 감독은 선수를 수준별로 1부, 2부, 3부로 나눈 뒤 다른 학교 1~3부와 수시로 연습게임을 치렀다. 최소 엔트리(12명)도 채우지 못하는 팀이 많은 우리나라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윤 코치는 “고교 리그인데도 2부리그 우승팀이 1부리그로 승격하고, 1부 꼴등이 2부로 내려오는 승급제까지 있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일본에선 이렇게 팀이든 선수든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이시카와 같은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일본 배구 대표팀이 7월 세계 배구 최강자를 가리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 동메달을 따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에는 배구 엘리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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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 배구 대표팀 주장 이시카와 유키. 본인 인스타그램 캡처

 

경쟁이 치열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모야마고 선수와 지도자들은 배구를 즐겼다. 물론 훈련량은 만만치 않다. 부원 모두 오후 6시 30분까지 팀 훈련, 이후 오후 9시까지는 개인 훈련을 했다. 윤 코치는 이들 모두 우리나라처럼 프로를 목표로 운동하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이준군처럼 프로가 목표인 학생과, 순수하게 배구가 좋아서 운동하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성적보다는 운동을 통한 ‘인성 함양’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들은 실력이 최상급인 선수도 다른 부원들과 마찬가지로 심판, 청소, 점수기록 등을 번갈아 가면서 맡도록 했다.

 

이는 입시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한양대나 성균관대 같은 명문대 배구부에 가려면 ‘전국대회 8강 이상’ 같은 성적과 출전 시간이 필요하다. 지도자도, 선수도, 학부모도 이겨서 성적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당연히 지도자들은 에이스급 선수를 중심으로 대회를 치를 수밖에 없다. 주전으로 뛰지 못한 선수와 그 학부모는 속이 타 들어간다. 윤 코치는 “일본은 잘하든 못하든 선수들이 배구를 재미있게 했다”며 “주전으로 못 나간 선수들이 목 놓아 응원하는 모습도 놀라웠다. 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는 결코 과장된 내용이 아니었다”고 했다.

 

일본에선 엘리트와 취미반의 구분이 없기에, 운동부에 대한 특혜도 없었다. 배구부원 모두 정규 수업을 100% 다 들어야 했다. 해당 학년 국·영∙수 등 11개 과목 전체 평균이 40점 이하면 자동 유급됐다. 일본어가 서툰 유학생 이준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1학기 중간고사 때 시험 성적이 다소 좋지 않았던 그에게 배구부 감독은 기말 고사부터 과목별로 동급생 과외를 붙여줬다. 시험 며칠 전에는 학교 체육관에 배구부 1학년 학생을 모두 모아놓고 단체 학습을 시켰다. 이준군은 중간고사 때보다 성적이 껑충 뛰었다. 일본은 ‘선수 이전에 학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유럽 진출을 꿈꾸는 열일곱 배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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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모모야마고교 전경. 윤세운씨 제공

 

일본에 자리를 잡은 지 1년. 이준군은 많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중학교 때 배구할 때는 운동 끝나고 집에 오면 방에 누워 유튜브만 보던 아이였다.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와 아빠에게 각종 배구 영상을 보낸다. 이 선수처럼 배구를 잘하고 싶다는 표현인 셈이다. 이준군의 시선은 이미 해외로 향하고 있다. 일본 대학에 진학한 뒤 유럽 리그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현재 일본 남자 대표팀 주전 멤버들은 대부분 세계 최고 리그인 이탈리아와 폴란드 리그에서 뛰거나, 뛴 경험이 있는 해외파다.

윤 코치는 “아내와 종종 웃으면서 ‘아들이 일본 가더니 배구에 미쳐버렸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일본에 간 뒤 ‘배구가 재미있다’고 하니 부모 입장에서도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한국, 키에만 의존한 농구 인재 육성
일본, 키 작아도 스피드·드리블 뛰어나
170㎝ 안팎 특급 가드들 나오며 '농구붐'
"신체 조건 관계 없이 스포츠 참여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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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와 달리 농구 초보자 강백호 대신 '단신 가드' 미야기 료타(가운데·한국판 이름 송태섭)을 이야기 중심에 둔다. SMG홀딩스 제공

 

키 168㎝의 포인트 가드가 빠른 스피드와 창의적 플레이로 경기 흐름을 쥐락펴락한다. 일본 고교의 '넘버 1'을 넘어 미국 대학 리그에 진출한다. 올 초 개봉해 한국에서만 477만 명의 관객몰이를 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인공인 북산고 2학년 '돌격대장' 송태섭(일본판 이름 미야기 료타) 이야기다.

 

한국에서 송태섭은 판타지다. 반면 일본에선 현실이다. 실제로 키 170㎝ 안팎의 특급 가드들이 계속 나오며 일본 남자 농구 프로리그(B리그) 최고 스타 자리를 두고 격돌하고 있다. 일본엔 송태섭이 있고, 한국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한된 스포츠 참여…"재능 확인할 기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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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키가 작더라도 속도와 드리블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농구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일본 농구 리그 대표 단신 선수들. 그래픽=김문중 기자

 

양국은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하는 시스템이 다르다. 한국은 엘리트 선수를 꿈꾸는 학생만 모아놓은 운동부가 초중고교 농구 무대의 근간이다.

반면, 일본은 부카츠(部活·방과후 부활동)에서 운동을 한다. 성인 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과 취미로 농구하는 학생이 함께 운동한다. 이 때문에 농구부 가입 때 신장 등 자격 제한이 없다.

손대범 KBS N 스포츠 농구해설위원은 "일단 공을 튕기고 던져봐야 재능을 알 수 있다"면서 "훈련이나 시합을 하다 보면 키는 작아도 스피드나 슈팅, 드리블이 뛰어난 선수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농구를 시작해 자국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다. B리그 연봉왕인 도가시 유키(30·치바 제츠)의 키는 167㎝에 불과하다. 하지만 뛰어난 드리블 실력 덕에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신성' 가와무라 유키(22·요코하마 B콜세어즈)도 172㎝의 단신이지만, 지난 시즌 리그 신인상과 최우수선수(MVP) 등 5관왕을 휩쓸었다.

 

여자선수 중에는 야스마 시오리(29·도요타 안텔로프스)가 유명하다. 키는 161cm로 작지만 체력과 스피드를 무기로 여자 실업 리그(W리그) 2020~2021시즌 플레이오프 MVP에 올랐다. 이듬해 독일 리그에 진출해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고,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이는 이탈리아 리그에도 진출했다.

 

반면 한국에선 유소년 때부터 신체 조건을 중시한다. 키 작은 아이들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농구부 가입조차 못하고 퇴짜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선수층을 얇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의 한 중학교 체육 교사는 "중학교 여자선수를 보면 슛감각이 아무리 좋아도 키가 170㎝ 이하면 엘리트 운동부에서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면 죽는 운동부 감독…"눈앞 승패에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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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준결승에서 한국 대표팀(남색 경기복)이 일본 대표팀에 패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은 일본보다 평균 신장이 약 4cm가량 컸지만 3점슛만

14개를 허용하며 58-81로 참패했다. 뉴스1

 

중고교 농구부가 팀 성적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도 단신 선수들을 위축시킨다. 강양현 조선대 농구부 감독은 "경기에 이겨 팀 성적이 좋아야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감독도 진학 결과로 평가받는다"면서 "눈앞의 승리를 위해 키 큰 선수를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탓에 상급학교로 갈수록 키 작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출전 기회는 더 적어진다. 한국 농구판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이 단신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건 한계를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손 위원은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높이 싸움으로는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스피드와 득점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 남녀 대표팀에서 경기 흐름을 주도하는 선수들은 도가시 유키와 가와무라 유키, 여자농구 마치다 루이(30·워싱턴 미스틱스·162㎝) 등 단신 포인트가드들이다.

 

'주전들의 키가 크면 아시아에선 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도 흔들린다. 지난달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남녀 대표팀 선수들(각 12명)의 신장은 일본보다 평균 4㎝ 정도 컸다. 한국 남자팀 최단신은 180㎝(허훈)인 반면, 일본은 170㎝대 선수가 3명 포진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남녀 농구팀은 모두 일본에 덜미를 잡혔다. 특히, 여자팀은 준결승에서 58 대 81로 참패했고, 남자팀은 3진급으로 구성된 일본에 졌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작은 선수들에게 농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현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KISS) 연구위원은 "스포츠의 매력을 어릴 때부터 직접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키와 상관없이) 학교 체육부터 방과 후 스포츠클럽, 프로 구단과 연계한 교내외 운동팀 등 여러 방식으로 참여를 늘리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2> 외길 인생과 이도류 인생
오타니 모교 하나마키히가시고 이유 있는 고집
전교생 중 84%가 공부·운동 병행 '이도류' 생활
야구부원 109명 "의사, 트레이너 등 다양한 꿈"
감독, 도쿄대 진학 목표 부원 위해 '공부방' 마련
오타니 같은 선수에게도 학업엔 특별 배려 없어
'외길' 강요 안 하니 가입 늘어 "부담 없이 운동"

 

 

 

일본 야구의 상징인 오타니 쇼헤이(29∙LA에인절스)의 모교인 일본 이와테현하나마키히가시고교 야구장 뒤편에는 1평(3.3㎡) 남짓한 컨테이너가 있었다. 안에는 긴 책상과 의자 2개가 놓였고, 의자에 앉으면 창밖으로 야구장이 한눈에 보인다.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의 연습 장면을 보거나 쉴 때 쓰는 공간일까.

"감독이 아닌 학생이 쓰는 공부방이에요."

 
 

스승으로 알려진 사사키 히로시(48) 야구부 감독은 ‘비밀의 방’의 용도를 설명했다. “도쿄대 입학을 꿈꾸는 부원이 있어 야구를 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 공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고2 때 전국대회인 메이지진구대회에 출전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공부에 더 소질을 보여 감독도 그 길을 추천했다. 이 부원은 고3 때도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의 연습을 도우며 공부에 매진했다. 사사키 감독은 “우리 야구부에는 직업 선수가 아닌 다른 목표를 가진 아이들이 더 많다”며 “이들의 가능성을 넓혀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는 게 교사가 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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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키히가시고 야구부의 사사키 히로시 감독이 도쿄대 입학을 꿈꾸는 야구부원을 위해 만들어 준 공부방. 부원들의 훈련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부원은 고3 때 동료들의 훈련을 도우며 이곳에서 공부에 매진했다. 이와테=유대근 기자

 

1956년 문을 연 이 학교의 첫 도쿄대 입학생은 오마키 마사토(23)라는 야구부원이다. 그는 2021년 스포츠 분야가 아니라 문과대학에 합격했다. 시골 학교 야구부가 미국 프로야구 MVP(오타니)와 도쿄대 합격생을 모두 배출한 것이다. 

감독이 야구만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모든 선수가 운동에만 목숨 걸지 않는 분위기. 일본 야구의 힘은 학업과 운동 중

한쪽만 강요하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 나온다.

야구부원 데리고 도쿄대 가 사진 찍은 감독 “넌 여기 합격할 수 있다”

 

“고교 3년은 인생을 지탱하는 토대를 다지는 시간이죠. 주체적으로 살 힘을 길러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지난달 18일 학교 응접실에서 기자를 만난 하나마키히가시고 고다시마 준조 교장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문무양도’(文武兩道)를 강조했다. 전교생 721명 중 84%가 야구, 소프트볼, 수영 등 운동부 소속이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오타니의 별명이 ‘이도류’(二刀流)인데, 그의 후배들은 다른 의미에서 이도류(학업∙운동 병행)인 셈이다. 이 학교는 오타니처럼 스포츠에 특화한 학생들만 다니지 않는다. 대부분은 내신 성적이나 대입센터시험(우리의 수학능력시험) 등을 통해 대학 진학을 노리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고다시마 교장은 “부카츠(部活∙부활동)는 학습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일부분”이라면서 “인격 형성 등 인간으로서 기본을 닦는데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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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일본 이와테현의 하나마키히가시고교 본관 건물에 현수막 4장이 나란히 걸려있다. 이 학교 졸업생인 오타니 쇼헤이의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MVP 등극과 2021년 미국 프로야구(아메리칸 리그) MVP 수상을 축하하는 내용이다(왼쪽 첫 번째와 두 번째). 이 학교 출신인 기쿠치 유세이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오른쪽 첫 번째). 그사이로 하나마키히가시고교 역사상 첫 번째 도쿄대생이 된 오마키 마사토의 합격 소식을 담은 현수막도 걸려 있다. 현수막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학교 야구부 출신이다. 이와테=유대근 기자

 

부원이 109명에 달하는 야구부도 같은 철학으로 운영된다. 사사키 감독은 단순히 야구 선수를 키우는 걸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야구를 할 줄 아는 훌륭한 인간을 키우는 게 목표다. 야구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지고자 한다면 실력과 무관하게 부원으로 받아준다. 감독과 함께 야구부를 운영하는 사수가 히로유키 야구부장은 “오타니나 기쿠치 유세이(32∙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우리 학교를 택한 건 이런 교육 이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운동부 감독들은 기술적인 조언자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부원이 어떤 꿈을 꾸든 가능성을 살려주는 멘토가 돼주기에 진로 상담도 자주 한다. 사사키 감독은 “부원들의 꿈을 들어 보면 트레이너와 의사, 도쿄대 진학 등 각양각색”이라면서 “이들이 야구를 통해 삶의 기본기를 익히고,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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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야구계의 슈퍼스타인 오타니 쇼헤이의 스승 사사키 히로시 하나마키히가시고 야구부 감독. 이와테=유대근 기자

 

‘도쿄대생’ 오마키가 이 학교 야구부 출신인 건 우연이 아니다. 사사키 감독은 ‘일본 최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제자의 꿈을 1학년 때 듣고는 도쿄대 교정에 함께 갔다. 그는 오마키에게 “충분히 입학할 수 있다”고 격려한 뒤,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어 기숙사 한쪽에 붙여 놓도록 했다. 2인 1실을 쓰는 다른 부원들과 달리 방을 홀로 쓰도록 했다. 훈련을 마치고 늦은 밤까지 공부해야 하는 제자를 배려한 것이다.

 

하나마키히가시고는 오타니의 인생 계획표로 유명해진 ‘만다라트 차트’를 활용해 학생들의 목표 달성을 돕는다. 정사각형 표 중앙에 최종 목표를 적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구체적 노력을 8개 방향으로 써나가는 식이다.

마스모토 준페이 입시홍보실장은 “모든 입학생에게 만다라트 차트가 담긴 다이어리를 나눠 준다”고 했다.

다수의 야구부원들도 야구와 관련 없는 목표를 세워 당장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고민한다. 예컨대 연봉 1,000만 엔(약 8,600만 원)을 주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게 목표인 부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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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가 사사키 감독의 지도로 고등학교 때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의 번역본. 일본 프로야구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목표로 실행해야 하는 세부 목표와 해야 할 일을 9개 영역으로 정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낙제점 이하면 졸업 불가, 부활동도 금지"

하나마키히가시고는 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삶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모두에게 예외 없이 학업을 철저히 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타니나 기쿠치처럼 직업 운동선수를 꿈꿔도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 은퇴 이후 삶까지 내다보기 때문이다. 고다시마 교장은 “‘아키텡’(赤点∙낙제점)을 못 넘으면 졸업할 수 없고, 부활동도 금지된다”면서 “다행히 운동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 적극성 등 공부와 스포츠가 요구하는 덕목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오타니의 내신 점수는 3년 평균 85점, 기쿠치는 80점이었다. 사사키 감독은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통과해 성인 야구 선수가 된다고 해도 보통 30세를 전후로 유니폼을 벗는다”면서 “100세 시대에 남은 7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건 지력(智力)”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마키히가시고는 야구부원을 학년별로 한 학급에 배치한다. 마스모토 실장은 “아이들이 경기 출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빠져야 할 때가 있다”면서 “한 학급에 모아서 공부하면 보충수업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낙제 점수만 넘으라고 무작정 몰아붙이는 대신, 낙오되지 않도록 학교가 세심히 배려하는 것이다.

 

시골학교 야구부에 100명이 넘는 부원들이 몰린 것도 이런 철학 때문이다. 오직 운동에만 모든 것을 거는 ‘외길 인생’을 강요하지 않으니,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부담이 덜하다. 운동을 하다가 이탈하더라도 또 다른 길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은 선수층이 두텁고, 엘리트 야구계는 이 가운데 옥석 고르기를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배구, 육상 등 모든 종목에 적용된다. 일본 스포츠의 저변이 넓은 이유다.

교사가 된 고시엔 스타 "동료 누구도 프로 진출 목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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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 경쟁력은 운동과 학업 또는 직업을 병행하는 '이도류'에서 나온다. 다양한 출신들이 체육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뒀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오타니라는 ‘야구 아이콘’을 배출한 하나마키히가시고가 특별해 보이지만, 일본 고교의 기본 시스템은 이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부 선수들이 다양한 진로를 택할 수 있도록 열린 운영을 한다. 심지어 고교 무대에서 최고 성과를 냈던 선수들조차 ‘운동 외에는 어떤 길도 없다’는 사생결단식 사고를 하지 않는다.

사가현 가시마고교의 보건체육교사인 구보 다카히로(34)가 대표적이다. 그는 꿈의 무대인 고시엔 대회(전국고교 야구선수권대회)에서 2007년 우승한 사가키타고교의 에이스 투수였다. 당시 우승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선수단을 촬영하기 위해 헬기가 떴을 만큼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삶을 택했다. 구보는 지난달 13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동급생 중 프로 진출을 목표로 운동한 선수는 없었다”면서 “고시엔 본선에 나가 보자고 의기투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가키타고는 부활동이 공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야간 훈련을 전면금지했다. 구보는 현재 가시마고교의 야구부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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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달 18일 일본 이와테현 하나마키히가시고교의 야구장에서 야구부원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이와테현=유대근 기자

 

다른 종목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인 사토 리에(43) 도쿄여자체육대 교수는 소프트볼 특기생으로 고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업이 가장 중요하고, 운동은 그 다음이라는 게 학교 방침이었다. 사토 교수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저런 애가 소프트볼을 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그는 입학 당시 반에서 꼴찌였지만, 고3 때는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운동부 선배가 후배의 학업을 챙겨주는 문화도 있다. 공부로 대입을 준비하며 축구부 활동도 하는 도쿄 스기나미소고 고교의 야마다 리호(18∙3학년)는 “2, 3학년 선배들이 1학년과 함께 아침 공부를 하며 가르쳐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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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대입을 준비하며 축구부 활동도 병행하는 도쿄 스기나미소고고교의 야마다 리호. 도쿄=유대근 기자

 

야마자키 가쓰야 도쿄 간다여학원고 소프트볼부 지도교사는 “우리 부원의 교과 성적이 떨어지면 영어, 수학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귀띔해준다”면서 “그러면 그 아이를 남겨놓고 방과후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소프트볼부는 60개에 달하는 도쿄 여자팀 중 랭킹 1위이지만, 직업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는 부원은 10% 정도뿐이다.

 

'부카츠 활동에 열중하면 공부할 시간이 줄어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내 연구 결과는 다른 결론을 보여준다. 

일본국가교육정책연구원이 2017년 전국학력시험 결과를 분석해 보니 중학교에서 부카츠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의 정답률이 일본어, 수학 등 모든 교과에서 가장 낮았다. 반면 하루 1~2시간 정도 부활동을 한 학생의 정답률이 가장 높았고, 2~3시간 활동한 학생들이 다음으로 높았다. 매일 3시간 이상 부활동을 한 학생의 정답률은 전혀 하지 않은 학생 다음으로 낮았다. 적당한 부활동은 학업 성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명 낳아 키우는 시대…성공 확률 희박한 스포츠에 '올인' 강요는 가혹"

한국에선 운동을 택한 학생은 운동만,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만 시키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 시스템이 유효기간을 다했다는 지적은 대한해협 너머에서도 나온다.

한일 스포츠 문제를 30년간 취재해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아이를 2~3명 낳아 키울 때는 한 명쯤 운동을 시켜서, 잘 되면 덕을 보고 안 풀리면 부모가 도와주면 됐다”면서 “하지만 1명만 낳는 시대에 성공 가능성이 1%도 안 되는 엘리트 스포츠에 인생을 걸라고 주문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스포츠의 순기능에 주목하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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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경제적인 부와 K-culture로 대변되는 문화적인 성장이

세계에서 가장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국가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국가의 기본이 되는 아이 출산률과 국민들의 행복 지수는

갈수록 세계 최하위권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점은 현대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성장 과정에서 놓쳤던 많은 부분들이

뒤늦게 나타나고 서둘러 정책을 보완하려 하려고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늦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스포츠 산업이나 스포츠 결과가

반드시 한국이 아시아나 세계에서 정상권일 필요는 없다.

스포츠가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건강한 사회와 대다수 국민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다양한 스포츠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스트레스와 국민 통합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이자

건강한 국민을 위해 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일본과 유사한 생활 스포츠와 엘리트 체육이 함께 가는

정교하고 혁신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스포츠를 즐기고 사랑하는 어린 청소년들이 재능을 발견하여

국가대표 선수나 프로선수로 진출하고

건강한 취미 생활을 즐긴 청소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해

사회 생활에서 독립적인 도전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한국의 많은 스포츠 리더들과 정책 관련자들이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한국에 맞는 미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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