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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 코첼라 축제·유럽 최고 클럽서 한국어로 공연하는 세계적 스타

youngsports 2020. 4. 15. 14:29

https://www.youtube.com/watch?v=HX7FEEPnl0s






한국선 '미래 없다'던 말괄량이, 세계 홀린 DJ로

조선일보 
입력 2020.04.15 03:00

'페기 구'
코첼라 축제·유럽 최고 클럽서 한국어로 공연하는 세계적 스타
美 포브스 "亞 영향력 있는 30인"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클럽 프린트워크스(Printworks). 두 달 전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 6000석을 단박에 매진시킨 팬들이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푸른 바다보다… 별이 빛나는 밤." 세계적 DJ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페기 구(29)가 한국어로 만든 노래가 거대 창고에 메아리쳤다. "작년 8월 서울에서 공연할 때 어마어마한 떼창을 듣고 감격해 울었어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또 눈물이 날까 했는데, 제 이름 외치는 영국 팬들을 보니 또 울컥하더라고요. 내겐 제2의 고향 같은 영국에서,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에 매진된 대규모 공연장이라니 감회가 새로웠죠."

적당히 그을린 피부에 끝을 살짝 올린 눈 화장으로 몽환적이면서도 섹시한 눈매가 허스키한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여자. 한국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부터 영국에서 공부한 뒤 현재 독일 베를린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페기 구는 단 한마디로 규정되길 거부한다. 2016년 세계 최고 클럽으로 꼽히는 독일 베르크하인 무대에 오른 '첫 한국인 여성 DJ'이자, '기린'이란 브랜드를 보유한 패션 디자이너, 모델이면서 인스타그램 팔로어(follower) 165만명을 보유한 인물. 지난해 미 경제지 포브스의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으로 선정됐고, LG 휴대전화 광고 모델도 됐다.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를 비롯해 연간 200회 넘는 공연을 하는 DJ.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공연이 연기되거나 무산되면서 지난달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자가 격리가 끝난 13일 만났다.

페기 구는 본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 싫다”고 했다.
페기 구는 본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흔한 이름이라 싫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2014년 '흥부'를 시작으로 '한 잔'(2018), 'Starry Night'(2019) 앨범을 냈다. 표지에 하회탈이 등장하더라.

"뮤직비디오엔 태권도와 강강술래도 나온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쿨'(cool)하고 '영'(young)하게 보이고 싶었다. 이전에 발표한 '잊게 하네'(2018)는 긴 한국어 가사를 다 따라 하진 못해도, 후렴구 '잊게 하네'만큼은 전 세계 어딜 가든 청중이 따라 부른다. 나도 서양 것 다 쫓아 봤다. 염색도 해 보고 외모를 바꾸려고도 했다. 그런데 한국 뿌리를 파고들 때, 한국적인 걸 할 때가 가장 나답더라. 요즘엔 엄마가 즐겨 듣던 송창식, 녹색지대 노래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있다."

―열성 팬을 몰고 다니는 DJ로 유명하다. '페기 굿즈'까지 나왔다.

"2016년 영국 글래스턴베리 음악 축제에서 DJ를 맡은 적 있는데 관중들이 일제히 신발을 들고 '페기'를 연호했다. 페기 구, 페기 슈(shoe), 페기 후(who)라면서, 하하! 20~30년 공연 참가했던 분들도 그런 '떼응원'은 처음이라고 했다. '구'가 발음하기 편한지 'just gou it(나이키 슬로건 'just do it' 패러디) 'have a gou time' 같은 응원 문구를 만들어 주시고, 두바이 가면 '구바이', 쿠알라룸푸르 가면 '구알라룸푸르'라고 해 주신다. 한국에서는 '오지구 지리구', 하하! 그들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페기 구는 초기 힙합 감성에 하우스 뮤직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소화해 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어 가사 역시 그녀의 이국적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컬러풀한 의상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는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패션 브랜드를 내 보라"고 조언해 '기린'이란 이름의 브랜드를 선보였다. 페기 구는 패션 공부를 하면서 만든 예명. 한국 성(姓)은 김씨인데 '페기 김'은 어딘지 촌스러워 '페기 구'로 정했단다.

지난해 두바이에서 공연하는 모습.
지난해 두바이에서 공연하는 모습. /페기 구 인스타그램

―얼마 전 발리에서 새해 DJ 쇼를 한 뒤에 백사장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 큰 화제가 됐다.

"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최근엔 코로나로 인한 동양인 차별을 토로하는 분이 많아 차별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11월로 연기된 호주 공연도 산불 복구 등에 기부하려 동물 보호 단체와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는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에서 패션을 전공했지만 음악에서 길을 찾았다. 독일에선 시간당 5유로짜리 레코드숍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시급 대신 레코드를 달라고 할 정도였다. "세계 1위 클럽을 하루가 멀다시피 찾아 '언젠가는 내가 DJ 석에 앉겠다'고 주문을 걸었다. 감명 깊은 음악이 나오면 DJ에게 달려가 무슨 노래인지 물었다. 클럽이 내겐 학교 같은 존재였다."

―결국 베를린 베르크하인 클럽의 첫 한국인 여성 DJ가 됐다.

"DJ계에 동양인 차별은 없어도 여성 차별은 있다. '넌 재능 있지만 결국 유리 천장에 막힐 것'이라고들 했다. 그 판단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 굉장히 노력했다. 언론학자이자 공직자로 평생을 새벽 6시부터 일해오신 아버지의 근면성을 닮은 것 같다(웃음). 공무원인 어머니도 20년 넘게 유리 천장을 깨려고 고군분투하셨는데 엄마와 전화하며 '이제 조금 그 벽을 깬 것 같다'며 운 적도 있다."

스스로 "'부모 되기 수업'이란 무엇인지 알게끔 하는 말썽쟁이였다"고 고백하듯, 
중학생 때부터 공부에 손을 놨다는 그다. "사람들이 '한국에선 제 미래가 없다'고 했다. 난 무엇을 못하는지 빨리 파악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남들보다 더 파고들어 미쳐 있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미련은 떨쳐 버리고, 남 얘기에 휘둘리지 말고, 하기 싫은 것에 오래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것'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