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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륭 원사이드컷] 월드컵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youngsports 2017. 9. 6. 19:57

[김태륭 원사이드컷] 월드컵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한국-우즈베키스탄 매치 리뷰

천신만고 끝에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저녁을 먹다가 요즘 부쩍 의사표현을 하는 19개월 된 딸 아이에게 물었다.

"딸, 오늘 한국이 이길 것 같아?"

잠시 고민하더니 딸이 대답했다.

"아니야!"

오랜만에 장인, 장모님까지 모시고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저녁 식사 자리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당황한 아내가 웃으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딸, 이따가 한국이 이겨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대답했다.

"아니야!"

정적이 흘렀고 갑자기 맛있는 고기 반찬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장인 어른은 웃으시면서 딸 아이가 요즘 반어법을 배웠다며 내게 말씀하셨다. 가족 식사의 단란한 분위기가 나의 불필요한 질문으로 이상해졌다. 현재 시간 새벽 4시, 가슴 졸이며 경기를 봤고 마지막 이란과 시리아 경기의 종료 휘슬까지 확인한 후 긴장이 풀렸다. 어쨌든 우리는 러시아에 간다. 생각해보니 딸 아이의 말이 정확히 적중했다. 한국은 이기지 못했지만 월드컵에 진출했다.

한국 대표팀의 선발 라인업

# 경기

신태용 감독은 3-4-3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김영권, 김민재와 센터백을 구성한 장현수의 위치에 따라 포메이션의 변형이 이루어졌다. 지난 이란 전 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기초 빌드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보였다. 센터백 한 칸 위에 위치하여 공격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정우영 선 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우영이 공을 잡은 이후 전방에서 공을 받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포지션 상 정우영 위에 포진된 대부분 선수들의 서포트가 활발하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몇 차례 장면에서 패스 속도도 아쉬웠다. 물론 좌우 순환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매번 발 밑으로 강하게 연결 할 순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해야 한다. 그래야 후방에서부터 긴장감이 형성되고 리듬이 붙는다.

정우영 기점, 전방의 서포트 움직임 부족 #1
서포트 움직임 부족 #2
드로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서포트 움직임 부족 #3

전반전, 우즈베키스탄의 점유율이 60%로 더 많았지만 우려했던 역습 상황에서 큰 위기는 없었다. 후방에 세 명을 둔 것도 주요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전환 능력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비 블록을 갖춘 상황에서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수비 블록이 지나치게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밀리면 항상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상대 공격수의 속도가 살아있는 상황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지연 동작을 취해야 하지만, 상대가 속도를 살리지 못한 채 전진한다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 판단이 늦으면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반 20분, 골대를 강타한 카이다로프의 중거리 슈팅이 바로 그랬다.

전반 종료 직전, 부상 당한 장현수가 구자철로 교체되며 한국은 확실한 4-2-3-1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구자철, 정우영은 3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했고 한국은 후반전 중원에서 괜찮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다만 2선의 적극성과 결정적인 상황에서 결단력이 아쉬웠다. 권창훈은 마치 부상을 숨기고 악전고투하는 듯 했고 손흥민은 최근 2년 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치른 모든 경기를 통틀어 가장 무기력했다.

하지만 전반전 활동량 때문인지 우즈베키스탄은 후반 20분 이후 눈에 띄게 기동력이 줄어들었고 전후 간격도 벌어졌다. 교체 투입된 구자철, 염기훈, 이동국은 제 역할을 해냈고 신태용 체재 최고의 발견인 김민재 역시 자신의 두 번째 A매치에서 가치를 증명했다.

A매치 두번째 경기를 치른 김민재는 오늘도 빛났다.

한국은 총 16차례의 슈팅을 시도했다. 그 중 세 차례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 뿐만 아니라 김민우, 손흥민의 골에 가까운 슈팅도 있었다. 90분 간의 득점 기회와 슈팅 상황을 고려하면 0-0 이라는 결과가 아쉽지만 운이 따라 2~3골이 들어갔다면 오늘 포털에 걸린 수많은 축구 기사의 제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역사와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경기가 끝난 직후, 녹화한 경기를 곧바로 다시 돌려봤다. 양 팀 모두 최근의 좋지 않은 흐름이 경기력에 그대로 표현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 보다는 그래도 한국의 전력이 강한 것은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후반전 무기력한 우즈베키스탄을 제법 잘 공략했다. 원정에서 전반전 잘 버텼고, 후반전 잘 넘겼다. 혹시 대표팀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낮아진 건가?

과거 대한축구협회의 전임 강사로 활동하며 대표 선수들을 육성했고 현재 강원FC의 전력강화팀을 이끌고 있는 송경섭 팀장은 오늘 경기에 대해 자신의 SNS에 코멘트 했다.

“상대가 볼을 잡으면 가난해보인다. 우리가 볼을 잡으면 쓸쓸해보인다.”

# 대표팀 그리고 부담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을 지켜보면서 나는 선수들과 코칭스텝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최선이라는게 과연 무엇일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모든 능력을 쏟아 내는 것이 최선이라면 선수단은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몇 선수들의 컨디션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을 지는 감독의 결정이기에 존중 받아야 한다. 나 역시 경기를 보면서 ‘김보경, 이재성 좀 넣어보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혼자 할 수 밖에 없는 생각이다. 승부 조작에 관여했거나, 팀에 불만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프로 레벨에서 필드 위에 올라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과거 선배들의 ‘붕대 투혼’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시대가 변했고 세대도 다르다. 이들이 괜히 한국 대표팀인가? 한국 축구는 지금 과거와 미래 사이의 매우 애매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대표 선수들이 좋게 말하면 착한 것 같다. 경기장 안에서도 그렇고, 경기장 밖에서도 그렇게 느껴진다. 우즈베키스탄 전은 분명 한국 축구의 명운이 달린 경기였다. 당연히 선수들이 받는 긴장감과 부담은 상상보다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오늘 선수들의 모든 플레이에서 느껴졌다. 위에서 언급한 2선의 소극적인 움직임, 서포트 동작 부족도 이런 심리적인 요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경기 중 자신의 동작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면 그만큼 동작은 늦어진다. 확신이 없으면 플레이는 소극적으로 변한다.

평소 리그에서 이들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공감 할 것이다. 리그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실수들이 여러 차례 나왔다. 심지어 오늘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력이 K리그 클래식 하위권 팀보다 결코 낫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감히 상상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것이 “대표팀의 무게감” 일 것이다. 물론 대표 선수로서, 프로 선수로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들이 또래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 유명세까지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도 결코 운좋게 공짜로 쟁취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대표 선수들이 조금 더 당돌했으면 좋겠다. 경기가 주는 압박감, 미디어의 시선 모두 부담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해야 좋은 선수에서 훌륭한 선수로 발전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외 여러 팀들이 유소년 단계에서 인적성 검사를 진행한다. 결과에 따라 적합한 포지션을 권유하는데 그만큼 개인의 성격도 축구 선수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천성은 못 바꾸지만 성격은 바꿀수 있다고 한다. 축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 그런 점에서 어린 김민재가 더욱 기대된다.

실전 경기는 선수를 가장 빠르게 발전 시킨다. 이런 경기의 경험이 국제 무대로 이어지고, 거기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중심이 되어 영향력을 발휘하고, 그 영향력이 팀 전체에 전염되면 팀 전체가 한 단계 올라선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부디 이번 최종예선의 경험이 대표 선수들의 쓰지만 좋은 약이 된다면 좋겠다.

# 현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이란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어진 기록이지만 이제 한국 축구 전체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월드컵 무대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과거 아시아 최종예선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는 ‘도하의 기적’이 있었고 사상 첫 원정 승리를 기록한 06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무패로 치고 나간 사우디에 이어 3승1무2패의 전적으로 조2위를 차지했다. 비교적 무난했다고 기억되는 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역시 4승4무, 무패로 조 1위를 차지했지만 조 최하위 UAE(1무7패)에게 거둔 두 번의 승리와 6골을 제외하면 승점 관리를 굉장히 잘 해낸 캠페인이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순위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순위표

4-3-3 포메이션이 아닌 4승3무3패, 카타르와 중국에게도 패한 것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이다. 이게 실화고 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세계 축구 속에서 아시아는 오랜 시간 변방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 속도가 더뎠고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국가들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의 강호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0년 대 들어 스포츠 과학의 발전, 지도자의 교류, 집중적인 투자, 정보와 인터넷의 발달을 통해 팀 간의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존의 강호들보다 약체로 분류되던 팀들의 발전 속도가 더 빨랐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다. 한국이 최종예선 10경기에서 4승 밖에 챙기지 못하고, 시리아가 이란의 홈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싱가폴이 일본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일이 지금의 현실이다. 재밌는 사실은 유럽도 그렇다. 피파 랭킹 136위 룩셈부르크가 프랑스와 비기기도 한다. 다만 아시아의 격차가 조금 더 빠르게 좁혀지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한국 축구의 흐름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미 그렇게 된지 꽤 오래 되었다. 연령별 대표팀, K리그 팀이 최근 아시아에서 거둔 결과를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그동안 우리는 무뎌졌고 크게 문제 삼지 않은 상태로 방치했다.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 한국 축구는 분명 아시아의 호랑이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 흐름은 결코 쉽게 그리고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한국 축구를 부활 시킬 뾰족한 대안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 축구는 몇 군데 큰 골절상을 입은게 아니라 내부 여러 장기에 암세포가 퍼져 있는 것과 같다. 항암치료가 필요하고 치밀한 식이요법이 필수다. 이건 절대적으로 장기전으로 가는 싸움이다.

지금은 해설을 하고 있지만 과거 선수 생활도 해보고 지도자, 행정도 해봤다. 축구 산업 속에서 숨쉬며 변화와 발전을 위해 내린 결론은 하나다.

‘시간’

한국 축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중요한 것은 지금 일선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도 부디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축구는 빠르게 변하고 앞으로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많은 것을 놓쳤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더 도태되지 않도록 향후 10년을 틀어막고, 동시에 그 다음 10년을 대비해야 한다.

# 앞으로 9개월

어쨌든 한국 축구팬들은 내년 월드컵을 기대 할 수 있게 됐다. 아무리 대표팀이 별로라고 해도 월드컵 본선에서 손흥민이 보아텡 앞에서 돌파하고, 김민재가 네이마르의 드리블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는게 낫지 않을까? 9개월 남았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획한 궤도와는 거리가 있는 길을 걸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긴급 소방수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매우 비슷하다. 결코 많은 시간은 아니다. 우리가 프랑스, 독일도 아니고 대표팀에 소집될 선수의 풀은 어느정도 한정되어 있다. 깜짝 발탁보다는 그동안 대표팀을 들락날락한 선수들이 러시아에 갈 확률이 높다. 9개월 후 러시아로 향하는 최종 엔트리 23인의 명단은 지금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이번만큼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모두가 조금 더 길고 멀리 시선을 두면 좋겠다. 곧 피파랭킹 산정 방법이 바뀐다고 하지만 현재 한국은 49위다. 물론 피파랭킹이 절대적이진 않다. 하지만 본선에 출전한 32개국 중 우리보다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팀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세계 레벨과 아시아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0년 들어 스포츠 과학이 현장에 접목되면서 유럽의 축구는 필드는 물론, 필드 밖까지 이어졌고 거기서 디테일의 차이가 발생했다.

과정의 아픔과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지난 6월 슈틸리케 감독 경질 이후 한국 대표팀이 어떤 상황이였는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남은 기간동안 잘 준비해서 조편성도 잘 나오고 경기 운도 잘 따라 전력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좋겠지만 16강 못 들면 어떻고, 1승 못하면 뭐 어떤가? 9개월 동안 신태용 감독이 소신 것 팀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올림픽과 U20 월드컵을 통해 신태용 감독 스타일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도 많지만 오히려 꽤 재밌는 축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지난 U20 월드컵 16강 전에서 한국은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포르투갈에게 완패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난 그 경기가 참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지더라도 스타일이 분명했고 세계 무대에서 당당했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현재, 한국의 피파랭킹은 49위다. 어렵게 어렵게 32개국이 출전하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했으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어떨까? 그래도 월드컵에 나가는 결과로 칼럼을 쓸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하다. 20년 후에는 독일, 스페인처럼 지역예선 쯤이야 전승으로 통과 하길 바라며.

김태륭의 '원사이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