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한국의 스포츠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한국 프로농구팀 트레이너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 교수로 변신한 홍정기 박사(41)가 미주 한인사회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홍 박사는 현재 오리건주의 주도(州都) 세일럼에 위치한 윌라멧(Willamette) 대학 운동과학과 조교수로 5년째 재직하고 있다. 1831년에 개교한 윌라멧 대학은 서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사립대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지 불과 7년만에 이 대학의 유일한 한인 교수로 임용됐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정형외과 의사 지망생부터 물리치료사, 체력 트레이너, 의사 보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는 지난해 윌라멧 대학에서 ‘올해의 교수’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고 내년에는 부교수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단기간 내에 이룬 그는 최근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의 스포츠과학 발전에 접목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실제로 그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그는 역도 청소년대표를 지낸 엘리트 스포츠맨으로 한국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프로농구 원년 우승팀 기아 엔터프라이즈에 입단, 다년 간 체력담당 트레이너로 경험을 쌓았다. 더욱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에 세계 최고 수준의 스포츠과학을 자랑하는 미국에 유학을 와서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유명 사립대에서 미국의 스포츠과학도와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와서 영어를 마스터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주류 학자들과 당당하게 경쟁하여 실력을 인정받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가 오늘의 결실을 얻기까지 어떤 노력이 숨어 있었을까.
어린 시절 꿈은 영어로 설교하는 목사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방송(AFKN)에서 일요일 아침에 방송해주던 미국 서부에 있는 수정교회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꿈을 꾸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목사님은 되지 못했지만 미국 교회에서 음악 인도도 하고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님이 되었으니 사실상 꿈을 성취한 것이 아닐까.
서울 태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서울체육중학교를 다닐 때 역도와 인연을 맺었다. 서울체고를 거쳐 한국체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유망 역도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 전국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했고 1992년엔 태극마크를 달고 대만 후체릉초청역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병역을 마친 그는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의학 석사 과정을 하던중 프로농구 출범을 맞았다. 당시 기아 정재공 국장과 친분이 있던 은사 유병렬 교수의 추천으로 원년리그부터 기아농구단의 체력트레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홍 박사와의 일문일답.
- 기아농구단은 허재 강동희 김유택 등 스타들이 많은 팀이었는데 에피소드가 많았겠다.
“초창기 트레이너 시절인 1998년 여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클럽농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 때 얘기다. 체력트레이너 2년차였지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고참선수들(김유택, 허재, 강동희, 이훈재)의 체력훈련을 시키는 위치여서 얕보이면 안 된다는 약간 미묘한 신경전을 펼칠 때였다. 대회 개막 전 주최측에서 준비한 연회장에 각 나라의 선수단, 기자단, 경기요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기 자랑이 있었는데 선수들의 등에 떠밀려 한국팀 대표로 무대에 서게 됐다. 나를 민망하게 하려던 선수들의 의도였지만 그곳 프로페셔널 밴드에게 ‘라밤바(La Bamba)’를 요청했고 아무도 예상못했던 열정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워낙 음악을 좋아해 대학 시절 많이 불렀던 곡이었다. 관중들과 팀 동료들을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 무대 후 고참 선수들의 마음도 얻게 되고 팀과 더 융화될 수 있었다."
- 한국 프로리그에서는 어떠했나.
“당시 김유택 선수는 냉면을 너무 좋아했는데 지방에서 원정경기가 있을 때 혼자 나가서 외식하기엔 쑥스러웠는지 꼭 나를 데리고 나가서 맛있는 냉면을 사주면서 그 냉면에 대한 레시피부터 이 냉면이 다른 냉면과 어떻게 다른지 등을 필요 이상으로 설명해주곤 했다. 사실 난 그렇게 냉면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김 감독님 덕분에 지금은 냉면광이 됐다. 한번은 박수교 감독님 시절 강원도로 팀 단합훈련을 갔을때 삼겹살 파티가 있다. 김유택 선수가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신참들이 줄을 맞춰 익고 있던 삼겹살의 대형(?)을 흐트러뜨리자 심각하게 화(거의 집합 수준)를 냈다. 그때 일이 어찌나 웃겼던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 늦은 나이에 유학 결심이 쉽지 않았을텐데…
“전문지식이 너무 한계라는 것을 느꼈기에 더 늦기 전에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 프로농구 2년차 때 기아농구단의 외국인코치로 왔던 탐 멕크라켄 코치가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1999년 결혼한 아내(장수경)와 함께 2001년 탐 코치가 살고 있던 오리건주의 애시랜드라는 소도시에 와서 1년 간 어학연수를 하며 그 도시에 있던 남부 오리건 대학에서 graduate athletic trainer로 인턴십을 했다. 영어 연수를 하며 대학의 미식축구, 축구, 야구, 소프트볼, 농구, 레슬링 선수들을 치료하며 재활하는 것을 배웠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출생했다. 큰딸 제나는 7살, 작은딸 유나는 19개월이다."
- 유학 이후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처음엔 탐 코치의 집에서 1년 간 홈스테이를 했는데 언어와 문화 차이 등으로 초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국인은 거의 없는 동네여서 이러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함께 고생하는 아내도 안타까워 보이고, 유학은 왜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낙심될 때도 많았다. 선수들이 얘기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 원하는 치료를 못해 주고 경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신뢰를 못 받는것도 참 힘든 부분이었다.”
- 그런 영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
“유학온 지 약 5개월 됐을때 탐 코치와 함께 다니던 미국침례교회의 목사님으로부터 주일예배의 음악을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됐다. 유학 오기 전에도 주일날 교회 음악을 인도하곤 했는데 탐 코치의 소개로 5개월 간 미국 교회의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봉사했다. 영어도 안 되는데 주일날 200여명의 미국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영어로 교회 음악과 찬양을 인도하게 된 것이다. 영어를 배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약 8개월 간 찬양을 인도하는 예배 인도자로 일했다. 매주 수요일 찬양팀 연습을 인도하기 위해 말할 것을 일주일 간 준비해서 하곤 했다. 그러면서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고 이 경험이 오리건 주립대학에서 박사를 시작하면서 조교로 일할 때 학생들을 리드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 처음부터 미국 대학교수가 목표였나?
“박사 학위를 준비하며 6년 동안 teaching assistant로 스포츠의학 관련 과목들을 가르쳤는데 가르치는 일이 너무 즐겁고 보람됐다. teaching assistant로서 흔치 않은 강의를 하게 된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박사 학위 후 연구를 하는 대학으로 가서 연구만을 하기보다는 장기를 살려 teaching 중심의 사립학교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2008년에 오리건 세일럼에 위치한 윌라멧 대학에 조교수 자리가 나왔고 박사 동기인 세 명의 미국 친구들과 함께 지원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캠퍼스 인터뷰를 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스포츠의학 강의(팔꿈치 부상 관련), 박사 연구 관련 강의, 학생들과의 인터뷰, 교수들과의 인터뷰, 학장과의 인터뷰, 저녁식사 등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일반 Division I 대학들에 비해 높은 연봉과 교수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음에 들었고 이 대학에서 정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인터뷰 다음날 KTF 농구단의 여름 전지훈련(LA)을 돕기 위해 공항으로 운전해서 가던 중 윌라멧 대학의 인문대학장으로부터 교수직을 주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올해로 4년째를 마치고 내년 여름에 부교수가 되기 위한 정년보장(tenure) 심사를 받게 된다.”
윌라멧 대학은 서부에서 가장 오래 된(1831년 개교) 학교로 잘 알려진 인문대학(Liberal Arts)이고 법대와 경영대학원, 교육대학원 등이 유명하다. 전체 학생 수는 3500명이고 매해 500명의 신입생들을 선발하는데 80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지원한다. 지원자들의 평균 SAT 점수는 1890점이고 평균 GPA는 3.79이다. 인터뷰할 때 느낀 건데 참 똑똑한 학생들이 많더라. 똑똑한 것뿐만 아니라 태도들이 너무 좋은 것이 장점이다.
- 미국의 스포츠과학과 스포츠의학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미국의 스포츠과학과 의학 분야는 선수 경기능력 향상과 부상 관리 및 방지와 관련해 깊이 있게 연관되어 있다. 한 예로 어떠한 트레이닝 방법이 선수들의 스피드를 0.5초 단축시켰다면그 훈련법을 무조건 도입하기보다는 어떠한 기전(機轉)에 의해서 그 훈련법이 효과적인지를 검증하고 이러한 훈련법이 어떠한 선수들에게 맞는지도 철저히 검증한다. 스포츠 부상과 관련해서도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나 견관절 부상이 어떤 기전에 의해서 일어나는지 근골격계, 신경계, 내분비계 및 환경적인 요인을 분석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부상 방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지책에 대한 효과도를 검증해서 프로그램의 활용도를 결정한다. 워낙 스포츠가 대중적이고 접하기가 쉽기에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박사들도 쉽게 스포츠와 관련된 연구를 할 수 있고 또 그런 연구들을 하기를 원한다. 의사들이나 다른 건강 관련 전문인들도 스포츠 관련연구에 관심이 많고 이 같은 연구에 공헌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철저히 하려는 멘탈리티와 상대적으로 풍부한 전문인력들이 미국의 스포츠과학과 의학분야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미국의 농구 스타와 감독들도 더러 만날 기회가 있었는지.
“2006년과 2007년 미국 대학농구 토너먼트 기간 중 현 워싱턴대학의 농구팀 감독인 로렌조 감독, UNLV의 전설적인 탈케니안 감독, 시카고 불스에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로 유명한 윈터 코치, NBA 휴스턴 로케츠의 하킴 올라주원 등을 만났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다. 2년 전 곤자가 대학의 제리 크라우스 농구 수석코치를 만나 인터뷰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나 “현재 재직 중인 윌라멧 대학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관련 분야의 연구를 잘 수행해 내년에 있을 부교수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라면 지금까지 배워오고 습득했던 전문지식과 경험들을 한국의 스포츠과학과 의학계와 나누며 미력하나마 한국 스포츠과학계의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 뉴스로를 통한 나눔이 좋은 시작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홍정기 교수는 최근 뉴욕을 방문, 이황용 한국청소년재단회장이 주관한 운동선수 능력 향상 및 만성 통증 치료를 위한 운동요법에 대해 강의를 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체대 선배이기도 한 이 회장과 함께 미주한인커뮤니티를 위한 봉사 활동에도 힘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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