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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에이전트 활성화, 쟁점과 과제는

youngsports 2016. 10. 10. 13:13
한국형 에이전트 활성화, 쟁점과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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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포스팅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미네소타트윈스와 계약한 박병호(왼쪽)가 지난 1월 출국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시즌 포부를 밝혔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 진출 관련 기자회견을 가진 뒤 에이전트인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 대표와 퇴장하고 있다.그랜드힐튼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과연 한국판 ‘제리 맥과이어’는 탄생할 수 있을까? 

에이전트제도 활성화는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에이전트 제도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스포츠산업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의도다.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생소한 직업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1996년 개봉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서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이전트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에이전트 제도가 정착된 것은 40여년에 불과하다. 프로스포츠가 도입된 지 채 40년이 되지 않는 국내의 스포츠 저변에서는 에이전트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기까지 아직도 멀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최고의 흥행카드인 프로야구는 지금까지 에이전트제도를 거부해왔고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경우에는 샐러리캡 때문에 에이전트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에이전트들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로축구에서도 에이전트를 두지 않고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프로야구 규약에는 변호사에 한해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는 에이전트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선수들도 구단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외국인선수들은 버젓이 에이전트를 두고 국내 구단들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 관례다. 국내 선수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제는 프로야구도 2017년부터 에이전트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과연 쟁점은 무엇이고 어떤 논의들이 오가는지 짚어봤다.

이예랑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대표. 이 대표는 박병호 뿐만 아니라 김현수의 볼티모어행까지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랜드힐튼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에이전트제 도입을 꺼렸던 이유 
프로야구 구단들은 지금까지 에이전트제 도입에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지금까지는 연봉협상의 주도권을 구단이 쥐고 있었지만 에이전트제가 도입되면 선수들이 주도권을 가져가거나 적어도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으로서는 인건비(선수연봉)가 급상승하면서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에이전트 수수료는 통상 5~10% 수준이다. 선수 연봉이 5~10% 늘어나봐야 에이전트 수수료를 떼고 나면 선수에게 돌아가는 순수연봉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렇다면 에이전트가 실질적인 선수 연봉을 5~10% 늘리기 위해서는 구단에 10~15%의 연봉 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구단의 예산 부담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모기업의 지원 없이 자생할 수 없는 국내 프로스포츠 여건을 돌아보면 구단의 선택지는 더 좁아진다. 

구단 입장에서는 꼭 붙들어매야할 선수들의 연봉이 늘어날 경우 저연봉 선수들의 연봉수준을 동결하거나 줄여 가능한 적자폭을 메우려할 것이 뻔하다.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저연봉 선수에게 수수료를 받아봐야 ‘푼돈’으로 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고액연봉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게 된다. 저연봉 선수들 가운데서는 향후 대어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들만 관리하면서 선수들의 연봉격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저 연봉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한 수준까지 치닫게 될 우려가 있다. 

선수들의 해외 유출이 급증하면서 국내 프로스포츠 산업이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프로스포츠의 현실을 고려하면 에이전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해외 시장으로 선수들을 진출시켜야 목돈을 쥘 수 있다. 톱클래스의 선수들 뿐만 아니라 준척급 선수들까지 해외로 빠져나가면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국내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땅에 떨어질 수 있다.

오승환,새로운도전을향해[SS포토]
해외원정도박 파문 속에서도 ‘돌부처’ 오승환(왼쪽)의 세인트루이스행을 성사시킨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 김동욱대표(오른쪽)가 지난 2월 스프링캠프 참가를 위해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오르는 오승환과 함께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인천공항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에이전트제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에이전트의 역할은 단지 연봉협상의 대리인에 머물지 않는다. 선수를 상품화해 시장에서 그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종합적인 매니지먼트를 해야하는데 이를 구단이나 선수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지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에이전트제의 도입과 정착이 시급한 이유다.

에이전트는 선수가 확보하기 어려운 타 팀의 연봉 구조, 다른 선수들의 세부 계약조건, 연봉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세부 데이터 등 다양한 정보를 앞세워 교섭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대신해 구단과의 협상을 진행한다. 경기 외에도 광고 등 다양한 상업적 활동으로 선수들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스포츠산업 전반을 살찌우게 된다. 선수와 구단 사이에서 완충지대를 만들어내고 양측의 갈등을 중간에서 해소시킬 수도 있다. 선수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선수와 구단이 동등한 관계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에 선수들의 권익도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선수는 계약 등 경기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다. 자격을 공인받은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계약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이면계약 등 뒷거래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선수의 수익이 다각화되면 수입에 대한 연봉의존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연봉협상의 여지가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구단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게다가 선수의 사생활 관리 등에 들어가는 품까지 줄일 수 있다. 선수와 구단이 동등한 관계에서 만나기 때문에 선수의 권익도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선수에 대한 가치평가가 객관화되면서 선수 수급시장이 투명해지고 트레이드 등 선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전체 리그의 전력을 상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  

ML오퍼 기다리는 이대호, 롯데 캠프는 27일까지[SS포토]
메이저리그 진출 협상을 벌이는 동안 몸을 만들기 위해 친정팀 롯데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이대호가 에이전트와 그라운드를 돌며 몸을 풀고 있다.피오리아(애리조나) |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 에이전트제 도입의 쟁점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정금조 운영육성부장은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리그 사무국이 큰 틀의 그림을 그렸지만 시행세칙은 선수노조와 선수협회가 갖고 있다. 그래서 KBO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한국형 에이전트제 운영 방안에 대해 6개월째 논의하고 있다. 일단 2017년에 도입하되 첫 시행은 2017시즌을 마친 뒤 2018년 연봉협상부터 하기로 밑그림을 그린 상태”라고 밝혔다. 

에이전트제 도입에 가장 큰 쟁점은 에이전트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규정하느냐다. 미국의 경우 에이전트는 연봉계약은 물론 방송출연 주선 등 선수의 모든 것을 관리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연봉협상으로 에이전트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에이전트제 도입에 대한 광범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 부장은 “미국식은 에이전트에게 모든 것을 개방하고 있지만 타 종목의 경우를 살펴보면 제한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에도 에이전트를 통해 연봉협상을 대리하는 경우가 3%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참여도가 높지 않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에이전트의 자격 범위를 어떻게 제한할 것이냐도 관건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변호사와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다. 국내 프로축구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에이전트와 변호사, 선수 직계가족에 한해 에이전트 자격을 부여한다. KBO와 선수협도 이 문제를 두고 10월 중에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에이전트가 난립할 경우 구단은 물론 선수들의 부담도 커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 부장은 “기존 규약은 변호사에 한해 선수를 대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해외진출 등과 관련해 에이전트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 변호사만을 자격기준으로 삼기는 쉬워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 수수료를 어떻게 책정하느냐도 문제다. 연봉협상 과정에서의 불리함을 지움으로써 선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도입했지만 수수료 문제로 오히려 선수와 에이전트 간의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에이전트가 개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정액제나 선수의 수입 가운데 일정 비율을 떼는 정률제가 대표적이다. 정액제는 선수가 지불해야할 수수료를 미리 알 수 있지만 에이전트에게 동기부여가 거의 없고 ‘적정 수준’의 수수료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정률제는 선수 수입을 극대화해야 에이전트의 수입이 커지기 때문에 선을 넘어서는 활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금액이 올라갈수록 선수와의 갈등 가능성도 커진다. 선수 수입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규정하느냐도 논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 KBO와 선수협은 양쪽의 장점을 혼합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도 최저연봉 선수는 최고 2000달러, 최저 연봉을 초과하는 수입에 대해서는 최고 4%까지 수수료의 상한선을 두고 있다. KBO는 일본 프로야구를 벤치마킹해 연봉 1억원 이하의 선수는 수수료 500만원, 연봉 1억원 이상의 경우에도 1000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구상이다. 

에이전트들의 부정행위에 대한 제재 장치도 필요하다. 과도한 경쟁이 벌어질 경우 어린 아마추어 선수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한 불법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먼 미래의 계약을 담보로 금품을 제공하거나 타 에이전트의 선수를 가로채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위배하는 물밑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선수의 의사에 반하거나 선수의 허락 없이 에이전트로서의 권리를 남용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에이전트제 도입에 앞서 제도적인 방어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역풍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 규모와 상황에 걸맞는 한국형 에이전트제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이전트제를 도입하기만 하면 스포츠산업의 몸집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분명 스포츠산업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찮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그러나 구더기 무섭다고 장 담그기를 포기할 수 없는 것 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건강한 스포츠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각 종목별, 리그별로 제도와 규칙을 만들고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그 안에서 건강한 경쟁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스포츠산업의 발전이라는 대명제에 부합하는 에이전트제의 달콤한 열매를 모두가 맛볼 수 있다. 결국은 도입 자체 보다는 어떻게 운용의 묘를 살리느냐가 에이전트제 도입의 핵심이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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