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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행](13)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행복'을 묻지 않는다

youngsports 2016. 6. 1. 07:50
[행복기행](13)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행복'을 묻지 않는다


“친구와 노는 게 너무 재밌다. 방학 때도 학교에 가고 싶다.”(8세 초등학생)

“하기 싫은 걸 공부(study)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배우고(learn) 있다.”(10대 고교생)

“젊으니까 일단 놀고 직업은 나이가 들어 찾으면 된다.”(20대 남자 휴학 알바생)“지금 사는 집보다 더 큰 집에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꿈이다.”(30대 남자 변호사)


“기회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창조적일 수 있다.”(40대 고등학교 교사)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 상상할 수 없다. 개인은 가족 안에서 완성된다.”(40대 영양학 박사)close

하고 싶은 것은 다 했기 때문에 여성으로 태어난 걸 후회한 적이 없다.”(50대 유치원 원장)

“자식과 친구, 나라가 나를 죽기 전까지 돌봐주리라 믿는다.”(60대 여성)

“2~3년 지나 은퇴한 뒤 대학에 다시 들어가 종교에 대해 배우고 싶다.”(70대 유치원 원장)

북위 64도에 있는 유럽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최근 몇 해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 등 국제기구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줄곧 최상위에 랭크됐다. 영국 신경제포럼(NEF)은 “강력한 사회정책, 친환경적 삶이 아이슬란드를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아이슬란드를 찾아 약 50명을 인터뷰했다. 6세 어린이부터 은퇴를 앞둔 70대 할머니까지 만났다. 고등학생, 대학생, 휴학생, 교사, 교수, 간호사, 변호사, 축구코치, 은행원, 운전사, 여행가이드, 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했다. 이들에게 ‘당신은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얼음땅’에서 친환경에너지의 나라로

질문에 대한 아이슬란드인들의 답변은 모두 “행복하다”였다. “노(No)”라고 답한 사람은 거짓말처럼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10명 중 3명 정도는 “왜 행복한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들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은 ‘물고기에게 물에서 사는 게 왜 좋으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어린이들이 지난 1월 방과 후 축구장에서 모여 함께 공을 찬 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사람들은 행복한 이유를 평범한 것에서 찾았다. 단단한 혈연관계, 이웃과의 끈끈한 유대감, 깨끗한 환경, 부담 없는 학업, 낮은 범죄율, 일자리, 넉넉한 돈, 확실한 남녀평등,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다른 곳에서는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들이 이곳에서는 기본적인 일상이었다.

이 나라도 예전에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혹독한 추위 속에 겨울철이면 얼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지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관광지로 꼽히지만 사실 아이슬란드는 척박한 얼음땅이다. 곡식을 경작할 수 있는 곳은 국토의 2% 이하다. 용암이 흘러 굳은 검은 지평선, 빙하로 뒤덮인 평야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었다. 1783년 엄청난 화산 폭발로 9000여명이 사망했고 가축의 80%가 죽었다. 기근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죽음의 위협이 상존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가족, 이웃 사이의 유대가 강한 건 당연했다. “위로 6대만 올라가면 모두 친·인척”이라는 말도 그렇게 나왔다. 지금도 수도 레이캬비크에 전체 인구 33만명 중 절반인 17만명이 산다. 아이슬란드는 한국보다 약간 크고 레이캬비크는 서울 절반 크기도 안된다.

깨끗한 환경 속에 사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비가 내리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1970년대 이전까지 아이슬란드는 석탄과 석유로 인한 극심한 대기오염 속에 어업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나라였다. 1995년 제5대 대통령이 된 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현 대통령(73)이 에너지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화산 200개, 온천 600개에서 발생하는 지열, 풍력, 조력 등을 이용한 재생가능 에너지가 나라를 변모시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15 재생에너지 정보’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1차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 1위(89.3%),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한 전력생산 비율 세계 1위(100%)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아이슬란드는 지하 1㎞에 있는 물탱크에 200도로 끓는 온수가 있는 지질학적 구조를 갖고 있다”며 “재앙의 불씨를 경제발전의 불씨로 바꿨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지열발전소 7개, 풍력 및 조력발전소 60개가 가동되고 있거나 건설 중이다. 유엔은 1979년부터 이곳에 유엔대학교-지열훈련프로그램(UNU-GTP)을 운영하면서 세계 각국 인재를 불러 교육시키고 있다.

레이캬비크 도로와 보도 아래에는 지열로 데워진 온수 파이프가 깔려 있어 겨울에도 눈이 잘 녹는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식수는 지열로 빙하를 녹여 쓴다. 화장실 물도 그냥 마실 수 있다. 지열발전으로 데워진 온수가 거의 모든 가정에 공급돼 난방까지 해결한다. 찻길, 보도 아래에도 겨울철 눈을 녹이기 위한 온수 파이프가 깔렸다. 레이캬비크대학교에서 지열발전을 연구하는 마리아 구드욘스도티르 부교수는 “비행기, 선박, 자동차만 빼고 모든 게 친환경 에너지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고민’은 없다

친환경 에너지로 아이슬란드는 큰돈을 벌었다. 아이슬란드에는 세계 주요 알루미늄 공장들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보크사이트를 수입해 값싼 전기로 알루미늄을 만든다. 이렇게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한때 국내총생산(GDP)의 10배가 넘는 돈이 몰리면서 꿈 같은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2008년 3대 은행이 파산하면서 채무국이 됐다. 뼈를 깎는 자구책으로 다시 살 만한 나라가 된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15년 1인당 GDP에서 세계 10위(5만855달러)에 올랐다.

금융위기 극복에 큰 몫을 한 에너지 혁명은 삶의 질도 끌어올렸다. 지열발전을 연구하는 오르쿠가르두 연구소의 잉그마르 하라드손 사무국장은 “집이 따뜻해졌고 호흡기 질환이 줄면서 수명도 늘었다”며 화석연료를 쓰던 시절의 시커먼 대기 사진과 현재의 파란 대기 사진을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두 사진은 확연하게 달랐다. 하라드손 사무국장은 친환경 에너지가 사람들의 관계까지 돈독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열로 데워진 온수가 풍부하게 공급되자 겨울철이면 주민들이 야외 워터파크에 모인다”고 귀띔했다. 겨울철이면 해가 떠 있는 낮 시간은 5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자살충동을 없애려고 항우울제를 먹는 이들이 급증하는 때다. 아이슬란드에는 유명한 블루라군 등 노천온천과 워터파크가 곳곳에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된 영화들도 많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터스텔라> <배트맨 비긴즈>가 그렇다. 해외 관광객도 크게 늘어났다. 2014년에는 93만명이 왔다. 전체 인구의 세 배 가까운 수치다. 관광수입이 어업(40%)에 이어 GDP의 30% 안팎을 차지한다. 올해에는 150만명이 이 나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와 제2외국어를 의무적으로 배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면 덴마크어 또는 독일어까지 대개 3개 국어를 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주면서 현금을 쏠쏠하게 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건이다. 최저시급은 우리 돈으로 1만4000원 정도다. 여기에도 40% 안팎의 세금이 매겨지지만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일자리를 잃으면 최장 30개월 동안 일할 때의 80% 수준의 실업급여가 나온다. 싱글맘, 장애인은 정부지원 0순위다. 세율은 보통 40%를 약간 넘는 수준으로 50%가 넘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보다는 낮다.

레이캬비크 시민들이 시내 최대 온천 워터파크인 러이가 달스 러이그에 가족, 친구 단위로 모여 즐거운 밤시간을 보내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레이캬비크 시민들이 시내 최대 온천 워터파크인 러이가 달스 러이그에 가족, 친구 단위로 모여 즐거운 밤시간을 보내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레이캬비크 시민들이 시내 최대 온천 워터파크인 러이가 달스 러이그에 가족, 친구 단위로 모여 즐거운 밤시간을 보내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 유일하게 군대가 없다. 해안경비대와 경찰만 있다. 국방비는 GDP(2012년)의 0.13%에 불과하다. 경찰조차 총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2014년 정부가 덴마크에서 총기 130정을 수입하자 4500명이 의회 앞에 모여 인형을 흔들며 반대 시위를 했다. 결국 총기는 모두 반환됐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크리스틴(39)은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며 “경찰이 총을 가지면 범죄자도 총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수감자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레이캬비크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걱정 없이 어린 딸을 거리에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은 부모로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어떤 제도도 개인의 행복에 앞설 수 없다

아이슬란드가 추구하는 행복의 핵심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있다. 어떤 제도도 개인의 행복에 앞설 수 없다. 결혼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결혼을 집안 사이 결합으로 이해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둘이 원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같이 살면 된다.

아이슬란드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는 헤어딘 에릭손(29)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밀당’할 것 없이 함께 살면 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면 헤어지면 된다”고 했다. 그는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제도 속에서 함께 사는 것은 고통”이라며 “동거도, 이별도 모두 개인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2년 동안 사귄 뒤 동거를 시작한 지 2년이 됐다는 그는 “은행 계좌도 따로 쓰고 생활비도 반씩 낸다”며 “남녀가 서로 똑같은 존재로 인정하고 똑같이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대할 뿐, 상대를 속이거나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헤어질 때에도 쿨하게 이별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데이트폭력’ 따위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아이슬란드 부모들이 레이캬비크 스포츠센터에서 체조를 하고 있는 자녀들의 모습을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남녀가 함께 살면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가 절반, 하지 않는 경우가 절반이다. 이전보다는 혼인신고 없이 동거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두 경우 모두 법적으로 받는 혜택은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혼인신고를 했을 때에는 이혼 시 모든 것을 반반씩 나눠야 한다. 양육비는 부모 중 한쪽이 내면 된다. 만일 내지 못하면 정부가 대신 지원해준다. 신중한 혼인신고, 어렵지 않은 이혼 모두 개인 행복을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여성들의 권리는 당연히 강력하게 보장돼 있다. 남녀 성비가 1.01 대 1.00으로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나라다. 하지만 공짜로 이뤄진 평등은 아니다. 1975년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평등을 누려야 한다며 ‘원 데이 오프’ 캠페인을 벌인 것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전국 여성의 90%가 시위에 참여했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출근을 거부했고 주부들은 집안에서 일손을 놨다. 남성과 동등하게 처우해주지 않는다면 보이콧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현재 여성의 월급은 남성의 90% 안팎으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평등하다. 여성들이 일찌감치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해온 결과다. 그러나 여전히 완벽한 평등은 아니다. 지난해 레이캬비크에서는 여성들이 상의를 벗고 가슴을 드러낸 채 ‘프리더니플(FreeTheNipple)’이라는 양성평등 캠페인을 벌였다. 또 여성들은 1년 중 하루를 정해 남성들과 같은 수준으로 월급을 올려달라는 시위를 하곤 한다.

레이캬비크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업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출산 후 1년 동안은 유급 육아휴직이 주어진다. 5개월, 2개월, 5개월로 나눈 뒤 앞뒤 5개월은 부모가 교대로 하고 가운데 2개월은 상호 합의에 따라 한쪽이 한다. 2000년 만들어진 ‘3(개월)-3(개월)-3(개월)’ 정책이 2012년 ‘5-2-5’로 확대됐다. 정부는 출생 후 6개월 동안은 모유수유를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여성도, 성소수자도 차별받지 않는다

10대 후반에 아이를 낳는 여성들이 많지만 아이를 버리는 경우는 없다. 오래전 기근 등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일까. 부모가 누구든, 어떤 사정을 갖고 있든 탄생은 항상 축복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일터가 오후 4시 전후에 끝난다. 이 시간이 되면 일제히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 학교로 달려간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5년 엄마 지수(Mothers’ Index)’에서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 핀란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엄마가 살기 좋은 나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여대생 아르나(26)는 동거 7년째로 아이가 둘이다. 아르나는 “남자친구가 공부할 때에는 내가 돈을 벌었고 지금은 남자친구가 돈을 번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친구 에바도 “4년 동안 교제하다가 동거한 지 1년 됐다”며 “우리 커플은 요리를 비롯해 모든 걸 나눠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교장 훌다 아우스게일스도티르(59)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으니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 적은 없다”며 “다만 외국여행을 하기 좋은 독일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보고 싶기는 하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의 4대 대통령은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86)다. 이혼한 싱글맘인 그는 1980년 유럽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된 뒤 1996년까지 17년 동안 재임했다. 2009년에는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항공 승무원 출신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74)였다. 시귀르다르도티르는 이듬해 여성과 결혼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미 1850년에 재산상속에서 무조건적인 남녀평등 원칙을 확립했다. 단연 세계 최초였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것도 1915년으로 미국보다 5년 빠르다. 남녀 대학생 비율은 1 대 1.7이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도 여학생이 더 많다. 의회에서 여성 의원 비율은 40% 안팎이다.

유치원 생들이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야외활동을 하고 있다. 한 아이슬란드 부모는 “바람에 아이가 날아가지 않은 한 눈이 오든 비가 내리든 거의 매일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성소수자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설문조사기관 ‘플래닛로메오’가 지난해 조사해보니 아이슬란드의 게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래닛로메오는 “게이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 자유, 정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대학생 에릭손은 “이곳에서는 게이, 레즈비언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며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비슷한 비율로 존재할 것 아니냐”고 했다. 아이슬란드는 1996년 동성애자 노동조합도 합법화했다.

초등학생들이 미술시간 도중 장난을 치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그렇다면 아이슬란드인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까. 모국을 떠나 이 나라에 정착한 외국인의 눈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조차 행복한 고민으로 보이는 듯했다. 4년 전 이주해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는 스페인 남성 페페는 “여기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게 너무 많아서인지 인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대개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까. 바쁜 와중에 어떻게 부모를 더 챙길까. 어떻게 돈을 좀 더 벌까. 긴 겨울 동안 어디로 놀러갈까 같은 것들 말이다.



■풍요와 안정이 불러온 개인주의

교육체제는 초등학교 6년제(또는 9년제), 고등학교 3년제, 대학교 3~4년제로 돼 있다. 생후 1년6개월부터 유치원에 간다. 공립 유치원은 거의 무료다.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적극적으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유치원생 아이를 둔 마가레트는 “인성위주 교육이 진행되고 야외활동도 의무적으로 한다”며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무척 원만하다”고 말했다.

레이캬비크 고등학교는 명문으로 꼽힌다. 학생은 약 870명, 교사는 60명 정도다. 수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40분 수업에 10분 휴식이다. 커리큘럼은 크게 과학과 언어로 구분된다. 학생 뷔욘 잉기 존슨(18)은 “내 인생을 내가 조절하며 만들어갈 수 있다”며 “옵션이 많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배우면 된다”고 말했다. 마티아스 크리스스손(18)도 “아이슬란드에서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공부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어 교사 리스티아나 뷔오르크 스웨이스도티르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인 것은 물론이고, 국가가 해외유학 비용까지 지원한다”며 “한번 실패해도 기회가 또 있다는 게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소르케츠 로이 스테이손은 “사회에 다양한 옵션과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창조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교 수업료는 1년에 7만크로나(약 63만원) 정도다. 의학, 법학, 약학을 빼면 입학시험도 없다. 공부하기 싫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면 되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직업을 원하면 다시 공부하면 된다.

아이슬란드는 너무나도 살기 좋은 곳이 됐다. 조부모, 부모 세대가 노력한 덕이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걸 잘 모르는 듯했다. 교사 스테이손은 “젊은 세대들은 지금의 좋은 환경이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진 것으로 안다”며 걱정했다. 버스 운전사 존(74)도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고생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며 “저축도, 절약도 모른다”고 말했다. 할머니 교사 안나(70)도 “요즘 젊은 세대는 너무 물질적으로 변했다”며 “동거도 사랑하기보다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태권도 수업을 받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포르투갈 출신인 상점 판매원 소니아는 “아이슬란드인들은 목표의식이 부족하고 노력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며 “밤이 긴 겨울에도 조금만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는 식으로 항우울제만 먹는다”고 말했다. 평소 생존을 위한 분투가 적은 만큼,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려움을 극복하기보다는 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스페인인 페페도 “이들은 내가 아니면 남이 하면 되고,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산다”며 “바깥세계에 신경 쓰지 않고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우리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슬란드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크리스틴 마리아 크리스틴도티르(27)는 “아이슬란드인들이 ‘지금이 좋다’고 말하는 데에는 내일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고 지금처럼 행복하면 좋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군날 온 이골손(33)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냉정하게 진단했다. 이골손은 “지금 아이슬란드인들은 원하는 걸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고 시간도 여유롭기 때문에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며 “지금 이들이 더 좋은 삶을 위해 하는 고민도 ‘행복한 투쟁’일 뿐”이라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 눈이 덮힌 아이슬란드 설원을 구경하고 있다. 레이캬비크 | 김세훈 기자



아이슬란드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주변과 격리돼왔다. 황무지에서 힘겹게 살다가 최근에야 부국이 된 나라다. 이들에게 바깥세상 일은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주위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통을 머리로 알 뿐 가슴으로는 잘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리는 물질적 풍요로움, 막연한 낙관주의, 그리고 급상승하는 물가는 큰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이골손은 “재산은 소유하는 것이지만 관계는 공유하는 것”이라며 “어쩌면 지금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이기적인 나라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아이슬란드가 앞으로 다가올 정체성 위기에 대비하려면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지금 누리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통에 처한 타인을 도우면서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구정은 김세훈 장은교 김보미 박은하 정희완 김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