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Revolution· Psychology

혜민 스님 “학교성적 60점을 주려고 하면 뻥 차버려라, 남의 가치는 효용없어”

youngsports 2012. 7. 1. 01:29

 

ㆍ베스트셀러 작가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68만여부 팔려/경향신문 인터뷰 인용

스님은 걸음이 빨랐다. 한낮의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산길에서 헉헉대며 스님을 곁눈질했다. 움직임이 경쾌했다.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선하게 모였다 흩어졌다. 웃음도 많았다. “스님 스스로가 행복한 일을 찾아 하시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저 나름 되게 행복하거든요.” 또 웃음을 터뜨리자 축 처진 눈꼬리가 입꼬리에 가 닿을 듯했다.

팔로어가 2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혜민 스님의 트위터도 그렇다. 모국어가 그립고 머나먼 타국 생활이 외로워 시작했는데, 스님 자신을 행복하게 했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퍼뜨렸다. 트위터 글을 모아 펴낸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13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며 68만여부가 팔렸다.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뽑아 든
스마트폰에서 이런 문구를 접하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비가 오는 밤늦은 퇴근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문득 ‘내가 이러고 평생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 좀 힘들어도 괜찮아집니다.”


▲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
내가 옳다고만 하면 상처 줄 수도
앞에 있는 사람과 같이 행복해져야


지난 28일 만난 스님은 충남 공주 마곡사에 머물고 있었다. 스님은 간화선 참선 수행을 경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통역을 도와주며 그들과 함께 수행 중이었다. 트위터 이전에도 혜민 스님은 ‘미국 최초의 한국인 스님 교수’ ‘하버드대 출신 스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냈고, 방송 출연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에서는 “왜 출가했나”라고 묻는다. 속세의 사람들로서는 훈훈한 외모에 하버드·프린스턴을 거친 그가 왜 세속적 성공을 바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고교 때부터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어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왜 태어났으며 삶의 이유는 뭔가. 별의별 철학책들을 다 보기도 했죠.” 종교와 예술은 그가 풀고 싶은 의문의 두 축이었다. 고교 시절 8㎜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그는 대학로 극단에서 연기도 배웠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은 그런 의문에 답을 주기는커녕 ‘탈출’만을 꿈꾸게 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초겨울에 난로를 때자 학교 굴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마치 학교가 아닌 공장에 있는 것만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공부를 위해 다다른 미국 UC버클리대에서는 불교와의 인연이 가랑비에 옷 젖듯 계속됐다. 기숙사로 돌아가던 도중 우연히 만난 빨간 승복의 티베트 승려는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명상법을 알려줬다.

밤마다
파티가 열리고 마약에 찌든 미국 대학 기숙사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학교 근처의 절에서 지내기도 했다. 점차 ‘전쟁’ 같은 영화제작보다는 종교적 의문을 푸는 것이 우선이다 싶었다.

하버드대 석사 과정에서의 경험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하버드대에 갔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어요. 도리어 내가 가장 바라던 장소에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았죠.” 그러다 단기 연수로 중국에 함께 간 친구 존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일요일마다 사라져서 어디 좋은 곳에 가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4시간 떨어진 에이즈 마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어요. 머리를 한 방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하라, 앞만 보고 달리라고 했지 삶의 의미를 따져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똑똑하고 머리 좋은 친구가 옆을 보면서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승려가 된 이유는, 이렇게 한 생을 끝없이 분투만 하다 죽음을 맞이하기 싫어서였습니다.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서 끝없이 경쟁만 하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게 되면 얼마나 허탈할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습니다.” 혜민 스님은 “머리로만 깨달음을 공부하고 실제 행하지 않는 것은 책으로만 요리를 알고 한번도 안 해본 것과 같다”며 “은사 스님(뉴욕 불광선원 휘광 스님)을 만나 수행자가 돼보자는 마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현실을 헤쳐나가면서 겪었던 경험과 고민이 반영돼서인지 사람들은 “스님은 뜬구름 잡는 얘기 안 해서 좋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마음치유 콘서트’는 구체적인 삶의 질문과 답을 더욱 벼리게 된 자리였다. 지난해 안식년으로 한국에 머물면서 안국선원의 젊은 불자들과 만나기 시작한 법회는 타 종교인들까지도 참석해 콘서트로 커졌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 간의 상처나 콤플렉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소외감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아낸다.

혜민 스님의 말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사람들은 혜민 스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 궤적을 살핀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 실망에 빠지고, 우울에서 헤어날 수 없을 때 우리 안에는 그 마음의 움직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주시자, 관찰자가 있다.

 

“내 안의 감정조차도 내 것이 아닌 양 타자화해서 아는 앎이 있습니다. 그 앎과 친해지면 우리 안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앎 자체는 본래 청정한 것입니다. 매일 쓰고 있고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불가에서 강조하는 ‘참 나’를 찾는 길도 이와 같다. “손뼉을 쳐 보겠습니다. (짝짝) 이 소리를 알아듣는 앎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통은 우리 안에서 인식한다고 느끼지만 그 앎 자체가 형상이나 모양이 있습니까.
여기저기 안팎 없이 듣고 보며 아는 것 자체는 무형상입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해 느끼는 감정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걸 지켜보는 본래의 나야말로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경봉 큰스님은 “우리가 사는 것이 전부 남의 다리 긁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마음을 뜻대로 하려면, ‘나’를 먼저 찾으라”고 했다. 혜민 스님은 책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참 나’의 입장에 서서 스스로의 감정 흐름을 읽고,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감정의 밖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를 둘러싼 각종 유혹도 물리칠 수 있다.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안다면 그것이 칼 위의 꿀이란 걸 알게 되겠죠.
드라마 재방송 보는 것 같지 않겠어요?”

취업 시험에 떨어져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던 어떤 청년은 혜민 스님의 응원에 합격의 기쁨을 맛봤고, 자살을 결심했던 이는 ‘나를 아끼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혜민 스님이 명문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큰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스님은 “그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스님에게 “어떤 수행을 얼마나 하느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는 “어떤 종단, 어떤 사찰에 소속돼 있느냐”고 물을 만큼 출신·학벌을 따진다.

다만 스님은 “저한테 관심을 가져주시지 말고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를 봐 달라”며 “관심이 저에게만 머물면 의미가 없다. 사회를 밝힐 수 있는 곳으로 돌려주시라”고 말했다.

“유명인은 제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전하고 싶은 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자신을 너무 방치하지 말고 아껴주는 시간을 좀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항상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러지 못해 소외감을 느낍니다. 제 역할은 그들에게 따뜻한 얘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은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본인은 전혀 선택을 하지 않았는데 이 지경에 왔다고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그런 태도가 “단지 책임을 지기 싫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스님은 “학교 성적표를 가지고 당신에게 60점이라고 매기려 한다면 그걸 뻥 차버려라,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이 들이대는 가치는 효용이 없다”고 말한다. “인생의 운전대를 본인이 잡고 능동적으로 가라”고 말한다.

이런 말에 대해 어떤 이들은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지운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스님은 책에 “정의가 무너졌다고 판단됐을 때 어떻게든 불의에 맞서려는 그 마음을 잃지 말라”고 썼다. 다만 스님은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과 같이 행복해지는 것인데, 자신이 옳다고만 주장하면 설득도 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상처만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자라온 과정에서 형성된 내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스님은 문득 마곡사의 다리를 건너며 합장해 오는 신도들에게 두 손을 모으며 말을 이었다. “지나가던 상대가 합장을 하니 나도 정성스레 합장을 하는 것처럼 상대로부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자신이 먼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곡사를 떠나기 직전 낯 모르는 한 중년 남성이 지나가다 헐레벌떡 되돌아와 혜민 스님의 책을 잘 봤다며 인사를 했다. 혜민 스님은 “이제 책이 내게서 떠난 것 같다”며 “스스로가 행복해져야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이틀에 한 번은 30~40분씩 조깅을 한다는 스님 자신도 늘 달리면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내가 가고 싶어 가는 길인지, 다른 사람이 바라는 길인지”를.

▲ 혜민 스님은?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UC버클리로 유학을 떠난 혜민 스님은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햄프셔대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대 석사과정 중 출가를 결심해 2000년 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2008년 직지사에서 비구계를 받으며 조계종 승려가 됐다. 평일에는 교수직을 수행하고 주말에는 은사인 휘광 스님이 있는 불광선원으로 가서 불자들을 위해 일한다. 지난해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방한했을 때 통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자서 깨달음을 얻기보다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함께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고, 트위터를 하고, 강연에 나선다. 39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그가 쓴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가 진행하는 ‘마음치유 콘서트’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을 옆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쏟아낸다.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리언’이자 동시대인들이 가장 많이 조언을 구하는 ‘멘토’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