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경제·사회

황석영을 추모하며

youngsports 2009. 5. 15. 18:26

 황석영 연보: 블로그 내용

 

1943년 12월 만주 장춘(長春)에서 태어났다.

‘인텔리’였던 황석영의 부모님은 북에서 월남해 내려와 서울 영등포의 공장지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영등포 시장에 나가면 피난 보따리와 개인의 서재에서 쏟아져나온 책을 책장 째로 노점에 내놓고 책을 빌려주는 대여점이 많이 생겨났는데, 작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런 책들을 빌려다보았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피난갔던 얘기를 쓴 「집에 오는 날」이라는 작문이 전국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그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계간『창작과비평』에 중편 「객지(客地)」(1971)를 발표하면서부터 리얼리즘에 입각한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노동과 생산의 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를 깊숙히 파고 들었고 「아우를 위하여」를 시작으로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 일련의 작품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74년 신진작가로서는 파격적으로 한국일보에 「장길산」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이후 최대의

민중역사소설로 불리는, 17세기 말 숙종시대의 의적 장길산을 다룬 이 작품은 1974년 7월부터 84년 8월까지 장장 십 년에

걸쳐 연재되면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동시에 70, 8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에 시원스런

문학적 숨통을 틔워주었다.

 

서민 대중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그의 삶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유신 시절 공장 견습공으로, 노가다꾼으로, 문화운동가로,

농민운동가로 뛰어다니며 민중의 삶을 배우던 그는 1976년부터 1985년 사이에 해남, 광주 등지로 이주하며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 동안 소설집 『가객(歌客)』(1978), 희곡집 『장산곶매』(1980), 광주민중항쟁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1985) 등을 쓴다. 

 

 1989년 북한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한 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93년 4월 입국함과 동시에 체포되어 1998년에서야 사면, 석방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에게는 집필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그의 문학적 재능이 썩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문인들은 ‘살아 있는 국보를 내놓으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를 가둬두는 일은 생동하는 모국어를 가두는 일’이라며

시위를 했다.

입심과 노래솜씨, 친화력으로도 ‘국보급’이라는 그는 교도소 내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재소자들은 물론 교도관들까지

사로잡아, 당시 교도소에서 그의 별칭이 교도소 ‘소장’보다도 높은 ‘총장’이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석방된 후 황석영은 전과 다름없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메마르고 딱딱한 리얼리즘’이 아닌 동아시아적 예술형식에 세계의 현실을 담아내는 새로운 현실주의 소설을 실험 중에 있다. 

[출처] 황석영에 대해 알려주는 몇 가지 것들|작성자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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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인의 변절과 지식기사로의 타락, 그리고 명예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들은

 우리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부터 너무도 많이, 빈번하게 보아왔던 모습이다.

 실제로 엘리트, 학자, 교수 기타 머리로 사는 먹물들은 심한 고통과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보지 못해서

 주변환경이 변경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뭐 흔하게 재벌이나 관료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재판을 받거나 감옥에만  가면 거의 병원으로 가거나 휠체어에

 기대어 화려하게 방송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그들의 참 모습이다' 

 

 뭐,  뉴라이트를 이끄는 안병직이나  김영환들의 화려한 변신도 그러하거니와

 이제껏 소위 민주화 운동을 옛날에 했던 과거를 가지고 무섭게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 화려한 그들;

  김문수, 이재오, 김부겸, 김성식, 원희룡, 송영길, 우상호, 김민석, 이광재,안희정 등이

  과거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영광을 토대로 이제는 권력의 핵심에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정치꾼들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 더 강하고 무섭게 사회적 이해관계에 앞장서고 자신들의 입신양명에 혼을 다하는...부패한 정치꾼들... 

  굳이 하나 더 들자면, 노무현이라는 ......

    

 그리고 그들의 선배들인 일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지배계층  708명... 

 가장 극적인 태도로 조선의 심장을 찔러버린 이기적인 지식인의 표상 최남선, 이광수,

   

 난, 이제 놀라지도, 그리 분노하지도, 노여워 하지도 않는다.

 뭐, 씁쓸한 인생이라고 할까?(정치 사회 광장에서의 개그콘서트이다 ^-^***) 

 우리 비판적 시민들도 오히려 황석영을 추모해야지 그의 선택을 배신이니 변절이니 주장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보다 많은 제2의 서정주가, 제3의  황석영이 뒤따라 올 것이니 말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제2의 친미,친일 가치 종속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무조건 강한 놈이, 가진 놈이 살아남고, 부자와 지배 계층만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난 드디어 제2의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가 되살아 났다고 보면서 그들이 역사속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곰씹어 본다.

 

 오월 광주가 주던 평화와 인권, 정의에 대한 사랑이 이미 사라진 어둠과 음영의 5월

 빛고을을 밝히던 영혼이 지배하던 광주 정신과 사람들이 사라지고

 민주주의 시체를 파먹는 독수리와 탐욕스러운 하이에나만이 

 도시를 배회하는 오늘 지금,

  난,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립다. 

 그토록 자신을 희생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스러져간 이름없는 독립군과

 참된 지식인의 삶을 보여준 신채호,  이회영일가 , 아리랑의 김산,

 그리고  근대의 아름다운 사람들........전태일과 조영래가 너무도 그립다.

 그래서 뚜걱 뚜걱 자기 길을 가는 지금의 박원순과 안철수 같은 이들이 빛나 보이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아름다운 삶의 가치와 철학을 창조해 가고 있지 않는가 !

 

 아,,  

 그는 갔습니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도시의 빌딩 사이로

 멍하니 바보처럼 초라하게 남아있는 우리를 보면서

 노벨상이라는 탐욕의 신기루를 찾아서,,,

 그는 그렇게 갔습니다.,,

 나는 어서 가라고 마음껏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만장이 자욱히 드리워진 길에 들어선 그의 뒷모습에서 흘러내리는 검은 그림자를 쫓으며,,,

 잘 가라고 그를 보냅니다.

 푸 하하하..............

 

 P.S. 황석영의 태도에 대한  김지하의 주관적 시각이 기본 상식에 부합할까?

       진보진영의 문화 권력을 쥐고 있는 패거리 그룹의 동료의식은 아닐까?

       (신경림도 비판에 주저하며 어물적 넘어가더라)

      

      좌, 우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그룹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철학이 부족하고

       스스로가 주체적인 깨달음에 대한 희생과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여타의 종교나 이념에 의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곧 행동은 자기 생각의 투영이라고 했을 때,

       황석영 그는 이미 자기 역사를 부정하고    현상에 나타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자

       문학적 포장으로 과대 망상에 사로잡힌 한 인간에 대한 회색인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