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티키타카] 좋은 축구는 어떤 축구일까? 강한 축구, 공격적인 축구, 수비적인 축구. 모두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경기를 해석하기 위해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볼 점유율과 슈팅 수, 패스 성공률과 같은 일반적인 지표가 ‘경기 내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11명이 한 팀으로 뛰는 축구 경기에서 전력과 경기 내용을 온전하기 읽기 위해선 ‘경기 형태’를 알아야 한다. 골로 가는 길은 팀 플레이와 개인 플레이가 결합되는 데, 기반이 되는 것은 감독이 설계하는 ‘경기 콘셉트’다. 경기 콘셉트는‘빌드업(Build-up)’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빌드업’이란 무엇일까? 팀 플레이를 기반으로, 공을 소유하고, 공격적인 축구, 주도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지도자들은 보통 ‘빌드업’을 강조하고, ‘빌드업이 좋은’ 골키퍼와 수비수를 선호한다. 하지만 ‘빌드업’ 자체가 ‘좋은 축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빌드업은 단어가 가진 뜻(만들다) 그대로 ‘플레이를 만드는 방식’이다.
축구 경기는 우리 진영에 있는 공을 상대 진영에 있는 골대에 넣는 것이 목적이다. 상대 골문으로 향하는 슈팅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성공 확률은 상대 골문과 거리가 가까울수록 높아진다. 조금 더 구체화하면, 빌드업은 우리 진영에서 (킥오프를 하면 하프라인 지역에서 경기가 시작되고, 우리 진영에서 상대 진영으로 달려든다) 상대 진영, 상대 골문으로 공을 ‘이동시키는 과정’이다.
빌드업이 좋은 팀은 대표적으로 ‘티카타카’의 기조를 만든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 팀이다. 이 팀들은 수십여 회의 패스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다가 골을 만드는 ‘팀의 예술’을 선사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빌드업은 이런 수 많은 패스가 연속되는 플레이 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방에 장신 공격수를 두고 롱킥을 연결해 상대 골문을 직격 하는 것도, 크게 보면 빌드업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휘하는 맨체스터시티를 ‘최고의 팀’이라 부르는 이유는 다양한 형태의 빌드업에 두루 능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팀들은 각각 팀의 철학과 선수 특성에 맞은 빌드업을 중심으로 경기 콘셉트를 갖고 있다. 경기를 읽고, 팀을 파악하려면 이 경기 콘셉트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어떤 방식의 빌드업이 있는 지 알아야 한다.
경기를 분석하기 위해선 빌드업의 개념과 정의를 숙지해야 한다. 빌드업을 이해하는 것이 축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경기 내용을 객관화하고, 통계 수치의 유의미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는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국내에도 경기 분석에 학구열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전북현대 시절 김용신 분석관
울산현대와 전북현대의 전력분석관을 거쳐 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체육측정평가 전공(세부전공:스포츠경기분석, 지도교수:최형준)에서 팀 경기력의 빌드업 지표 개발과 축구 선수 평가체계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인 김용신 ISE 스포츠 데이터 분석 팀장은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김 분석관은 2012년 울산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뒤에서 지원한 숨은 공신. 이후 '강호' 전북으로 이적해 활약한 실력자다.
김 분석관은 홀로 경기 분석에 몰두해야 하는 K리그 현장에서 축구 경기 분석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고 느낀 뒤 데이터 분석 업체에서 경기 분석 틀을 확립하는 일을 거친 뒤 현재 석사 과정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김 분석관은 축구 경기에서 가능한 빌드업의 형태를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여섯 가지 분류에 따라 각 팀의 경기별 빌드업 공격, 수비 상황의 수치를 정리하면 통계 수치로 팀의 경기 내용과 성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력(전술, 전략 부분)을 온전히 수치화하여 보다 쉽고 빠르게 팀을 분석할 수 있는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김 분석관의 연구 주제다.
축구 경기의 모든 경기 패턴을 압축한 여섯 가지 방식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는, 수 많은 패턴과 변수가 90분간 펼쳐지는 축구 경기를 훨씬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빌드업 분석의 틀은, 축구 경기를 읽는 좋은 지도가 될 수 있다. 좋은 지도가 있다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쉬워진다. 개별 경기와 감독, 선수에 대한 ‘분석’을 하기 전에, 먼저 빌드업 그 자체에 대한 개념 정리 필요한 이유다.
축구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경기장이라는 제한된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총 22명의 선수들, 이들이 이동시키는 공 등 세 가지 요소다. 11명의 선수가 11명의 선수를 상대로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공을 어떻게 전진시키느냐가 축구 경기의 핵심이다.
빌드업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패스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과정으로 뭉뚱그리면 빌드업의 선명함이 떨어진다. 결정적인 장면으로 이어지는 순간에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그 패턴이 시작되는 지점이‘기점 패스’다.상대 수비 라인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과정의 시발점이 경기의 방향을 만든다.
공의 ‘전진’이 이뤄지는 시발점이 ‘기점 패스’다. 중앙 밀집 공간을 과감하게 파고들거나, 측면으로 우회하거나, 뒷 공간을 직격하거나, 롱 볼을 전개해 공중볼 경합으로 전진하는 패턴의 디딤돌을 두는 것이 기점 패스다. 그래서 킥오프 상황을 제외하면, 공이 배출되는 후방 지역에서 빌드업이 시작된다. 수비의 기점이 최전방으로 옮겨왔듯, 공격의 기점도 최후방으로 내려왔다. 골키퍼와 최후방 수비 라인의 패스 능력과 판단력, 창의력과 시야가 강조되는 이유다.
*일반적인 경기 분석 틀은 페널티 에어리어를 하나 더 배치한 P2 지역을 '핵심 공간'으로 파악한다.그래픽=김용신 분석관
일반적인 경기 분석틀은 경기장을 총 18개의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빌드업’에 초점을 맞춘 김 분석관의 방식은 그보다 간결하다.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의 페널티 에어리어, 그리고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을 둘로 나눴다. 이 공간을 기준으로 수비 라인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이드 라인은 자기 진영 페널티 에어리어 끝에서 상대 페널티 에어에리어 끝선을 이어 사이드 지역으로 설정하는데, 김 분석관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빌드업 중심의 분석은 경기장 안의 구획보다, 상대 팀의 수비 형태에 따라 공간 구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플레이를 여섯 가지 패턴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플레이 의도’를 객관적 기준을 통해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특색’이다.
*김용신 분석관이 구축한 빌드업 중심 경기 분석 틀에서 핵심 공간은 상대 수비 배치에 따라 핵심 공간이 이동한다. 2선 미드필더와 최후방 수비 라인의 사이 공간이다. 그래픽=김용신 분석관
빌드업을 크게 여섯 개의 유형으로 구분하면,1) 사이드 플레이 2) 핵심 공간 플레이 3) 뒷 공간 침투 플레이 4) 역습 플레이 5) 롱 볼 플레이 6) 단순 연결 플레이로 나눌 수 있다.
사이드 플레이(SIDEPLAY)
-사이드 지역에서 2인 이상 연결 되어 이루어지는 플레이.
핵심 공간 플레이(KEY AREA PLAY)
-상대의 수비라인과 미드필드라인의 사이 공간(핵심공간)을 거쳐서 이루어 지는 플레이.
뒷 공간 침투 플레이 (PENETRATION PLAY)
-상대의 2선 미드필드 라인 앞 공간에서 한 번에 상대 수비 뒷 공간으로 패스 연결, 침투 움직임에 의해 연결되는 플레이.
역습 플레이 (COUNTER PLAY)
-볼 차단 이후 상대가 수비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에서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되는 플레이.
-역습 플레이는 숏카운터(상대 지역 역습)와 롱카운터(자기 진영 역습)로 구분.
롱 볼 플레이(LONG BALL PLAY)
-빌드업 시 상대의 2선 미드필드 라인 앞 공간에서 한 번에 긴 패스(공중볼)로 볼 경합을 통해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플레이.
단순 연결 플레이(SIMPLE LINK PLAY)
-상대의 2선 미드필드 라인을 넘어서기 전에 이루어지는 중거리슈팅, 크로스 등 단순한 연결에 의한 플레이.
-빌드업 시 다섯 가지 유형에 포함 되지 못하는 플레이.
*기점 패스는 빌드업의 디딤돌이다. 수비 지역의 패스 능력과 판단력이 현대 축구 전술에 중요해진 이유.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는 이 부문에서 최고의 실력자다.
각각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축구를 즐겨보는 이들에게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기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플레이를 해당 항목으로 어떻게 구분하느냐인데, 이는 플레이를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공격을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을 중점으로 파악한다”는 게 김 분석관의 설명이다. 슈팅으로 가는 마침표보다, 슈팅 상황까지 이어 온 ‘빌드업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축구는 지역, 상황 등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빌드업 유형은 자연스럽게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한 번의 공격권 안에서 볼이 끊기지 않고 복수의 빌드업 유형이 일어날 때 해당 공격권에서 가장 유효하게 작용한 빌드업 유형을 해당 공격권의 빌드업 유형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김 분석관의 설명.
슈팅을 만들기 위한 플레이는 그룹 전술과 개인 전술로도 볼 수 있다. 빌드업 방식을 파악하는 것은 팀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경기를 만드는 과정에 집중한 ‘빌드업 분석틀’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다.
*롱 볼 플레이를 통해 다음 전개가 뒷 공간 침투 플레이로 연결될 때. -> 롱 볼 플레이로 간주.
*사이드 플레이를 통해 다음 전개가 주요 공간 플레이로 연결 될 때. -> 사이드 플레이로 간주.
*주요공간 플레이를 통해 다음 전개가 뒷 공간 침투 플레이로 연결될 때. -> 주요 공간 플레이로 간주
빌드업 패턴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팀과 플레이 장면을 통해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이번 시간에는 먼저 사이드 플레이와 핵심 공간 플레이, 뒷 공간 침투 플레이 등 치명적인 빌드업 방식에 대해 소개한다.
*라힘 스털링(왼쪽)과 리로이 사네는 맨시티의 사이드플레이 능력을 극대화해 공격 위협도를 높였다.
1) 사이드 플레이: 사이드 지역에서 2인 이상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플레이.
사이드 지역은 기본적으로 좌우측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을 기준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뜻한다. 빌드업을 중심으로 분석할 때는 사이드 지역이 유동적이다. 상대의 좌우측 측면 수비라인의 폭, 간격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공간이 변화한다.
사이드 지역 플레이는 볼을 받은 선수가 1대1 돌파 등 전진적인 플레이를 통해 다음 플레이를 연결하거나, 볼을 받은 선수가 동료 선수의 오버래핑을 이용한 크로스를 시도할 경우, 반대 사이드 지역으로 연결한 뒤 크로스 패스를 연결하거나, 사이드 지역으로 길게 벌려주는 전환 패스를 받아 2인 이상이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이어갈 때를 포함한다.
롱 볼 플레이와 구분되는 점은, 기본적으로 2선 미드필드 라인을 넘은 공간에서 2인 이상의 선수가 사이드에서 플레이를 연결한다는 점이다. 롱 볼 플레이는 상대 2선 미드필더를 넘기 전에 길게 이를 통과하는 패스가 이뤄질 때로 명확히 구분한다. 뒷 공간으로 한번에 넘겨주는 패스의 위치도 상대 2선 미드필드 라인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맨체스터시티와 왓포드의 1월 3일 새벽 열린 2017-18 프리미어리그 경기 킥오프 후 38초 만에나온 라힘 스털링의 선제골은 사이드 플레이의 완벽한 예시다.
① 하프라인 부근, 존 스톤스에게 공을 넘겨 받은 니콜라스 오타멘디가 공을 몰고 상대 진영으로 전진하면서 본격적인 빌드업이 시작된다.
② 오타멘디가 왼쪽 사이드 지역(4-4-2로 배치된 왓포드 수비의 오른쪽 바깥)에 있는 파비안 델프에게 패스했다.
③ 델프는 이 공을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척하면서 왓포드 수비의 시선을 끌고, 측면 앞 공간을 열었다.
④ 빠르게 측면으로 전환한 델프가 실바에게 전진 패스를 보냈다.
⑤ 실바는 공을 받은 뒤 수비 견제 속에 사이드 라인을 타고 측면 뒷 공간으로 침투하는 리로이 사네에게 패스했다.
⑥ 얀마트가 따라붙었지만 사네가 빨랐다. 공을 받으면서 문전 오른쪽으로 깊숙이 크로스 패스를 보냈다.
⑦ 왓포드 수비는 맨시티 공격이 왼쪽 측면에서 전개되자 한 쪽으로 쏠렸다. 내내 오른쪽 측면에서 대기하던 스털링이 크로스 패스의 낙하지점으로 달려들어 자유롭게 마무리 슈팅을 했다.
-> 사이드 지역에서 델프, 실바, 사네의 플레이가 연결되어 나온 득점이다.
레알과 바르사의 2017년 12월 23일 라리가 전반기 엘클라시코 경기. 전반 31분께 호날두의 결정적 슈팅도 사이드 플레이를 통해 전개됐다. 상기 영상에서는, 파울리뉴의 슈팅 장면 뒤의 1분 50초부터 이어지는 레알의 공격 장면을 보면 된다.
① 수비 지역에서 레알의 오른쪽 센터백 라파엘 바란이 넓게 벌려 서 있다. 카르바할에게 패스를 보낸 뒤 다시 전진하며 볼을 받는다. 이니에스타가 압박했으나 뚫고 나왔다. 공을 받기 위해 다가온 모드리치에게 공이 연결된다.
② 모드리치는 중앙 지역으로 공을 운반한다. 왼쪽 측면의 마르셀루에게 공을 넘긴다.
③ 마르셀루는 바르사의 라이트백 세르지 로베르토의 바깥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호날두에게 전진 패스를 보낸다.
④ 호날두는 개인 드리블로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으로 진입한다. 이반 라키티치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달려들지 않고 안쪽 공간을 지키며 지연 수비를 한다.
⑤ 페널티 에어어리어 안으로 들어온 호날두는 스텝오버로 공을 지키며 슈팅 타이밍을 잰다. 세르지는 호날두가 왼발 슈팅을 시도할 시점에 몸을 던진다. 호날두의 왼발 슈팅은 수비 견제를 통과했으나 골키퍼 테어슈테겐의 발에 걸려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 오른쪽 사이드에서 시작해 왼쪽 사이드로 전개된 사이드 플레이다. 모드리치는 중앙에서 연결했으나, 바란, 카르바할, 모드리치, 마르셀루, 호날두로 이어진 사이드 플레이가 잘 연결됐다.
2) 핵심 공간 플레이: 상대의 수비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의 사이 공간(핵심공간)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
신태용 국가 대표 팀 감독은 인터뷰에서 ‘P2 지역’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축구 경기에서 골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부르는 ‘프라임 타깃 에어리어(Prime Target Area)’가 골 에어리어 부근 공간에 있는데, 축구 이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P2 지역이다.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 페널티 에어리어를 한 칸 더 얹어두는 것. 득점으로 이어지는 중거리 슈팅이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침투한 선수에게 결정적인 패스가 나가는 지역, 상대 골문을 곧장 위협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다.
핵심 공간을 이용할 경우 상대가 수비하기 가장 까다로워 공격 위협도가 높다. 입장을 바꾸면, 상대가 핵심 공간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할 때 수비하기 가장 까다로워 수비 위험도가 높다. 빌드업 형태로 경기를 분석하면, 이 핵심 공간은 상대의 수비 조직 형태에 따라서 변화한다.
실제로 해당 지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 수비 전술이 해당 지역의 공간을 어떻게 좁히고, 제어하느냐가 중요하다. 라인이 뒤로 완전히 내려거나, 라인이 극단적으로 전진하면 죽은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스널은 핵심 공간 플레이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팀이다. 2017년 11월 5일 맨시티와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경기에서 라카제트가 넣은 만회골은 핵심 공간을 잘 공략한 플레이의 전형이다.
① 수비 지역에서 센터백 코시엘니가 과감하게 맨시티의 2선 미드필더 뒷 공간에 있던 이워비를 향해 전진 패스를 보낸다.
② 이워비는 공을 받기 위해 뒤로 나오지만, 수비 지역까지 내려가지 않고 공을 받자마자 다시 공격 방향으로 돌아선다.
③ 이워비는 맨시티의 2선 미드필더와 최종 수비 라인 사이에서 드리블로 전진한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앞으로 침투한 에런 램지에게 패스한다.
④ 램지는 전진하는 리듬을 살려 공을 드리블한다. 램지의 앞에 센터백 스톤스와 오타멘디 밖에 남지 않았다. 라카제트가 오른쪽 전방 지역에 자리해, 오타멘디가 견제하고 있었다. 램지의 드리블을 제어하기 위해 가운데로 움직인다.
⑤ 램지는 오타멘디가 자리를 비우자 라카제트에게 열린 공간으로 패스한다.
⑥ 라카제트는 문전 우측으로 공을 몰고가 골키퍼 에데르송과 1대1 상황을 맞는다. 오타멘티가 다시 따라왔지만 슈팅할 여유는 충분하다. 각도가 조금 부족했지만 예리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 왼쪽 구석을 찔렀다.
-> 코시엘니, 이워비, 램지가 중앙 지역, 핵심 공간을 과감하게 노린 패스로 골로 가는 길을 열었다. 패스의 정확성, 공이 없는 선수들의 적절한 움직임과 타이밍이 빛난 플레이다.
바르셀로나 역시 핵심 공간 플레이를 즐기는 팀이다. 특히 리오넬 메시는 이 공간을 무너트리는데 ‘일인자’다. 2017년 12월 23일 엘클라시코. 후반 25분 메시의 슈팅이 골키퍼 나바스의 선방에 막혔으나, 속도감을 갖춘 이상적인 핵심 공간 플레이였다. 영상에 나오는 첫 번째 공격 장면이다.
① 레알의 마테오 코바치치가 전개한 패스를 레알 진영에서 이니에스타가 차단했다. 곧바로 역습 공격으로 전개하지 못했다. 레알 미드필더가 압박하자 공을 소유하며 뒤에 있는 라키티치에게 패스한다.
② 라키티치가 공을 받을 때 크로스가 강하게 압박한다. 라키티치가 넘어지면서 옆에 있는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패스한다. 부스케츠가 공을 잡은 뒤 레알의 2선 미드필더와 최종 수비 라인 사이로 들어온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패스한다. 1선에 있던 수아레스는 핵심 공간에 틈이 생기자 부스케츠를 바라보며 두 손을 벌려 공을 요구했다.
③ 공격 1선에 있다가 핵심 공간으로 내려온 수아레스는 공을 이어 받으면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논스톱 패스로 최종 수비 뒤로 침투한 메시에게 공을 넘긴다. 본인도 바로 전진한다.
④ 공을 받은 메시가 문전으로 드리블하며 왼발 슈팅을 시도한다. 코바치치가 몸을 던지며 견제했고, 메시의 슈팅 자세가 흔들렸다. 슈팅이 약했고 나바스가 선방했다.
-> 부스케츠의 기점 패스, 수아레스의 핵심 공간 이동과 논스톱 연결 플레이가 치명적이었다.
수비 조직, 수비 밸런스가 탄탄한 팀 일수록 핵심 공간에서의 원활한 플레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가 성공적으로 전파시킨 ‘두줄 수비’는 바로 이 공간을 극소화하는 게 최대 장점이다.
핵심 공간 플레이에 대한 수비 대응 수치가 낮게 나온다면, 상대가 핵심 공간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직적인 수비를 잘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빌드업 통계 수치로 경기를 읽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는 2017년 11월 18일 레알마드리드와 마드리드 더비에서 치밀한 두 줄 수비를 보였다.
2017년 11월, 콜롬비아와 A매치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도 4-4-2 포메이션으로 나서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활동을 무력화하는 타이트한 두 줄 수비를 성공적으로 펼쳤다. 상대의 핵심 공간 플레이를 통제하는 수비 전술이다.
핵심 공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 팀인가에 따라서 팀 수준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핵심 공간에서 주로 창의적인 플레이가 많이 나타난다. 좁은 지역이고, 수비가 그만큼 격하고 치열하다. 고도의 기술과 판단력을 요한다. 높은 질을 가진 선수는 공통적으로 핵심 공간에서의 움직임, 볼키핑 능력이 우수하다. 천재적인 선수들이 빛나는 공간이다.
물론, 개인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 팀 차원에서 이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핵심 공간을 잘 활용하는 팀은 볼이 없는 선수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서 많은 찬스를 만들어 낸다.
핵심 공간으로 볼이 연결될 때 1차적인 수비 대응이 빠르게 이어지지 못할 경우 연쇄적으로 수비밸런스가 무너진다. 공격 측에서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하다. 각 빌드업 형태에 따른 공격 위협도, 수비 위험도를 측정해보면, 핵심 공간 플레이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공략하기도 어렵, 수비하기도 어려운 지역이다.
3) 뒷 공간 침투 플레이: 상대 수비 뒷 공간으로 패스 연결, 침투 움직임에 의해 연결되는 플레이
단순한 연결이 이뤄지는 지역, 상대 2선 미드필드 라인 이전 공간에서 한 번에 상대 수비 뒷 공간으로 패스를 연결해 침투 움직임을 통해서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플레이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 중장거리 패스의 미학은 물론, 번개 같은 상대 최종 수비 라인을 깨고 들어가는 침투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플레이다.
핵심 공간으로 볼이 연결된 이후에도 뒷 공간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패스하는 플레이도 빈번하게 나오는 데, 이 때는 ‘핵심 공간 플레이’로 간주 한다. 사이드 플레이 이후에 중앙 뒷 공간으로 패스가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 뒷 공간 침투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후방의 마에스트로와 전방의 불도저를 통한 중장거리 패스와 침투 플레이에 초점을 맞춘다.
2017-18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맨시티와 아스널의 경기에서 스털링이 페널티킥을 얻은 장면은 뒷 공간 침투 플레이의 전형이다.
① 아스널이 5-4-1 대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왼쪽 센터백 오타멘디가 수비 라인으로 내려온 빌드업 미드필더 페르난지뉴에게 패스한다.
② 페르난지뉴가 오른쪽 사이드 지역 전방으로 벌려 있던 스털링을 포착했다. 아스널의 2선 미드필더는 페르난지뉴를 압박하기에 거리가 멀다. 페르난지뉴는 하프라인 부근에 있다.
③ 아스널의 2선 미드필더와 최종 수이 라인 사이의 핵심 공간에 실바와 더브라위너가 자리하고 있다. 아구에로를 견제하던 코클랭과 몬레알이 핵심 공간으로 공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전진하면서 아스널 수비 라인의 대열이 흔들린다.
④ 아스널 최종 수비 라인의 시선이 페르난지뉴가 전개할 공에 쏠렸다. 스털링은 왼쪽 윙백 콜라시나치의 뒷 공간으로 뛸 준비를 한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리지 않는 타이밍에 페르난지뉴의 킥, 스털링의 쇄도에 이은 공 확보가 이뤄진다.
⑤ 스털링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에서 공을 받는다. 콜라시나치는 뒤를 빼앗겼고, 아스널의 왼쪽 센터백 몬레알이 스털링의 돌파 동선을 커버한다.
⑥ 스털링은 오른발로 공을 컨트롤하며 골문을 직접 노릴 수 있는 위협적인 퍼스트 터치를 했다. 몬레알은 어깨로 부딪히며 경합으로 저지하고자 했으나 스털링의 타이밍이 빨랐고, 다리를 걸어 엉켜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 2선 미드필더 뒤에서 시도한 패스가 핵심 공간을 통과해 한 번에 최종 수비 라인 뒷 공간을 노린 교과서적 플레이다.
엘클라시코 전반 30분에 나온 바르사 미드필더 파울리뉴의 벼락 같은 슈팅은 뒷 공간 침투 플레이가 바르사의 새로운 강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정을 보면 사이드 지역으로 공을 전개하고 주고 받은 장면, 핵심 공간으로 공이 들어갔다가 나온다. 여러 빌드업 패턴을 시도한 것. 슈팅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과정은 뒷 공간 침투 플레이다.
① 메시가 빌드업 미드필더 자리까지 내려와 있다. 레알 2선 미드필더의 뒤에서 공을 오른쪽으로 전개한다. 라키티치도 뒤로 빠져있다. 레알이 두 줄 수비를 타이트하게 구축해 이 공간을 벌리기 위한 빌드업을 전개한다.
② 라키티치가 사이드 공간에서 세르지에게 공을 전달했다. 메시가 핵심 공간으로 진입했으나, 공격 활로를 찾지 못했다. 다시 라키티치에게 공이 넘어온다. 라키티치는 메시가 전진하자 빌드업 미드필더 자리로 온 부스케츠에게 패스한다.
③ 부스케츠가 핵심 공간에 있는 메시에게 패스한다. 코바치치가 타이트하게 대인 방어를 한다. 메시의 돌파를 코바치치가 태클로 저지한다. 몸으로 공간을 막았다. 오른쪽 측면에서 세르지가 흐른 공을 잡고 메시와 공을 주고 받지만 사이드 공간을 레알 수비 네 명이 블록을 만들어 제어했다. 세르지가 다시 길게 후방으로 공을 빼낸다.
④ 수비 지역에서 피케가 다시 핵심 공간에 있는 수아레스에게 패스하며 전진한다. 피케가 스트라이커 위치까지 올라가 레알 수비의 허를 찌르고자 하지만 수아레스가 공을 받았을 때 바란이 쫓아올라와 돌아서지 못하게 했다. 공은 다시 밖으로 밀려 내려온다.
⑤ 세르지가 수비 지역으로 내려왔고, 세르지가 비운 오른쪽 측면 공간을 메시가 차지했다. 세르지는 오른쪽 사이드의 메시에게 패스하고 전진했다. 이때 피케는 다시 수비 지역으로 내려오고, 파울리뉴가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도사리고 있다. 수아레스가 오른쪽에서 한 칸 뒤에 자리하면서 바란과 마르셀루가 견제해야 했다.
⑥ 메시는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고 파울리뉴가 레알 수비 뒷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한 발 뒤로 공을 뺀 뒤 왼발 로빙 패스를 보냈다. 파울리뉴가 빠르게 공의 낙하지점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쫓아왔으나 파울리뉴의 등 뒤로 쫓아왔다. 파울리뉴는 공을 잡아 세우지 않고 바운드된 것을 발리 슈팅으로 연결했다. 골키퍼 나바스의 선방에 막혔지만 기가 막힌 뒷 공간 침투 플레이였다.
-> 사이드 플레이와 핵심 공간 플레이가 연이어 무산되면서 레알의 중원 간격, 사이드 간격이 조밀해졌으나, 반대급부로 수비 배후 공간이 열린 것을 빠르게 포착했다. 메시는 후방으로 내려와 단 번의 왼발 패스로 뒷 공간을 무너트리는 플레이를 즐긴다. 파울리뉴는 중앙 미드필더로 상대 센터백의 직접 견제를 받지 않지만 경기 중 수시로 스트라이커 위치로 침투해 슈팅 기회를 포착한다. 올 시즌 바르사가 즐기는 공격 패턴이다.
여섯 가지 빌드업 중 나머지 3개의 패턴. 역습 플레이와 롱 볼 플레이, 단순 연결 플레이에 대한 설명은 ‘빌드업 2편’에 이어진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