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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회] ‘가짜 대통령’도 모자라 ‘가짜 전력분석관’이라니

youngsports 2016. 10. 28. 12:05

차두리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차두리는 아직 대표팀 코치가 될 자격증이 없음에도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하게 됐다. ⓒFC서울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국정을 운영할 자격도 없는 무당이 알고 보니 대통령 위에 군림하면서 우리나라를 쥐락펴락 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분노를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이 선출해 뽑은 인물도 아니고 정부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인물도 아닌데 그런 자가 권력의 실세 역할을 했다는 건 분노할 만한 일이다.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의 민생과 경제, 안보를 맡겼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화가 난다. 그런데 우리들 참으로 이중적이다. 자격 없는 사람이 축구대표팀 코치진으로 왔는데 여기에는 또 환호한다.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잣대로 놓고 본다면 단체로 들고 일어나야 하는 일인데 아주 좋다고 난리다. 차두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축구선수 차두리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존경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왜 우리는 같은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나
차두리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축구팀 코치진에 합류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대표 선수 경험이 있는 좋은 지도자가 형님 역할을 하면서 대표팀 안에서 여러 가지 좋은 분위기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차두리를 대표팀 지도자로 합류시키기로 했다. 인기도 좋고 안티도 없는 차두리가 대표팀 벤치에 앉게 된다고 생각하니 많은 이들은 이 선택을 굉장히 반긴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일이다. 자격 없는 이가 국정을 주물렀다고 분노했던 이들이라면, 공정하게 경쟁해 살아남은 자가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길 바라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이 잘못을 짚어야 한다. 차두리는 되고 최순실은 안 되고 이중잣대로 바라보지 말자. 차두리도 지금 상황에서는 대표팀에 오면 안 된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난 차두리는 아직 A급 지도자 라이선스가 없다. 현역 생활에 집중했으니 그가 A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아직 따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A급 라이선스 없이는 대표팀 코치진으로 합류할 수도 없고 벤치에 앉을 수도 없는데 협회에서는 꼼수 아닌 꼼수를 썼다. 차두리를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장담하는데 차두리가 전력분석관의 주임무인 상대팀 전력을 분석하는 역할을 할 리는 없다. 상대팀 영상을 자르고 붙여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고하고 우리 선수들의 전력을 분석해 단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차라리 전력분석관을 임명하려면 김학범 감독을 임명했어야 한다. 김학범 감독은 한국에 전력분석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인 코치 시절부터 방에 틀어박혀 밤새 야동을, 아니 상대 경기 영상을 자르고 붙이며 전력분석의 지평을 열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차두리는 후배들하고 같이 훈련하면서 형 역할을 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자격이 없으니 코치가 아니라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을 달아줬다.

대표팀이라는 게 그냥 동네 조기회가 아니다. 전력분석관은 전력을 분석하고 코치는 코치 역할을 해야 한다. 다 각자 맡은 임무가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을 그럴 자격도 없는 다른 사람이 해 왔다고 분노하는 이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치 역할을 맡기고 싶은데 그럴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으로 데려와서 코치직을 수행하게 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그러면 전력분석관은 왜 있고 코치는 왜 있나. 코치 역시 수석코치와 체력코치, 골키퍼 코치 등으로 세분화 돼 나뉘는데 그냥 입맛에 맞고 선수들하고 친하고 성실한 사람 다 데려다가 전력분석관 직함 달고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코치 노릇해도 별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형처럼 편하게 소통할 지도자가 필요했다”고 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연설문을 고쳐줬다”는 핑계와도 다를 게 없다. 자격 없는 ‘최순실 대통령’에는 분노하면서 같은 원칙조차 고수하지 못하는 사회가 참으로 안타깝다.

무자격자 코치가 월드컵 벤치에 앉기까지
더 화가 나는 건 이런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5년 8월 당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2급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했다. 2급은 B급, 1급은 A급 자격증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원래는 초등학교 및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수 있는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2년을 경과한 사람이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지만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홍명보 감독에게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국내 프로경기에 100회 이상 출전한 경력이 있거나 A매치에 20회 이상 출전한 선수 출신은 3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도 바로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바로 한 달 뒤 협회의 꼼수가 드러났다. 2005년 9월 협회는 “홍명보를 성인대표팀 코치로 선임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사람을 한국 축구 최고 레벨의 지도자로 선임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무런 자격증도 없었던 이가 불과 3주 만에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성인 대표팀 코치로 간다는 건 초고속 승진이었다. 회사로 치면 이제 막 인턴 과정을 끝낸 뒤 부장으로 승진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은 대학 및 실업, 프로 및 각급 대표팀을 지도할 수도 없는 아주 초보적인 자격증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축구팀만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자격증 하나로 2006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 코치에 부임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이제 막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초보 코치’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팀은커녕 중학교 팀도 맞아본 경험이 없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규정은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1급 자격증이나 아시아축구연맹 A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자’만이 대표팀 지도자로 일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협회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웠다.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지금 차두리를 향해 협회 기술위원회가 던진 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건 물론이고 이제 막 지도자 수업 3주를 받은 게 전부인 이에게 전폭적인 힘을 실어줬다. 더군다나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팀을 2년 이상 지도했거나 2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 성적이 상위 5% 이내인 사람 중에 자격증 취득 1년이 넘은 이에게만 1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조건을 주기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아무리 성적이 상위 5% 안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딸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2급 지도자 자격증 잉크도 마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 스스로 “실제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100%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밝혔지만 그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 자격증을 딴 뒤 불과 한 달 만에 우리나라 모든 축구 지도자들의 꿈과 같은 성인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게 됐다. 무자격자가 버젓이 월드컵에서 대표팀 벤치에 앉아 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홍명보 감독
홍명보는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해야할 인물이었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중책을 맡아 결국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동아오츠카

자격증 취득에도 편법이 난무하는 축구계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뒤 협회는 아드보카트 감독 후임으로 핌 베어벡 감독을 선임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홍명보 코치를 위해 편법을 썼다. 2005년 9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던 홍명보 코치는 아직 자격증 취득 기간이 1년을 넘지 않은 상황이어서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협회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1급 지도자 강습회의 하반기 일정을 앞당겨 버렸다. “하반기 신청자가 많아서 인원배분 차원에서 일정을 앞당기기로 조정했다”고 했다. 베어벡호가 출범하는데 여전히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어 무자격 논란에 휩싸여 있는 홍명보 코치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반기 지도자 강습회는 보통 10월이나 11월에 열리지만 홍명보 코치가 빨리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기 위해 그 일정을 7월로 당겨버렸고 홍명보 코치는 2006년 7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4~5년은 족히 걸리는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아무런 지도자 자격증도 없던 이가 불과 10개월 만에 각급 대표팀까지 지도할 수 있는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대표팀 수석코치에 임명됐다. 말 그대로 대표팀에서 감독 다음으로 힘을 보유한 막강한 자리까지 초고속 승진한 것이다. 당시 국내 축구 지도자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2006년 10월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가 조사한 자료를 살펴 보면 현장 지도자들이 얼마나 협회의 홍명보 코치 밀어주기에 불만을 가졌는지 잘 알 수 있다. 설문에 응답한 현직 지도자 중 78.9%인 266명이 “2급 자격증을 가진 홍명보 코치가 자격 규정을 위반하면서 독일월드컵 대표팀 코치에 선임된 것에 대해 잘못”이라고 답했고 “허용되어야 한다”고 답한 지도자는 7명 뿐이었다. 협회의 인사에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낸 이들은 “협회가 능력과 자격을 무시한 채 지명도(128명), 측근(121명), 학연과 지연(71명), 무자격자(44명) 위주의 정실인사를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협회와 홍명보 코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협회는 이런 불만 섞인 목소리를 찍어 누르기에 바빴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들의 입맛에 꼭 맞는 홍명보 코치를 밀어줄 생각 뿐이었다.

더군다나 협회는 편법으로 홍명보 감독이 1급 지도자 자격증을 얻자 더 노골적으로 밀어주기에 나섰다. 2009년 2월 홍명보 코치를 이집트에서 열리는 U-20 청소년월드컵을 앞두고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제껏 청소년 대표팀은커녕 유소년도 지도해 본 적 없는 무경험자를 전격적으로 청소년 대표팀 감독에 앉혔다. 단 한 번도 연령별 대표팀도 이끌어 본 적 없고 무자격 논란까지 있었던 사람이 협회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명장으로 포장된 순간이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2009년 U-20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홍명보 감독의 요청으로 코치진에 합류한 서정원도 UEFA B급 라이선스만을 보유하고 있어 대표팀에 앉을 자격이 없자 지금과 똑같은 방법을 썼다.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 뒤 훈련 때는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리는 코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후 청소년 대표팀은 서정원이 A급 라이선스를 취득하자 코치로 정식 임명했다.

차두리 영입은 여론 무마용 카드
결과는 잘 알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 자격증도 없이 편법으로 승승장구하던 홍명보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최악의 참사에 머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편법 자격증의 출발이 2005년이었으니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한국 축구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여전히 무자격인 이들을 어떻게든 대표팀으로 데려와 코치 비스무리한 형, 아니 전력분석관 비스무리한 코치, 아무튼 그런 걸로 꽂아 넣는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뭐가 달라졌나. 올바르지 않은 편법 행정이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실패까지 경험했으면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데 10년이 지나도 한국 축구는 “형 같이 함께 땀흘리고 소통할 지도자가 필요하다”면서 자격 없는 이를 대표팀에 데려온다. 차두리의 대표팀 합류를 지지하는 이들은 과거 잉글랜드도 데이비드 베컴을 이런 식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에서 그칠 게 아니라 베컴 합류로 잉글랜드가 얻은 실질적인 이익이 어떤 것인지를 주장해야 한다. 나는 이런 편법이 옳지 않다는 걸 수 없이 많은 예시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법이어서 문제지만 오랜 기간 동안 지적해오던 대표팀의 문제점을 이제야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것도 문제다. 나는 과거부터 대표팀에 고참 선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의식적으로라도 고참 선수를 몇 명은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표팀은 늘 그 또래 선수들만의 전유물이 됐다. 고참이라고 해봤자 20대 중반인 기성용, 구자철 등이다. 대표팀이라는 건 경험이 풍부한 노장에서부터 어린 선수들까지 적절히 배분되어야 하는데 2012년 무렵부터는 그저 보이스카우트 수준으로 또래 아이들의 독무대가 됐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형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은퇴한 차두리를 편법까지 써 가면서 대표팀으로 부른다는 건 정말 주먹구구식 일처리다. 차라리 이런 편법 논란에서 자유로우려면 차두리에게 현역 복귀를 부탁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은퇴한지 1년밖에 안 된 이를 형 역할 하라면서 대표팀 벤치에 앉히는 게 말이 되나. 진작에 정조국도 써보고 염기훈도 써보고 했으면 얼마나 좋나. 왜? 그들은 ‘친박(親朴)’처럼 대표팀 ‘주류’인 ‘친기(親奇)’나 ‘친구(親具)’ 세력이 아니어서 안 되나. 고참 선수를 선발해 선수단 가교 역할을 하면 안 되나. 선수들 멘탈을 잡아줄 선배가 대표팀에 한 명도 없다는 것 자체가 지금껏 대표팀의 실패다.

협회가 자격이 없는 차두리를 편법으로 대표팀에 앉힌 건 여론 무마용 카드다. 차두리는 인기가 좋은 인물이다. 차두리가 다시 대표팀에 온다니 편법 논란이나 대표팀에 그만큼 경험 많은 선배가 없다는 문제점을 논하기 보다는 다같이 만세를 부른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차두리가 아닌 박주영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박주영은 호불호가 명확한 선수고 특혜도 많이 받아 팬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 인물이다. 물론 대표팀 후배들과의 사이는 차두리 못지 않게 좋다. 만약 협회에서 “형 역할을 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A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박주영을 전력분석관으로 임명한다”고 했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면 인맥 축구 어쩌고, 특혜 어쩌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장담하건대 차두리 못지 않게 박주영도 대표팀 후배들과는 친하게 잘 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협회는 만약 박주영이 은퇴를 한 상황이라도 절대 그를 대표팀에 이렇게 무리해서 데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차두리
차두리는 훌륭한 선수였고 훌륭한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더 이번 선택이 걱정이다. ⓒFC서울

‘가짜 대통령’도 모자라 ‘가짜 전력분석관’이라니
여론 때문이다. 지금 협회가 필요한 건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가 필요했고 차두리보다 더 좋은 카드는 없었다. 대표팀 후배들과 친하니 내부적으로도 좋은 카드였고 인기 좋은 호감형 인물이라 여론도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말한 것처럼 민중이 그냥 ‘개나 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잘 생각해 보라. 과연 호불호가 갈리는 박주영이 저런 자리에 무임승차해도 당신들은 가만히 있었을 것인가. 자격 없는 이가 국정을 주무르는 걸 보면서 분노하면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인가. 차두리가 대표팀 전력분석관에 임명된 걸 과연 같은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인기 좋고 호감인 차두리니까 된다고 넘어가는 순간 자격 없이도 국정을 주무르던 강남 무당 아줌마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그 강남 무당 아줌마도 누군가에게는 호감인 인물이었을 테니 말이다. 훌륭한 축구선수 차두리와 도망자가 된 강남 무당 아줌마를 동일시해서 비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사안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를 비교하는 것이니 오해없길 바란다.

나는 아직도 홍명보 감독의 쓸쓸한 퇴장이 아쉽다. 그는 분명히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협회가 급하게 편법으로까지 데려다 쓰면서 결국 홍명보 감독은 급격한 추락을 맛봤다. 차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 유럽에서 차근차근 지도자 코스를 밟으며 큰 일을 준비하던 그를 또 다시 단계도 생략한 채 데려왔다. 이렇게 또 총알받이(?)로 쓰다가 쓸모가 다하면 그 역시 좋던 이미지까지 잃고 추락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거다. 차근차근 성장하면 분명히 한국 축구를 위해 큰 일을 할 ‘전설’들을 편법의 희생양으로 삼고 주먹구구식으로 쓰고 버리는 건 아닌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전력분석관을 맡은 차두리가 진심으로 후배들과 대표팀을 생각하는 자세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 차두리를 탓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만든 협회의 문제점이 크다. 분명히 차두리가 대표팀에 합류하면 얻게 될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길게 내다보면 한국 축구와 차두리 모두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선택이다. 성인 대표팀에 선수들 ‘멘탈’을 잡아줄 ‘멘탈 코치’가 부임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다.

홍명보나 차두리처럼 단계도 밟지 않고 초고속으로 승진하는 지도자들이 생겨나면 다른 지도자들의 허탈감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대표팀 코치라는 건 지도자로서는 누릴 수 있는 최종 꿈 같은 자리다. 그런데 누구는 유소년 코치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그 꿈을 위해 밤새 공부하고 땀 흘리는데 스타 선수 출신이라고 해서 자격도 안 되는 이들이 떡하니 하루아침에 국가대표팀 벤치에 앉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회의 정의는 사라지게 된다. 이건 홍명보나 차두리와 같은 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협회의 잘못이 크다. 또한 K리그에서 P급 라이선스가 없어 한 팀에 두 명의 감독이 있는 상황에 대해 자격증 논란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던 언론도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일개 프로팀의 자격증 문제는 비판해도 거대한 협회의 자격증 논란은 무서워서 못 건드리나. 곧 ‘차두리의 형님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질 거다. 대표팀에서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 건 감독인데 일개 전력분석관이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 자체가 ‘비선실세’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우주의 기운을 모아 ‘차두리는 대박’이나 외치자. 안 그러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