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상류에 반달처럼 떠있는 남이섬. 연간 130개국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매년 330만 명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대표 국민관광지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가 곧 찾아온다고 하지만, 우리 관광 현실은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은 중국의 장가계, 황산, 계림, 만리장성 같은 장대한 절경도 없고 유럽처럼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지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또 동남아시아와 남미처럼 자원부국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찾아올까?
한류 열풍이 세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사실 그 진앙은 바로 남이섬이다. 오늘날의 남이섬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어던 게 아니다.
남이섬은 시설물이나 물질적 상품판매에 앞서 다름의 감성체험을 제공하려 했고 설렘과 추억의 이미지를 매일같이 생성해 왔다. 정부는 창조경제, 문화융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천은 답보상태이다.
북한강에 방치됐던 모래밭 ‘남이섬’
먹고 살기 바쁜 시절, 관광이라는 용어도 낯설 던 지난 1965년 북한강 상류에 모래톱이 방치돼 있었다.
한해에도 몇 번씩 강물만 차오르면 고립돼 무성한 수초에 쌓여있던 황무지였지만 그래도 몇 가구는 터전을 떠나지 않았다.
1960년 당시 이 곳 주민이었던 황득수씨는 “1944년 청평댐이 생기고 물이 차올라 섬이 되었을 때는 나룻배를 타고 춘성 방하리를 드나들곤 했다”고 회고했다.
1965년 정부의 외압에 맞서 한국은행 총재직을 사퇴한 민병도(2006년 타계) 선생이 섬을 사려고 했을 때, 주면 사람들은 왜 황무지를 사느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민병도 선생은 “국민들의 문화쉼터가 필요한 날이 올 것이오”라며 그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불모의 땅에 주민들과 나무를 심기 시작했지만 황폐한 모래밭은 심는 족족 말라죽었다. 그렇지만 잣나무,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묘목을 심고 잔디와 꽃을 가꾼 사람들 가운데는 지금까지도 남이섬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종신 직원들이다.
민병도 선생은 2006년 “푸른 동산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유지을 남기고 타계했지만 400여 직원들은 정년 없는 평생직장으로 살고 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남이섬은 청춘들이 일탈하는 유일한 탈출구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손님이 없어 속수무책의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IMF 여파로 관광객 발길 끊겨, 강우현 사장 연봉 100원에 취임
잘나가던 디자이너 강우현, 그가 남이섬을 살리겠다고 했을 때 관광객은 물론 돈도 직원도 없었지만 소주병, 나무토막, 유리조각 등만 남아 있었다.
그는 남들이 쓰다 버린 보도블록, 화장품 병, 타다 남은 소나무, 떨어진 은행잎을 가져다 쓰며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강우현 사장은 연봉 100원에 취임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20여 명 남은 직원들에게 남이섬을 살리겠다며 개인담보로 운영자금을 대출받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6년 남이섬은 300만명 이상이 찾는 국제관광지로 성장했다.
청춘을 바친 일터, 평생을 보장하겠다는 전명준 사장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유일하다시피 평생직장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남이섬이다.
연공이나 직급과 같은 기존관념적 인사제도를 없애고 순환근무방식을 통해 80살 까지 일하도록 하는 평생정년제도를 정착시켰다.
안정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13년간 섬지기를 자처했던 전명준 사장이 말하는 남이섬 입사자격은 너무나 간단했다.
전 사장은 “학력·경력·성별·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남이섬 재산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는 “고객 서비스에 원가 따지지 않으며 손끝 한번 더 지나가는 진정성이 국제관광지로 변모케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또 요즘 부정청탁법으로 혼란스럽지만 남이섬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행사 수수료를 없애고 관광 콘텐츠 자체에 감동하는 고객층을 구성했다.
광고나 홍보비용을 안 쓰는 정직한 마케팅과 임직원들의 밤낮 없는 손끝 정성은 매일같이 새로움을 쏟아내고 있다.
쓰레기 등을 태우고 난 재는 도자기 재료로 쓰이고 가을 낙엽은 하트조형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세계 각국의 옷을 입은 눈사람과 이슬람 기도실은 배려의 정성이 물씬 묻어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광이 쇼핑이나 K-POP에만 쏠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영원한 국민기업 남이섬의 공감철학은 북한강 주변이 동반성장하는 한국관광의 자존심벨트로 실천되면서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교훈이 되고 있다.
노래방은 공연장으로 바뀌었고 술판을 벌이던 건물들은 전시관이 돼 연간 600여회의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니세프 등 사회단체와 공존, 100년 관광 자존심 지킬 것
남이섬은 유니세프홀, 환경학교, 녹색가게와 같은 시민단체의 체험활동이 활발하고 국제 안데르센상을 공식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이 됐다.
농약을 치지 않고 환경을 보전하니 천연기념물 미선나무, 백진달래가 자라고 청설모와 다람쥐가 뛰노는가 하면 천연기념물인 크낙새, 오색딱따구리도 발견되고 있다.
호반새, 소쩍새 울음소리가 상쾌한 아침을 여는 남이섬은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지구상 어디에도 찾기 힘든 기이한 관광지로 변모했다.
설립자 민병도 선생이 마지막으로 남이섬을 찾은 것은 2006년 2월이었다. 고인은 한류열풍으로 관광객이 북적대는 섬을 보며 섬사람들에게 더듬더듬 한마디를 남겼다.
“섬 숲에 새가 많았으면 좋겠다. 개발은 하지 말고…’’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교향악단’을 창설하고 ‘조선어큰사전’을 펴내기도 했던 고인은 민족문화 창달과 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국민훈장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