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정치·경제·사회

개성공단 사태 접근법 ②]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youngsports 2016. 2. 13. 08:49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엄청난 후폭풍을 낳고 있습니다. CBS노컷뉴스가 남북 문제를 다룬 책을 낸 전문가·작가, 관련 콘텐츠를 선보인 문화예술인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군사전문가 김종대 "벼랑 끝 개성공단…원칙 없는 안보정책이 부른 자충수"
② 개성공단에 4년 머문 김진향 교수 "북측 숙련공 中에 배치되면…"
(계속)

북한·통일 문제를 전공한 학자인 김진향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개성공단이라는 평화를 만드는 공장의 불이 꺼졌다"고 했다. 지난해 출간된 책 '개성공단 사람들'(펴낸곳 내일을여는책) 등을 통해 "개성공단은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기적의 공간"이라고 말해 온 그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김 교수는 앞서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맡아 개성공단에 머물면서 세무·회계·임금 등과 관련한 북측과의 협상을 담당했다. 당시 매일같이 북측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개성공단, 더 나아가 북한 사회를 속속들이 보고 들은 그의 말을 전한다.

▶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공간', 직접 본 개성공단은 어떤 곳이었나.

= 분단체제 아래 남과 북은 서로를 잘 모른다. 적대적인 국면이니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그렇게 경계감을 갖고 서로를 봐 온 사람들이 개성공단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났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한 공간에 있다 보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오해'를 '이해'로 만든다. '왜 저렇게 판단하고 행동할까'라는 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다름, 차이는 없더라.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 이미 그곳에서는 통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노동자들에 대한 인상은.

= 북측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너무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물질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와 달리 그들이 정신, 태도를 제일로 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 안에서 우리는 '기브 앤 테이크' 문화로 대변되는 거래에 익숙해 있다. 반면 북측 사람들은 이러한 거래가 사람 사이 본질적인 관계를 흐린다고 여긴다.

일례로 북측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남측 주재원이 "됐다"고 하는 것은 결례가 되기 십상이었다. 호의를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의 도움을 부담스러워하는 데는 언젠가 되돌려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측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했을 때는 호의를 품은 상대에게 자기의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의지일 뿐이었다. 대가를 바라는 행위가 아니더라. 저 역시 이로 인해 실수를 많이 했다. 가치관의 충돌이 늘 있었다. 우리에게 상식이 그들에게는 몰상식이 된다. 우리 사회의 보편과 일반이 그들에게는 특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2일 개성공단 입주 의류임가공업체인 ㈜화인레나운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 전날 개성공단에서 가지고 나온 의류와 원단이 쌓여 있다. 이날 사무실에서 만난 박윤규 화인레나운 회장은 "운 좋게도 북한이 자산동결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 4500장을 겨우 가지고 나왔고 북측에 아직 13만여 장(약 260억 원 가치)의 의류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지난 12일 개성공단 입주 의류임가공업체인 ㈜화인레나운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 전날 개성공단에서 가지고 나온 의류와 원단이 쌓여 있다. 이날 사무실에서 만난 박윤규 화인레나운 회장은 "운 좋게도 북한이 자산동결을 발표하기 바로 직전 4500장을 겨우 가지고 나왔고 북측에 아직 13만여 장(약 260억 원 가치)의 의류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어떤가.

= 개성공단 5만 4000여 명 북측 노동자들의 기본임금은 월 72달러(약 8만 6000원)다. 이는 호봉 등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일을 시작할 때 받는 최저임금이다. 2003년, 2004년 50달러로 시작해 초기 3년간 동결한 뒤 4년째부터 매년 5%씩 오른 결과다. 기본임금에 야근, 특근 등을 더하면 월 150달러(약 18만 원) 정도 된다. 북측에서는 임금이라 하지 않고 보통 생활비라고 한다. 제가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쌀, 부식을 제공하는 전용 상품공급소가 있다. 자기 이름 확인하고 받아가는 식이다.


▶ 정부·여당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에 대해 "핵 개발에 들어가는 자금줄을 막으려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 거짓말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왜곡이요 오도다. 2014년, 2015년 1월 기준으로 개성공단 근로자의 임금이 15만 원이다. 여기서 30%를 공제하면 10만 5000원 정도 되는데, 이를 갖고 4인 가족이 한 달간 먹고 살아야 한다. 공제된 30%는 '사회문화시책비'라고 해서 무상 교육·의료 등 국가시책 운영기금으로 쓰인다. 개성시 전체를 책임지는 개성시인민위원회와 개성공단 북측 담당 총국은 죽었다 깨어나도 20만 명 이상의 개성시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지난 2009년, 2010년 국제 곡물 가격이 200~300%까지 급등했을 때 북측은 현재 임금 갖고는 근로자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으니 임금 협상을 다시 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죽 힘들었으면 "5만 4000여 명 근로자 임금 안 받을 테니,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쌀을 사서 공급해 달라"고 했을까. 4인 가구가 10만 원으로 한 달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북측 경제를 얼마나 허접하게 생각했으면 그 돈이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생각했을까.


▶ 개성공단 폐쇄로 일터를 잃은 북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일자리를 잃었다고 힘들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는 기본 경제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의 노동을 임금으로 보지만, 북측 사람들은 노동을 임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성공단 노동자들 역시 기업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국가적 조치에 의해 파견돼 일을 했으니 국가로부터 공급·배급을 받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노동을 임금 등 가치의 교환으로 보지 않기에 고용과 피고용의 개념이 없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 직장을 잃으면 가정이 몰락할 수 있지만, 저들은 '국가에서 배치하겠지'라며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를 기준으로 저들을 이해하려 하기에 곡해가 많은 것이다. 북측은 이제 돈이라는 개념을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문제는 북측이 '개성공단으로 맺어진 관계가 끝났다'는 판단 아래 개성공단 근로자 5만 4000여 명을 다른 곳에 배속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 측이 입을 타격이다. 그것이 북측 인민위원회, 당의 임무니까.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7~10년간 일한 숙련공으로 갈 데가 많다. 당장 북중 국경지대에 있는 공단이 눈에 들어온다. 개성공단에서 150달러 받던 노동자들이 단둥에 가면 6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무려 4배다. 북측이 5만 4000명의 숙련공을 중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기업에 배속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당장은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지난 12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개성공단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황교안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지난 12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개성공단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황교안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 정부는 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게 가동 중단 사실을 갑작스레 알렸을까.

=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을 믿지 않는다. 정부의 행위를 기업들이 어떻게 판단할지 아니까. 그래서 군사작전 벌이듯이 한 것이다. 사전에 설명을 하고 협조를 구했다면 대부분의 기업은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 스스로 입주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지금 당장 힘든 곳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들이다. 공단 내 OEM 업체들이 정말 많은데, 계액 이행을 못해 원청업체로부터 10배, 20배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기업들이 있다. 이를 누가 책임질 거냐. 정부가 사전에 이야기라도 해줬으면 이들 업체의 타격을 줄이고 고가의 장비는 갖고 나왔을 것 아닌가. 현 정부에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그런 존재다. 안타깝다.


▶ 입주 기업들은 피해 보상 등이 부실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개성공단 가동이 6개월 동안 중단됐을 때의 악몽을 떠올리는 듯한데.

= 학습효과다. 입주 기업들에게 물어보면 알 텐데, 6개월 가동 중단 당시 정부 지원에 대한 수많은 언론 발표가 있었지만, 단 한 푼도 제대로 지급된 게 없다. 발표는 했지만, 이행이 안 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입주 기업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당신들이 판단하고 리스크 안고 들어갔으면서 무슨 보상이냐"고 했다. 입주 기업들은 당시 악몽 같은 경험을 학습했기에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 개성공단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를 꼽는다면.

= 적대적 분단체제는 북한을 구조적 무지의 대상, 체제적 왜곡의 대상으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부당국이 남북관계에 대한 팩트 하나만 비틀어 버리면 되니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 버린, 교류가 없는 분단체제는 결국 비정상적인 구조인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북을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러한 점이 북한에 대한 총체적 무지, 곧 '북맹'을 낳고 있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볼 때 철저히 경제적으로 본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인 우리네 시각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북측은 다르다. 우리가 개성공단을 경제로 보기 때문에 그들도 경제로 볼 것이라 말하는 건 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북측이 평화와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해 추진했다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용납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팩트다. 참으로 심각한 간극인데, 여기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북을 알기 위한 논의 진전이 안 된다.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회원들이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청년학생본부 회원들이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북측은 개성공단을 철저히 우리 민족끼리 일궈낸 평화의 상징으로 본다. 미국은 개성공단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반대했다. 물론 그러한 난관을 뚫고 나갔지만, 미국은 마지막까지 "개성공단은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했다. 북측도 이를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측 근로자 1인당 임금으로 월 200달러를 제시했을 때, 왜 김정일은 50달러로 결정했을까. 왜 개성의 군인들을 뒤로 물렸을까. 기존 북한에 대한 인식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되던 부분이었다. 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개성공단을 경제가 아닌 평화로 보더라는 것을 알았다.

단적인 예로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남측 주재원들의 가장 힘든 점이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걱정이었다.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를 통해 개성공단 상황을 접하는 남측의 아내, 아버지, 어머니를 안심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주재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마누라 걱정시키지 말고 어서 나가라"고 말하는 게 일상이었다. 주재원들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간극이 폭력적인 수준이었다.


▶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현 정부·여당의 북한에 대한 인식 수준은 재앙적이다. 심각하다. 제가 지난 시절 청와대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을 겪고 느낀 게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북한에 대한 총체적 무지는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정부는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들도 정말 모른다. 이 점이 재앙이라는 말이다. 그 정도로 북한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이다.


▶ 개성공단,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 개성공단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평화를 만드는 공장이다.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곳의 불이 꺼졌다. 개성공단은 실제로 제도적·구조적·물리적으로 평화와 안보의 안전장치 역할을 해 왔다. 남북관계만 정상화되면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든 남북화애 면에서든 폭발하게 돼 있다. 정부가 개성공단의 이러한 본질적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이번 조치를 취했을까.

저는 이번 조치가 미국적 이해관계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본다. 미국적 이해관계에 아주 익숙한 외교·안보 라인 관료들의 작품인 것이다. 이해관계에 대한 촉각이 아주 명확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한다. 그들의 인식체계는 국가가 어디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종 결정은 했지만, 그 판단 근거를 제공한 것은 이러한 외교·안보 라인 스태프들이다. 결국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한 셈이다. 개성공단은 숭고한 곳이라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그곳은 당연히 기적의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