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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미피케이션’으로 대중을 움직여라

youngsports 2016. 1. 28. 09:09

‘게이미피케이션’으로 대중을 움직여라

  • 아직 우리는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한 행위에 놀이나 즐거움이 동반된다는 개념이 어색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창조성을 강조하고, 정부까지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현 시점에서 즐거움의 덕목이 중시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창조성이란 즐거움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던가. 오래 전 공자가 남긴, 결국에는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는 진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놀이나 즐거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포츠산업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 글 김필수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

  • <논어>의 ‘옹야(雍也)’ 편에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문구가 나온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의미다.
  • 요즈음 다양한 분야에서 ‘놀이(Play)’와 ‘재미(Fun)’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의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즐거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이 즐겁고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할수록 높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이 같은 개념은 <논어>에서도 볼 수 있듯 오랜 기간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자 일상이다. 게임화 즉,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에 대한 논의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 IT 리서치 기업인 가트너는 2010년부터 주요 글로벌 IT 트렌드 중 하나로 게이미피케이션 시대의 도래를 전망했으며, 현재는 게이미피케이션이 확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미 서점에서도 관련 서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 우리는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일상에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미 다양한 게임 속에서 살고 있다. 커피전문점에서 음료를 구매할 때마다 쿠폰에 받는 도장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도장이 열 개 혹은 스무 개 모이면 한 잔의 무료 음료를 받게 된다. 이 때 정해진 수의 도장을 모으는 것은 소비자에게 주어진 미션이라 할 수 있다. 무료 음료는 ‘미션 클리어’에 대한 보상으로, 커피전문점이 제시한 게임에 소비자가 응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의외로 쉬운 전략, ‘게이미피케이션’
게이미피케이션이란 게임의 요소를 일상적 행동에 적용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을 게임으로 만드는 ‘게임 제작’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의 행동 중 하나인 자동차 운전을 레이싱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게임 제작이다. 반면 특정 지역에서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 운전자에게 쿠폰을 지급하고, 쿠폰을 많이 모은 사람에게 상품을 주는 경우는 게이미피케이션이다. 놀이와 보상과 같은 게임의 요소가 일상생활에 접목되고 어떤 행동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실 게이미피케이션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 약간 요구될 뿐이다. 이제부터 게이미피케이션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게이미피케이션을 위해서는 미션과 이에 따른 보상이 필요하다. 물론 미션을 수행하는 행동은 재미있어야 하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성이나 약간의 경쟁 요소가 가미되기도 한다.
  • 만보기의 등장과 소멸, 진화 역시 게이미피케이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 만보기는 <응답하라 1994>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고 선물했던 건강 증진 도구였다.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걷는 것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걷기 목표를 ‘미션’으로 정하고 건강을 ‘보상’으로 여기면서 만보기를 통해 얼마나 걸었는지 매일 체크한다. 나름대로의 ‘재미’와 함께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이는 게이미피케이션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라 할 수 있다.
  • 물론 만보기라는 물건이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정도 수준의 게임으로는 ‘행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걸음 수를 확인하는 것은 쉽게 지루해질 수 있다. 또한 건강이라는 ‘보상’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장기적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되는 개념이 바로 ‘사회성’이다. 만보기가 진화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나이키플러스(Nike+)’를 들 수 있다. 자신이 얼마나 달렸는지 그 거리를 기록해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름의 ‘경쟁’이 가능하다. 노는 것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할 때 더 재미있기 마련이다.
  • 이러한 원리를 응용하면 ‘한국의 길 걷기 게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올레길, 둘레길, 바우길 같이 각 지방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는 걷기 좋은 길들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각각의 길들을 방문해 걷는 것이 관광객들에게 미션으로 주어지고, 일정 수준 이상 거리를 완주해 ‘클리어’ 할 때마다 ‘보상’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이제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 게임을 지원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만 만든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만하다. 한국의 ‘백두대간 정복’이나 ‘명승고적 찾아가기’도 가능하다. 이 같은 시도는 국민의 건강 증진은 물론, 각 지역의 관광객 증대와 내수 진작 등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 게이미피케이션의 설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목적, 고객, 행동, 지속 방법과 같이 크게 네 가지 요소의 결정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결정되어야 할 요소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앞서의 사례처럼 정부가 국민의 건강 증진이나 관광객 증가, 지역 소비의 증대를 목적으로 할 수도 있고, 기업이라면 매출 확대나 신상품 홍보, 직원 교육 등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
게이미피케이션 설계를 위한 네 가지 요소
게이미피케이션의 설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목적, 고객, 행동, 지속 방법과 같이 크게 네 가지 요소의 결정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결정되어야 할 요소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앞에서 제시했던 사례처럼 정부가 국민의 건강 증진이나 관광객 증가, 지역 소비의 증대를 목적으로 할 수도 있고, 기업이라면 매출 확대나 신상품 홍보, 직원 교육 등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은 단기적일 수도 장기적일 수도 있다. 개봉 영화의 홍보 같은 경우는 단기 목적에 포함된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영화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방문한다거나, 영화 내용과 관련된 소액의 물건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영화 티켓을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물론 그 자체로 영화 홍보가 가능하다. 여기에 영화 속 배경 장소나 물건들이 대부분 협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협찬 공급자를 찾는 것 역시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 즉 이것은 영화 개봉을 전후로 한정된 단기 목적 달성을 위한 게이미피케이션이다.

첫 번째 결정 요소인 목적이 명확하다면, 다음 요소인 ‘고객’이 누구인가 역시 쉽게 알 수 있고, 자연스럽게 해당 고객의 특성까지 도출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퀴즈퀴즈’라는 온라인게임이 적지 않은 인기를 끈 바 있다. 게임 사이트에 접속한 여러 사람들이 초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퀴즈를 풀면서 경쟁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게임을 초등학생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각 학년의 초등학생들이 퀴즈 맞추기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서 해당 학년에 맞는 문제를 푸는 장학퀴즈 형식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들은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름대로 예습, 복습을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각 학년의 수준에 맞는 퀴즈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션에는 고객이 누구(몇 학년)인지와 함께 이 고객들의 특성(초등학생 수준의 문제와 단순함)이 반영되어야 한다.

목적과 고객이 결정되었다면, 다음으로는 고객이 어떤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로 앞서 도출된 특정 고객의 일상적인 행동 가운데 어떤 부분이 계속되면 정해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퀴즈 게임으로 설명하자면, 초등학생의 일상 행동인 놀이와 공부가 목적인 지식 습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당 게임에서 퀴즈 풀기라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초등학교 축구부 학생들이 팀워크를 기르고 축구의 전술을 익힐 수 있도록 교내 컴퓨터실에 모여 축구 게임을 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객, 즉 행동의 주체는 축구부 학생들이고, 이들에게 원하는 결과, 목적은 팀워크 강화와 전술 이해다. 이 요소들을 연결하는 행동이 바로 함께 축구 게임을 하는 것으로, 학생들은 재미있게 행동하며 자연스럽게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지속가능한 고객 행동을 위한 보상
네 번째로는 어떻게 고객의 행동을 ‘지속’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행동의 지속을 위해서는 고객에게 특정 보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이는 물질적 보상이 될 수도 있고, 심리적 보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물질적 보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심리적 보상은 고객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상으로 납득시킬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물질적 보상에 대한 예를 들면, 앞서 말한 커피전문점에서 실시하는 쿠폰의 도장 모으기와 무료 음료가 될 수 있다. 이를 좀 더 응용해 보자. 각 개인이 도장 열 개를 모으면 무료 음료 하나를 제공하는 것처럼 커피전문점에서 열 번째 음료를 판매할 때마다 그것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커피전문점이라면 전국적으로 음료가 열 잔 판매될 때마다 한 번씩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지노의 잭팟과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다. 물론 확률은 커피전문점의 무료 음료가 훨씬 높다.
어차피 일정 수 이상의 도장이 모일 때마다 무료 음료를 제공해야 하는 커피전문점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무료 음료가 제공되기는 마찬가지다. 이 같은 방법을 단기적인 매출 증진이나 홍보를 목적으로 활용하는가, 지속적인 고객 서비스를 목적으로 활용하는가는 각 회사가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음료를 몇 잔 판매할 때마다 무료 제공이 이루어져야 고객들이 행동을 지속할지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이 필요하다. 잭팟의 확률이 높을수록 고객 행동의 지속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행동이 지속될 수 있는 최소의 확률이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은 경우에는 장기 목적 달성을 위한 게이미피케이션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들은 가능한 심리적 보상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는 온라인 포털 서비스들이 네티즌에게 부여하는 가상의 평판, 즉 ‘레퓨테이션(Reputation)’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의 뉴스 페이지 하단에 댓글을 보면 각 아이디 옆에 그 사람이 과거에 작성한 댓글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계급을 볼 수 있다. 물론 계급이 높다고 물질적 보상이 생기진 않는다. 단순히 인터넷 세상의 평판일 뿐 현실 세계에서 특별히 자랑하거나 칭찬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심리적 보상을 위해 노력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가 담긴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역시 심리적 보상을 제공하면서 브리태니커를 시장에서 몰아냈다. 다만 문제는 심리적 보상 구조를 만들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 하듯 즐거운 일상 만들기가 경쟁력
지금까지 게이미피케이션의 개념과 대략적인 구성 방법, 필요 요소 등을 살펴보았다. 사실 성공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을 위해 이상의 방법과 요소들 가운데 한 두 개 정도는 빠질 수 있으며, 다른 요소가 첨가될 수도 있다. 인간, 특히 대중의 행동이란 항상 경험적 규칙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미피케이션의 4원칙, 즉 재미와 용이성, 보상, 육성(nurture)은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이는 앞에서도 강조한 재미와 보상에 용이성과 육성이 더해진 원칙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모든 인터넷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인터넷 보급과 PC방 확산에 큰 역할을 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이상의 네 가지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재미있으며, 10분에서 15분 정도로 게임이 길지 않고, 기본적인 규칙이 어렵지 않다. 또한 자신이 세계에서 몇 등인가를 확인하면서 심리적 보상을 얻는 한편, 자기 아이디의 순위를 높이는 것, 즉 육성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게임이나 게이미피케이션 모두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을 아이들이나 하는 놀이쯤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성인들도 게임에 열중할 만큼 세상이 변했다. 게임을 하듯이 즐거운 일상을 만드는 것이 경쟁력이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한국인은 놀이를 좋아하면서도 타인 혹은 다른 집단과 경쟁할 때 더욱 큰 능력을 발휘한다. 어쩌면 성공 방식의 하나인 게이미피케이션에 가장 적합한 나라는 한국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