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음악이건 글이건 마음먹고 앉아서 쓴 적이 없다. 음악을 만들다가, 갑자기 그림도 그리다가, 한동안은 까먹고 지내다가, 또 떠오르면 막 노래를 만들고 동시를 쓴다. 서울대 잠사학과를 나온 그를 두고 다들 전공과 무관한 삶이라고 말한다. 틀렸다. 어린이의 눈을 가진 그는 삶 속에서 아름다운 비단을 짜는, 가장 전공을 잘 살린 사람이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추석 날 아침, 차례상을 차리느라 분주한데 조카들이 둘러앉아서 ‘할아버지 불알’을 목청이 터지게 부르고 있다.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다가 또 한 녀석이 노래를 시작한다. “엄마! 할아버지 불알은 정말 시커매?” 여섯 살 가온이가 묻는다. 새언니 얼굴이 빨개진다. “얘들아, 조상님 차례상 앞에서 웬 할아버지 불알 타령이야?” 야단을 치려던 어머니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차례상 위에 올라앉으신 할아버지들이 하얀 지방 수염을 펄럭이며 함께 웃는다. 가수 김창완 아저씨가 지은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 <할아버지 불알> 덕분에 어린이부터 사진 속 고조할아버지까지 모두 깔깔깔 웃음보가 터진 우리 집 추석날 아침 풍경.
여섯 살 조카와 예순다섯 살 우리 어머니는 식구들 중에 가장 열성적인 김창완 아저씨의 팬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여섯 살 때부터 산울림 아저씨들이 부른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가족들에게 한글날 선물로 김창완 아저씨에 관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모두 박수를 짝짝 치며 즐거워했다. 그가 부른 노래들은 대부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2013년, 격월간 <동시마중> 3·4월호에 ‘할아버지 불알’ 등 동시 5편을 발표하면서 그가 ‘동시시인 김창완’으로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기보다 반가워했다.
“아마도 외계인일 거야!”
식구들이 입을 모았다. 가수, 작곡가, 작사가, 동화작가, 배우, 라디오 진행자, 소설가, 동시시인….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동시시인 김창완’이 가장 반가운 건 그가 쓴 글을 보면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마음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이건 음악이건 그림이건… 보이는 대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는 정말이지 어린이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신나게 받아 적는 사람, 김창완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 가족이요, 김창완 아저씨는 정말 외계인 같대요.
“사실 우린 다 외계인이에요. 별을 보면 왜 고향 생각이 날까? 몇 광년이 떨어져 있는, 멀리 있는 저 별을 보면 왜 나는 고향 생각이 날까? 이거 외계인인 게 틀림없어. 웃기잖아. 말이 안 되잖아.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다 외계인이에요. 이건 진짜 뻥이 아니고 사실이야! 그 중에 나는 외계인 미숙아지.”(웃음)
77년에 동생들과 함께 <산울림>을 만든 이후에 오늘까지 공백 없이 많은 활동을 해오셨어요. 드라마 70여 편, 영화 20여편에도 출연한 배우이자 전문 방송진행자고요. 78년부터 시작한 일일 라디오방송은 하루도 쉰 적이 없기로 소문이 났어요. 방송국까지 42㎞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날이 많다고 들었어요. 정말 부지런한 꿀벌 같아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이거 볼래요? 나는 휴대폰에 모닝 알람이 4개예요. 6시40분, 7시, 7시30분, 8시57분. 6시40분은 자전거로 가는 날, 날씨가 나빠서 차로 가는 날은 7시, 오토바이로 가고 싶은 날은 7시30분, 방송 시작 3분 전인 8시57분에 알람이 울리죠. 37년째 아침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살았어요. 내가 관심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으니까…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 어떤 힘이라기보다 강박인데요, ‘할까 말까?’ 판단 이전의 문제예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으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야만 해요. 그 생각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심장을 뛰게 하는 것과 같은 거죠. 불수의근과 같은 사고. 심장이 늘 뛰는 것처럼… 그러니까 눈이 떠지더라고요.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눈이 딱 떠지고, 방송국에 가면 힘이 생겨나고요.”
<할아버지 불알>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그 작품은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썼을 뿐이에요. ‘성이 다 바래버린 할아버지의 슬픔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어른들은 해석하는데, 애들이 마음대로 느끼게 두면 좋겠어요. 어른의 시각, 감성으로 평론을 하는 걸 보면 ‘내가 이제 무슨 짓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거는 애들을 감옥에 옥살이시키는 거잖아요? 내가 동시를 쓸 때 마구 즐겁듯이, 아이들도 마음대로 동시를 느끼도록 그냥 두면 좋겠어요.”
수시로 작사 작곡을 해서 <김창완 밴드> 멤버들에게 보내고, 동시도 생각날 때마다 써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문자 발송을 한다고요?
“나는 음악이건 글이건 마음먹고 앉아서 쓴 적이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가사를 하나 써서 나갔어요. 며칠을 지지고 볶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게 있었어요. 그래서 코드를 그냥 탕 쳤는데, 으레 D야. D를 탕 쳤는데 너무 좋은 거야, 노래가 막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이 상쾌해졌어요. 이런 날엔 사람들 목소리도 크게 들리고, 사람들 발자국 소리도 선명하게 들리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막 들어요. 이렇게 음악을 만들다가, 갑자기 그림도 그리다가, 한동안은 까먹고 지내다가, 또 떠오르면 막 노래 만들다가…. 내가 최근에 쓴 동시 읽어 볼래요? 9월 16일에 그날 또 미친 듯이 뭐에 막 꽂혀가지고 내가 쓴 시예요.
‘엄마가 드라마 보는데/ 아빠가 축구경기로 바꿨다/ 엄마가 다시 리모컨을 뺏어서/ 드라마로 돌렸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축구로 바꾸고 리모컨을/ 장롱 위에다 얹어버렸다/ 엄마가 부엌에 가서/ 수돗물을 확 틀면서/ 왈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랑 같이 축구 보던 동생은/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디지게 혼났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전문.
‘나는 왕자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왕이라도 나는 왕자가 아닌 것 같다/ 울 엄마가 왕비라도 나는 왕자가 아닐 것 같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 하고/ 나는 왕자일 리가 없다/ 금이가 나를 좋아하질 않는데/ 어떻게 왕자가 되나/ 공주님 공주님 내 공주님/ 금이는 진짜 공주 같다’ -<금이 공주> 전문.
유치원 같이 다니는 금이가 좋아죽겠는 완이는 냉가슴을 앓으며 손가락으로 단추구멍만 넓히고 있어요. 그 마음을 제가 대신 읽어줬어요. 하하하….”
지금 웃는 모습도 딱 7살 완이예요. ‘어린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어린이 같아요. 아저씨 눈에 비친 세상은 모두 동시가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동시가 되죠. 그런데 어른들의 이야기에서도 동시가 막 떠올라요. 오늘은 한 아저씨의 사연이 들어왔어요. 부인의 긴 머리 때문에 괴로운 아저씨의 얘기예요. 연애시절에 ‘난 당신의 긴 생머리가 너무 좋아’ 그랬대. 그때 말을 잘못 뱉어가지고는 지금 애를 셋이나 낳았는데 아직도 부인이 귀신 머리를 하고 돌아다녀서 괴롭다는 거예요. 난 갑자기 라푼젤 생각이 딱 났어요. 정말 아름다운… 지지고 볶고 사는 부부 얘기지만, 긴 머리 엄마를 라푼젤로 만들어서 아름다운 동요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 아주 다른 세상, 재미있는 세상이 되는 거잖아요?”
소설집 <사일런트 머신 길자>에서 직접 그리신 그림을 봤는데요, 딱 7살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었어요.
“9살 어린이 그림이라던데… 두 살 깎였네요. 며칠 전에도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어요. 이거 좀 보세요. 내가 아이폰에 그린 거예요. 이건 ‘구름 그네’예요. 진짜 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그네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구름에다가 그네를 매달아서 타면 좋겠다! 생각하고 그린 거죠. 어때요? 정말 시원하죠? 입을 쩍 벌리고 웃는 돼지 입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그림도 그리고, 하늘에 도장을 꽝 찍는 그림도 그리고요.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매듭’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진짜 수백 번을 그렸어요. 근데 안 돼요. 그리고 싶어 죽겠는데…. 그래서 불 끄고 자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어. 휴대폰 줄을 묶어가지고 한참을 째려보니까 선이 딱 보이는 거예요. 백문이 불여일견이구나…. 하고 싶으면 그 순간 당장, 될 때까지… 난 그렇게 해요.”
저도 재밌는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잘 안 써져서 쉬고 있어요.
“일단, 써!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써요. 잘 쓰려고 하니까 안 써지는 거예요. 잘 쓰고 못 쓰고는 자기 몫이 아닌 거예요. 나는 그림쟁이가 아니지만, 정말 그림을 좋아해요. 무조건 그려요. 그림이 되건 말건…. 글쟁이도 마찬가지고 음악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음악 하는 사람이 멋있는 음악을 해야겠다? 개코 같은 소리지. 무조건 열심히 곡을 써야 돼요. 실천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알타미라 동굴 얘기해 줄게요. 그 시절이 사냥을 나가면 소를 잡아올 때도 있고, 사자한테 물려죽을 때도 있고 그렇게 무서운 시절 아니야. 얼마나 사냥을 잘하고 싶었으면 동굴 속에다가 그림을 그렸겠어요? 더 기가 막힌 게 뭔 줄 알아요? 거긴 동굴 안이잖아요. 불도 지피고 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요. 근데 아주 선명하게 그렸잖아요? 간절한 마음으로 동굴 속에 불을 지피고, 빨간색이 필요하면 자기 피를 찍어서라도 그리고, 노란색은 어디서 구하나? 노란 빛깔 식물을 찧고 빻아서 노란색을 칠하고 그랬을 것 아니야?”
지금 우리는 동굴 안에 있는 거군요.
“그럼…. 그러니까 불도 때야 하고 내 피를 찍어서라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거예요. 간절한 마음으로요. 무릇 모든 예술 장르에 다 통하는 얘기예요. 어떡할 거예요? 꼭 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잖아! 이론보다 중요한 건 간절한 마음이에요. 내가 음악을 처음 만들 때, 진짜 단순무식한 코드밖에 모를 때, 그때 음악이 샘솟던 간절한 마음이 없어지는 게 두려워요. 언어를 많이 배웠다고 해서 톨스토이 같은 글을 쓰고, 셰익스피어 같은 글이 써지나요?”
어린이들을 위해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지금 내 심정 알잖아요? 아이들한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려줘야 되는데…. 그 세상 안에는 동시가 무조건 들어가야 돼요. 동시를 오로지 어린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어린이들의 세상은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 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해설 같은 게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감옥에 가두는 것 같아요. 어른이 어린이의 세상을 만들어서 주는 것에 반대해요.”
사실 저는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읽은 후 아저씨의 소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거기 실린 6편의 단편 중에서 <숲으로 간 죠죠>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우울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였죠. 죠죠가 마치 제 모습 같았어요. 한동안 제 책상에 붙여놓고 소리 내어 읽었던 구절을 외우고 있어요. ‘절망적인 바깥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죠죠는 희망을 찾아 아빠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무서워하는 그에게 앞서 걷는 아빠 고양이는 말한다. ’두려움은 네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것이란다. 죽음이 네 앞에 있더라도 아빠 꼬랑지가 있다고 생각해라.‘ 죠죠는 검은, 자기의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숲으로 간 죠죠>는 꼭 쓰고 싶었어요. 우연히 집 앞에서 새끼 고양이가 정말 비참하게 죽은 걸 봤어요. 우리 애하고 산에다 묻어 주었죠. 건물을 짓고 나면 계량기나 배수구를 쇠판으로 덮어놓는데, 쇠판이 살짝 비틀어져서 날카로운 빈틈이 생긴 거예요. 하필 새끼 고양이가 거기 발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앞발을 쫙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죽었어. 목각인형같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길고양이들이 이렇게 죽는구나….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력이 가는 대로 만든 거예요.
아버지하고 나하고 평생 동안 나눈 대화는 ‘밥 먹었냐’, ‘학교 잘 갔다 왔니’, 그것밖에 없어요. 말이 없는 분이었어요. 1971년에 쓰러져서 1998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28년 동안 내가 병구완을 했어요. 묵묵히 내 앞에 걸어갔던 그 말없음, 그게 앞에서 꼬리처럼 흔들흔들 나를 이끌었던 거죠. 아버지는 가셨어도 아빠 꼬랑지는 늘 우리 앞에서 흔들흔들… 그런 거예요. ‘말없음이 진정한 소통’이에요. 진정 아이들과 소통을 하려면 말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요. 말에다 담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말은 말이지, 거기다 뭘 담아. 공기 같은 건데….”
사람들이 김창완 아저씨는 천재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똘똘하다고 말하는 거, 아이들에게 폐해를 많이 끼쳐요. 어른들은 절대로 누가 똘똘한지 몰라. 난 진짜 네 살 때 일을 다 기억해요. 어른들이 목말 태워준다고 하면 애들이 다 자기 살 궁리하지. 목말 태워준다고 좋은 줄 알아요? 떨어질까 봐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어른들은 애들의 마음을 몰라요. 난 네 살 때 그걸 눈치채고 어른을 믿지 않았어요. 안 믿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아저씨, 이 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네 살 무렵에 뛰어놀다가 넘어졌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들어갔어요. 바늘이 부러진 채 박혀버렸어. 막 울고불고 난리치니까 할아버지가 망치로 손바닥을 막 때렸어. 그리곤 다 나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눈물을 닦았지. 그리고 40년 지났어. 손을 다쳐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박혀 있는 거야. 어렸을 때, 그거. 할아버지가 다 나았다고 했는데, 바늘이, 그 고통이 평생 내게 박혀 있었던 거예요. 불행한 환경도 내 환경이에요. 좋은 것만 먹고 싶고, 좋은 환경에서만 살고 싶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엄청난 시련도 인생의 옥토를 만드는 거름이 돼요.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인생은 뭐가 성공인지 모르는 거예요. 나는 사실 사회 부적응자예요. 삶은 언제나 척박하지. 하지만 나 같은 영감탱이를 금으로 만들고 옥으로 만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매니저 지주현 대표도 18년 동안 변함없이 김창완을 지켜주고 있어요.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글 쓰면서 진짜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저희 엄마한테 김창완 아저씨가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래요.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서 ‘노란 리본’ 노래를 만드셨고,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소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또 하나의 약속>에는 무료로 음악을 제공하셨어요.
“1985년에 꾸러기들 공연할 때, 내가 팸플릿 겉에 인사말을 뭐라고 썼냐면, ‘아, 우는 너를 안아주랴, 너를 안고 내가 울랴.’ 우는 사람들이랑 같이 울자는 취지의 내 프로젝트였어요. 어머니께서 어찌 아셨을까요?”
김창완 아저씨를 만나면 누구든 자기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다음날 아침, 문자가 왔다.
“오늘이 1973년 10월 23일 화요일 같기를 바랍니다. 이날은 어떤 의미 있는 날이 아니에요. 그 시절은 내 친구들이 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때예요. 별 볼일 없던 그 하루가 소중한 하루였다는 것, 그게 지금에 와서 가슴을 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요…. 그만큼 오늘이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추석 날 아침, 차례상을 차리느라 분주한데 조카들이 둘러앉아서 ‘할아버지 불알’을 목청이 터지게 부르고 있다.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다가 또 한 녀석이 노래를 시작한다. “엄마! 할아버지 불알은 정말 시커매?” 여섯 살 가온이가 묻는다. 새언니 얼굴이 빨개진다. “얘들아, 조상님 차례상 앞에서 웬 할아버지 불알 타령이야?” 야단을 치려던 어머니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차례상 위에 올라앉으신 할아버지들이 하얀 지방 수염을 펄럭이며 함께 웃는다. 가수 김창완 아저씨가 지은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 <할아버지 불알> 덕분에 어린이부터 사진 속 고조할아버지까지 모두 깔깔깔 웃음보가 터진 우리 집 추석날 아침 풍경.
여섯 살 조카와 예순다섯 살 우리 어머니는 식구들 중에 가장 열성적인 김창완 아저씨의 팬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여섯 살 때부터 산울림 아저씨들이 부른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가족들에게 한글날 선물로 김창완 아저씨에 관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모두 박수를 짝짝 치며 즐거워했다. 그가 부른 노래들은 대부분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2013년, 격월간 <동시마중> 3·4월호에 ‘할아버지 불알’ 등 동시 5편을 발표하면서 그가 ‘동시시인 김창완’으로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기보다 반가워했다.
“아마도 외계인일 거야!”
식구들이 입을 모았다. 가수, 작곡가, 작사가, 동화작가, 배우, 라디오 진행자, 소설가, 동시시인….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이름 중에서 ‘동시시인 김창완’이 가장 반가운 건 그가 쓴 글을 보면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마음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글이건 음악이건 그림이건… 보이는 대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는 정말이지 어린이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신나게 받아 적는 사람, 김창완 아저씨를 만났다.
우리 가족이요, 김창완 아저씨는 정말 외계인 같대요.
“사실 우린 다 외계인이에요. 별을 보면 왜 고향 생각이 날까? 몇 광년이 떨어져 있는, 멀리 있는 저 별을 보면 왜 나는 고향 생각이 날까? 이거 외계인인 게 틀림없어. 웃기잖아. 말이 안 되잖아.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누구나 다 외계인이에요. 이건 진짜 뻥이 아니고 사실이야! 그 중에 나는 외계인 미숙아지.”(웃음)
77년에 동생들과 함께 <산울림>을 만든 이후에 오늘까지 공백 없이 많은 활동을 해오셨어요. 드라마 70여 편, 영화 20여편에도 출연한 배우이자 전문 방송진행자고요. 78년부터 시작한 일일 라디오방송은 하루도 쉰 적이 없기로 소문이 났어요. 방송국까지 42㎞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날이 많다고 들었어요. 정말 부지런한 꿀벌 같아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이거 볼래요? 나는 휴대폰에 모닝 알람이 4개예요. 6시40분, 7시, 7시30분, 8시57분. 6시40분은 자전거로 가는 날, 날씨가 나빠서 차로 가는 날은 7시, 오토바이로 가고 싶은 날은 7시30분, 방송 시작 3분 전인 8시57분에 알람이 울리죠. 37년째 아침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이렇게 살았어요. 내가 관심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으니까…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 어떤 힘이라기보다 강박인데요, ‘할까 말까?’ 판단 이전의 문제예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으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있어야만 해요. 그 생각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심장을 뛰게 하는 것과 같은 거죠. 불수의근과 같은 사고. 심장이 늘 뛰는 것처럼… 그러니까 눈이 떠지더라고요.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눈이 딱 떠지고, 방송국에 가면 힘이 생겨나고요.”
<할아버지 불알>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그 작품은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썼을 뿐이에요. ‘성이 다 바래버린 할아버지의 슬픔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어른들은 해석하는데, 애들이 마음대로 느끼게 두면 좋겠어요. 어른의 시각, 감성으로 평론을 하는 걸 보면 ‘내가 이제 무슨 짓을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거는 애들을 감옥에 옥살이시키는 거잖아요? 내가 동시를 쓸 때 마구 즐겁듯이, 아이들도 마음대로 동시를 느끼도록 그냥 두면 좋겠어요.”
수시로 작사 작곡을 해서 <김창완 밴드> 멤버들에게 보내고, 동시도 생각날 때마다 써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문자 발송을 한다고요?
“나는 음악이건 글이건 마음먹고 앉아서 쓴 적이 없어요. 오늘 아침에도 가사를 하나 써서 나갔어요. 며칠을 지지고 볶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게 있었어요. 그래서 코드를 그냥 탕 쳤는데, 으레 D야. D를 탕 쳤는데 너무 좋은 거야, 노래가 막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기분이 상쾌해졌어요. 이런 날엔 사람들 목소리도 크게 들리고, 사람들 발자국 소리도 선명하게 들리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막 들어요. 이렇게 음악을 만들다가, 갑자기 그림도 그리다가, 한동안은 까먹고 지내다가, 또 떠오르면 막 노래 만들다가…. 내가 최근에 쓴 동시 읽어 볼래요? 9월 16일에 그날 또 미친 듯이 뭐에 막 꽂혀가지고 내가 쓴 시예요.
‘엄마가 드라마 보는데/ 아빠가 축구경기로 바꿨다/ 엄마가 다시 리모컨을 뺏어서/ 드라마로 돌렸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축구로 바꾸고 리모컨을/ 장롱 위에다 얹어버렸다/ 엄마가 부엌에 가서/ 수돗물을 확 틀면서/ 왈그락 달그락 설거지를 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랑 같이 축구 보던 동생은/ 공부 안 한다고/ 엄마한테 디지게 혼났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된다> 전문.
‘나는 왕자가 아닌 것 같다/ 아버지가 왕이라도 나는 왕자가 아닌 것 같다/ 울 엄마가 왕비라도 나는 왕자가 아닐 것 같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 하고/ 나는 왕자일 리가 없다/ 금이가 나를 좋아하질 않는데/ 어떻게 왕자가 되나/ 공주님 공주님 내 공주님/ 금이는 진짜 공주 같다’ -<금이 공주> 전문.
유치원 같이 다니는 금이가 좋아죽겠는 완이는 냉가슴을 앓으며 손가락으로 단추구멍만 넓히고 있어요. 그 마음을 제가 대신 읽어줬어요. 하하하….”
지금 웃는 모습도 딱 7살 완이예요. ‘어린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어린이 같아요. 아저씨 눈에 비친 세상은 모두 동시가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동시가 되죠. 그런데 어른들의 이야기에서도 동시가 막 떠올라요. 오늘은 한 아저씨의 사연이 들어왔어요. 부인의 긴 머리 때문에 괴로운 아저씨의 얘기예요. 연애시절에 ‘난 당신의 긴 생머리가 너무 좋아’ 그랬대. 그때 말을 잘못 뱉어가지고는 지금 애를 셋이나 낳았는데 아직도 부인이 귀신 머리를 하고 돌아다녀서 괴롭다는 거예요. 난 갑자기 라푼젤 생각이 딱 났어요. 정말 아름다운… 지지고 볶고 사는 부부 얘기지만, 긴 머리 엄마를 라푼젤로 만들어서 아름다운 동요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 아주 다른 세상, 재미있는 세상이 되는 거잖아요?”
소설집 <사일런트 머신 길자>에서 직접 그리신 그림을 봤는데요, 딱 7살 어린이가 그린 그림이었어요.
“9살 어린이 그림이라던데… 두 살 깎였네요. 며칠 전에도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어요. 이거 좀 보세요. 내가 아이폰에 그린 거예요. 이건 ‘구름 그네’예요. 진짜 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그네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구름에다가 그네를 매달아서 타면 좋겠다! 생각하고 그린 거죠. 어때요? 정말 시원하죠? 입을 쩍 벌리고 웃는 돼지 입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그림도 그리고, 하늘에 도장을 꽝 찍는 그림도 그리고요.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매듭’을 그리고 싶은 거예요. 진짜 수백 번을 그렸어요. 근데 안 돼요. 그리고 싶어 죽겠는데…. 그래서 불 끄고 자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어. 휴대폰 줄을 묶어가지고 한참을 째려보니까 선이 딱 보이는 거예요. 백문이 불여일견이구나…. 하고 싶으면 그 순간 당장, 될 때까지… 난 그렇게 해요.”
저도 재밌는 동화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잘 안 써져서 쉬고 있어요.
“일단, 써!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써요. 잘 쓰려고 하니까 안 써지는 거예요. 잘 쓰고 못 쓰고는 자기 몫이 아닌 거예요. 나는 그림쟁이가 아니지만, 정말 그림을 좋아해요. 무조건 그려요. 그림이 되건 말건…. 글쟁이도 마찬가지고 음악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음악 하는 사람이 멋있는 음악을 해야겠다? 개코 같은 소리지. 무조건 열심히 곡을 써야 돼요. 실천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야. 알타미라 동굴 얘기해 줄게요. 그 시절이 사냥을 나가면 소를 잡아올 때도 있고, 사자한테 물려죽을 때도 있고 그렇게 무서운 시절 아니야. 얼마나 사냥을 잘하고 싶었으면 동굴 속에다가 그림을 그렸겠어요? 더 기가 막힌 게 뭔 줄 알아요? 거긴 동굴 안이잖아요. 불도 지피고 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잖아요. 근데 아주 선명하게 그렸잖아요? 간절한 마음으로 동굴 속에 불을 지피고, 빨간색이 필요하면 자기 피를 찍어서라도 그리고, 노란색은 어디서 구하나? 노란 빛깔 식물을 찧고 빻아서 노란색을 칠하고 그랬을 것 아니야?”
지금 우리는 동굴 안에 있는 거군요.
“그럼…. 그러니까 불도 때야 하고 내 피를 찍어서라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거예요. 간절한 마음으로요. 무릇 모든 예술 장르에 다 통하는 얘기예요. 어떡할 거예요? 꼭 하고 싶다면…. 방법이 없잖아! 이론보다 중요한 건 간절한 마음이에요. 내가 음악을 처음 만들 때, 진짜 단순무식한 코드밖에 모를 때, 그때 음악이 샘솟던 간절한 마음이 없어지는 게 두려워요. 언어를 많이 배웠다고 해서 톨스토이 같은 글을 쓰고, 셰익스피어 같은 글이 써지나요?”
어린이들을 위해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지금 내 심정 알잖아요? 아이들한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려줘야 되는데…. 그 세상 안에는 동시가 무조건 들어가야 돼요. 동시를 오로지 어린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어린이들의 세상은 어린이들에게 돌려줘야 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해설 같은 게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감옥에 가두는 것 같아요. 어른이 어린이의 세상을 만들어서 주는 것에 반대해요.”
사실 저는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읽은 후 아저씨의 소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거기 실린 6편의 단편 중에서 <숲으로 간 죠죠>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랜 시간 우울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였죠. 죠죠가 마치 제 모습 같았어요. 한동안 제 책상에 붙여놓고 소리 내어 읽었던 구절을 외우고 있어요. ‘절망적인 바깥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죠죠는 희망을 찾아 아빠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무서워하는 그에게 앞서 걷는 아빠 고양이는 말한다. ’두려움은 네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것이란다. 죽음이 네 앞에 있더라도 아빠 꼬랑지가 있다고 생각해라.‘ 죠죠는 검은, 자기의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숲으로 간 죠죠>는 꼭 쓰고 싶었어요. 우연히 집 앞에서 새끼 고양이가 정말 비참하게 죽은 걸 봤어요. 우리 애하고 산에다 묻어 주었죠. 건물을 짓고 나면 계량기나 배수구를 쇠판으로 덮어놓는데, 쇠판이 살짝 비틀어져서 날카로운 빈틈이 생긴 거예요. 하필 새끼 고양이가 거기 발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앞발을 쫙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죽었어. 목각인형같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길고양이들이 이렇게 죽는구나…. 너무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길고양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력이 가는 대로 만든 거예요.
아버지하고 나하고 평생 동안 나눈 대화는 ‘밥 먹었냐’, ‘학교 잘 갔다 왔니’, 그것밖에 없어요. 말이 없는 분이었어요. 1971년에 쓰러져서 1998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28년 동안 내가 병구완을 했어요. 묵묵히 내 앞에 걸어갔던 그 말없음, 그게 앞에서 꼬리처럼 흔들흔들 나를 이끌었던 거죠. 아버지는 가셨어도 아빠 꼬랑지는 늘 우리 앞에서 흔들흔들… 그런 거예요. ‘말없음이 진정한 소통’이에요. 진정 아이들과 소통을 하려면 말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돼요. 말에다 담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말은 말이지, 거기다 뭘 담아. 공기 같은 건데….”
사람들이 김창완 아저씨는 천재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똘똘하다고 말하는 거, 아이들에게 폐해를 많이 끼쳐요. 어른들은 절대로 누가 똘똘한지 몰라. 난 진짜 네 살 때 일을 다 기억해요. 어른들이 목말 태워준다고 하면 애들이 다 자기 살 궁리하지. 목말 태워준다고 좋은 줄 알아요? 떨어질까 봐 나는 불안해 죽겠는데…. 어른들은 애들의 마음을 몰라요. 난 네 살 때 그걸 눈치채고 어른을 믿지 않았어요. 안 믿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아저씨, 이 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가 네 살 무렵에 뛰어놀다가 넘어졌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들어갔어요. 바늘이 부러진 채 박혀버렸어. 막 울고불고 난리치니까 할아버지가 망치로 손바닥을 막 때렸어. 그리곤 다 나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눈물을 닦았지. 그리고 40년 지났어. 손을 다쳐서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박혀 있는 거야. 어렸을 때, 그거. 할아버지가 다 나았다고 했는데, 바늘이, 그 고통이 평생 내게 박혀 있었던 거예요. 불행한 환경도 내 환경이에요. 좋은 것만 먹고 싶고, 좋은 환경에서만 살고 싶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 엄청난 시련도 인생의 옥토를 만드는 거름이 돼요.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인생은 뭐가 성공인지 모르는 거예요. 나는 사실 사회 부적응자예요. 삶은 언제나 척박하지. 하지만 나 같은 영감탱이를 금으로 만들고 옥으로 만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매니저 지주현 대표도 18년 동안 변함없이 김창완을 지켜주고 있어요.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글 쓰면서 진짜 행복한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저희 엄마한테 김창완 아저씨가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래요.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서 ‘노란 리본’ 노래를 만드셨고,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소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또 하나의 약속>에는 무료로 음악을 제공하셨어요.
“1985년에 꾸러기들 공연할 때, 내가 팸플릿 겉에 인사말을 뭐라고 썼냐면, ‘아, 우는 너를 안아주랴, 너를 안고 내가 울랴.’ 우는 사람들이랑 같이 울자는 취지의 내 프로젝트였어요. 어머니께서 어찌 아셨을까요?”
김창완 아저씨를 만나면 누구든 자기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다음날 아침, 문자가 왔다.
“오늘이 1973년 10월 23일 화요일 같기를 바랍니다. 이날은 어떤 의미 있는 날이 아니에요. 그 시절은 내 친구들이 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때예요. 별 볼일 없던 그 하루가 소중한 하루였다는 것, 그게 지금에 와서 가슴을 친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요…. 그만큼 오늘이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서울대 잠사학과를 졸업했으나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틀렸다. 그는 삶 속에서 아름다운 비단을 짜는, 가장 전공을 잘 살린 사람이다. 아저씨 동화 속 구절이 또다시 떠올랐다. 나는 아름다운 오늘의 내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은 국내외 화제의 인물 인터뷰와 생생한 현장 취재를 통해 문화예술계의 속살을 보여준다. 박상미는 대학에서 영화비평·문화비평·시나리오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인권문제를 다룬 단편영화 <포르노 시나리오>도 연출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은 국내외 화제의 인물 인터뷰와 생생한 현장 취재를 통해 문화예술계의 속살을 보여준다. 박상미는 대학에서 영화비평·문화비평·시나리오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인권문제를 다룬 단편영화 <포르노 시나리오>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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