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폭주 멈춘 세계를 강타한 북유럽 신드롬
‘일부 계층에서 조금씩 일던 북유럽 붐이 요즘 본격화되고 있다. 일단 소비 측면을 보면 북유럽 가구를 비롯해 가정 소품, 유모차 브랜드는 이미 백화점에서 폭넓게 판매되고 있고 북유럽 전문 편집 숍들도 등장하고 있다. 2006년 핀란드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덴마크 영화 '더헌트(The Hunt)'를 비롯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에 대한 영화 '토르'도 이제 익숙하다. 또 북유럽의 스산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북유럽 스릴러 소설도 무시할 수 없는 트렌드가 됐다.
새로운 방식의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엄격한 '타이거 맘' 방식에서 탈피해 친환경 분위기에서 아이와 자유롭게 소통하는 '스칸디 맘' 방식으로 교육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북유럽 교육, 북유럽 디자인, 북유럽 신화, 북유럽 여행기,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책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북유럽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북유럽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앞서 말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를 비롯해 오딘은 우리가 매주 만나는 목요일·수요일의 어원이다. 또 일정 금액만 내면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뷔페는 예전 북유럽 바이킹들이 음식을 먹었던 방식이다.
창조 경제 역량 상위권 휩쓴 북유럽 국가들
최초로 창작 동화를 만든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비롯해 '인형의 집' 희곡을 쓴 헨리크 입센, 해골 같이 생긴 사람이 석양을 배경으로 고뇌 속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절규'를 그린 에드바르트 뭉크가 노르웨이 사람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의 원저를 쓴 카렌 블릭센은 덴마크 사람이고 공전에 히트를 친 뮤지컬 '맘마미아'에 나오는 모든 음악을 만든 남녀 혼성 4인조 팝 그룹인 아바는 스웨덴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북유럽 붐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를 휩쓴 경제 불황 속에서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이 유독 빨리 회복하고 있다. 2013년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쟁력, 사업 용이성, 글로벌 혁신성, 부패 정도, 인적자원, 호황 측면에서 15개 국가의 지수를 산출해 평균을 냈는데
많은 사람이 북유럽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북유럽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앞서 말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를 비롯해 오딘은 우리가 매주 만나는 목요일·수요일의 어원이다. 또 일정 금액만 내면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뷔페는 예전 북유럽 바이킹들이 음식을 먹었던 방식이다.
창조 경제 역량 상위권 휩쓴 북유럽 국가들
최초로 창작 동화를 만든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비롯해 '인형의 집' 희곡을 쓴 헨리크 입센, 해골 같이 생긴 사람이 석양을 배경으로 고뇌 속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절규'를 그린 에드바르트 뭉크가 노르웨이 사람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의 원저를 쓴 카렌 블릭센은 덴마크 사람이고 공전에 히트를 친 뮤지컬 '맘마미아'에 나오는 모든 음악을 만든 남녀 혼성 4인조 팝 그룹인 아바는 스웨덴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북유럽 붐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일까. 그렇지 않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를 휩쓴 경제 불황 속에서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이 유독 빨리 회복하고 있다. 2013년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쟁력, 사업 용이성, 글로벌 혁신성, 부패 정도, 인적자원, 호황 측면에서 15개 국가의 지수를 산출해 평균을 냈는데
북유럽 4개국이 모두 1~4위를 차지했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주요국의 창조 경제 역량 지수를 발표했는데 31개 OECD 국가 중 1위인 스위스에 이어 북유럽의 4개 국가가 2위부터 5위까지를 휩쓸었다. 전체 20위인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자본은 1위, 혁신 자본은 11위지만 인적·사회·문화 자본은 매우 처져 있다. 반면 북유럽 국가는 사회자본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사회자본은 1위인데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이 유난히 세계 랭킹에 목맨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면에서 북유럽 국가의 높은 랭킹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일본·중국은 경제적 파워에서는 강력하지만 삶의 질, 소득 평등, 부패, 신뢰 같은 질적 지표에서 밀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 국가는 여러 모로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세계 많은 나라에 파급돼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한때 공산주의로부터 큰 위협을 받았지만 잘 극복했는데, 그 사이에 북유럽식 자본주의도 두각을 나타냈다. 서유럽 방식은 두 모델의 중간에 해당된다. 두 가지 방식 모두 민주주의에 기반을 뒀지만 영미식은 자유에 방점을 찍는 대신 북유럽식은 평등에 방점을 찍었다. 영미식은 세금과 복지가 모두 적은 반면 북유럽식은 세금과 복지가 모두 높은 것이 특징이다.
북유럽의 고세금 정책 때문에 기업과 고소득자들이 탈출하는 일도 빈번했지만 굳건한 국민적 합의에 따라 복지국가 모델은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이케아 기업도 높은 세금을 피해 현재는 지주 기업을 네덜란드에 두고 있고 전 세계 최고 부자인 이케아 소유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줄곧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
1000여 년 전 바이킹에는 'n분의 1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 바이킹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무역을 하거나 약탈한 다음 그 수확물을 직급에 관계없이 똑같이 사람 숫자대로 나눠 가졌다. 한국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분배 방식이다.
북유럽 모델은 한마디로 말해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다. 개인은 정부에 높은 세금을 내는 대신 높은 복지를 보장받는다. 기업 또한 높은 사회보장비를 내는 대신 친기업 정책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기업은 개인에게 고용을 유지해 주는 대신 개인은 양질의 노동을 제공해 준다.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국가는 친기업 정책과 개방적 시장경제로 성장하면서 개인과 기업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개인은 안정된 복지를 향유하는 것이다.
최근 스웨덴 국민의 58%가 세금 내리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북유럽 모델은 정부·기업·국민 간 상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개인이 지금 세금을 많이 내도 정부가 이를 엉뚱하게 다른 곳에 써버려 나중에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인은 높은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복지와 친기업 정책의 공존
이런 북유럽 모델이 형성된 데에는 오랜 기간의 정치 실험이 있었다. 스웨덴을 보면 사민당(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은 1932년 집권한 이후 2014년 현재까지 82년 중 65년간을 줄곧 집권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77%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사민당을 충분히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초반 사민당의 얄마르 브란팅 사민당 당수는 국가가 개인의 집 역할을 해주겠다는 '국민의 집'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집권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한때 19%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현재는 10% 수준에 불과하므로 북유럽식 국가 모델을 당장 기대할 수는 없다.
현재 스웨덴은 보수당 계열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집권하며 과다한 복지 모델을 일부 보완했지만 국가 전체의 모델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제 북유럽 모델이 완전히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런 북유럽 모델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에이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경쟁이 치열한 미국식 성장 모델을 '냉혹한 자본주의(cutthroat capitalism)', 덜 경쟁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북유럽식 성장 모델을 '포근한 자본주의(cuddly capitalism)'라고 부른다. 북유럽이 미국 같은 국가에 편승했기 때문에 북유럽 모델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포근한 자본주의 모델은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라 미국 같은 '냉혹한 자본주의' 국가가 이끄는 세계경제 성장 과정에 무임승차해 포근한 보상 체제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한국은 과연 북유럽 같은 체제를 가질 수 있을까. 단순히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구조에 문화적 유전자(meme)가 과연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1000여 년 전 바이킹에는 'n분의 1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 바이킹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무역을 하거나 약탈한다음 그 수확물을 직급에 관계없이 똑같이 사람 숫자대로 나눠 가졌다. 한국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분배 방식이다. 그리고 원정 과정에서 탑승한 남자들이 죽더라도 바이킹 공동체는 해당 가족과 함께 살며 부양을 책임져 준다. 즉 개인이나 가족 단위가 아니라 사회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유전자가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북유럽식 모델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핀란드에서는 속도 위반자의 경우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 2000년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 부사장인 안시 반요키가 헬싱키에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최고 시속 50km 제한 구역에서 75km로 달리다가 그만 경찰에게 걸렸다. 그때 그에게 부과된 과속 벌금은 무려 11만6000유로(1억6000만 원)나 됐다. 전년도인 1999년 그의 수입은 1400만 유로였는데 이 중 14일 치 수입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그는 사회 정서상 순순히 벌금을 냈다. 그는 노키아에서 핵심 부서인 모바일솔루션사업부장을 하다가 2010년 물러났다. 만약 한국 정부가 앞으로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과연 어떨까. 몹시 궁금하다.
리틀 아메리카인가 빅 스웨덴인가
북유럽의 인도주의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망명자, 장애우, 정신장애인, 에이즈 환자, 약물중독자, 아동을 매우 배려한다. 이민자를 받을 때에도 해당 국가가 전란에 휩싸이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들을 우선적으로 받아 준다. 과거 6·25전쟁 당시 한국에 의료 지원을 해줬는데 서울 국립의료원, 부산 적십자병원, 목포 결핵병원이 그들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반려견 입양을 하더라도 버려진 유기견을 우선 입양한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21개 국가를 선정해 매년 15억 달러를 지원해 주는데 민주주의 증진, 부패 근절이 조건이다.
북유럽이 이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투명성, 윤리 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스웨덴의 1인당 소득은 한국보다 두 배 높지만 스웨덴 국회의원의 월급은 한국 국회의원보다 적다. 한국에서는 보좌관 지원비와 각종 지원비, 전용차가 제공되지만 스웨덴은 아예 없다. 한국은 3개월 이상만 근무하면 연금을 받지만 스웨덴은 12년 이상 의원직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지나친 혜택을 대폭 줄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매우 삼간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의 반려견은 잘 짖지도 않는다. 그 주인에 그 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길가에서 어떤 개가 계속 짖어 가봤더니 그 개의 주인이 외국인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스웨덴은 과거에 못 살았을 때 '작은 독일(Little Germany)'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후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60년대 당시 독일 총리는 이렇게 자문자답한 바 있다. "독일은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가 될 것인지 '빅 스웨덴(Big Sweden)'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나라면 '빅 스웨덴'을 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질 때다. 지금까지 한국은 성장을 추구하고 복지는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리틀 아메리카 노선을 추구해 왔다. 이 노선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스웨덴 노선으로 선회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컨설팅 대표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주요국의 창조 경제 역량 지수를 발표했는데 31개 OECD 국가 중 1위인 스위스에 이어 북유럽의 4개 국가가 2위부터 5위까지를 휩쓸었다. 전체 20위인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자본은 1위, 혁신 자본은 11위지만 인적·사회·문화 자본은 매우 처져 있다. 반면 북유럽 국가는 사회자본을 비롯해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사회자본은 1위인데 이는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이 유난히 세계 랭킹에 목맨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면에서 북유럽 국가의 높은 랭킹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일본·중국은 경제적 파워에서는 강력하지만 삶의 질, 소득 평등, 부패, 신뢰 같은 질적 지표에서 밀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 국가는 여러 모로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세계 많은 나라에 파급돼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한때 공산주의로부터 큰 위협을 받았지만 잘 극복했는데, 그 사이에 북유럽식 자본주의도 두각을 나타냈다. 서유럽 방식은 두 모델의 중간에 해당된다. 두 가지 방식 모두 민주주의에 기반을 뒀지만 영미식은 자유에 방점을 찍는 대신 북유럽식은 평등에 방점을 찍었다. 영미식은 세금과 복지가 모두 적은 반면 북유럽식은 세금과 복지가 모두 높은 것이 특징이다.
북유럽의 고세금 정책 때문에 기업과 고소득자들이 탈출하는 일도 빈번했지만 굳건한 국민적 합의에 따라 복지국가 모델은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에서 시작한 이케아 기업도 높은 세금을 피해 현재는 지주 기업을 네덜란드에 두고 있고 전 세계 최고 부자인 이케아 소유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줄곧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다.
1000여 년 전 바이킹에는 'n분의 1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 바이킹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무역을 하거나 약탈한 다음 그 수확물을 직급에 관계없이 똑같이 사람 숫자대로 나눠 가졌다. 한국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분배 방식이다.
북유럽 모델은 한마디로 말해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다. 개인은 정부에 높은 세금을 내는 대신 높은 복지를 보장받는다. 기업 또한 높은 사회보장비를 내는 대신 친기업 정책을 보장받는다. 그리고 기업은 개인에게 고용을 유지해 주는 대신 개인은 양질의 노동을 제공해 준다. 사회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국가는 친기업 정책과 개방적 시장경제로 성장하면서 개인과 기업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개인은 안정된 복지를 향유하는 것이다.
최근 스웨덴 국민의 58%가 세금 내리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북유럽 모델은 정부·기업·국민 간 상호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개인이 지금 세금을 많이 내도 정부가 이를 엉뚱하게 다른 곳에 써버려 나중에 제대로 된 사회보장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개인은 높은 세금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높은 복지와 친기업 정책의 공존
이런 북유럽 모델이 형성된 데에는 오랜 기간의 정치 실험이 있었다. 스웨덴을 보면 사민당(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은 1932년 집권한 이후 2014년 현재까지 82년 중 65년간을 줄곧 집권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77%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사민당을 충분히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세기 초반 사민당의 얄마르 브란팅 사민당 당수는 국가가 개인의 집 역할을 해주겠다는 '국민의 집' 전략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집권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한때 19%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현재는 10% 수준에 불과하므로 북유럽식 국가 모델을 당장 기대할 수는 없다.
현재 스웨덴은 보수당 계열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집권하며 과다한 복지 모델을 일부 보완했지만 국가 전체의 모델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제 북유럽 모델이 완전히 정착됐기 때문이다.
이런 북유럽 모델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에이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경쟁이 치열한 미국식 성장 모델을 '냉혹한 자본주의(cutthroat capitalism)', 덜 경쟁적이고 평등 지향적인 북유럽식 성장 모델을 '포근한 자본주의(cuddly capitalism)'라고 부른다. 북유럽이 미국 같은 국가에 편승했기 때문에 북유럽 모델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포근한 자본주의 모델은 스스로 성장한 게 아니라 미국 같은 '냉혹한 자본주의' 국가가 이끄는 세계경제 성장 과정에 무임승차해 포근한 보상 체제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한국은 과연 북유럽 같은 체제를 가질 수 있을까. 단순히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구조에 문화적 유전자(meme)가 과연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1000여 년 전 바이킹에는 'n분의 1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과거 바이킹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무역을 하거나 약탈한다음 그 수확물을 직급에 관계없이 똑같이 사람 숫자대로 나눠 가졌다. 한국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분배 방식이다. 그리고 원정 과정에서 탑승한 남자들이 죽더라도 바이킹 공동체는 해당 가족과 함께 살며 부양을 책임져 준다. 즉 개인이나 가족 단위가 아니라 사회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유전자가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북유럽식 모델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핀란드에서는 속도 위반자의 경우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 2000년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 부사장인 안시 반요키가 헬싱키에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최고 시속 50km 제한 구역에서 75km로 달리다가 그만 경찰에게 걸렸다. 그때 그에게 부과된 과속 벌금은 무려 11만6000유로(1억6000만 원)나 됐다. 전년도인 1999년 그의 수입은 1400만 유로였는데 이 중 14일 치 수입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그는 사회 정서상 순순히 벌금을 냈다. 그는 노키아에서 핵심 부서인 모바일솔루션사업부장을 하다가 2010년 물러났다. 만약 한국 정부가 앞으로 소득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과연 어떨까. 몹시 궁금하다.
리틀 아메리카인가 빅 스웨덴인가
북유럽의 인도주의는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망명자, 장애우, 정신장애인, 에이즈 환자, 약물중독자, 아동을 매우 배려한다. 이민자를 받을 때에도 해당 국가가 전란에 휩싸이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들을 우선적으로 받아 준다. 과거 6·25전쟁 당시 한국에 의료 지원을 해줬는데 서울 국립의료원, 부산 적십자병원, 목포 결핵병원이 그들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반려견 입양을 하더라도 버려진 유기견을 우선 입양한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21개 국가를 선정해 매년 15억 달러를 지원해 주는데 민주주의 증진, 부패 근절이 조건이다.
북유럽이 이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투명성, 윤리 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스웨덴의 1인당 소득은 한국보다 두 배 높지만 스웨덴 국회의원의 월급은 한국 국회의원보다 적다. 한국에서는 보좌관 지원비와 각종 지원비, 전용차가 제공되지만 스웨덴은 아예 없다. 한국은 3개월 이상만 근무하면 연금을 받지만 스웨덴은 12년 이상 의원직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도 있다. 국회의원에 대한 지나친 혜택을 대폭 줄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매우 삼간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의 반려견은 잘 짖지도 않는다. 그 주인에 그 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길가에서 어떤 개가 계속 짖어 가봤더니 그 개의 주인이 외국인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스웨덴은 과거에 못 살았을 때 '작은 독일(Little Germany)'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후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60년대 당시 독일 총리는 이렇게 자문자답한 바 있다. "독일은 '리틀 아메리카(Little America)'가 될 것인지 '빅 스웨덴(Big Sweden)'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나라면 '빅 스웨덴'을 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질 때다. 지금까지 한국은 성장을 추구하고 복지는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리틀 아메리카 노선을 추구해 왔다. 이 노선을 계속 유지할지 아니면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스웨덴 노선으로 선회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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