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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저를 퇴출시킨 분들이 콘서트 탄생 일등공신"

youngsports 2014. 4. 12. 22:31

·전회 매진 기록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 200회 공연 앞둔 김제동

·"저는 마이크를 쥐고 있을 뿐이고 이야기는 관객들의 몫.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20~30대는 물론이고 50~70대 어른들도 몰입하고 공감"

방송인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가 200회 공연, 22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다. 2009년 12월 시작했다. 올해는 시즌 5. 소규모 공연이지만 한 번도 매진을 놓쳐본 적이 없다. 전회·전석 매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공연계의 신화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4월 26일 제주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지난다. 200회 공연이다.

김제동은 토크콘서트의 성공을 "관객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꾸미는 무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예활동이나 연애 스캔들보다 오히려 정치적 외압 등으로 더 자주 언급되는 김제동을 서울 합정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제동은 그를 바라보는 이념적 시각에 대해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이고,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볼거리가 많은 대형 뮤지컬도 아니고, 혼자 서서 말만 하는 토크콘서트가 200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수할 줄 알았나요.


"전혀요. 당시 고정 방송 프로그램이 모두 사라진 후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시작한 공연인 데다, 소극장에서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엔 스탠딩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낯선 스타일이고, 토크콘서트라는 명칭도 제가 처음 사용했으니까요. 시즌 1이라도 성공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는데 전국 각 지방에서 요청이 오고, 계속 매진이 되고 벌써 시즌 5, 햇수로는 6년차에 접어들어 제가 더 놀랍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 방송에서 저를 매몰차게 차준 분들이 토크콘서트를 탄생시킨 숨은 공훈자인 것 같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군요."

장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처음엔 신기함에서 구경하러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분들이 입소문을 내서 전국적으로 퍼진 것 같고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한 것, 그것이 토크콘서트 장수의 비결이라면 비결 아닐까요. 제 토크콘서트는 관객들이 미리 사연을 보내고 현장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마이크를 쥐고 있을 뿐이고요. 마치 마당극 같은 관객 참여형이라 무대와의 벽이 안 느껴지고, 자신과 비슷한 관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니 몰입도와 공감대가 큰 것 같습니다. 20~30대가 주요 관객층이지만 그분들이 부모님께 티켓을 선물해서 50~70대까지 전 연령층이 다 오십니다. 연령층의 폭이 대단히 넓어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어요. 결국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겠죠."

토크콘서트를 기획·시도한 배경이 정치적 외압으로 방송을 못하게 되어서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사회를 본 후 공중파 방송에서 퇴출당하고, Mnet의 한 프로그램도 녹화까지 마쳤지만 노 전 대통령 2주기에 참석한 후 프로그램이 사라졌고요. 그런데 왜 그토록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까.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는 권력이었으면 부끄러워서 절대 그런 행사에 참석도 못하고 노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말도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미 돌아가신 분이어서 제 마음을 표현했을 뿐입니다. 노 대통령 집권 때는 만나본 적도 없고, 이라크 파병 결정 시에는 욕도 많이 하고 비판도 했습니다. '전쟁에 참여시켜서 참여정부냐'고 떠들고 다녔으니까요.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시골마을에서 과부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는 동네 이장님도 보기 어렵고 군청 문턱을 드나들기도 힘들었습니다. 마을에서 집이 철거당할 때도 철저히 외면당했죠. 그런데 KBS TV < 아침마당 > 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통령 당선자 신분의 노 대통령을 우연히 만났답니다. 당시 아들이 좀 유명해지고 당신도 방송 출연을 앞두고 살짝 흥분한 어머니가 그분을 보고 '우리 아들이 김제동입니다. 내일 방송에 나오니 꼭 봐주세요'라고 말했는데, 노 대통령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꼭 방송을 보겠다며 손도 잡아드린 모양입니다. 그날 우리 어머니가 너무 감격해서 온 가족을 모아놓고 펑펑 울면서 '정말 고마운 분'이라고 거듭 강조하시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죠. 노 대통령은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에게 처음으로 잘해준 국가공무원이셨습니다. 그런 분의 장례식에 어머니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참석한 것이 왜 정치적 행위인지 아직도 납득이 안 됩니다. 현직 대통령 행사라면 '바빠서 못 간다'고 거절도 하고, 저 아니어도 갈 사람이 많지만 그 행사에는 저 아니면 갈 연예인이 드물지 않겠습니까."





본인은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요즘은 진보와 보수가 제 이념보다 규정짓는 쪽에서 보는 시선이 더 중요하더군요. 저와 사귀었던 여자들은 저보고 굉장히 보수적인 남자라고 합디다.(웃음) 적어도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감추지도 않지만 남들에게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제 생각이나 이념을 남에게 피력하는 것은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진보의 상징 아닙니까. 그런 노 대통령을 좋아한 것 때문에 피해를 받은 적은 없나요.


"방송사 측에서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좋았는데 잘렸으니 퇴출당한 셈이죠. 또 노 대통령 2주기 때는 국정원 직원이 찾아와 '안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갔다가 케이블 프로그램이 사라졌으니 피해라면 피해죠. 가끔 토크콘서트 관객 중에도 중간에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 저보다 관객들이 더 긴장하고 조마조마해 하더군요. 어떤 이들은 '김제동, 넌 좋은데 좀 조용히 살면 안 되겠니. 너의 정치성향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분들과 대화할 때마다 저는 쾌감을 느낍니다. '돈 내고 비판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하고요.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가 용기고 개혁적이라고 박수쳐 드립니다. 이분이 소수일 수 있으니 소수의 의견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둘이서는 얼마든지 오랫동안 논쟁할 수 있지만 지금 이곳은 공연장이고 제가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 제가 더 말을 많이 하겠다고 하죠. 그럼 그분들도 다 즐겁게 웃습니다."

진보 정도가 아니라 종북이란 비난도 받더군요.


"저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이고, 종북이 아니라 경북입니다. 고향인 경상북도가 제 뿌리니까요. 전 휴전선 넘을 마음은 추호도 없고, 저보다 어리고 뚱뚱한 김정은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도 않고 3대 세습에 절대 반대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종북입니까. 물론 저는 북한 어린이를 돕는 데 마음과 돈을 보탭니다. 그게 종북인가요. 쌍용자동차 해고자 등 우리나라의 노사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그게 빨갱이입니까. 우리 대한민국에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서로 마음과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자고 주장하는데, 툭하면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고 심지어 북으로 가라고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토크콘서트에서 주로 정치인, 특히 여당을 많이 풍자하고 희화화하잖아요.


"그건 그들이 권력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웃음거리가 되기 싫으시면 야당 하거나 권력을 놓으세요'란 농담도 하죠. 기업에 강의를 하러 가서도 저는 사장이나 임원만 '조집니다'. 그래야 직원들이 즐거워하거든요. 여당은 힘 있는 조직이고 그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언급할 뿐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야한 동영상을 보는 자신의 사진 기사가 올라가자 '청소년이 유해매체에 얼마나 빨리 접속할 수 있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접속했다'고 군색한 변명을 하는데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민주당이 국회를 떠나 텐트를 칠 때도 '집 있는 사람들이 왜 텐트 치냐. 캠핑 왔냐'란 말도 했어요. 재벌가도 마찬가지죠. 재벌 아버지와 딸이 공항에만 나가도 뉴스가 되지만 어느 집안의 딸이 억울하게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상해를 입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세상이니 그런 이야기를 제가 희화화하는 겁니다. 과거에도 광대는 권력자들을 풍자하는 게 의무이자 역할이었고, 왕이나 귀족들은 광대가 자신을 우스갯거리로 놀려도 기꺼이 웃어주는 포용력이 있었습니다. 광대인 제가 놀려대는 것을 영광으로 아셔야죠. 그만큼 힘 있는 존재란 뜻이니까요."

경향신문에 '김제동의 톡톡'이란 인터뷰 코너를 연재했습니다. 뇌과학자인 정재승 박사를 인터뷰할 때 제가 동석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잘 모르는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면 긴장이 되고 버벅거리게 마련인데, 당당하게(?) 인터뷰를 하더군요. 비결이 뭡니까.


"뇌과학자를 만나러 가는 날엔 충분히 뇌를 술에 절여서 갔습니다.(웃음). 뇌과학에 대해 물어보기보다, '그럼 나의 뇌는 어떤가'가 궁금하니 어설프게 공부한 지식을 자랑하거나 지적인 질문을 하기보다 아이들 같은 직설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30대에 뇌과학자에 교수라니 얼마나 똑똑할까, 그럼 자기 애들은 어떻게 교육시킬까 등등을 물어보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은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세요'라는 태도를 보이는 거죠. 연예인들이야 기자와 인터뷰할 때는 경계심이 발동하지만 저와는 인터뷰가 아니라 수다를 떠는 마음이어서 편하게 말이 나오는 거고요."





소통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안철수 대표, 법륜 스님과도 자주 교류하는데 소통법이 뭡니까.

"제가 생각하는 소통은 역설적이지만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소통의 기본은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얼마나 오래 참아주느냐가 진정한 소통입니다.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아첨입니다. 요구받거나 요구하는 이야기는 진짜 대화가 아닙니다. 상하·수직관계에서 소통은 안 됩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도 내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다 3분간만이라도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말하다 침묵이 생기면 그 침묵을 깨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해결은 다음의 문제이고 일단 들어주는 것이 소통의 핵심입니다. 경청이 결국 소통법이죠."

토크콘서트나 평소에는 그렇게 명랑한데 왜 방송에서는 그렇게 슬퍼 보입니까.


"아, 그건 외부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천성입니다. 제 돌사진을 봐도 우울해 보이고, 세살 때부터 슬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마 태생적으로 슬픔의 유전자가 있어서인지 고등학교 때 별명이 응달이었어요. 그늘져 보인다고요. 흑점이 과하게 많은 태양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다행히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밝아지고 명랑해집니다. 방송 프로그램도 출연진이나 방청객이 많은 프로, 즉 < 윤도현과 러브레터 > < 야심만만 > 등에서는 굉장히 밝았어요. 즉각적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같이 웃고 떠들면 흥이 나더군요. 저는 전형적인 한민족의 한의 정서를 가진 좋은 남자랍니다. 아마 제가 미남이었으면 우수에 찬 멋진 남자라고 평가받았을테지만, 못생겼으니 '궁상에 찌들었다' '슬퍼 보인다' 등으로 오해를 받는 거죠. 그런데 박경리 선생이 말씀하셨듯 '한'이란 단어만큼 과거를 표현하는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단어도 없습니다. 어쩌면 한 많은 무당이 칼춤을 추거나 작두에서 뛰게 하는 힘이 되듯 제 우울한 성격이 무대에서 칼춤 추듯 신명나게 뛰게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릅니다."

토크콘서트는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정치인들이 코미디를 그만둘 때까지요.(웃음) 이제 제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는 공연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고, 후배들도 따라하고 싶다고 해서 사명감까지 느낍니다. 무대에서야 저 혼자 마이크를 잡고 있지만 100명 가까운 스태프들이 뒤에서 수고를 하니 혼자 할 결정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토크콘서트의 관객들에 대한 자부심이 큽니다. 수준 있는 관객들이 정치적인 이야기건, 가벼운 성적 농담이건 풍자는 풍자로, 이야기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주고 서로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가져주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건전한 연인들이 나누는 건강한 연애 같아요. 모든 가치와 이념은 사람들을 잘 살게 할 때는 축복이지만 못살게 할 때는 비극입니다. 제겐 토크콘서트의 관객들이 축복입니다."

김제동은 "종북으로도 오해를 받지만 기부를 많이 해서 가난할 거라고 오해하는데, 서울 동부이촌동에 제집도 있는 괜찮은 신랑감"이라며 웃었다. 그에 대한 오해가 아름다운 이해로 바뀔 날이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