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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유럽 클럽 축구 헤게모니 전쟁史/손병하 칼럼

youngsports 2013. 9. 10. 15:34

Injury Time-유럽 클럽 축구 헤게모니 전쟁史(上)

(베스트 일레븐)

유럽 클럽 축구가 다시 뛴다. 이미 2013-2014 DFB 포칼은 막을 올렸고, 다가오는 주말에는 2013-2014 독일 분데스리가와 2013 잉글랜드 커뮤니티실드가 펼쳐진다. 우리는 다시 밤잠을 설칠 것이고,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은 유럽 곳곳에서 화려한 몸짓과 세리머니로 그라운드를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유럽 클럽 축구 시즌이 비로소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2013-2014 유러피언리그는 예년과 비슷한 이슈를 동반하고 있다. 4대 리그가 불리는 빅 리그에서 펼쳐질 우승 다툼과 메시(바르셀로나)·C. 호나우도(레알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반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토레스(첼시·이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뮐러(바이에른 뮌헨)·레반도프스키(도르트문트·이상 독일 분데스리가)·비달(유벤투스)·발로텔리(AC 밀란·이상 이탈리아 세리에 A) 등 세계 최고 수준 선수들의 몸짓이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뭇 다른 게 하나 있다. 바로 유럽 클럽 축구의 '헤게모니(독어 Hegemonie·영어 Hegemony)'를 잡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란 점이다. 2000년대를 중심으로 헤게모니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을 오갔다. 유럽 대륙의 서쪽에 머문 것인데, 지난 시즌 중앙 유럽에 속한 독일이 그 헤게모니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유벤투스라는 전통 명가를 앞세운 이탈리아도 더는 주도권 싸움에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천명했고, 파리 생제르망과 AS 모나코를 앞세운 프랑스까지 전쟁에 가세할 참이어서 그 어떤 시즌보다 치열한 왕좌 쟁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에 2회에 걸쳐 유럽 클럽 축구의 헤게모니 전쟁사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유럽 클럽 축구가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을 쏘다니던 헤게모니를 쫓다보면, 올 시즌 유러피언리그를 감상하는 시야가 좀 더 넓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반세기 넘게 우리를 흥분케 만들었던 유럽 클럽 축구의 헤게모니 전쟁사로 초대한다.

▲ 첫 헤게모니, 스페인에 내리다

유럽은 현대 축구의 발상지고 클럽 축구의 시발점이다. 1888년 잉글랜드에서 처음 시작된 클럽 축구 리그는 2013년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콘텐츠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의 방대한 틀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1888년 '풋볼 리그'란 이름을 세상에 선보인 잉글랜드는 당시 난무하던 지역별 대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체계화 작업에 들어갔다. '축구 종주국'이란 자존심에 어울리기 위한 선진적 축구 리그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에 1880년대를 전후로 팀 창단이 러시를 이뤘다. 꼭 1880년 태어난 맨체스터 시티를 기점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878년)·풀햄(1879년)·토튼햄(1882년)·아스날(1886년) 등이 연이어 땅을 박차고 일어섰다.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클럽 팀 창단은 금방 가까운 유럽으로 번졌다. 잉글랜드 무역상이 자주 드나들던 이탈리아에서는 1897년 유벤투스와 1899년 AC 밀란이 태어났고, 1889년과 1902년에는 스페인의 양대 산맥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창단됐다. 또 1900년과 1909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를 지키는 고독한 파수꾼 B. 뮌헨과 '꿀벌 군단'으로 잘 알려진 도르트문트가 게르만 민족을 대표하고자 나타났다.

의욕적 팀 창단이 줄을 이었으나 제대로 된 리그화가 자리 잡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저마다의 방식과 실험으로 보다 효율적 시스템 정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축구 외적 요인으로 성장을 방해받았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과 1939년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터진 이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은 축구가 곧게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됐다. 더해 이전까지 쌓은 각종 축구 인프라까지 망가트리면서 오히려 후퇴시켰다. 혼란스러웠던 각국 국내 정세도 클럽 축구의 정착화를 방해한 요소 중 하나였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있었던 스페인 내전이 가장 대표적이다. 게다가 이때는 근대화가 급격히 이뤄지던 때라 클럽 축구 발전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더딘 걸음을 내딛던 클럽 축구는 1930년 우루과이에서 시작한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의 흥행 돌풍에 힘입어 빠른 성장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세계대전의 상흔과 각국이 겪은 내전 상처가 치유되고, 근대화와 산업화도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여가 생활 중 하나인 축구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급격히 늘었다.

1955-1956시즌 처음 시작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당시엔 유러피언컵)는 그런 클럽 축구 고착화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이때 가장 처음 헤게모니를 잡은 곳은 남유럽 3대 반도(발칸·이베리아·이탈리아 반도)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였다. 이베리아 반도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가 분할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세계대전의 상처를 비교적 덜 받은 곳이라 안정적 축구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그중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벤피카(포르투갈)는 1950년대부터 왕성한 세를 과시했다. 클럽 축구라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국가대표팀과 가장 다른 게 하나 있는 데 바로 자본이다. 클럽 축구가 왕성하려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당시 그 자본을 가장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던 팀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스페인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레알 마드리드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 같은 당대 영웅들을 불러들여 다른 팀들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뽐냈다. 레알 마드리드만큼은 아니었지만 벤피카도 안정된 국내 정세를 발판으로 강력한 힘을 뿜어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뿌리 내리기를 시작한 유럽 클럽 축구의 첫 번째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그러나 권세를 그리 오래 누리진 못했다. 자본에 힘입은 특정 팀의 강력함으로 지위를 지키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 한계를 파고들어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던 헤게모니를 빼앗은 곳은 대륙 중앙에 위치해 유럽의 통로 구실을 하던 독일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헤게모니(독어 Hegemonie·영어 Hegemony)'는 대단히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 의미인 힘을 앞세운 통제뿐만 아니라 헤게모니를 쥔 쪽이 쥐지 못한 쪽을 지배하고 또 그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일컫기 때문이다. 패권을 향한 싸움이란 통상적 개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셈이다.

유럽 클럽 축구계에도 이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전쟁이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경계를 넘나드는 싸움은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영광을 쥐기 위한 싸움은 생존권처럼 여겨지며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른바 헤게모니 전쟁사다. 지금부터 上편에 이어 1960년대 이후 펼쳐진 헤게모니 쟁탈전을 소개한다.

▲ 두 번째 패권을 쥔 독일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두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국 클럽 축구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럽 각국은 좀 더 체계적이고 세련된 리그 시스템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나라는 독일이었다.

독일은 1963-1964시즌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흩어진 대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분데스리가'란 새로운 이름으로 출범시키는 변혁을 일으켰다. 당시 분데스리가가 태어난 가장 근본적 이유는 다른 나라에 자국 선수들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에 대한 독일 내 각성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독일 출신 선수들은 이웃 나라로 많이 이탈했는데, 국적을 바꾸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면서 독일 축구의 전체적 전력 약화로까지 이어졌다. 더는 자국 축구의 훼손을 방치할 수 없었던 독일축구협회는 체계적 선수 관리와 리그 시스템 정착으로 자국 축구 수준을 높이고자 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분데스리가였다.

독일축구협회의 진취적 도전은 머잖아 큰 결실로 이어졌다. 체계화한 리그가 클럽 팀들의 발전을 이끈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머잖아 유럽에서 가장 명망 높은 리그로 급부상했고 B. 뮌헨을 필두로 유수의 명문 클럽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던 헤게모니를 빼앗아 두 번째 주인공이 됐다. 분데스리가 출범 후 여기저기서 세를 떨치던 군소 강호들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양강 구도로 개편됐다. B. 뮌헨과 B. 묀헨글라드바흐가 그 주인공이다.

두 팀은 1970년대 독일 최고의 클럽으로 명성을 날리며 분데스리가가 유럽 클럽 축구의 헤게모니를 쥐도록 크게 공헌했다. 특히 B. 뮌헨이 돋보였다. B. 뮌헨은 잘 정비된 리그 시스템에서 자란 스타 플레이어들이 빛을 내기 시작하면서 유럽을 장악했다. 비슷한 시기 아약스를 내세운 네덜란드와 함께 유럽을 평정하며 중앙 유럽의 시대를 알린 독일은 1974 서독(당시) 월드컵마저 차지했다.

중앙 유럽에 안착한 헤게모니는 이후 10년 동안 안길 주인의 품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1980년대 들어 유럽 클럽 축구가 절대 강자가 없는 난립 양상을 보인 탓이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등 전통 강국들이 세를 팽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특별하지 않았고, 외려 동유럽 등 변방국들의 드센 궐기에 큰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패권은 1990년대 들어 다시 남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 주인공은 앞서 언급한 3대 반도 중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AC 밀란이었다. AC 밀란은 일명 '오렌지 삼총사'라 불리는 반 바스텐·루드 굴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를 앞세워 유럽 정벌을 시도했고 성공했다. 그러나 헤게모니는 이탈리아에 착륙한 지 불과 몇 해만에 다시 자리를 떴다. 자신을 처음 품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다시 찾은 것이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기세를 꺾은 바르셀로나가 대단한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한 시대를 풍미한 사나이 요한 크루이프의 지휘를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세상은 그들을 가리켜 "드림팀"이라 칭송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이 광경을 대단히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으니 바로 서유럽에 속한 잉글랜드였다. '축구 종가'라 자처하는 잉글랜드는 클럽 축구가 정착한 후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헤게모니를 빼앗아 오기 위해 고심했다. 그 결과 1992-199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라는 새로운 이름의 프로축구 리그를 세상에 내 놓았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본과 손잡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빛의 속도로 팽창했다. 맨체스터 Utd.를 선두로 첼시·아스날·리버풀 등 명문 클럽들이 앞다퉈 진군하기 시작했고, 기세가 워낙 대단해 누구도 저지하지 못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패권을 쥔 잉글랜드 클럽 축구의 세력 확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 됐는데 이는 지속적 투자의 결실이었다.

▲ 헤게모니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

EPL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대영 제국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자랑했다.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쏟아부은 자본에 덜미를 잡혀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자본 유치와 투자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잉글랜드가 주춤한 뒤 패권은 다시 이베리아 반도국 스페인이 가져갔다. 스페인은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신계'에 가까운 전력을 구축하며 유럽을 지배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막대한 자본으로 세계적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일명 '갈락티코' 정책으로 헤게모니를 쥐었고, 바르셀로나는 자체 유소년 시스템의 힘을 앞세워 유럽을 장악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 두 팀의 큰 발걸음은 당분간 누구도 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2013시즌이 끝난 뒤 그들의 멈춤 없던 행진을 저지한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중앙 유럽의 맹주 독일이었다. 독일은 분데스리가 대표 클럽 B. 뮌헨과 도르트문트를 앞세워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던 헤게모니를 뺏기 위해 도전했다. 공교롭게도 네 팀은 지난 시즌 UCL 준결승에서 만나 자웅을 거뤘다. 결과는 도전자의 완승이었다. B. 뮌헨과 도르트문트는 각각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헤게모니 획득에 성공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헤게모니가 다시 독일에 상륙했다고 할 수 없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스페인의 악력이 여전히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2013-2014시즌 패권을 다시 분데스리가가 쥔다면 헤게모니가 이베리아 반도를 떠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곧 시작할 2013-2014시즌은 헤게모니의 수성과 탈환의 치열한 공방전이 될 전망이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전열을 강화했고, B. 뮌헨과 도르트문트는 내실을 다져 다시 한 번 우위를 증명할 참이다. 또 한 번의 헤게모니 전쟁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렇게 유럽 축구의 헤게모니 전쟁은 항상 치열했고 쉼 없이 진행됐다. 유럽 전역을 넘나든 전쟁으로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고 또 스러졌다. 이 헤게모니 전쟁은 이전까지보다 더 치열하고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어두운 과거를 털고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 이탈리아 세리에 A와 다시 한 번 영광을 재현하려는 EPL이 스페인과 독일이 펼치고 있는 대전에 참전할 준비를 마쳤다. 여기에 단 한 번도 헤게모니를 쥐지 못했던 동유럽이나 북유럽도 전쟁에 뛰어들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 시즌이 아닌 반세기, 나아가 한 세기를 관통하는 유럽 클럽 축구의 헤게모니 전쟁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