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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국가"

youngsports 2012. 8. 22. 17:46

 

장하준 "경제 민주화 핵심은 재벌규제가 아니다"

[강연] 기사입력 2012-08-22  김덕련 기자  프레시안

 

얼마 전 귀국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대중 앞에 섰다. 장 교수는 21일 오후 2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회는 담쟁이포럼에서 주최했다. 5월에 설립된 담쟁이포럼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의 외곽 조직으로 분류된다. 행사 사회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맡았다.

장 교수는 "국방부 후원감사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국방부가 장 교수의 저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금서로 지정해준 덕분에 50만 권 넘게 팔렸다는 말이다. 장 교수는 "'국방부로부터 연구 지원을 받고 있다'고 가끔 농담을 한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행복지수와 자살률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장 교수는 "세계에서 한국이 불행지수 1, 2등을 다툰다"며 "특히 충격적인 건 자살률"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 1위 국가다(10만 명당 28명).

장 교수는 2위인 일본이 10만 명당 20명 미만이고, 한국 역시 1995년까지는 자살률이 지금의 3분의1 수준이었음을 지적한 후

"왜 이렇게 한국인들이 불행해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장 교수는 그 원인으로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 이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와 관련, 장 교수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를 주목했다.

장 교수는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 경영, "한국 경제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 외국 자본의 영향력 증가, 노동시장 규제 완화로 인한 비정규직 증가 등을 대표적인 변화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산업정책이 서서히 해체된" 점도 지적했다. 장 교수는 "산업정책의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70-1980년대에 산업정책을 통해 산업 구조를 고도화"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현재 한국의 산업 구조는 기본적으로 1970-198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후 고도화되지 않으면서 질 좋은 일자리도 점점 줄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고용 불안 문제가 심각해진 것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등이 모두 그때 도입됐다"며 "민주통합당이 이를 극복하려면, 그때 잘못된 점이 있었던 것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장하준 교수(자료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 구매…복지가 잘돼야 잘 성장할 수 있다"

고용 불안 문제에 이어 장 교수는 복지 문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장 교수는 현재 한국의 "복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다소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등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처럼 "복지국가가 약하기 때문에 계층 상승이 어려워져 계급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복지국가가 강한 나라일수록 계급 간 이동성이 높다"며 미국스웨덴, 덴마크를 비교했다.

"예전에는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고들 했지만 요즘은 계층 이동성이 선진국 중 가장 낮다. (이와 반대로 복지 체계를 잘 구축한)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계층 상관관계가 굉장히 낮다."

장 교수는 미약한 복지 체계가 보수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니 국민들이 보수화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의대 편중 현상,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 교육 과열 투자"도 이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장 교수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구호소개했다.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이 더 모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장 교수는 다시 미국과 스웨덴 등을 비교하며, 산업 구조 고도화를 위해서도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 체계가 미약해 일자리를 잃으면 거의 모든 것을 잃는) 미국처럼 개방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강한 곳이 없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반대다. 기본적인 것은 보장돼 있기 때문에, 직장을 잃는다고 해서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다."

장 교수는 "보수언론들이 말하는 '복지를 하면 성장이 안 된다'는 신화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체계가 잘돼 있으면 해고에 대한 저항이 적고 노동자 재교육이 잘 이뤄지며, 따라서 더 신속하게 경제를 구조조정

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생각이다.

장 교수는 복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진보·보수 세력 일각의 복지관을 비판했다.

"우파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가 '왜 이건희 회장 손자와 가난한 아이가 똑같이 공짜밥을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틀린 이야기다. 부잣집 애들은 그 부모가 누진세로 세금을 더 낸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이 아니라 돈을 더 내고 먹는 것이다.

반대로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도 틀린 이야기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부가가치세는 다 낸다. 공짜밥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장 교수는 "복지를 공짜라 아니라 '공구', 즉 공동 구매로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복지를 국민이 "필요한 것들을 함께 돈을 내서 더 싸게 는 것"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재벌 지배 구조에 치중하지 말고 더 큰 민주적 통제 받게 해야"

장 교수는 "미국과 같은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한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1원 1표 원리다. 경제 민주화는 민주주의의 1인 1표 원리로 시장의 원리를 제약하자는 것이다. 시장과 민주주의 모두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

또한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와 함께 자본시장 민주화, 노동권 강화, 노동자와 소생산자를 비롯한 작은 경제 주체들의 '민주적 담합'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 문제와 관련, 장 교수는 "지배구조 문제에 치중하는 재벌 규제 논의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으로 자꾸 이야기되는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건희·정몽구 가문의 힘을 줄이고 1원 1표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경제 민주화라고 할 수 없다. 그건 근본적으로 주주들 간의 싸움이다. 주주 간의 싸움은 민주주의와 관계가 없다. 1원 1표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번 그렇게 (틀을) 잡아놓으면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장 교수는 "재벌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말도, 재벌 통제가 불필요하다는 말도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 교수는 "삼성·현대 모두 국민들이 피땀 흘려 키워준 기업인데, 왜 그걸 주주자본주의 논리로 주주에게 넘기려 하는가"라며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에 치중할 게 아니라, 재벌이 더 큰 민주적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평가에 대한 의견 차이가 눈길을 끌었다.

한 청중은 민주통합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에 책임지고 사과하는 행위를 꼭 해야 하는 것이냐고 장 교수에게 물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도 "10년간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못 했던 민주정부의 구조적 한계를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장 교수의 평가에 반대했다. 장 교수 같은 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국민들이 '민주 세력은 무능하다'고 본다는 것이 조 교수의 판단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장 교수는 "다른 후보에게는 아버지 잘못까지 책임지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몇 년 전에 한 일에 대해서조차 책임을 못 진다고 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장 교수는 한미FTA에 대한 민주통합당의 이중적인 태도를 예로 들었다.

"지난번 한미FTA를 비준할 때 민주당 의원들이 결사반대했는데, 그렇다면 왜 예전에는(노무현 정부 때는) 반대하지 않았나. 옛날 FTA는 괜찮았고 이명박 정부의 FTA는 나빠서? 내가 보기엔 그런 게 아니다. 이런 걸 깨끗이 털고 가지 않으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