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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진국’ 노리는 MLS의 '특별한 도전'

youngsports 2016. 1. 28. 09:11

               ‘축구 선진국’ 노리는 MLS의 '특별한 도전'



[스포탈코리아] 1968년부터 미국과 캐나다의 최상위 축구 리그로 자리잡았던 NASL(North American Soccer League)은 결국 1984년이 되어서야 종말을 맞이했다.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와 더불어 요한 크루이프, 거스 히딩크, 게르트 뮐러, 보비 무어, 조지 베스트, 에우제비우 등의 선수들도 NASL에서 뛰었지만, 축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도 미국의 4대 스포츠(야구, 아이스하키, 농구, 미식축구) 앞에서 축구의 인기를 지속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후, 1988년 베른에서 열린 FIFA총회에서 모로코와 브라질과 같은 경쟁국들을 상대로 ‘축구 불모지’에 새싹을 키우겠다는 미국의 당돌한 주장은 집행위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미국 축구 전환점의 시작을 알렸다. 1994년 미국에서 열렸던 월드컵은 대회 성적을 떠나, 미국인들에게 축구라는 스포츠를 알리는 결정적이 계기가 되었다.  

기세를 이어 1996년 10개 구단이 참가하는 MLS(Major League Soccer)와 1999년 FIFA 미국 여자 월드컵의 개막은 미국축구의 직접적인 발판이 되었다. 당시 열렸던 여자 월드컵에서는 660,000명이 넘는 관중과 70개국에서 거의 10억 명의 시청자가 16팀의 경기를 관람하였고, 자국대회에서 우승까지 거머쥔 미국 여자축구가 또 한번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MLS의 초창기는 실패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은 미국축구에 투자하지 말라며 투자자들과 스폰서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것은 MLS에서의 암담했던 지난 5년에 대한 정확한 해석일 수 있었다. 관중대비 과도한 경기장 건축으로 인한 공동손실은 1억 8,000만 파운드(한화 약 3,000억원)에 달했고, 아무도 미국 축구를 시청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스폰서들 마저 기피했다. 미국 최고의 선수들은 유럽으로 떠나갔고, 나머지 선수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20주년을 맞이한 미국 축구의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2011년부터 관중 수 부문에서 4대스포츠안에 축구가 진입하였고, 2009년을 기준으로 계속된 성장세를 유지한 MLS는 지난 시즌 ‘평균 관중수(21,574명)’에서 전년대비 13% 증가 추세를 기록했다. 이는 K리그의 평균 관중 수 7,720명보다 약 세 배 많은 수치로, 축구 불모지로 인식되던 미국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지표로 해석되고 있다.  

MLS가 큰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그들의 특별함이 존재했다. 하나의 헤드쿼터로부터 운영되고 있는 MLS는 구단주와 리그운영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리그의 개막시기가 3월이라는 점은 MLS만의 또 다른 특별함이다. 3월에 시작해 10월에 리그 일정을 마치는 MLS는 총 2개의 국가(미국, 캐나다)와 4개의 시간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리그와 차이를 보인다. 또한 10월 일정 후부터 펼쳐지는 플레이오프는 MLS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부분 스포츠리그들이 그렇듯이, 플레이 오프시스템을 통해 리그 우승자를 가린다. 



20개의 팀이 총 34라운드 동안의 성적을 가지고 순위를 매긴 후 5위~12위까지 8개의 팀이 단판 승부로 1차 플레이오프를 시행한다. 그들 중 이긴 네 팀이 기존 리그에서 상위 4위를 차지한 팀들과 다시 토너먼트 방식 대진을 거친다. 이 때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4팀의 기존 순위는 상위 네 팀과의 대진에서 영향을 발휘한다. 예를 들면, 리그 1위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생존한 네 팀 중 가장 낮은 기존 순위 팀과 대진하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15-2016 시즌 우승자는 다름아닌 5위팀 포틀랜드 팀버스였다. 1차 플레이오프부터 승부차기까지 갔던 포틀랜드가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에는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스포츠 시스템에 있었다. 

이외에도 샐러리 캡(한 팀의 연봉 총액이 일정한 액수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제도)과 드래프트제도(대학선수 선발)를 실시하는 등 미국 프로 스포츠 경영의 특징을 도입한 메이저리그 사커는 꾸준하게 팬을 늘려 왔다.



2005년부터 본격적인 발전을 거듭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거물급 스타들을 영입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그 시작은 다름아닌 당대 최고의 축구스타로 불리던 데이비드 베컴의 영입이었다. 2007년 650만 달러(한화 약 78억원)의 연봉을 받기로 하고, MLS의 나타난 베컴은 당시 리그 홍보대사나 다름 없었다. 일반 MLS 선수들의 연봉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액수였지만, 베컴의 인지도는 미국리그를 알리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였다. 그 후 티에리 앙리, 로비 킨 등에 이어 최근에는 프랭크 램파드, 다비드 비야, 안드레아 피플로, 스티븐 제라드 그리고 카카까지 많은 스타선수들을 영입함으로써, 축구팬들의 눈을 미국으로 향하게끔 만드는데 성공했다. 

당시, 베컴 때문에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MLS선수들의 평균 연봉의 실체는 18만 파운드(한화 약 3억원)였고, 600여명의 최하위로 분류 받던 선수들은 7만 파운드(한화 약 1억 1,900만원)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제라드가 420만 파운드(한화 약 71억원), 카카가 470만 파운드(한화 약 80억원)를 받았다는 사실과 로비 킨과 스티븐 제라드의 연봉이 LA갤럭시 선수단 연봉의 55%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MLS가 특급 선수들에게 거액에 투자를 감행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알리는 데에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다. MLS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를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지금처럼 꾸준한 관중과 많은 시청률을 늘려나간다면, 언제쯤 그들과의 거리는 좁혀져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MLS 커미셔너인 돈 가버가 EPL과의 비교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답했던 내용이다. 또한 그는 “MLS는 EPL보다 경쟁력이 아직까지 떨어지지만, 제라드나 램파드 같은 선수들은 절대 이 곳이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생각해봐라. 너가 만약 LA팀 소속이라면, 플로리다 원정 길이 있는 날에는 6시간의 비행과 95%의 습도를 경험해야 하고, 동쪽이나 서쪽 끝으로 원정을 떠나는 날에는 시차 때문에 오전 네, 다섯 시에 일어나야만 한다. 이처럼 미국만의 환경은 유럽과 큰 차이가 두지 않고 있다”며 MLS와 EPL은 각자 다른 리그임을 상기시켰다. 

아직까지 EPL과 많은 격차를 두고 있지만, 그들의 평균관중 수는 ‘유럽 5대리그’에 속해있는 프랑스 리게 앙을 이미 넘어서 있었다. 관중 수가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을 모두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이뤄냈던 축구발전의 시작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역을 연고로 한 팬들이 발단이 되었다. 자국부터 뿌리를 내려 점차 해외로 뻗어나갔던 잉글랜드와는 정반대의 운영방식을 택한 미국이지만, 선진 축구 문화 수용과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과의 부드러운 조화는 향후 미국 축구가 발전하는 큰 밑거름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글, 그래픽 = 노영래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BBC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