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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이슈] 공부하는 선수 세르지, 바르사 육성의 진보

youngsports 2015. 11. 27. 21:47

[한준 이슈] 공부하는 선수 세르지, 바르사 육성의 진보



■ 공부하는 축구 선수 키우기에 나선 라마시아


세르지의 가치는 단지 라마시아 배출 스타의 명맥을 잇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2010년 세 명의 선수를 FIFA 발롱도르 3인 최종 후보에 올려 놓은 바르사는 2011년 5명의 유스 출신 선수를 대학에 진학시켰다. 최근 축구계의 화두는 학업과 축구의 병행이다. 바르사는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의 학업을 등한시하며, 이 것이 결국 축구 선수로의 생명이 어떤 이유로든 끝나게 되었을 때 인생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라마시아의 모토는 좋은 선수를 떠나 좋은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초중고 과정에서 유급을 하게 되면 축구도 할 수 없도록 한 바르사 유스 시스템은 중등 교육을 넘어 고등교육까지 지원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세르지는 이러한 시도의 첫 번째 성과다. 세르지는 2010/2011시즌에 바르사 1군 데뷔전을 치렀는데, 그해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 명문 사립 대학 라몬룰대학교에서 운영하는 IQS 스쿨의 경영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세르지는 프로 선수와 대학생의 길을 동시에 걷기로 했다.


이러한 도전에 나선 선수는 세르지 만은 아니다. 마르크 무니에사, 마르티 리베롤라, 오리올 로젤, 일리에 산체스 등이 세르지와 함께 경영대학에 진학해 축구 훈련과 대학 수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2011/2012시즌에는 라마시아 출신으로 축구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는 선수는 10여명이 이르렀다. 폰타스, 플라나스, 미뇨, 로메우 등 지금은 상당수가 다른 팀으로 떠났지만, 센터백 마르크 바르트라도 그 중 한 명이다.


때로는 훈련과 경기 일정, 혹은 연령별 대표팀 소집으로 수업을 듣지 못하는 날이 있었지만, 라마시아에서 선수들의 공부를 지원하는 교사들이 보충 수업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심지어 6개월 간 네덜란드 클럽 비테서 아르넘으로 임대 이적했던 리베롤라는 스페인을 떠나 있었음에도 핵심 과목 3개를 이수했다. 임대 이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라마시아 교사들과의 상담도 진행됐다.


바르사가 이 같은 방향성을 갖고 프로 선수들의 대학 공부까지 지원하게 된 것은, 갑작스레 찾아올 부상, 그리고 슬럼프로 축구 선수의 길을 더 이상 성공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워 진 이들의 남은 인생도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바르사 선수들을 가르치는 교사 차비에르 라미레스는 “유소년 단계에서 선수들이 보낸 시간이 훗날 ‘죽은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인생은 아주 길다”고 했다.


축구 선수로 일하며 동시에 개별적으로 공부에 집중했던 운수에, 수비사레타, 베히리스타인과 같은 인물이 은퇴 이후에도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좋은 예다. 바르사는 이러한 사례를 일반적으로 만들기 위해 선수 육성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느꼈다. 라미레스는 “이제 선수 생활이 끝난 뒤에 인생이 망가지는 선수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이 실시된 이후 여기 시간에 술집에 가거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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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축구 선수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라마시아의 교사 중 한 명인 마리아 앙헬스 포르타벨라는 스페인 스포츠 신문 '스포르트'와 인터뷰에서 “축구 선수 출신의 학생들에겐 근면함이라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며 오히려 축구 선수 생활을 한 학생들의 학업 능률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인내를 갖고 극복하는 능력이나 자기절제력, 헌신과 꾸준함 등은 다른 일반 학생들에게서 보기 힘든 장점이다. 축구 선수들에게는 일반적인 능력이다.” 더불어 포르타벨라는 축구 선수들이 대학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선수 경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언론과 관계를 맺는 일이나 동료 선수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학업을 이어갔던 경험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 주 타라고나 지역의 레우스에서 태어난 세르지는 축구 가문에서 태어난 선수가 아니다. 그의 부친은 기업인이고, 모친은 학교 교사다. 만 9세의 나이에 축구를 시작한 세르지는 일찌감치 지역에서 돋보이는 축구 재능을 보였고, 2006년 14살의 나이로 바르사 유소년 팀에 스카우트됐다.


세르지는 산테스 크레우스에서 유소년 축구를 시작해 나스틱을 거쳐 바르사로 왔는데, 바르사의 영입 제안에 앞서 레알마드리드가 먼저 영입 의사를 타진했었다. 레알의 팩스가 오고 나서 고민하던 세르지는 곧바로 바르사 측의 팩스가 도착해 어려서부터 꿈에 그리던 바르사행을 결정했다. 바르사의 팩스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레알 유소년팀으로 향했을 수도 있었다.


스페인 각 연령별 대표를 모두 거친 세르지의 앞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바르사B에서도 주전으로 뛰며 기대를 모았다. 바르사 1군에 자리가 없더라도 이미 유럽 유수의 팀들이 세르지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축구 경력을 쌓는 과정에 위기로 여길 요소는 많지 않았다.


세르지는 바르사 공식 홈페이지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운동 선수가 되려면 공부는 할 수 없다고들 한다. 하고자 한다면, 해야하는 모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항상 내게 공부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축구가 내게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일에 대한 준비도 천천히 하고 있는 셈이다.” 세르지는 2011년 4월 레알마드리드와 UEFA챔피언스리그에 종료 직전 투입되어 유럽대항전 데뷔전을 치렀는데, 그 다음날에도 대학 수업을 들었다.


세르지의 사례는 실질적으로 축구 특기자를 대학생으로 선발해, 학력에 준하는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한국 축구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르지-498177872s.jpg 차비, 이니에스타에 이어 바르사의 중원 사령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세르지


■ ‘알레만’ 세르지, 아모르 혹은 차비, 그리고 지단


축구와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능력은 분산되지 않는다. 세르지를 1군 선수로 데뷔 시킨 인물은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다. 2010년 11월 10일 세우타와의 코파델레이 경기에 세르지를 출전시켰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당시 자신의 에이전트 주제프 마리아 오로비츠와 바르사 유소년 팀 훈련을 지켜보다가 “레우스 출신의 저 친구를 잘 봐. 저 선수가 최고야”라고 했다. 오로비츠는 세르지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바르사에서 세르지의 별명은 ‘알레만(Aleman, 독일 사람)’이다. 바르사 유스팀에서 세르지를 지도한 에우세비오 사크리탄은 스페인 신문 '엘파이스'와 인터뷰에서 “독일 선수처럼 강한 선수다. 중원 지역의 리더”라고 했다. 그는 주로 세르지를 볼란치 포지션에 기용하며 경기 전체를 주도하게 했다. 


세르지는 2009년에 바르사B로 승격했고, 여기서 현 1군팀 감독 루이스 엔리케와 함께 했다. 당시 세르지는 엔리케의 신임을 받았다. 엔리케의 오른쪽 눈이자, 그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세르지는 늘 꾸준하고 기복 없는 경기력을 보인 것으로 유명했다.


바르사 내부에서는 능숙한 2선 침투 능력에서 과거 선수였던 기예르모 아모르와 자주 비교했다. 공을 배급하는 능력 면에서는 차비 에르난데스와도 비교했다. 지난 10월 헤타페와 리그 경기에서 팀이 기록한 2골을 모두 어시스트한 과정에는 바르사 전 유스 코디네이터 알베르트 베나이제스에게 “지단처럼 플레이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베나이제스는 부상이라는 변수만 없다면 장차 세르지가 바르사 중원의 가장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미 부스케츠, 이니에스타, 라키치티와 같은 반열에서 기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세르지는 어느 누구의 후계자도 아니다. ‘알레만’이라는 별명처럼 그가 가진 힘과 헌신적이고 부지런한 움직임을 통해 그 자신 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타타 마르티노 감독은 세르지를 “훗날 바르사의 깃발이 될 선수”라고 했다. 마르티노 감독은 2013/2014시즌 리그에서 17차례 출전 기회를 줬다. 다만 선발 출전은 한 차례 뿐이었다.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세르지는 1군 팀에서 좀처럼 경기 출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세르지와 함께 유스팀과 B팀에서 기대를 받던 많은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떠났다. 세르지도 우선 임대 이적을 고민했다. 리그 내에서는 발렌시아와 세비야, 밖에서는 토트넘홋스퍼와 스토크시티가 세르지 영입을 원했다. 그 이전에는 리버풀과 AC밀란, 맨시티와 레알마드리드가 세르지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 엔리케의 눈, 엔리케의 아들, 라마시아의 진보


세르지의 임대 추진을 만류한 인물은 엔리케 감독이다. 올 시즌 세르지의 라이트백 출전은 아우베스의 부상을 통해 나온 임기응변이 아니었다. 마르틴 몬토야의 이적이 결정되면서 엔리케 감독은 “다음 시즌 라이트백으로 기회가 올 것”이라며 임대를 추진하던 세르지에게 팀에 남으라고 했다. 여러 포지션을 맡으며 충분한 출전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언질을 준 것이다.


세르지도 라이트백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이지만 산테스 크레우스에서 세르지를 지도했던 이그나시오 로드리게스는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 지 이해하는 아주 영리한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풀백으로 뛰게 했을 때도 언제 올라가고 내려와야 하는지 알았고, 피보테(포르투갈어 볼란치에 해당하는 스페인의 단어)로 뛸 때는 동료 선수들을 커버하는 법을 알았다.”


트레블을 이룬 2014/2015시즌 세르지는 리그 12경기(선발 4회), 챔피언스리그 2경기(선발 1회), 코파델레이 4경기(선발 3회) 등 여전히 출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올 시즌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UEFA슈퍼컵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경기에 나섰고, 라리가 12라운드까지 10경기(선발 9회), 챔피언스리그 5차전까지 전 경기(선발 4회) 출전으로 당당히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팀 일정이 많아지면서 세르지는 현재 대학 일정은 휴학을 한 상태다. 여력이 되는대로 대학 공부의 길도 계속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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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는 메시와 또 다른 방식으로 라마시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세르지가 라이트백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고 그의 절친인 무니에사는 카푸와 비교하기도 했다. 에우세비오는 세르지를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기용했을 때 보인 헌신성에서 라이트백 변신이 성공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지지했다. 엔리케 감독은 세르지의 잠재력을 더 높이 보고 있다. “매우 인상적인 잠재력을 갖춘 선수다. 경기를 보는 시야가 좋다. 여러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우리 팀의 아주 유용한 자원이다.”


세르지가 가진 능력을 칭찬하는 대열에는 요한 크라위프도 있다. 그는 자신이 감독이었다면 로날트 쿠만의 역할을 내렸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세르지가 가진 공격 차단 능력과 공격력, 피지컬 능력이 모두 쿠만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운동 능력만큼이나 축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부하는 선수 세르지는 모든 면에서 위대한 선수가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올 시즌 세르지가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은 아직까지는 작은 미풍이다. 그러나 세르지라는 바람이 거대한 태풍이 될 때, 축구계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세르지의 성공은 바르사 라마시아 시스템의 진일보한 성취가 될 것이다. 경영대학 학업을 병행하며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는다면, 축구라는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에 사로 잡혀 있던 축구계에 혁명적 변화가 불어 닥칠 것이다. 


글=한준 (풋볼리스트 기자. 스카이스포츠 축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