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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축구환상곡] 즐거운 훈련이 '한국의 메시' 만든다

youngsports 2015. 11. 5. 17:08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얼마 전 한 프로축구팀이 운영하던 유소년 축구 취미반에서 생긴 일이다. 프로 선수라는 거창한 꿈 이전에 단지 축구가 좋아서 가입한 아이들이 단체로 축구에 대한 싫증을 호소했다. 학부모들은 단체로 항의에 나섰다. 

진상을 파악해보니 취미반 지도자가 아이들에게 프로 선수로 가는 과정에 있는 엘리트반 아이들과 같은 방식의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아이들이 힘들어 한 것이다. 해당 팀은 지도자를 교체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는 취미반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전히 프로 축구팀 연령별 팀들은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지루하고 고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의 크기가 커서, 축구가 너무 좋아서, 혹은 이미 다른 진로를 택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려서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아이들의 수도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공을 차고 뛰어노는 게 좋아서, 그리고 또래 친구들보다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 시작한 축구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족쇄가 된 것이다. 

최근 유소년 축구계의 이슈는 학업과 축구의 병행이다. 공부하는 축구 선수를 만들어, 프로 선수로 가는 길에 낙오하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프로 선수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들을 위한 재취업 교육 등 각종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물론 좋은 시도이나, 가만 생각해보니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했다. 아이들이 축구와 학업을 병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축구 훈련이 고되기 때문이다. 

▶ 학업과 축구의 병행, 축구가 즐거워야 가능하다 

학창 시절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많은 어른들이 ‘그래도 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후회한다. 필요한 자격증이나 공부가 있어 학원이나 강좌라도 듣는 날이면 기분전환이 된다. 그러나 막상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공부가 힘든 것이 아니라 시험과 입시 경쟁이 공부를 힘든 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 내적동기를 바탕으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다. 애초에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아이들도 그랬다. 부모님이 그만하고 들어오라는 성화에도 한번이라도 더 공을 차겠다고 운동장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부에 들어가 시작되는 ‘프로의 길’은 아이들에게 축구를 ‘숙제’로 만들어 버린다. 지루한 반복 훈련 속에 공을 보기도 싫고, 훈련 시간 외에는 축구와 상관없는 취미에 집중한다. 학업과 축구가 모두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면, 아이들은 하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고, 다른 취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한국 유소년 축구는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확실히 구분된다.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특히 최근 꾸준히 우수한 선수를 배출하는 스페인은 이러한 구분 없이 운영된다. 수 많은 유소년 클럽이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즐기는 축구를 기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업 성적이 좋지 않으면 유급되고, 축구도 더 이상할 수 없다. 

스페인 아이들은 공부를 마치고 빨리 축구를 하러 가고 싶어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축구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결국 한국 유소년 축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질은 취미반 아이들처럼 즐기는 방식의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에 있다. 

▶ 이기는 법 보다 계속해서 즐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2015 FIFA U-17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을 탈락시킨 벨기에의 밥 브로웨이스 감독은 “난 감독이라기 보단 교육자”라고 했다. 결과 보다 선수들의 성장에 더 집중하고, 우승 보다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 팀이 결국 승리도 가져갔다. 

스페인에서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조세민 코치는 자신의 저서 ‘그들은 왜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가(2015, 그리조아FC)’에서 유소년 지도자가 단순히 축구 이론과 훈련 기법뿐 아니라 스포츠 사회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방면의 공부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된다고 전하고 있다. 

조 코치는 지도자 연수 도중 “처음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점점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 수업을 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좋은 선수를 키우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압과 규율보다 즐김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즐기는 일에 매진할 때 비범한 성과를 내기 마련이다. 

기자는 2013년 겨울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클럽 첼시의 훈련장을 방문해 유소년 선수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체험한 적이 있다. 실제 훈련과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는데, 각 훈련 세션은 굉장히 많은 체력을 요구했으나, 마치 하나의 게임을 치르는 것처럼 미션이 주어지는 방식이었다. 

훈련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뿐 숨을 몰아 쉬었지만, 훈련장에 웃음도 떠나지 않았다. 다양한 골 세리머니를 유도하고, 짝을 이뤄 경쟁하거나, 소규모 그룹이 내기를 하는 방식으로 늘 공을 움직이며 진행된 훈련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90분여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다음 훈련에는 조금이나마 발전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유소년 축구계에도 이와 같이 다양한 훈련과 즐기는 훈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오래 가기 어렵다. 중고등학교 축구부로 진학하면 당장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고,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경쟁에 내몰린다. 

▶ 기술 보다 해결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스페인식 유소년 교육은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가라는 창조적인 사고를 발전시키는 훈련에 치중한다. 이 방식은 더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주입식 훈련과 기술 훈련, 체력 훈련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낸다. 많은 지도자들이 후자를 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연령별 대회의 경기 결과가 성인 대표팀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린 나이에 수동적인 수비 조직과 힘, 스피드, 체력을 기반으로 거둔 성과는 성인 무대에 진입한 뒤로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이 되면 수비 조직과 힘, 스피드,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훈련은 선수 개인의 부가적인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다. 

정작 어려운 것은 명민한 판단력과 사고력이다. 공을 완벽하게 다루는 기본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공간으로 움직이고, 어디로 공을 보내야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꾸준한 축구 지능의 개발은 하루 아침에 해낼 수 없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더욱 어렵다. 빠르고 기술 좋은 한국 선수들이 유소년 무대에서는 강하다가 성인 무대에 와서 세계의 벽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머리를 쓰지 않는 축구, 시키는 대로 하는 축구에서 재미를 느낄 리 만무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선수들은 축구의 참 재미를 느낀다. 

유소년 축구 지도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선수들이 즐기면서 발전할 수 있는 훈련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주어진 교본에 따라 틀에 박힌 교육을 하기 보다,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또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만화, 혹은 게임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훈련을 즐겁게 만들 요소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지도자 개인에게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 지금 한국 유소년 축구계는 그러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시장은 척박하며, 평가는 즉각적으로 냉정하다. 모두 축구가 좋아서 이 세계에 뛰어들었으나, 행복한 이는 별로 없다. 결정적으로 학원 축구의 성적으로 대학 특기자로 입학할 수 있는 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 축구가 대입의 수단이 되는 분위기가 현 상태의 근본적 원인이다. 축구는 그냥 축구여야 한다. 축구가 사회에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큰 선수는 지도자도, 선수도 축구가 너무 좋아서 훈련장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 탄생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는 자신이 가진 기술은 FC바르셀로나 유소년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이전에 완성됐다고 했다. 그 스스로 집 근처 운동장에서 축구를 놀이로 즐기며 터득한 것이다. 그 뒤에 전술과 경험이 결합되어 축구천재가 되었다. 

올해 창단한 서울이랜드FC는 대부분의 K리그 팀들이 연고 지역 학교 축구부를 지정해 산하 유소년 팀으로 삼는 것과 달리 클럽 축구팀의 형식으로 유소년 팀을 운영하기로 했다. 학원 축구팀들과 성적을 두고 경쟁하기 보다 기량 향상이라는 측면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축구계에서 아직 무명에 가까운 조세민 코치에게 U-12팀을 맡기는 파격 결단을 내렸다. 홈 경기장이 있는 잠실 지역에서 단지 프로를 꿈꾸는 아이들뿐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는 모든 아이들을 아우를 예정이다. 강경훈 감독이 지도하는 수원삼성 U-12팀은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훈련장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좋은 예 중 하나다. 



좋아하던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다고 해서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직업이 되면서 취미를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아야 한다. 하는 이들도, 보는 이들도 즐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프로축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생산 활동의 목적지는 ‘성과’나 ‘효율’보다 ‘행복’이다. 우리는 그 방향성을 잊어선 안된다. 

미국 축구 선수 랜던 도너번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흥미로운 사진 하나를 공개했다. 미국 유소년 축구협회가 한 유소년 축구 훈련장에 설치한 팻말이다.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선수들은 어린 아이입니다. 이건 게임입니다. 코치들은 자원봉사자입니다. 심판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월드컵이 아닙니다.” 

:: 환상곡은 형식에 구애됨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음악 작품을 뜻한다. 영어로는 환타지(Fantasy)다. ‘한준의 축구환상곡’은 축구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때로는 환타지 소설처럼 풀어낸 하는 한준 기자의 컬럼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아디다스 제공, 풋볼리스트, 랜던 도너번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