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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박사’ 추일승 감독 “‘고졸 신인’ 늘어야 한국농구 경쟁력 올라간다” [엠스플 인터뷰]

youngsports 2021. 11. 2. 10:15

‘농구 박사’ 추일승 감독 “‘고졸 신인’ 늘어야 한국농구 경쟁력 올라간다” [엠스플 인터뷰]

 

-추일승, 농구계를 대표하는 공부하는 지도자 

-“숲 가꾸고 텃밭 농작물 관리하는 시골 아저씨로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

-“한국 농구가 발전하려면 고교 졸업 후 프로로 향하는 선수 늘어나야 한다”

-“지도자가 전문성을 갖춰야 한국 농구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 경험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

 

'농구 박사'란 별명을 가진 추일승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2020년 2월 19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놨다. 

 

추 감독은 2011년 3월 28일부터 오리온을 맡았다. 1997년 창단한 오리온의 역대 최장수 감독이다. 추 감독은 오리온에서 9시즌을 치르며 플레이오프 진출 6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1회(2015-2016) 등의 성적을 냈다.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 KTF 매직윙스 시절 포함 797경기 379승 418패를 기록한 KBL 대표 지도자다. 

 

추 감독은 오리온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한동안 강원도 횡성에서 오랫동안 꿈꿔온 삶을 살았다. 숲을 가꾸고 텃밭 농작물을 관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추 감독은 “횡성에 있으면 걱정할 것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다” “자연 속에서 마음 편히 지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전원생활을 하는 중에도 추 감독의 농구 열정은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국외 농구 서적과 유튜브 영상을 챙겨봤다.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선진 농구의 전술과 시스템을 꾸준히 보고 기록했다.

 

추 감독이 2021-2022시즌 현장으로 돌아왔다. 감독 복귀는 아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경험한 해설위원으로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해설 복귀 전인 7월엔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 시빅 센터에서 열린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TBT)에 참여했다. 외국인 선수로만 구성된 ‘Forces of Seoul’이란 팀을 이끌고 미국 전역이 주목하는 대회에 도전했다. 

 

추 감독은 오리온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엠스플뉴스가 추 감독을 만났다. 

 

추일승 감독 “숲 가꾸고 텃밭 농작물 관리하는 시골 아저씨로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

 

추일승 감독이 직접 가꾼 텃밭(사진=추일승 감독 제공)

 

 

2021-2022시즌 마이크를 잡고 프로농구 해설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2020년 2월 19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어떻게 지냈습니까. 

 

강원도 횡성에 조그마한 야산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있습니다. 예전부터 산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숲 가꾸고 텃밭에 농작물 관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죠. 시골 아저씨로 살았어요. 

 

추일승 감독은 코트 위 냉철한 승부사 아닙니까. 푸근한 시골 아저씨, 상상이 잘 안 갑니다. 

 

감독 생활할 때 미국 출장을 가면 전원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샀어요. 산에서의 생활을 준비한 거죠. 급작스럽게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농막 하나 짓고 재밌게 생활했어요. 일주일에 4일 이상 횡성에서 보냈죠. 3일 정도는 가족이 있는 서울 용산 본가에서 생활했고요.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쉬었던 것 같습니다. 

 

해설위원을 시작하면서 횡성 갈 일이 줄었을 듯한데요. 

 

지금도 일주일에 3일은 횡성에 머물러요. 횡성이 좋아요. 거기 있으면 만나자는 사람도 없고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추일승 감독은 농구계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하는 지도자로 꼽힙니다. 농구와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가고 있었습니까. 

 

평생을 농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인연을 싹둑 자를 순 없겠죠.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많은 연락이 왔어요.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했는데 어떤 팀으로 가야 하느냐, 외국인 선수를 뽑으려고 하는데 도움을 좀 줄 수 있느냐 등의 연락이었죠. 유튜브도 했습니다. 2020년 7월이었습니다. ‘나는 농구인이다’란 방송을 시작했어요. 

 

최근엔 방송이 안 올라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방송 목적이 명확했어요. 후배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농구 백과사전 개념으로 기본, 패턴, 트렌드 등을 가르쳐주고 싶었죠. 처음엔 자신이 있었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많은 농구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죠. 해보니 알겠더라고. 유튜브란 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젊은 세대의 눈을 사로잡을 감각이 부족했습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음악이나 사진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죠. 머릿속에 그려놓은 영상과 완성된 영상의 차이가 아주 컸어요. 

 

영상 전문가를 고용하진 않았습니까. 

 

했죠. 영상 전문가를 고용하니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촬영 장비의 한계가 뚜렷했어요. 고교 농구팀과 여자 프로농구팀 등을 찾아 훈련하는 영상을 찍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안 담기는 거야. 그러던 중 가격까지 올랐습니다. 

 

가격이요?

 

한 10편 정도 찍었을 때일 겁니다. 제작비가 처음 계약 맺은 가격의 3배로 확 올랐어요. 함께 방송하던 (박)상오는 오리온 전력분석원으로 자릴 옮겼죠. 유튜브 하자고 붙잡을 순 없잖아. 인원을 충원해서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론을 냈죠. 일단 중단하자. 그 상태로 1년이 지난 겁니다. 

 

유튜브에 도전한 목적이 명확했습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지도자도 공부해야 합니다. 선수와 지도자는 확연히 달라요. 선수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100%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한국에선 지도자가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시스템이 없어요. 선수 시절 명성을 발판으로 감독 밑에 코치로 몇 년간 근무하는 게 전부죠. 바뀌어야 합니다.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어요. 

 

또 문제가 있었습니까.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익을 만들려면 좀 더 대중적인 영상을 만들어야 해요. 재미가 있어야 하죠. 농구 좋아하는 사람은 전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냉철하게 봐야죠. 시즌 중엔 선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어렵고요. 장소 섭외 등의 문제도 있었죠. 유튜브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에요. 포기한 건 아닙니다. 

 

추일승 감독은 미국, 유럽 농구의 현장을 찾아 선진 농구를 습득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으로 공부하는 지도자입니다. 유튜브가 낯설진 않았습니까. 

 

오리온 감독 시절부터 유튜브를 자주 활용했어요. 유튜브를 잘 검색하면 미국, 유럽 농구팀의 훈련 방법, 전술 등을 배울 수 있습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유능한 코치들은 개인 채널을 운영하기도 해요. 큰 도움이 됐죠.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유튜브에서 경기 영상을 챙겨보며 기량을 가늠하곤 했죠. 

 

최근엔 프로농구 인기 선수들이 유튜브로 팬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팬이 없으면 프로농구는 존재할 수 없어요. 팬과 소통할 기회를 늘린다는 건 긍정적입니다. 단,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해요. 프로선수의 기본은 코트를 찾은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는 것 아닙니까. 프로선수인 만큼 자기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옛날이랑 아주 달라요. 

 

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어린 선수가 방송 인터뷰한다고 하면 선배들이 눈치를 주곤 했어요. 주목을 어린 선수 혼자 다 받는다는 거지. 인터뷰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발언을 했다? 구단에서 난리가 납니다. 선수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환경이었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말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죠. 지금은 아니에요. 톡톡 튀는 개성과 말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겁니다. 유튜브를 잘 활용했으면 해요. 

 

“한국 농구가 발전하려면 고교 졸업 후 프로로 향하는 선수 늘어나야 한다”

 

오리온에서만 9시즌을 보낸 추일승 감독(사진 가운데)(사진=KBL)

 

 

2020년 2월 19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밖에서 한국농구를 지켜봤습니다. 한국농구,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겁니까. 

 

한동안 한국농구가 망해가고 있다, 아니다로 격렬한 논쟁이 있었죠. 제 생각은 이래요. 우물 안 물이 고인 상태입니다. 물이 계속해서 돌아야 하는데 길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농구가 돌파구를 찾는 과정인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선수들의 기량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신체조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예요. 키 200cm 이상 선수들이 하나같이 잘 뜁니다. 가드처럼 볼을 다루고 3점 슈터처럼 슛을 쏴요. 문제는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이요?

 

한국농구는 아직도 엘리트 스포츠입니다. 갈수록 농구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가 줄고 있어요. 심각한 문제죠. 한국 농구가 발전하려면 송교창, 양홍석, 이원석, 하윤기 같은 선수가 늘어야 한다고 봐요. 

 

이유가 있습니까. 

 

유럽 농구를 예로 들게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은 축구처럼 유소년 시스템을 운영해요. 보통 12살에서 14살 사이엔 클럽팀의 선택을 받습니다. 프로팀에서 기량을 갈고닦는 거예요. 미국 프로농구(NBA) 정상급 가드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루카 돈치치 아시죠?

 

NBA 댈러스 매버릭스 간판선수 아닙니까. 

 

루카 돈치치는 슬로베니아 유니언 올림피아에서 7살 때부터 농구를 배웠습니다. NBA와 국가대표 선배인 고란 드라기치에게 어린 시절부터 조언을 받으며 성장했죠. 돈치치는 유럽 각국의 유소년팀과 경기를 벌이며 일찌감치 큰 관심을 받았어요. 16살에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해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며 2018년 NBA에 진출했어요. 그리고 신인상까지 받았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고요. 

 

한국도 유소년 육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말하면 대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엘리트로 불리는 선수들이 대학을 거칠 필요가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선수가 프로 선수를 꿈꾼다면 KBL로 직행하는 게 옳습니다. 대학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길 원하는 학생선수를 받아들여야 해요. 고교 졸업 후 KBL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선수들이 대학에서 4년이란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기 유럽이나 미국의 재능들은 프로에서 최고 선수들과 경쟁을 벌여요. 기량 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 

 

꼭 한 번 돌아봤으면 해요.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때마다 뭘 했습니까. 외국인 선수 제도를 바꾸고 공인구를 교체했죠. 그게 농구 발전에 이바지했나요. 청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미국, 유럽, 호주 등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현중처럼 NBA에 도전하는 선수가 늘어야 해요. 

 

농구에선 수많은 학생선수가 대학을 거칩니다. 야구나 축구에서 재능이 특출 난 선수는 프로에 바로 데뷔하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류현진이나 손흥민이 대학교에서 4년을 보내고 프로에 입문했다면 지금처럼 세계적인 선수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야구나 축구는 국제 경쟁력이 있습니다. 아시아경기대회,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여러 차례 성과를 냈어요. 야구나 축구에선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입문해 성장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농구는 다릅니다.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인정해버리니 제 자리에 머무르는 거예요. 선수들의 기량은 확실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기량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아주 좋은 얘기입니다. 

 

고교 시절부터 특출 난 재능으로 불린 선수들이 있어요. 그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대학으로 향해 4년을 보냈습니다. 요즘 몇몇 선수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파요. 고교 졸업 후 곧장 프로로 향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어제오늘이 똑같은데 내일이 다를 순 없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전문성을 갖춰야 한국 농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

 

추일승 감독은 농구계에서 가장 많이 공부하는 지도자로 꼽힌다(사진=KBL)

 

 

추일승 감독의 농구 열정엔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한 고민이 가득하다는 걸 느낍니다. 

 

모든 농구인이 같은 마음일 거로 믿습니다. 한국농구가 더 이상 농구대잔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프로농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선수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인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현중은 하승진 이후 두 번째로 NBA에 도전하고자 해요.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면 지금보다 발전된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려면 지도자들도 바뀌어야 해요.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전문성이요?

 

미국이나 유럽 클럽팀을 보면 전문성을 갖춘 코치가 많습니다. 공격, 수비, 전술 등에 특화된 코치들이 선수들을 가르치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드면 가드, 빅맨이면 빅맨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코치가 있어요. 선수들이 기량 향상을 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선수 기량만 향상된다고 해서 농구 발전이 이뤄지는 건 아니에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코치들이 꾸준히 공부하면서 자기만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군요. 

 

많은 지도자가 “요즘 선수들은 우리 때보다 운동량이 적다. 기량이 부족하다”는 얘길 합니다. 글쎄요. 저는 지도자의 역량이 요즘 선수들의 기량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봅니다. 선수들의 향상된 신체 능력과 잠재력을 폭발시켜야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농구 지도자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필요한 겁니다.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대표팀을 볼 때마다 참 아쉬운 게 있어요. 

 

예를 들어줄 수 있습니까. 

 

성인 대표팀뿐 아니라 청소년 대표팀에도 해당하는 내용이에요. 세계적인 강팀과 붙으면 선수들에게 ‘이길 생각이 있나’ 싶습니다. 힘든 거 맞아요. 100번 싸우면 99번 지는 경기입니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갔으면 1%의 기적을 일구기 위해 죽자 살자 뛰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면 뒤로 물러나기 일쑤입니다. 몸싸움이 두려워 외곽에서 슛만 던져요. 지도자가 동기부여를 강하게 심어줬다면 저런 경기력이 나올까 싶은 거죠.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생각도 듭니다. 

 

유소년 시스템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찍부터 미국, 유럽 선수들과 부딪혀봐야 해요. 이현중이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주, 미국에서 세계 최고 선수와 부딪혀서 겁이 없었어요. 자신 있게 부딪히고 슛을 던졌습니다. 어떻게든 이기려는 게 보였어요.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비용이 문제라면 이렇게 했으면 해요. 

 

어떻게요.

 

KBL이 매년 유망한 선수 한두 명을 뽑아 미국 연수를 보내줍니다. 비용이 상당하겠죠. 차라리 그 돈을 유능한 지도자를 초청해 한국 학생선수 수십 명을 가르치는 데 쓰면 어떨까 싶은 겁니다. 유명한 감독, 코치의 초빙을 늘리는 게 한국농구 현실에선 좀 더 맞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궁금한 게 있습니다. 추일승 감독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입니다.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가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미국으로 향할 때마다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비시즌이면 세계 각지의 지도자들이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에서 외국인 선수의 기량을 직접 확인하고 정보를 공유하죠. 저도 지도자인데 농구에 관해 아는 척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어 공부하고 전술, 전략 등을 숙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야 한국 농구를 무시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아. 

 

1990년대 후반일 거예요. 미국 연수 중에 노르웨이 프로팀 감독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까지 역임한 능력 있는 지도자였죠. 농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훈련 방식, 선수 관리, 팀 운영 등에 뚜렷한 철학을 이야기하니 상대가 저를 인정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 인연으로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2003) 시절엔 전지훈련지로 노르웨이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노르웨이요?

 

코리아텐더는 재정적으로 넉넉한 구단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미국 연수 시절 인연을 맺은 노르웨이 감독의 도움으로 아주 싸게 전지훈련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훈련할 수 있게끔 초청해 준 거예요. 미국에서 인연을 맺은 또 다른 대학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추천해준다든가 선진 훈련 시스템에 관해 꾸준히 조언을 해줬죠. 예나 지금이나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힘쓰는 것 같아요.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 경험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

 

추일승 감독은 7월 미국에서 열린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에 참가했다(사진=추일승 감독 제공)

 

 

7월 25일 미국 일리노이주 피오리아 시빅 센터에서 열린 2021 더 바스켓볼 토너먼트(TBT)에서 ‘Forces of Seoul’이란 팀을 이끌었습니다. TBT는 미국 ESPN이 주최하는 농구 대회로 미국 대학, 프로 선수가 팀을 꾸려 참여합니다. 한국인 지도자가 미국 선수 위주로 구성된 팀을 이끈 건 추일승 감독이 최초입니다. 

 

색다른 경험이었죠. TBT는 2014년부터 매해 열리고 있어요. KBL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한 에릭 탐슨, 저스틴 덴트몬, 조쉬 에코이언 등이 이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죠. Forces of Seoul엔 오데리언 바셋, 버논 맥클린 등이 함께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바셋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맥클린은 허리 부상이었고요. 인연이 있는 선수는 브랜든 브라운 하나였어요. 

 

선수 구성부터 쉽지 않았군요. 

 

일본이나 대만에서 외국인 선수로 뛴 선수들이 주축이었죠.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딱 3일이었어요. 하지만,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TBT 인기가 올라가면서 ESPN이 생중계했어요. 상금도 꽤 컸죠.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재밌게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미국 명문 시러큐스 대학 출신들이 모인 Boeheims Army 팀에 3쿼터까지 앞서다가 패한 게 아쉬움이지만. 

 

이 대회는 어떻게 나가게 된 겁니까. 

 

KBL에서 외국인 선수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분이 있어요. 부산 KTF 시절 칼 미첼이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인연을 맺은 분이죠. 미첼은 그분이 에이전트란 직업을 얻고 처음 계약을 성사시킨 선수였어요. 그분은 저를 만날 때마다 ‘감독님과 인연은 특별한 것 같다. 늘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고마웠죠. 2월쯤일 겁니다. 그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그분이 “미국에서 TBT란 대회가 있다.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참여한다. KBL 경험 있는 선수도 많다. 감독님이 이 대회에서 한국 농구의 힘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했죠. 연락을 받고 TBT에 관해 좀 알아봤어요. 미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인기가 많은 겁니다. 외국인 선수로 구성된 팀을 이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이 대회를 경험하면서 또 느꼈습니다. 

 

무엇을 느꼈습니까. 

 

농구 공부의 끝은 없다는 겁니다. 지도자는 내국인 선수뿐 아니라 외국인 선수와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해요. 통역을 거쳐서 소통하는 것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어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농구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문법이 맞든 틀리든 메시지만 전달하면 되니까(웃음). 그렇게 소통하면서 대회를 치렀죠. 코트 위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다 보니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지휘봉을 내려놓고 처음 팀을 지휘한 것 아닙니까. 

 

코트 위에 서서 팀을 이끄는 데 가슴이 계속 뛰었습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 행복했어요. 경기에서 패한 건 아쉽지만 웃음이 떠나질 않았죠. 선수들도 “이 대회에 참가하길 잘했다. 만족스럽다”는 말을 했습니다. 

 

KBL 코트에서 추일승 감독을 보고 싶어 하는 팬이 많습니다. 

 

지금도 농구가 참 재밌어요. 농구가 좋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는 제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치고 싶진 않습니다. TBT에 참여하면서 꼭 프로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농구의 깊이와 재미를 더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도전하고 싶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된 동아리 농구도 좋아요. 함께 땀 흘리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합니다. 

 

농구가 왜 그렇게 좋습니까. 

 

농구를 고교 2학년 2학기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많이 늦었죠. 1985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창단 멤버로 합류해 성인 무대를 경험했지만 한계가 뚜렷했어요. 군 복무를 마친 뒤 아쉬움만 남긴 채 선수 생활을 마감했죠. 그때부터 ‘지도자 생활은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았습니다. 지도자를 하면서 느꼈어요. 지도자는 선수와 다르구나. 할 수 있겠구나. 

 

오리온에서 챔피언 결정전 우승(2015-2016)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지도자로 큰 성과를 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더 좋은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의지가 큽니다. 농구 서적을 읽고 유튜브로 미국, 유럽 농구 영상을 찾아보는 게 아주 재밌어요. 어쩌겠습니까. 농구와 평생 함께 가야지. 당장은 팬들에게 더 재밌고 이해하기 쉬운 농구를 전할 수 있도록 힘쓸 겁니다. 

 

 

기사제공 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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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뛰어난 지도자는 수많은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각 분야에서 존경받고 뛰어난 코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많은 시스템이 발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