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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가 '자선재단' 대신 '유한회사'를 만드는 이유

youngsports 2015. 12. 9. 10:02

저커버그가 '자선재단' 대신 '유한회사'를 만드는 이유


ZUCKERBERG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특이한 기부형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2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주식 99%를 기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가치로 약 52조원(45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기부형태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하나다. 통상적인 기부형태인 '자선재단' 설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증건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신고서에 따르면,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는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의 유한책임회사(LLC)를 세운다.

버즈피드는 "(기부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이 돈이 모두 자선단체(charity)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많은 뉴스 매체들도 이 기부액이 자선단체나 자선재단으로 가는 것처럼 묘사했다"며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포춘의 매튜 잉그람은 "테크 업계와 미디어 일각에서는 이를 비판하며 기부의 취지를 불분명하게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를 통해 저커버그는 자선재단에는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다른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LLC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재단과는 달리, 어느 곳에든 돈을 쓸 수 있다. 저커버그의 기부금이 정치 캠페인 광고에도 쓰일 수 있고, 특정 회사에 투자를 하는 데 쓰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charity

그렇다면 저커버그는 왜 LLC를 만드는 걸까?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미국 언론들은 '기부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유연성과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영리단체나 재단 대신 LLC 형태를 이용하면 저커버그 가족은 인자한 기부금을 내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업에 투자하거나 입법을 위해 로비를 할 수도 있고 공공 정책 논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 비영리기구가 현행 세법상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족 대변인은 투자로 인한 모든 수익은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의 향후 프로젝트를 위해 재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12월2일)

뉴욕타임스의 또다른 기사를 보면, LLC는 점점 일반적인 기부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포춘 등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 잡스 역시 '에머슨 콜렉티브(Emerson Collective)'라는 이름의 LLC를 소유하고 있다.

이 형태를 활용하면 기부자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으로 기부액의 사용 방법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또 비영리재단에게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다.

스탠포드대에서 자선활동을 가르치는 Laura Arrillaga-Andreessen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LLC의 장점은 첫 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만큼 민첩하게 활동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영리기업은 물론, 비영리기구에 대해서도 동시에 정치적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영역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투자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facebook

저커버그가 자신의 페이스북 주식 대부분을 기부하면서도 페이스북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로 평가된다.

페이스북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것도 LLC를 설립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저커버그는 주당 10표 의결권을 지닌 페이스북 B형 보통주 4억19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의결권 과반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임장 투표를 통해 이사회도 지배하고 있다. (포춘 12월2일)

복스는 저커버그의 기부를 '앤젤 투자펀드'에 비유하며 전통적 방식의 재선재단과의 차이를 이렇게 짚었다.

부유한 기부자들이 전통적으로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이 죽은 뒤에도 지속될 기구를 만들고 싶다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포드재단,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같은 곳은 최초 설립 이후 세대를 거쳐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추세는 시간이 한정된 생애 내에 모든 기부금을 다 쓰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LLC 구조에 훨씬 이점이 많으며, 실리콘 밸리 기부자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한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복스 12월2일)

물론, 이론적으로는 저커버그가 기부액을 슬쩍 낮추거나 엉뚱한 곳에 기부금을 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저커버그는 그동안 불법이민자 자녀 장학금, 부인이 근무했던 공공병원, 저소득층 밀집지역 공교육 개선, 에볼라 퇴치 등 꾸준한 기부활동을 벌여왔다.연합뉴스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기부액은 모두 1조8500억원에 달한다.

복스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지분의 99%보다 적은 금액을 기부하려는 속내를 품고 있었다면, 애초에 50%만 기부하겠다고 약속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plained: Mark Zuckerberg's pledge to give away 99% of shares - B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