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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넘어선 기업]日 야마하 철수시킨 활 장인 박경래 윈엔윈 대표

youngsports 2015. 8. 21. 13:09


국가대표 감독출신, 활로 세계시장 정복
일본 고교부터 공략..점수 향상에 도움 되면서 채택율 상승
2002년 시장철수한 야마하 인수..日시장 본격공략

[글·사진=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2002년 일본 야마하는 양궁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이전까지 미국 호이트와 자웅을 가리던 양궁 시장의 강자였다. 야마하가 사업을 접은 것은 한국 양궁 업체 윈엔윈 때문이었다. 윈엔윈은 이제는 호이트마저 제치고 세계시장 을 절반 이상 점유한다. 

1993년 회사를 설립한 박경래(59) 윈엔윈 대표는 양궁 국가대표 출신이다.
[일본을 넘어선 기업]日 야마하 철수시킨 활 장인 박경래 윈엔윈 대표
박경래 윈엔윈 대표가 자전거 프레임을 들고 활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대표는 “카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스포츠 용품 제조로 100년 이상가는 명품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 첫 양궁 국가대표선수 출신이면서 한국 양궁 국가대표 코치, 감독을 두루 거쳤다. 한국 첫 국제 심판이었고 첫 남녀 상임 총감독도 역임했다. 우리나라 양궁 역사가 곧 박 대표의 역사나 다름없다. 감독으로서 1985년 세계 선수권대회,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1991년 세계 선수권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세계적 감독이 되겠다”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박 대표의 나이는 불과 30대 중반. 이 때부터 박 대표에게는 명품 활을 만들겠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한국은 활을 쏘는 실력은 우수했지만 만드는 기술은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세계적인 활은 거의 전부가 외산이었다. 미국산, 일본산이나 유럽의 프랑스산, 이탈리아산 등이 시장을 휩쓸었다. 

박 대표는 “저가형 활을 만드는 업체가 2~3곳 있었지만 명품에 대한 도전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며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활이었으니 이걸로 세계적 명품을 만들어보자고 목표를 세웠다”고 회상했다.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윈엔윈은 설립 2년만인 1995년에 첫 활 생산에 성공, 일본시장에 곧바로 진출했다. 그러나 얼마 후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활에 금이 가는 현상이 발견된 것. 일본에 수출한 활 60대를 전량 회수했다. 활 제조에는 문외한이어서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첫 제품이라 상실감이 컸다.

다시 도전에 나선 그는 우선 알루미늄을 단조할 수 있는 기계를 구입했다. 활은 크게 알루미늄과 카본이 사용되는데 손잡이 부분에 알루미늄, 높은 탄성이 필요한 날개 부분에 카본이 쓰인다. 알루미늄과 카본을 직접 제작하기로 나선 것은 외주로는 호이트와 야마하의 활보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활의 날개는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날개 중심을 기준으로 한 쪽에 약간이라도 강도가 차이 나면 활시위를 놓을 때 운동에너지가 비틀리면서 전달돼 활의 운동 방향에 방해가 됐다. 선수가 아무리 집중을 한다고 해도 활 자체의 미묘한 뒤틀림까지 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1년간 백지상태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활을 만들어냈다. 1996년에 내놓은 두 번째 활은 앞서 만들었던 활의 단점을 극복했다. 때마침 경쟁사에서 출시한 제품들에 이상이 발견됐다. 1997년 나온 호이트 제품은 강도가 낮아 부러지는 현상이 빈발했다. 1998년 선보인 야마하 활은 중심 비틀림이 너무 심해 활을 제대로 쏠 수 없었다.

박 대표는 이 틈을 노려 재빨리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일단 선수들로부터 반응이 좋았다. 윈엔윈 활을 쓰면서 점수가 오르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1점에 울고 웃는 선수들로서는 윈엔윈 제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고교 클럽팀을 집중 공략했다. 클럽 스포츠가 발달한 일본이어서 입소문 효과가 클 것이라고 봤다.  

[일본을 넘어선 기업]日 야마하 철수시킨 활 장인 박경래 윈엔윈 대표
박경래 윈엔윈 대표가 보유한 특허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대표는 “양궁에 관련된 특허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회사가 윈엔윈”이라고 소개했다.
2002년에는 윈엔윈의 공세에 밀린 야마하가 결국 활 시장에서 철수했다. 박 대표는 곧바로 야마하의 생산시설을 인수했다. 야마하 생산라인에 윈엔윈 재팬을 설립하면서 윈엔윈이 일본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윈엔윈이 해외 수출국 중에서 활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시장 점유율은 60~70%에 이른다. 심지어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은 100% 윈엔윈 활을 쓴다. 한국에서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15년 전 1억원을 호가하는 1만 프레임 카메라를 구입해 활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연구하며 만들어낸 성과다.

박 대표는 “호이트와 야마하 공장을 둘러보고 공정을 만들었다면 이들을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며 “1999~2000년 즈음에는 오히려 호이트와 야마하 관계자들이 우리 공장을 방문해 자사 제품을 보완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윈엔윈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300억원 가량. 이 가운데 국내 매출은 2억원 수준으로 해외에서 매출 대부분을 거둔다.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화에 돌입하면서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윈엔윈을 통해 한국도 100년 이상된 스포츠용품 제조사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다. 23년 역사의 윈엔윈이 100년 전통의 스포츠 제조사가 될 수 있도록 밑거름을 쌓는 일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카본 소재를 활용한 자전거 위아위스 론칭이다. 저가 보급형 자전거를 파는 기존 자전거 회사를 대신해 명품 자전거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명품 활을 만들어냈던 과거와 비슷한 전략이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열린 주니어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대표 선수 8명 중에 6명이 위아위스 자전거를 택했다. 올해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봤던 1200대 판매 목표도 무난한 달성이 예상되고 있다. 3월부터 판매에 돌입했는데 5월 기준 560대를 팔았다.

박 대표는 “명품이 되려면 오래된 역사나 원산지, 혹은 많은 마케팅 비용이 필요한데 이 세 가지가 없어도 명품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기술력”이라며 “훌륭한 기술력만으로 명품을 만들어내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