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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가족농이 사는 법

youngsports 2015. 6. 17. 09:27

농사꾼이라서 행복해요

유럽에서도 농업은 ‘돈 안 되는’ 일일까.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가족농 보호에 정책적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게끔 일정한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유럽의 가족농이 사는 법 - 김은남 기자

농사꾼이라서 행복해요
번지수 틀린 한국의 ‘창조 농업’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오스트리아의 농가주택이다. 소박한 2층 목조건물에 아치형 대문이 앙증맞다. 일행을 맞은 집주인 발터 크라이들 씨(63)는 이 집에 산 지 얼마나 되었냐는 질문에 활짝 웃으며 답했다. “나폴레옹 때 침공을 받아 마을이 불타면서 조상들이 살던 옛집도 불탔다. 지금 이 집은 지은 지 200년밖에 안 되었다.” 지은 지 20년만 되어도 재건축 얘기가 나오는 아파트공화국에 사는 기자로서는 첫 대화부터가 생경했다.

현관 복도 벽에는 각종 상패며 금메달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맛의 왕관’이라며 그가 또다시 웃는다. 맛의 왕관(Genuss Krone)은 오스트리아 특유의 식품 인증제도다. 오스트리아 농업프로젝트협회는 2년에 한 번 빵·생선·치즈 등 각 주(州)에서 출품한 지역 특산품 중 품목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선정된 식품에 왕관 표식을 수여한다. 그런 만큼 맛의 왕관을 5회 차지한 크라이들 씨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제빵 마이스터(장인)라 할 만하다. 농가 전통 빵을 만드는 솜씨가 탁월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은남</font></div>척박한 땅을 일궈낸 농민이 있었기에 알프스 특유의 자연·문화 경관도 유지될 수 있었다. 
ⓒ시사IN 김은남
척박한 땅을 일궈낸 농민이 있었기에 알프스 특유의 자연·문화 경관도 유지될 수 있었다.
이쯤이면 한국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널리 났을 법하다. 전국에서 몰려든 고객들로 빵집 앞은 늘 문전성시를 이룰 터이다. 그런데 이 농가, 아무래도 미심쩍다. 일단 번듯한 매장이 따로 없다. 현관 옆 거실로 추정되는 5평(16.5㎡) 남짓한 작은 공간에 선반을 세워놓고 농가에서 만들어 파는 5~6종류의 빵을 진열하고 있을 뿐이다. 빵을 사러 드나드는 사람들의 행색도 영락없는 동네 주민이다. 흙 묻은 바지에 운동화 내지 긴 장화 일색이다. 제빵 실력에 비해 마케팅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 “굳이 빵을 많이 만들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라고 크라이들 씨는 말한다. 그가 경작하는 농지는 6㏊. 이 중 1㏊ 면적에 재래종 밀을 재배한다. 나머지 땅은 감자밭과 초지다. 소 8마리와 닭 100여 마리도 함께 기른다. “이 정도 규모로 농사를 지으려면 매일 빵을 굽기 어렵다. 빵은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에서 생산한 밀과 우유, 달걀로만 만든다”라고 그는 말했다. 신선한 밀로 만든 빵은 일주일 이상 보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단골들도 불만이 없단다.

여기서 절로 드는 의문 하나. 그는 왜 다른 데서 재료를 사오지 않는 것일까? 빵을 더 구워 팔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적 상식’으로 질문하자 또다시 생경한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 가족이 먹고살기 충분한데 왜? 이웃들과 맛 좋은 빵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충분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은남</font></div>발터 크라이들 씨 집 현관에 들어서면 ‘맛의 왕관’ 인증서가 맨 먼저 눈에 띈다. 
ⓒ시사IN 김은남
발터 크라이들 씨 집 현관에 들어서면 ‘맛의 왕관’ 인증서가 맨 먼저 눈에 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대산농촌재단 제공</font></div>발터 크라이들 씨와 농업 후계자인 그의 아들 
ⓒ대산농촌재단 제공
발터 크라이들 씨와 농업 후계자인 그의 아들
욕심 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시스템

지난 5월6~15일 대산농촌재단 농업연수단이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유럽 농가를 돌아보는 일정에 <시사IN> 기자가 동행했다. 쌀 시장 전면개방과 FTA(자유무역협정)·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 등으로 농업 분야의 믿고 있던 보루가 속속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한국 농촌과 농민이 나아갈 길을 가늠해보고자 함이었다.

이번 연수에서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유럽의 가족농이 사는 법. 독일 바이에른 주 켐프텐 시 농업국장을 지낸 요제프 히머 씨는 독일의 경우 농가를 크게 둘로 나눈다고 말했다. 기업농과 ‘농가적인 농가’(가족농·소농 포함)가 그것이다. 히머 씨에 따르면, 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 가운데 ‘농가적인 농가’를 보호하는 일에 정책적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가족농·소농이 사라질 판이기 때문이다.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선포했던 국제연합(UN)은 세계적인 식량 수급의 불안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가족농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농가당 평균농지가 1.5㏊ 수준에 불과한 한국에서 이 문제는 더 절실하다. 그런데 유럽 가족농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처럼 선문답 같은 얘기를 들은 것이다.

발터 크라이들 씨만이 아니었다. 독일 바이에른 주 일러빙켈 지역에는 레가우 농민조합이 있다. 1988년 레가우 마을에 사는 가족농 65명이 힘을 합쳐 만든 축산영농조합이다. 이 조합은 공동 도축장을 운영하는 한편 여기서 도축한 육류와 그 부산물로 만든 가공품을 판매하는 로컬푸드 매장을 마을 입구에 운영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다. 레가우 농민조합은 에르드멘트 게글러라는 육가공 마이스터를 17년째 고용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단순히 육가공만이 아니다. 농가를 돌며 조합원들이 직접 기른 소·돼지 중 최상품을 선별하는 일부터가 그의 몫이다. 이렇게 고른 질 좋은 고기로 맛 좋고 신선한 햄, 소시지 등을 만들어 팔기에 매장을 찾는 지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라이너 바이케네거 조합장(50)은 말했다. “조합이 자리를 잡으면서 처음에는 빌려 쓰던 도축장을 2013년 새로 지었다. 로컬푸드 매장 직원도 10명까지 늘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은남</font></div>레가우 농민조합은 육가공 마이스터를 17년째 고용하고 있다. 
ⓒ시사IN 김은남
레가우 농민조합은 육가공 마이스터를 17년째 고용하고 있다

이쯤이면 조합을 키워보고픈 욕심을 낼 법도 하다. 바이케네거 씨는 “조합에 가입하고 싶다는 농가가 줄을 서 있다”라고 말했다. 레가우 농민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이 시장에 가축을 내다팔 경우 시세보다 30% 이상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탈퇴한 조합원 자리에 새 조합원을 들이면 모를까, 조합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늘릴 형편도 안 된다. 조합이 도축하는 소는 일주일에 두 마리, 1년 통틀어 100마리 남짓이기 때문이다. 결국 농가당 조합에 납품하는 소가 1년에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회원 농가들이 매장 규모를 늘려서라도 자기 소를 좀 더 팔아달라고 아우성을 치지는 않을까? “그런 일은 없다”라고 바이케네거 씨는 말한다. 지금 수준으로도 조합원들이 충분한 만족과 자긍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럽 농민들은 특별히 무욕(無慾)의 유전자라도 타고난 것일까. 연수단을 안내한 황석중 박사(전 농촌진흥청 연구관)는 “욕심 부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 유럽 농촌정책의 핵심이다”라고 말한다. 독일 농정 전문가인 그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농촌정책을 관통한 기본 철학은 하나, ‘떠나지 않아도 살 만한 농촌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일정한 면적에 최소한의 인구밀도를 유지한다”라는 헌법 조항이 그 근거가 되었다. 지역마다 일정한 인구밀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해당 지역이 공동화하면서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사라지는 만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게끔 일정한 생활수준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켜져왔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가맹국들이 채택한 공동농업정책(CAP) 또한 이 같은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2013년 발표된 공동농업정책 개선안을 보면 ‘식량의 안정적 생산’ 못지않게 농업의 공적 가치를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안병일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지적했다(<농정방식 개혁:EU CAP의 진화를 보라>).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자연자원을 관리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 ‘지역 간 균형 발전’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책 기조에 따라 유럽연합 국가들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농가를 지원하고 있는데, 직불금이 그 핵심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럽 농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직불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일단 소유한 농지 면적을 기준으로 기본 직불금을 지원받는다. 2010년 기준으로 ㏊당 340유로(약 41만원)꼴이다. 다만 2013년 공동농업정책이 바뀌면서 그 규모는 다소 줄어드는 추세라고 요제프 히머 전 켐프텐 농업국장은 말했다. 독일 농가의 경우 지금은 ㏊당 170유로(약 20만5000원)~280유로(약 33만7000원)를 기본 직불금으로 받는다. 대신 농지 면적이 3㏊ 이하인 소농은 농지 규모와 관계없이 500유로(약 60만원)에서 1250유로(약 150만원)를 일괄 지원받는다. 가족농·소농 보호 정책에 따라서다. 40세 이하 농민도 청년농 지원정책에 따른 직불금을 지원받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김은남</font></div>유럽에서는 3대가 함께 사는 농가를 흔히 볼 수 있다. 
ⓒ시사IN 김은남
유럽에서는 3대가 함께 사는 농가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른바 녹색화 직불금도 강화됐다. 초지를 잘 보존해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재배 작물을 다양화하는 등 환경에 기여하는 농가에는 별도의 직불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가파른 경사지나 응달진 지역 등 영농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 있는 농가도 추가 직불금을 지원받는다. “이들 농가가 있었기에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관도 보존될 수 있었다”라고 황석중 박사는 말한다. 알프스 일대는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초지로 덮여 있다. ‘이런 데도 사람이 살까’ 싶을 만큼 높은 지대도 마찬가지다. 본래 농가들이 이런 고지대까지 올라 가축을 기른 것은 척박한 환경에서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축을 먹이기 위해 열심히 초지를 가꿔야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알프스가 황무지나 덩굴로 뒤덮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비경을 누리는 것에 대한 비용을 국민들이 세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녹색당이 ‘농민의 원수’라고?

농업 직불금과는 별도로 ‘에너지 농사’에 대한 지원금을 받는 농가도 적지 않다. 레가우 마을에 사는 마르틴 렌 씨(66)의 농가에 들어서니 뒷마당에 둥근 지붕을 얹은 창고 같은 시설이 보였다. 40㎾급 바이오매스 발전 시설이다. 이 시설로 하루 15~22시간 전기를 생산한다고 렌 씨는 말했다. 에너지 농사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일단 가축을 키우면서 생긴 분뇨와 건초를 발효시켜 발전을 하니 그 자체로 친환경적이다. 소득원으로도 짭짤하다. 집에서 생산한 전기는 지역 전력회사에서 사주게 돼 있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수입만 한 달에 6000유로(약 720만원)가량이라고 렌 씨는 말했다.

이런 지원책 덕분에 유럽 농민들은 도시 근로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올린다. 농민 소득이 도시 근로자 소득의 62.5%(2013년 기준)에 불과한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2010년 유럽연합 통계에 따르면, 이중 27.7%가 직불금으로 벌어들인 소득이었다. 이렇게 적정소득이 보장되니 농민들은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3대가 함께 사는 농가도 흔히 볼 수 있다. 발터 크라이들 씨도 아들이 농민 후계자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아버지처럼 제빵 마이스터가 되는 과정에 도전 중이다”라고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발터 크라이들 2세(23)는 말했다. 옆동네 사는 여자친구도 “발터와 함께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대산농촌재단</font></div>대산농촌재단 연수에 참가한 한국 농민들이 한 가족농이 텃밭 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대산농촌재단
대산농촌재단 연수에 참가한 한국 농민들이 한 가족농이 텃밭 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런 지원들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직불금을 받는 대신 농민들에게는 엄격한 의무가 요구된다. 이른바 ‘대응 준수 의무’다. 농업 생산과 환경 보전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농지를 보호할 것이 그 첫 번째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의무적으로 윤작 또는 혼작을 해야 한다. 한 해 옥수수를 심었으면 이듬해에는 감자나 보리, 밀을 바꿔 심는 식으로 땅심을 키워줘야 한다. 이를 어기고 옥수수만 계속 심었다가는 직불금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가축도 함부로 기르지 못한다. 1㏊에 소 한 마리 식으로, 농지 면적당 사육 두수를 제한한다. 축사도 동물친화적으로 짓고 관리해야 한다. 직불금을 받는 한, 공장식 축산은 꿈도 꾸기 어려운 것이다.

정부는 농민들이 이런 의무를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감독한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농업국의 주요 업무는 식량 증산을 위한 기술 지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농민들이 비료를 많이 써서 환경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등을 감시하는 일을 주로 한다”라고 요제프 히머 씨는 말했다. 더욱이 독일 16개 주 가운데 6개 주에서 연정으로 집권 중인 녹색당은 농가 의무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농민들을 압박하는 중이다. ‘녹색당=농민의 원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엄격한 의무를 준수하기에 유럽 농민들은 직불금을 당당하게 받는다. 농업 지원금을 놓고 ‘눈먼 돈’ 내지 혈세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국 현실과는 대비된다.

물론 한국과 유럽은 상황이 다르다. 평야가 넓은 유럽과 달리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당연히 농지 규모도 작다. 독일 농민이 보유한 평균 농지가 40여㏊인 데 비해 한국은 1.5㏊다. 그렇다 보니 가족농·소농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기업농 규모도 유럽 쪽이 훨씬 크다. 그럼에도 유럽 또한 ‘돈 되는 산업’이라서 농업을 대우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황석중 박사는 말했다. 한 예로 독일 경제(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불과하다. 2%대인 한국보다 낮다. 그런데도 농업에 아낌없이 지원을 쏟아 붓는다. 2010년 기준으로 유럽연합이 농업 지원금으로 쓴 돈은 전체 예산(1229억 유로)의 절반에 가까운 571억 유로(약 69조원)에 달했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유럽에서는 공론화를 통해 농정의 큰 구도를 결정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이명헌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지적했다(<새 정부의 농정, EU의 2013년 농정개혁에서 배울 것>). ‘2013 공동농업정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유럽연합은 온라인 포럼 형태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석 달 동안 포럼에 참여한 시민들이 남긴 의견은 5700여 건. 이 과정에서 농업의 존재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재확인됐다. ‘시민들은 농업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적정 가격에 공급하고 △토지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보장하며 △농촌의 지역사회와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식량 안보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4가지 답변이 일관되게 도출된 것이다.

거대한 시장 개방의 파고 앞에서 움츠러들기는 한국 농촌이나 유럽 농촌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런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시민들이 ‘돈 안 되는’ 농업을 지원하는 데 막대한 세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결국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유럽 가족농의 삶은 욕심 부리지 않고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끔 적정소득을 보장하는 지원 시스템과 탐욕을 제어하는 견제 시스템,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합의라는 3대 축으로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