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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경제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 다섯가지

youngsports 2014. 9. 2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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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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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가 돌아왔다. 이번엔 경제'학'을 위해서다.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말이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가 국가 그림을 한참 그리고 있을 때였다. 복지공약을 두고 온 나라가 또 들썩였다. 특히 보수언론이 더 적극적이었다. '돈도 없는데 무슨 복지냐'는 투였다. 이젠 당시의 '복지 논쟁' 자체가 그리울 정도가 됐지만 말이다.

그때 장하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에 있는 그와 1시간 넘게 통화했다. 그의 첫마디는 "당선인 공약을 벌써부터 어기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은 반역자"였다. (관련기사: "당선인 복지공약 뒤흔드는 사람들은 반역자... 박근혜기에 과거사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어") '반역자'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10년 넘게 그를 봐온 기자 입장에서도 '솔깃'한 단어였다. 그는 항상 그랬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정곡'을 찌른다. 쉽고, 직설적인 화법은 그의 소통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인터뷰나 강연이나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기존 경제질서나 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은 혹독할 정도였다. 오로지 시장만능과 효율성에만 목을 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철저히 '반기'를 들었다. 이 때문에 기존 경제학자들은 애써 그의 이야기를 외면했다. 장 교수의 '주장'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일부 '비' 주류 학자의 주장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국제적인 경제학자에 오른 장하준

어느새 그는 달라져 있었다. '케임브리지대 교수'라는 이름도, 그의 말투가 바뀐 것도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세상은 그의 생각과 발언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않는 23가지> 등의 책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정치평론지로 유명한 영국의 '프로스펙트(PROSPECT)'는 매년 '세계적 사상가(WORLD THINKER)'를 발표한다. 장 교수는 지난해 18위에서 올해는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21세기 자본론>을 펴내 세계적인 논쟁을 일으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7위였다. 국내 경제학계가 그를 '비주류'로 내몰고 있는 동안 세계는 그를 '주류'로 인정했다.

학교에서 강의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그를 찾았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 월스트리트를 포함해 남미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그는 기자에게 "대중과 소통하는 경제학자가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연구하고, 책을 쓰고, 대중과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말 그는 일반대중을 위한 경제입문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경제 입문서'. 처음엔 갸우뚱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진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했다. 제목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부키)다. 앞서 영국에서 나온 제목도 '이코노믹스 더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다. '경제학, 사용설명서' 정도다.

"결코 경제학자들을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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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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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서' 라고는 하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어렵지 않다. 장 교수 특유의 쉬운 어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내용은 쉽고 말투는 순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내 책중에 가장 래디컬(radical)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그렇다.

기존 책들이 주류 경제학의 주장과 실제가 얼마나 허점투성인지를 적었던 것에 반해 이번엔 아예 구조적, 이론적 문제점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그리곤 기존 경제학에 대해 이렇게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있다"고 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실패가 없고, 그나마 존재하는 사소한 결함은 현대경제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설파했었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는 2003년 '공황을 예상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중략)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경제학은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그는 기자와 만날 때마다 '편견'과 '쏠림'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고 더이상 경제학을 이른바 '전문가'에게만 맡겨 놓아선 안 된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어려운 각종 수학적 용어를 들이대며 자신들의 울타리를 쳐 놓고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아예 '경제학자를 믿지 말라'고도 한다.

그들이 경제학에 대해 말하지 않는 다섯 가지

그래서 그의 경제학 강의는 인상 깊다. 또 그는 독자를 진지하게 대한다. 그 스스로 자신의 책을 두고 "복잡한 영구불변의 진리를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그런 책이 아니다"고 했다. 독자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썼다.

책은 모두 2부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1부 경제학 익숙해지기는 장하준식 경제학 역사와 이론을 맛볼 수 있다. 이미 주류경제학에서 배제시켜버린 경제사(經濟史)와 다양한 경제이론을 장하준식 어법으로 들춰낸다. 자유시장주의의 선봉에 선 신고전학파 역시 수많은 이론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제학의 여러 이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자유롭게 쓸수 있다는 것이 장하준의 이야기다.

2부 경제학 사용하기는 '어떻게' 사용할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중국보다 훨씬 높은 경제기적을 이룬 적도 국가 기니를 통해 경제에서 생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또  보리스네 염소가 그냥 꼬꾸라져 죽길 바라는 심정을 나타낸 구절에선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기존 경제질서를 바꾸기 위해선 시민들이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30여 년 동안 세계를 좌지우지한 기존 경제질서와 이론을 뒤집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고 장 교수는 말한다.

"기존 경제질서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한 경제체제보다 더 안정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싸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 변화는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싸우면 '불가능한' 일도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 책을 낸 펭귄출판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 이야기를 적는다. 장 교수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5가지로 요약한 것이다.

1.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이다.
2.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다
3. 경제학은 정치다.
4. 결코 경제학자들을 믿지 마라.
5. 경제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