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은혁
세계를 향해 점프하는 이들이 있다. 브레이크댄스(Break dance)를 추는 댄서들, 일명 ‘비보이‘다. 1970년대 초반,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 비보이가 탄생했다. 단순히 음악에 맞춰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양 팀이 번갈아 가며 춤을 추면서 시위를 벌이던 것이 바로 오늘날의 비보이 배틀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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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 비보이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운동신경이 좋은 외국팀들을 상대로 세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 개인이면 개인, 팀이면 팀. 대회에 출전하는 대로 입상을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비보이는 그 자체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살려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영화, 드라마, CF, 공연 등 각종 미디어에서 비보이를 집중 조명했다. 세계를 향해 점프한 이들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충분했고, 이제는 한류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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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비보이 배틀 중에 하나인 ‘R16 코리아’가 7월 5일, 6일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다. 대회는 크게 개인전 부문인 비보이 솔로배틀(POPPING&LOCKING)과 단체전 부문인 비보이 크루배틀로 나뉜다. 심사위원의 주관적인 점수로 승패가 나뉘는 만큼 심사 기준을 최대한 객관화했다.
솔로배틀의 경우 기본기, 음악성, 창의성, 난이도, 실행력 등, 총 5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점수를 매긴다. 크루배틀은 기본기, 독창성, 역동성, 실행력, 배틀능력의 5개 카테고리로 나눠 채점된다. 심사를 거쳐 더 많은 카테고리에서 승리한 댄서 혹은 팀이 상위라운드로 진출한다.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만이 아니라, 심사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팀을 이뤄 어른들과 비보이 배틀을 즐기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처럼 나이와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즐긴다는 점이 비보이의 매력이다. ⓒ기은혁
‘R16 코리아’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의 비보이 팬들이 서울 올림픽공원에 모였다. 공연을 기다리며 만난 비보이 팬들은 즉흥적으로 안무를 맞추며 배틀을 벌이기도 했고, 이는 보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R16 코리아’는 각 나라의 퍼포먼스 배틀로 시작됐다. 고난이도의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화려한 무대였다. 퍼포먼스 배들에 참가한 팀들은 각 나라의 상징적인 음악을 사용하거나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나오는 등 색깔 있는 공연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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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6 코리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순서로 펼쳐진 크루 배틀이었다. 8개 나라에서 온 팀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기량을 겨룬 크루 배틀은, 8강전은 10분, 4강전은 12분, 결승전은 15분으로 진행됐다. 두 팀씩 무대에 올라 배틀을 펼쳤는데, 서로를 치켜세우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모두 퍼포먼스의 일부였다. 무대에 오른 팀들은 관객의 호응을 얻기 위해 독창적인 기술을 선보였고, 갈수록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결승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한국과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러시아가 맞붙었다. 결승전은 예선에 비해 배틀시간이 길었지만,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양팀 비보이 모두 구슬땀을 흘리며 멋진 공연을 펼쳤다.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파워무브의 대가 김연수의 무브를 끝으로 대한민국의 비보이팀 ‘겜블러크루’가 R16 KOREA의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정상의 비보이팀 겜블러크루. 그들이 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비보이팀 겜블러크루(GAMBLERZ CREW)를 만나 무대에서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R16코리아&기은혁
Q. ‘R16 코리아’ 우승 축하드립니다. 겜블러크루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팀은 오래전부터 파워무브*가 뛰어난 팀이었어요. 타 팀은 보통 비슷한 스타일무브**를 선보이는 반면 저희는 강력한 파워무브를 바탕으로 다양한 스타일무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 파워무브 : 강한 근력과 세밀한 기술을 요구하는 동작. 회전기술과 같은 큰 동작들이 파워무브에 해당한다.
** 스타일무브 : 풋(foot)워크 위주의 스텝을 밟는 것으로, 자신만의 무브를 창안할 수 있다. 파워무브보다 댄스의 요소가 더욱 강조된다.
Q.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예선전 전날에 한 팀원이 깁스를 하고 왔어요. 심지어 아주 쉬운 기술을 하다 다쳤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고난이도 기술을 구사하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게다가 또 다른 한 팀원이 예선 당일, 허리에 담이 오는 바람에 멤버 교체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려움에 빠졌었죠. 출전을 고민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출전했어요. 하지만 그런 악조건이 오히려 투지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더욱 단결해서 대회에 임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Q. 평소에 연습은 얼마나 하세요?
매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연습이 잡혀있어요. 세계대회나 큰 공연이 있을 경우에는 짧아도 50일 전부터 새벽연습이 추가됩니다. 중간에 2시간 정도 쉰 다음,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또 연습하는 식으로 진행해요. 이런 연습방식 자체가 한국이 최초라고 들었어요. 대부분의 한국 팀들은 이렇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
Q. 얼마 전에 런던으로 해외공연을 다녀오셨잖아요?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굉장히 좋았어요. 현지 비보이분들도 많이 찾아오셨고요. 무엇보다 워낙 유명한 장소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연 당일에 비가 굉장히 많이 와서 반응이 없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한 한국분이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저희들 다치지 말라며 바닥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을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오히려 저희가 정말 더 감사했고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비를 맞으면서도 열광해주신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이 났죠.
Q. 한국 비보이들이 세계에서 위용을 떨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비보이들은 오기가 좋아요. 끈기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합니다. 한국이 파워무브 부문에서 세계 최고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운동신경은 분명 흑인들이 좋죠. 하지만 끈기를 필요로 하는 파워무브는 한국 비보이들을 따라올 수가 없어요. 또한 저희는 비보이를 단순히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연구하고 한층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런 부분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Mnet 방송캡쳐
Q. 지난해부터 멤버 한 분씩 유명세를 타고 있어요. 비보이라는 장르도 더 알려지고 있고요. 어떠신가요?
운 좋게 저희 멤버 몇 명이 방송에 출연하고 있어요. 춤을 소재로 한 생소한 프로그램이었고, 사실 처음에 제작진 분들도 반신반의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았고, 올해 시즌2가 시작되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댄서의 힘든 점, 현실적인 부분들을 많이 보여드린 것 같아요. 그게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비보이가 제2의 전성기가 아닌,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R16코리아&기은혁
Q. 관심을 쭉 지속시키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하는 사람들. 즉, 비보이를 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해요. 지금도 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많은데, 그걸로 끝인 것 같아요. 사실 연령대가 있는 분들은 함께 따라하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몸으로 따라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많이 전수해야 할 것 같아요. 어린 아이들이 비보이를 경험하면서 성장한다면, 훗날에는 어른도 아이들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스타크래프트나 축구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보고 바로 따라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화가 뒷받침돼야 관심이 지속될 것 같아요.
ⓒ기은혁
흔히들 대한민국 비보이를 대한민국 양궁에 비유하곤 한다. “한국의 양궁대회에서 예선전을 통과하면 세계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 “한국의 실력 있는 비보이들이 외국 비보이팀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비보이를 세계에 전수했고, 한국을 세계 널리 알렸다.” 그만큼 대한민국 비보이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겜블러크루가 말했듯이 대한민국의 비보이가 단순한 한류 그리고 제2의 전성기가 아닌,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