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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이 만난 사람]"제대로 분노해야 지도자가 분노 이해하고 잘못 고쳐"

youngsports 2014. 5. 31. 20:50

경향신문 | 유인경 기자 | 입력 2014.05.31 10:56

온 국민을 분노와 아픔의 바다에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 유가족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아프다. 정부 관계자들만 봐도 화가 치밀고, 유가족들의 눈물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분노는 어떻게 풀어야 하고,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 걸까. 한국청소년재단 이사장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김병후 부부클리닉 후 대표는 "화를 낼 때는 내야 하고, 분노할 때는 분노해야 한다"며 "제대로 분노해야 지도자나 정부가 분노를 이해하고 잘못된 행동이나 시스템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30여년간 방송과 글을 통해 부부갈등 문제를 다루고, 청소년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온 김 대표를 만나 우리 사회의 집단 우울과 분노 치유법을 물었다.

80년대부터 부부갈등을 다뤄왔습니다. 부부상담에도 변화가 있나요.


"예전에는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부들이 병원이나 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각자 개인의 문제는 없는데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상담을 받거나 병원을 찾죠.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갈등이 급증하고 있어요. 작은 차이나 상처에도 참지 못하기 때문이죠. 과거 부부들은 상대의 외도, 폭력, 경제적 문제 등의 이유로 부부상담실을 찾았던 것과 달리 요즘 부부들은 '내 말을 이해 못한다' '내 말을 안 들어준다' 등으로 갈등의 양상이 달라졌고 상처도 정밀해졌습니다."

왜 상처가 정밀해졌을까요.


"경제발전과 더불어 부부의 삶의 질에 대한 욕구와 정보가 커졌기 때문이죠. 과거엔 남편이 아내에게 밥 걱정 안 하도록 돈만 벌어주면 제 역할을 다한 것이지만, 요즘은 아내의 기분도 좋게 해줘야 하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줘야 합니다. 아내도 예전엔 살림만 잘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경제적 능력도 있어야 하고 아이도 잘 양육해야 하고 외모도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남편은 '우리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정말 잘하는데 왜 맨날 아내에게 혼나야 하나'라고 불만이고, 아내는 아내대로 '착한 부인으로 살다가 골병든 우리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니 갈등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매스컴과 SNS 덕분에 다른 이들의 삶이 너무 많이 보여져서 자기가 누려야 할 삶의 욕구를 객관적으로 파악합니다. 아파트, 핸드백, 자녀 성적, 휴가지 등등 타인의 삶을 보고, 남들보다 못하면 결핍감과 상처를 받습니다."


이토록 상처가 다양해지고, 갈등이 깊어져 이혼율도 세계 최고라는데 해결책은 없나요.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배우자가 다 못마땅할 것입니다. 우선 부부간에 공감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많이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고, 타자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부부의 경우 배우자의 마음을 아는 능력이 있어야 갈등이 생겨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자의 마음을 알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제일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는 것입니다. 소통이 잘 되려면 내가 미루어 추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마음이나 상태를 직접 물어봐야 해요
나의 추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거든요. 타인의 마음을 알고, 공감력을 키우려면 내 상태를 먼저 알려줘야 합니다. 물론 한국 정서에는 잘 안 맞고 아직 어색하죠. 우리는 내 감정상태를 잘 파악하거나 상대에게 설명하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니까요. 자동차가 좌회전을 하려면 깜빡이를 켜서 신호를 보내듯 자기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내가 나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알려준 후에 남들의 마음도 물어봐야 합니다. 그것이 공감력이에요."

부부도 그렇지만 요즘 정치인들의 소통 부재, 지도자의 불통이 문제입니다.


"정치인의 공감력 부족은 선거밖에는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국민, 즉 유권자의 권리인 투표를 통해 공감력이 적거나 불통인 정치인은 퇴출시키고, 공감력과 지도력이 큰 정치인을 새로 뽑으면 됩니다."

그런데 왜 가장 대중과 소통해야 할 정치인들이 불통일까요.



"정작 자신들은 잘 알고, 또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죠. 그 분은 다 해봤고, 다 안다고 믿습니다. 광우병의 경우도 '지금까지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없는데 왜 불안해하나'가 그의 정보와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는 '혹시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나 뼈를 먹고 나와 가족이 죽거나 병들지도 모른다'는 여중생의 불안한 마음을 몰랐죠. 팩트보다 정서가 중요합니다. 위정자들은 국민 정서를 모르고 '내 말이 맞다. 자료에 다 있다'라고 강조하지만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보다 정서입니다. 

부부도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에게 '그 여자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란 말을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라고 불안해하는 아내의 정서적 영역도 인정해줘야 해요. 지도자의 경우는 더욱 책임이 무겁습니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일지라도 설명을 해줘야 하고, 설사 국민의 정서가 정말 우매하고 유치하다 해도 들어줘야 합니다. 정서는 어설프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사건 후 지도자나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집단불안과 집단분노가 너무 큽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나오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분노의 감정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나올 수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나옵니다. 

행동을 제약받는 개인은 강한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덫에 걸린 동물이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분노입니다. 이 경우는 서로 어느 정도 맺어진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하지만 관계를 맺지 않는 사회 구성원에 대한 분노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사회 질서를 해치는 구성원에게는 강한 분노가 본능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명절 때 막힌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다니는 운전자에게 화가 난다든지, 새치기를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 질서가 무너져 사회가 위험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이러한 분노가 극단적으로 나오게 되는 경우입니다. 경제적 이유로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선주, 사건 초기에서와 같이 힘 있고 위기상황의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노의 원인이었습니다. 또 우리 사회가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든, 문제가 있는 사회라는 것이 국민들의 마음을 절망에 빠뜨리게 했죠."

사람들은 그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더 분노감이 커졌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더 한심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명백한 사회 파괴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편드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사 그들을 법정에 세운다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법이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가 있어 처벌하기 어렵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사회 파괴자들과의 관계로 이익을 가지는 사람들의 저항으로 법 집행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 잘 알거든요. 유사한 악행을 이전에 저질렀음에도 그들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대출을 받고 회사를 키워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사회 파괴적 행위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제한을 받았고,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재현되어 가는 것에 대한 절망적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린 생명들을 잃은 참사에 대한 우울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아픔은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향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에 대한 분노는 그 폐해가 생각보다는 더 클 수 있어요.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이 준 무의식적 결과는 사회 근간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적 질서의 붕괴 조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암묵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절대적 질서가 무너진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수 있어요. 좌회전 깜박이를 켠 자동차는 좌회전 신호에서 좌측으로 가지만 구성원들이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 어느 차가 좌회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개인이 예측해야 한다면? 그런 사회의 교통질서는 와해될 것이고 전체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부부클리닉 후 대표 / 이상훈 선임기자

그럼 이런 사회적 분노를 '인간사회'의 기본적 질서에 대한 불신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요.


"이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핵심 원인이 파악되고 그에 대한 대처가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세월호는 그런 규칙과 법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국민적 분노와 우울이 가시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의 해결에서 사건이 
만들어진 과정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는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건의 해결을 진행해가야 하겠죠."

세월호 유가족들의 자살이나 자살 시도 등 후유증도 엄청납니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안산트라우마 센터, 즉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등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심리치료가 매우 중요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큽니다. 솔직히 정부에서 주관하는 일은 기술이건 패션이건 센터부터 지어놓는데, 결국 남는 것은 건물뿐인 경우가 많아서요.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구조에 참가한 수색대원, 자원봉사자, 취재기자,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본 국민들도 간접적 외상에 시달리는 등 2차 피해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곳곳에서 심리치료 서비스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만, 심리치료는 일단 하드웨어인 건물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합니다. 국내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가 등 전문가들을 파악하고 그들과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한 센터보다 곳곳에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유가족의 경우 자신이 문제가 있으니 치료해달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인 치료를 해야지 무조건 배급표 나눠주듯 '빨리 치료받으세요'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혹은 가족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이들에게 개입하면 더 상처를 받고 악화되기도 합니다. 

일단 생활 속에서 치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가족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심리치료 지원을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자살 시도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에서 밀착해 지켜보되 감정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둔 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며 성급하게 학교를 옮기거나 이사를 가는 것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봅니다. 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역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학교 친구들과 이웃들이 의지하며 같은 상처를 가진 많은 사람이 서로 돕고 있음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트라우마센터나 의사들보다 때론 가족, 친구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묵묵히 보듬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고는 국가 안전망이 붕괴되며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유가족은 물론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고 당사자나 일반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려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추가조치를 통해 국가가 신뢰감을 회복하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피해가족이 아닌 보통 국민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대로, 세련되게 분노해야죠. 우리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화를 제대로 내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습니다. 화를 낼 때는 화를 내야 하고, 분노를 정당하게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 교정이 되는 순기능도 합니다. 개인의 행복이나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이제 좀 제대로 분노하고 상대, 특히 지도자나 정부가 그 분노를 이해하고 잘못된 행동이나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련되게 분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작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겉으로만 사과하는 척할 때도 우아하고 세련된 분노가 소용이 있을까. 이제라도 야무지게 분노하고, 그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 유인경 기자 alic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