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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이젠 노키아를 그리워 하지 않는다-위클리비즈 기사를 읽고

youngsports 2013. 12. 21. 19:12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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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이젠 노키아를 그리워 하지 않는다-위클리비즈 기사를 읽고


최원석기자가 방문한 수퍼셀과 욜라가 입주한 예전 노키아 건물. (출처 :Jollatides.com)

최원석기자가 방문한 수퍼셀과 욜라가 입주한 예전 노키아 건물. (출처 :Jollatides.com)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흥미로운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핀란드, 이젠 노키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위클리비즈)

좋은 기사를 많이 쓰는 최원석기자가 핀란드 헬싱키에 다녀와서 노키아가 몰락한 후의 핀란드의 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서 르포기사를 쓴 것이다. 마침 며칠전 막 핀란드에서 돌아온 최기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몇번 글을 쓴 일이 있던 나는 “노키아의 몰락이 과연 핀란드 경제에 영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솔직히 영향이 있다. 핀란드 경제는 마이너스성장을 기록중이다. 하지만 노키아의 몰락이 창업붐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아서 꼭 읽어볼만하고 한국에도 주는 시사점이 크다. 내가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소개한다.

“5년 전만 해도 핀란드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대학생들이라면 예외 없이 노키아, 맥킨지, 런던의 투자은행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고, 창업은 이상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됐다” “최근 슬러시의 참가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창업 콘퍼런스 운영 비영리단체인 ‘슬러시(SLUSH)’의 미키 쿠시(Kuusi) 수석 운영위원

핀란드의 창업 지원 기구인 혁신기술청(TEKES)의 야네 페라요키 스타트업 담당 국장은 정부 입장에서도 노키아라는 거대한 존재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재가 너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전체적인 경제 발전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키아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노키아는 핀란드 전체 법인세의 23%를 차지하고, 수출의 20% 가까이 차지했을 만큼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하게 대기업들이 경제를 주도한 핀란드도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장만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젊은이들이 대기업말고 다른 선택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중요하다. 

“노키아의 몰락이 그동안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해 눈감고 싶었던 핀란드 경제에 강력한 자명종 역할을 한 겁니다. 모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거죠.”

노키아 고위 임원 출신인 페카 소이니 혁신기술청장은 “노키아 출신 인재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해 IT 산업을 활성화시키느냐가 당면 과제”라고 강조한다. 현재 노키아를 떠난 인력이 주축이 돼 시작한 벤처기업만 400여곳에 이른다.

노키아의 몰락이 수백개의 스타트업에 인재수혈을 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블랙베리가 몰락한 캐나다의 워털루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참고 글 : 블랙베리,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

삼성전자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는 노키아처럼 혁신 능력을 잃어버린 회사는 아닙니다. 여전히 잘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고, 혁신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의 인재들이 삼성전자로만 몰리지 않고 골고루 퍼져서 뛰어난 스타트업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게 더 바람직하겠지요.” -페카 소이니

노키아에 다녔던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키아는 정말 관료적이었다고 한다. 회사가 공룡이 되서 변화에 정말 둔감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친구는 지금 산호세의 삼성전자로 이적했다.) 어쨌든 삼성이 잘하고 있지만 한국의 인재들이 삼성으로만 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이니씨의 지적은 정확하다.

또 130명의 직원으로 올해 매출 1조원을 바라보고 있으며 지난 10월에 소프트뱅크가 지분 51%를 1조7천억원에 인수해 ‘앵그리버드’ 로비오에 이어 핀란드의 벤처신화가 된 수퍼셀이란 회사가 있다. (참고 글 : 핀란드 게임 회사 수퍼셀(Supercell)의 준비된 성공-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최기자가 수퍼셀을 방문하고 쓴 파나넨 CEO 인터뷰기사도 내용이 흥미롭다.

슬러시컨퍼런스에서 대담중인 수퍼셀 CEO 파나넨 (출처:수퍼셀 Facebook page)

슬러시컨퍼런스에서 대담중인 수퍼셀 CEO 파나넨 (출처:수퍼셀 Facebook page)

핀란드 벤처의 우상 ‘수퍼셀’ CEO 파나넨 (위클리비즈)

수퍼셀은 과거 노키아 R&D센터였던 7층짜리 건물의 6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한 층 면적이 1500㎡에 달하기 때문에 130명에 불과한 직원들이 쓰기에는 공간이 넘쳐 보였다. 직원들의 국적이 30개국을 넘기 때문에 사내 공용어는 영어다. 한국인 직원도 2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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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스타트업인데 핀란드인이 주류가 아니고 직원들의 국적이 30개국을 넘는다고? 이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상으로 다국적군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검색해봤는데 수퍼셀 페이스북페이지에서 위 사진을 찾았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강점은 다양성인데 수퍼셀은 핀란드에 있으면서도 이런 직원들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취업 비자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궁금하다.)

―노키아의 몰락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

“어떤 서운한 감정 같은 거 전혀 없다.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최고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급 인재들이 벤처에 몰려오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편집자 주). 노키아는 아주 크고 뛰어난 회사였지만, 결국 혁신을 이루기는 어려운 회사가 되어버렸다.”

위기는 항상 전화위복의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수퍼셀은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지만 직원은 130명이다. 노키아는 전성기에 핀란드에서만 2만5000명을 고용했는데, 핀란드 게임 산업 전체의 올해 고용 총인원은 겨우 2200명이다.

“맞는 이야기다. 수퍼셀은 수천 명을 고용할 수 없다. 우리는 최고 직원을 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만큼 직원 한 명을 더 뽑는 것에 신중하다. 하지만 우리는 세금을 아주 많이 낸다. 최근엔 정부 예산 부족으로 개·보수가 늦어지고 있는 핀란드 내 아동 병원의 보수 비용을 수퍼셀이 전액 기부금으로 내기도 했다. 수퍼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수퍼셀 같은 기업이 10개, 20개로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라. 충분히 고용을 늘릴 수 있고, 국가나 사회에도 공헌할 수 있다.”

단일기업이 저렇게 큰 고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스타트업으로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성공한 저런 창업자가 많이 생길수록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더 많은 성공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한국도 실리콘밸리나 핀란드의 IT 창업 열기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흠, 글쎄.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게 놀랍다. 한국은 게임 산업의 선구자이다. 실리콘밸리나 핀란드의 어떤 것을 배우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 넥슨이 만든 게임의 열혈 팬이고, 네이버나 카카오톡 같은 회사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회사를 존경한다. 나는 한국 게임 회사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 업체들과 경쟁이 치열해질 텐데 매우 흥분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긴장되기도 한다.”

한국의 인터넷-게임업계를 보는 해외업계인의 시각이다. 국내에서는 언론-정치권에 의해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는 한국로컬기업들이지만 해외에서는 글로벌인터넷-게임업계에 대등하게 경쟁하는 한국의 대단한 기업들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게임과몰입은 문제이지만 한국이 초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사회라는 구조적 문제때문에 생긴 현상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 게임업계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모처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해외에서 부러워하는 한국의 게임업계가 크게 위축받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규제를 만들 생각 말고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같은 말도 안되는 흉물이나 빨리 없애줬으면 한다. 이 두개만 없어도 한국의 전자상거래업계는 당장 큰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진출도 가능하게 된다.)

―왜 실리콘밸리로 안 가고 헬싱키에서 창업했나.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헬싱키에는 20년 전부터 게임을 개발해 온 작은 기업이 많다. 직원이 수십 명인 회사가 1000명인 회사보다 더 잘할 수도 있는 분야다. 더구나 요즘 모바일 게임은 앱 마켓을 통해 손쉽게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킬 수 있지 않은가. 굳이 실리콘밸리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봤다.”

글로벌진출을 위해서 꼭 실리콘밸리에 가야만 하는가. 수퍼셀의 사례는 이런 고민을 하는 한국스타트업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한국에도 좋은 개발자가 많다. 파나넨CEO처럼 실리콘밸리를 잘 아는 리더가 이끄는 회사라면 꼭 실리콘밸리에 가지 않고도 로컬에서 글로벌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수퍼셀은 핀란드에 있지만 실리콘밸리 회사 이상의 다양성을 가진 다국적군으로 된 스타트업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핀란드라는 나라와 핀란드 스타트업경제는 참 흥미로워 보인다. 한국에게는 이스라엘이상으로 참고가 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언제 한번 가서 직접 현장을 들여다볼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