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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S] 동네축구에서 탄생하는 신데렐라 이야기

youngsports 2016. 6. 28. 20:59





한국 축구 피라미드,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를 붙이다

드디어 한국 축구 피라미드가 우뚝 선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는 2017년부터 프로와 아마추어를 아우르는 7부 리그 체제 축구 리그 디비전 시스템(승강제 운영 방식)을 도입할 것이라 공표했다. 그간 한국 축구는 최상위 프로리그인 K리그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산하 연맹기관을 두고 프로 리그 K리그와 실업축구리그인 내셔널리그, 아마추어 전국 최상위 리그인 K3리그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역 기반의 생활축구 리그까지는 아우르지 못했다. 가장 많은 경기가 열리는 한국 축구의 저변은 울타리 밖에 널브러져 있었고 가장 순수한 축구팬들의 리그는 ‘동네 축구’였다. 7부 리그 도입은 거꾸로 선 한국축구의 피라미드를 바로 세우는 보수공사다.

Unsere Amaterue, Echte Profis(우리의 아마추어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슬로건을 내건 독일축구협회 (사진 출처 = DFB)



견고한 리그 시스템 안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균형감 있는 피라미드, 견고한 시스템은 축구에서 왜 중요할까? 여기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축구 피라미드가 답을 대신한다. 6,889,115명의 등록선수, 25,324개 등록 팀(2015년 기준)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바로 독일의 축구 리그 시스템이다. 독일 축구는 1~3부 리그까지는 프로 리그, 4부는 세미 프로리그, 5~7부는 지역 아마추어리그로 운영된다. 특히 아마추어리그는 지역 축구연맹의 팀 등록 현황에 따라 많게는 최다 13부 리그까지 편성돼 있다. 

피라미드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닥을 살펴보자. 한국 축구가 그간 보살피지 못했던 그곳 말이다. ‘Unsere Amaterue, Echte Profis’(우리의 아마추어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독일의 동네 축구장에서 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독일축구협회(DFB)의 아마추어리그 슬로건이다. 이는 독일 축구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이자 독일 축구 피라미드의 건설 지표였다.

독일 올덴부르크라는 소도시 출신의 카이 횔셔(25)는 5살 때부터 호이스뷔텔러SV(Hoisbütteler SV)라는 지역 클럽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횔셔씨가 그곳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대다수 독일 소년들이 자신의 첫 클럽을 선택하는 이유와 같았다. 그 팀이 집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호이스뷔텔러SV의 유소년 시스템을 거쳐 성인 팀에 합류한 횔셔씨는 8부 리그 크라이스클라세(Kreisklasse)에서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횔셔씨는 “하부리그 선수들은 엔지니어부터 세일즈맨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재미로만 축구를 한 것은 아니다. 팀 훈련은 일주일에 두 차례 감독과 함께 진행하고 리그 경기는 자격증을 가진 심판과 부심들의 진행 하에 이루어진다. 규모와 분위기만 다를 뿐, 상부리그 경기와 다를바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크라이스클라세에서도 하위권이었던 우리 팀의 시즌 목표는 전 시즌 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하지만 상위권에 있는 팀들의 목표는 상위 리그인 크라이스리가(Kreisliga)로 승격하는 것이다. 전 리그에 승격제도가 적용되는 독일에서 ‘승격’은 모든 클럽이 한번쯤 꿀 수 있는 평등한 꿈이다. 여기에 실력 있는 선수가 스카우팅 능력이 갖춰진 소속팀에서 뛴다면 제이미 바디같은 신데렐라를 꿈꿀 수도 있다. 팀 승격과 선수 개인의 성공 모두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견고한 리그 시스템 안에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축구를 잘 하는 나라에서는 축구를 하기도 쉽다. 독일에서 토요일 오후에 지하철을 타면 커다란 스포츠백을 어깨에 메고 지하철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입은 트레이닝복엔 낯선 엠블럼이 박혀있다. 아마추어리그 경기를 뛰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매주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횔셔씨가 말한 대로 견고한 리그 시스템 덕분이다.



독일 축구 피라미드, 견고하면서도 유기적이다

이 거대한 독일 축구 피라미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축구 조직도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독일 축구리그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두 주체는 독일축구협회(DFB)와 독일축구리그연맹(DFL)이다. DFL은 DFB의 산하 조직임과 동시에 독립된 주식회사로 1~2부 리그인 분데스리가를 운영한다. 3부 리그 이하는 DFB가 관장한다. DFB는 5개의 지역협회(Regionalverband)를 산하기구로 두고 있다. 각 지역협회는 등록 팀의 규모에 따라서 복수의 지방협회(Landesverband)를 두고 있다. 그 수는 독일 전역을 통틀어 총 21개에 달하며 각 지방협회는 독립된 리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독일이라고 13부 리그에 달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하루 아침에 가졌을까? 독일축구협회는 1900년도에 설립됐지만 통합 프로 리그인 ‘분데스리가’가 출범한 것은 1963년이었다. 당시는 동서독 통일 전이었기 때문에 초창기 분데스리가에는 서독 팀들만 참여했다. 그 전까지는 지역별로 축구리그가 열렸다. 가장 작은 지역 리그 규모인 ‘크라이스리가’부터 시작해 16개 지역의 1부리그 격인 ‘가울리가’, 분데스리가 출범 전에는 서독과 동독을 합쳐 6개 지역 최상위 리그인 ‘오베르리가’가 있었다. 물론 ‘독일 챔피언십’, ‘체머 포칼’(DFB 포칼 전신)같은 전국구 토너먼트 대회도 존재했다.



‘크라이스리가’와 ‘오베르리가’는 현재도 존재한다. 현 독일 축구 피라미드에서 각각 7부와 5부 리그를 담당한다. 역사가 80년이 넘는 리그가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독일 피라미드 건설이 바닥부터 시작해 상위리그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일 축구 피라미드 건설은 기초공사가 탄탄했다. 그래서 독일 축구 피라미드는 견고하면서도 유기적이다. 1963년 프로 리그인 ‘분데스리가’ 출범 후 1990년 독일은 동서독 통일을 맞았다. 동독 ‘오베르리가’의 상위 6개 팀이 2부 리그 ‘분데스리가’에 편입되었고 동독의 ‘오베르리가’는 3부리그 격 지역 리그 중 하나로 편성되었다. 1994년에는 ‘오베르리가’위에 ‘레기오날리가’를 추가했다. 독일축구협회는 프로리그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 3부리그인 ‘드리테리가’를 불과 8년 전인 지난 2008년 신설했다. 하지만 혼돈은 없었다. 3부리그 였던 ‘레기오날리가’는 자연스럽게 4부 리그로 한 단계 내려 앉았고 ‘레기오날리가’의 상위 팀들이 신설된 3부 리그에 합류했다. 

심지어 DFB 등록 선수는(성인 선수 기준) 지난 2015년을 기준으로 전년도 대비 무려 23,804명 늘었다. 오랜 시간 다져진 탄탄한 시스템에서는 리그 규모의 확장은 문제가 아니다. 아마추어리그의 주춧돌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새로 등록한 선수가 적합한 레벨의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스카우팅 시스템이 마련돼 있고, 새로운 팀은 언제든 하위리그서부터 피라미드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한국 축구 피라미드,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를 붙이다

이제 거꾸로 선 한국 축구 피라미드를 살펴보자. 우리의 피라미드는 건설 순서부터 거꾸로였다. 세미 프로 리그가 먼저 출범하고 프로리그가 개막했다. 아마추어 최상위리그인 K3리그는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등장했다. 그 하위 리그는 순서에 없었다. 한국 축구 피라미드 허리는 두 동강나 있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상위 부분인 엘리트 축구와 바닥을 이루고 있는 아마추어 축구는 공통 분모 없이 철저히 분리됐다. 둘은 주관 단체마저 달랐다. 엘리트 축구는 대한축구협회가 아마추어 축구는 국민생활체육 전축축구연합회(이하 생활축구연합회)가 이끌었다. 

한국 축구 피라미드 보수공사는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였다. 두 협회가 ‘축구 혁신 테스크포스(TF)’를 꾸려 통합 가능성을 논했다. 그리고 지난 2월 22일 마침내 ‘통합 대한축구협회’ 출범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생활축구연합회가 대한축구협회로 흡수되며 엘리트와 아마추어 축구가 비로소 한 지붕에 모였다. 두 동강나있던 피라미드가 온전한 삼각형이 된 순간이었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2월 통합 총회 후 “한국축구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하부리그에도 승강제를 정착시켜 모든 축구인들에게 고른 기회를 줘야 한다. 1,2부에 그치고 있는 승강제를 5~6부까지 확대 하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통합 축구협회의 목적은 협회 식구를 늘리는 것이 아닌 통합 디비전 시스템 도입(승강제 리그 운영방식)임을 내비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일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가 ‘7부 디비전 시스템 도입’을 발표하면서 마침내 한국 축구피라미드 설계도가 공개되었다. 건설 계획은 다음과 같다. K1~K2 리그는 현행 그대로 프로 최상위 리그로 이뤄진다. K3~K4 리그는 세미 프로와 아마추어로 나뉘며 K5 리그는 전국 단위 아마추어 축구 클럽리그로 구성된다. K6 리그는 17개 시도별 광역 축구 클럽들로 이뤄지며, K7 리그는 시군구 지역별 축구 클럽들로 구성된다. 

7부 디비전 시스템 도입에 따라 2017년부터 합류하게 될 아마추어 축구 리그 (사진 = KFA)


피라미드를 관통하는 통일된 시스템, 통일된 철학

한국 축구는 독일과 다르다. 독일처럼 새로운 리그를 추가해도 적용할 통일된 시스템이 없다. 이번에 발표된 7부 디비전에서 1부~4부 리그는 현재 대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K리그 클래식부터 K3리그까지의 골자를 유지 혹은 변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부 리그부터 7부 리그까지의 아마추어 레벨은 골격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리그 구분과 팀 편성까지 모두 처음부터다. 



스포츠마케팅 회사 스포티즌에 근무하는 박영훈씨(32)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마추어 축구 클럽에서 축구를 즐기는 축구 동호회원이다. 그는 대학생이던 2008년부터 서울 지역 아마추어 클럽을 위한 ‘아리수리그’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아마추어 레벨이지만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축구를 더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직접 팔을 걷었다. ‘7부 통합 디비전 시스템 도입’ 소식을 들은 후 박영훈씨는 “협회와 체육회가 아마추어 리그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흐름이다”라며 반색했다. 

그는 “단순히 지역별로 팀을 묶는 정도에 그친다면 의미가 없다. 리그 편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아마추어리그를 운영해 보니 실력만 있고 체계는 없는 팀은 쉽게 공중분해 되었다. 참가 클럽이 꾸준히 팀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보탰다. 

또한 박영훈 씨는 “7부 리그에 속한 모든 팀이 한국 축구를 이루고 있다는 소속감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축구 피라미드 보수공사의 최대 난제가 될 것이다. 현재 운영중인 K리그 1~2부와 내셔널리그 그리고 K3리그까지 네 개의 리그조차 소속감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피라미드의 상위를 이미 구성하고 있는 리그들조차 모래알인 실정에 섣불리 몸집을 불렸다가는 제도뿐인 디비전이 될 수 있다.

박영훈 씨는 ‘시간’의 문제라 짚었다. 그는 “선수등록부터 시작해 전국에 흩어진 아마추어 축구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구축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첫 삽을 든 한국 축구 리그 시스템 공사를 끈기로 이끌 수 있는 수장을 만나는 것도 성공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시간’이 필요한 건설이다. 하지만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공사 목표는 단순한 디비전 시스템 도입이 아닌 견고한 한국형 축구 피라미드의 준공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한국에 레스터시티같은 승격동화가 쓰여 졌을 때 혹은 한국판 제이미 바디가 탄생했을 때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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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네이버스포츠